기득권세력 친일청산 가로막는다

                                                                                    -한겨레신문 3월초 기획기사-

△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앞에서 친일파로 발표된 방응모 조선일보사 전 사장의 아들 재선씨(가운데)가 명단 발표 사실을 비판한 <조선일보>를 가리키며 “조선일보가 잘못하고 있다. 국민 앞에 대신 사과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방응모 전 조선일보사 사장과 김성수 전 동아일보사 사장이 포함된 친일인사 708명의 명단이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에 의해 공개되면서 사회 지도급 인사들의 일제하 친일행적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의 친일행적은 기득권세력인 그 후손들에 의해 끊임없이 왜곡돼 왔으며, 역사적·법률적 심판도 이들의 집요한 방해에 의해 좌절되곤 했다. 제 83주년 3·1절을 맞아 터져나온 친일 논쟁의 본질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세 차례로 나누어 점검해 본다. 편집자

(상) 뿌리깊은 저항세력

지난 1999년 8월 광복회는 '친일파 청산과 민족정기'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열었다. 독립운동가 단체로서 할 만한 행사였다. 그러나 광복회가 이런 주제로 행사를 한 것은 창립 이래 처음이었다. 광복회 간부들은 이를 두고 '결단'이라고까지 말했다.

사정은 이러했다. 광복회는 국가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른 국가보훈처 산하단체로 돼있다. 따라서 친일파 청산 문제를 잘못 건드렸다가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면 예산지원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가 있었다. 그동안 눈치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기막힌 사례는 정부와 정치권, 언론 등 각 분야에 '청산 저항세력'이 뿌리깊게 자리잡은 탓에, 해방 57년이 되도록 친일파 청산작업이 미뤄져온 사정을 잘 드러내준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1949년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이승만 정권이 동원한 경찰의 습격으로 활동이 중단된 뒤로, 몇차례 국가 차원의 친일잔재 청산이 시도됐으나 그때마다 좌절을 겪었다. 친일청산을 주장하면 빨갱이로 몰리는 일도 적지 않았다.

1993년에는 김영삼 정부 출범 초기의 개혁바람을 타고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 가운데 친일 혐의자의 서훈 취소를 검토하다가 무산됐다. 검토 대상에 <동아일보> 창업주 김성수 등 8명이 포함되자, 국회 보건사회위원회에서 박주천 강우혁 등 당시 여당 의원들이 “그분들의 친일행위는 당시로는 어쩔 수 없었다”며 보훈처를 거꾸로 질책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이병태 보훈처장은 '미숙한 업무처리'를 사과했으며, 이것으로 서훈 재검토 작업은 중단됐다.

같은 해 12월에는 김원웅 의원 등 여야 의원 137명의 서명으로 '민족정통성 회복 특별법'이 국회에 제출됐다. 국회가 민족정기 회복 차원에서 친일문제를 재조사하자는, 즉 반민특위를 재구성하는 내용의 법안이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당시 박희태 법사위원장이 완강히 심의를 거부함에 따라 상정도 못하고 폐기됐다.

친일파 청산에 소극적이긴 김대중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김태홍 의원(민주당)은 지난해 10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중고교 교과서에 친일 전력이 있는 신문(<동아일보> <조선일보>)들을 항일민족지로 왜곡기술한 부분을 삭제하든지, 아니면 친일협력한 사실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질의했다.

그러나 이에 최희선 교육부 차관은 “교과서에는 학계의 정설 내지 통설을 중심으로 엄선된 내용만을 서술한다”며 “일부 연구성과만을 근거로 교과서에 서술할 수 없다”고 답변해 논란을 촉발했다. 이에 김원웅 의원(한나라당)은 “언론의 친일행적은 이미 (당시 보도 등 사료를 통해) 밝혀진 것”이라고 교육부를 질타했다.

이런 현실 탓에 국회 민족정기모임(회장 김희선)이 이번에 추진하고 있는 '일제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법'의 입법도 순탄하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창업주 또는 사주의 친족이 친일혐의자로 거론된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이 모임의 행동을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으며, 여야 정치권의 상당수 세력이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태도를 이미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런 문제를 외국언론도 지적한 바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지난해 8월26일치에서 “이 문제가 반세기 이상 중요사항으로 남아 있는 것은, 오늘날 한국의 법조계·정계·재계·예술계 등 모든 분야의 많은 엘리트들이 일제 부역자들의 후손들이거나 또 친일유산에서 직·간접적인 혜택을 계속 누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박창식 기자cspcsp@hani.co.kr

 

(중)일제 추종자들 각분야 철옹성

지금 친일세력의 사회적 위상은 휘황찬란하다. 진실을 매장해버린 채, 헛것의 광채가 눈부시다. 그 눈부심이 사람들을 눈멀게 해서 `공과상쇄론'같은 공허한 주장을 가능케 한다. '과'가 없다면 '상쇄'할 일도 없어야 마땅할 것이다.

고려대는 최근 대운동장을 광장으로 개축하고 이달 중에 준공식을 연다. 본관 앞 인촌 김성수의 동상은 광장 중앙도로의 중앙선과 기하학적으로 일직선을 이룬다. 인촌 동상은 대학 캠퍼스의 정신적 정점일뿐 아니라 공간적 중심이다.

고려대는 매년 1학기 개강 직전에 신입생을 상대로 <고려대의 건학이념과 고려대의 역사>라는 주제로 50분짜리 특강을 한다. 인촌은 산업, 언론, 교육 분야의 거룩한 지도자로 소개된다. 그러나 대학은 인촌의 진실을 학생들에게 가르치지는 않는다. <문화민족주의자 김성수>(일조각, 1998)이나 <평전 인촌 김성수>(동아일보사, 1991) 등의 전기 속에서도 인촌의 진실은 반쪽만 드러나 있다.

방응모도 마찬가지다. <민족계몽의 초석 방응모>(1998, 지구촌)라는 책에서 그는 독립운동가이며 언론, 산업, 육영 분야의 위대한 선각자로 나타난다. 김성수와 방응모의 진실은 그들이 창업한 막강한 언론의 비호 아래 가려져 있다.

경기도와 화성시는 1989년 홍난파 생가를 복원했다. 99년에는 다시 36억원을 들여 `난파거리'와 `난파기념관'을 조성하는 계획을 세웠다. 독립운동단체들은 난파의 친일행적을 들이대며 항의했다. 사업은 4년째 표류하고 있다. 당시 사업을 추진했던 화성시의 한 관계자는 “그의 행적을 학술적으로 정밀 재조사해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서울 미술대 인사위원회는 재임용 대상인 김민수 (37·디자인) 교수에 대해 재임용 불가 판정을 내렸다. 김 교수는 지난 96년 발표한 논문에서 초창기 서울 미대 교수들 중 장발, 장우성, 노수현의 친일문제를 지적했다. 그 글은 다른 학자의 글을 인용한 두어줄의 각주였다. 김 교수는 98년 재임용에서 탈락되었고, 이번에 다시 탈락되었다.

미술평론가 최석태(39)씨는 “미술계에서 친일문제를 거론하는 사람은 모두 당사자와 그 제자들의 반발에 부딪히고 결국은 따돌림을 당한다”고 말했다. 아직도 살아있는 친일세력의 위력을 짐작케하는 말이다.

김은호, 심형구는 친일활동을 했을 뿐 아니라, 화폭에 일본화풍을 도입했다. 김은호의 일본색 화풍은 광복 후에도 그의 제자들에게 계승되어 한국화단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정만조는 구한말의 친일 유림이다. 그는 1896년 진도에 유배되어 12년을 지냈다. 정만조는 진도에서 <은파유필>을 저술했다. <은파유필>은 진도의 풍광과 민속과 삶의 모습을 아름답고 생동감있게 묘사했다. 진도군은 <은파유필> 번역본을 발간했다. 정만조는 진도의 향토문화사에서 광범위하게 추앙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또다른 진실은 아무도 거론하지 않는다.

극우·반공은 반민족행위를 은폐시키는 가장 유효한 방패였다. 모윤숙은 문화예술계의 각종 단체장과 공화당 전국구 의원을 역임했다. 90년 숨질 때까지 모윤숙은 대한민국예술원상과 국민훈장 모란장등의 서훈을 받았다.

친일세력의 힘과 광휘는 역사교과서를 기술하는 사업에까지 미치고 있다. 역사교과서는 친일의 문제를 피해간다. 현재 전국 중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역사교과서에는 친일에 관한 대목은 없다.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반미특위와 관련된 부분만을 간략히 언급하고 넘어간다. 전국역사교사모임 김육훈 회장은 “이것이 역사교육의 가장 큰 문제다”라고 말했다.

친일 인사들은 오늘도 광휘에 가득찬 민족지도자들이며 선각자이다. 그러나 불구의 진실은 마침내 진실이 아닐 것이다. 이들을 추앙하는 여러 시상제도는 문화·예술과 학문분야에서 커다란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문학 평론가 임헌영씨는 “친일의 영향력은 그 제자들을 통해 계속 번지고 있다. 그래서 친일청산은 일회성으로 될 일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혁준 정인환기자june@hani.co.kr

 

(하)친일 은폐 없어야 화해역사 가능

불붙은 친일청산 어떻게 풀어야 하나

구한말 친일단체인 일진회가 일본 왕세자의 조선 방문 때 숭례문(지금의 남대문) 앞에 `사쿠라' 문양이 새겨진 대형 아치를 세워둔 사진이 4일 정성길 동산의료원 의료선교박물관장에 의해 공개됐다. 대구/연합

 

 

 

친일을 청산하는 작업의 앞날은 험난하다.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는 의원 모임’이 지난달 28일 반민족 행위자 명단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친일청산을 가로막는 장벽이 무엇인가는 선명하게 입증되고 있다.

`공과상쇄론'은 `화해'를 주장하고 있지만 그 화해를 가능케하는 `사실'을 은폐하거나 정반대로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의 토대가 없는 화해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주도하고 있는 `통일시대 민족문화재단'(이사장 조문기)이 설정한 친일청산의 방향도 `반성과 화해'이다. 보복과 처단이 아니다. 그러나 민족문화 재단이 설정한 화해는 `사실'에 입각한 화해와 반성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른바 `추가 16인 명단'을 중심으로 공과상쇄론을 전개하면서 여론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 `추가 16인' 중에서 그 언론의 창업사주는 가장 우뚝한 존재이다. 언론이 자사의 권위와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기에 충분하다.

또 명단발표 직후부터 친일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상대를 헐뜯는 정당들의 싸움도 친일청산을 법제화하거나 국가기구화하는 작업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이처럼 불과 며칠 안에 드러난 문제들은 친일청산의 앞날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들을 축약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공과상쇄론'에 대해 이영학 한국역사연구회회장은 “지배층 친일인사의 경우는 과오에 대한 평가가 매우 엄중하고 정확히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동이 민중에게 끼치는 악영향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 친일인사명단 발표의 문제에 대해서 국사편찬위원 한영우 교수(서울대 사학과)는 “명단 문제는 정치적으로 다루기보다는 학계에서 먼저 다루었어야 옳았다. 한 인물을 놓고 정치적으로 접근한다면 친일파냐 아니냐 하는 흑백논리로 구분되고 만다. 친일을 했어도 그 정도는 차이가 있고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학문적 연구가 더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친일청산은 역사적 평가나 법제의 문제일 뿐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는 교육의 문제이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의 김종훈 상임부회장은 “친일인사들이 정권을 장악한 구도 속에서 역사교과서에 친일의 문제를 제대로 기술할 수 없었다. 이제 시작된 친일청산 움직임을 역사교과서 개편작업으로까지 이어 나가야한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도 20여년 동안 계속돼온 난제였다. 그러나 지난해에 일본국민들 사이에서 문제가 공론화되고 이해의 폭이 넓어져서 어느 정도 발전된 결과가 있었다. 이런 사례가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추진하고 있는 친일인명사전 발간은 `화해와 반성'을 위한 사실적 토대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며칠동안 벌어진 사태는 이 사전이 발간되면 엄청난 정치적 역사적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민주당 김희선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민간인들의 이런 작업에 법적 근거를 마련해 줄 수 있는 한시적 특별위원회를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일인명사전은 앞으로 3년간 30여권으로 발간될 계획이지만 20여억원의 예산을 감당하지 못해 작업은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 김원웅 의원은 “여야 개혁성향 의원들이 함께 노력해서 친일행적에 관한 진상조사법을 제정하도록 하겠다. 또 민간인들의 친일청산 노력을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법제화하겠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에도 정부 예산이 지원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친일청산을 가로막던 거대한 장벽은 이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최혜정 기자id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