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법륜 (轉法輪 )

                       李洪志 著

                                       
*출처:법륜대법 자료실

'불법(佛法)'은 가장 정심(精深)하다. 그는 세계 모든 학설 중에서 가장 현오하고 초상(超常)적인 과학이다. 만약 이 한 영역을 개척하려면 반드시 속인(常人)의 관념을 근본적으로 개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주의 진상은 영원히 인류의 신화로 될 것이며 속인은 영원히 자신의 우매한 견해로 그어놓은 틀 속에서 기어다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불법'은 도대체 무엇인가? 종교인가? 철학인가? 이것은 오로지 '현대화된 불교 학자'의 인식일 뿐이다. 그들은 이론만 배울 뿐, 그것들을 철학범주의 것으로 여기고 비판적으로 배우면서 이른바 연구를 한다. 사실 '불법'은 다만 경서 중의 고만한 것이 아니며, 그것은 다만 '불법'의 초급층차(初級層次)의 법일 따름이다. '불법'은 입자(粒子),분자(分子)로부터 우주에 이르기까지, 더욱 작은 데로부터 더욱 큰 데 이르기까지의 일체 심오한 비결을 꿰뚫어 보는 견해로서, 포괄되지 않은 것이 없고 누락된 것이 없다. 그는 우주의 특성 '眞ㆍ善ㆍ忍(진선인)'이 부동한 층차에서의 부동한 논술로서, 다시 말해서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도(道)'이자,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법(法)'이다.

현재 인류의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였다 하더라도 다만 우주의 심오한 비결의 국부일 뿐이다. 우리가 '불법' 중의 구체현상을 제기할 때면, 어떤 사람들은 "지금은 이미 전자시대이며 과학이 매우 발달하여 우주 비행선마저도 기타 별나라에까지 날아갔는데 아직도 이런 낡아빠진 미신을 이야기하는가" 라고 말할 것이다. 명백하게 말하면, 컴퓨터가 아무리 발달하였다 하더라도 사람의 두뇌와는 비길 수 없으며 사람의 두뇌는 지금 여전히 투철하게 연구해 낼 수 없는 수수께끼이다. 우주 비행선이 제아무리 높이 날았다 할지언정 우리 인류가 존재하는 이 물질공간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현대 인류의 지식으로 이해(了解)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극히 천박한 아주 조그마한 한 점에 불과하기 때문에, 진정하게 우주의 진상을 인식하는 것과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다. 일부 사람들이 심지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의 사실을 감히 정시하지 못하고 감히 건드리지 못하며 감히 승인하지 못하는 까닭은, 이 사람들이 너무나도 보수적이며 전통적인 관념을 개변시켜 사유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시공(時空), 인체의 수수께끼를 완전히 밝혀낼 수 있는 것은 유독 '불법' 뿐이다. 그는 능히 진정하게 선한 것과 악한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할 수 있고, 일체 그릇된 견해를 타파하고 올바른 견해를 내세울 수 있다.

현재 인류과학의 지도사상은 그것에 대한 발전연구를 오로지 물질세계 내에만 국한시키었으며, 일종 사물이 인식된 후에야 비로소 그것을 연구하는 이런 한 갈래의 길을 걷고 있다. 우리 이 공간에서는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지만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또한 우리 이 물질공간에 반영되어 오는 현상, 확실한 표현에 대하여서는 오히려 감히 건드리지 못하고 애매한 현상으로 여긴다. 고집스러운 사람은 무턱대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유를 찾아 자연현상이라고 억설하는가 하면, 다른 의도가 있는 사람은 마음을 어기고 일률로 미신이란 큰 감투를 씌우며, 추구가 진지하지 못한 사람은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다는 핑계로 회피한다. 만약 인류가 능히 자신과 우주를 다시금 인식하고 굳어진 관념을 개변한다면, 인류는 곧 하나의 비약이 있을 수 있다. '불법'은 인류를 위하여 무량무제(無量無際)한 세계를 명백하게 밝힐 수 있다. 천고(千古)이래 인류, 물질존재의 각개 공간,생명 및 전체 우주를 원만하고도 똑똑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유독 '불법(佛法)' 뿐이다.

                                                                                         李 洪 志

 

전법륜』은 문장의 표면에 있어서 화려하지 않으며 심지어 현대 어법에 부합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만약 현대의 어법으로써 이 한 책의 대법(大法)을 정리한다면 곧 하나의 엄중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는바, 문장의 언어구조는 규범적이고 멋지지만 도리어 더욱 깊고 더욱 높은 내포(內涵)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현대의 규범적인 어휘는 대법이 더욱 높은 부동한 층차(層次)에서의 지도와 법의 매 한 층에서의 표현, 수련생의 本體(본체)와 공의 연화(演化)와 이런 실질적인 변화를 제고함에 이르기까지 전혀 표현(表達)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李 洪 志

1996년 1월 5일




           차       례

제 1 강 의

진정하게 고층차(高層次)에로 사람을 이끌다

나는 법을 전수하고 공을 전수하는 전반 과정 중에서 사회에 대해 책임지고 수련생에 대해 책임짐에 입각하였으므로 얻은 효과가 좋을 뿐만 아니라, 전반 사회에 대한 영향도 비교적 좋았다. 몇 년 전에 많은 기공사들이 공을 전수하였지만, 그들이 이야기한 것은 모두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그 층차의 것들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의 공법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그들이 고층차의 것을 전하지 않았다고 말할 뿐이다. 전국의 기공 형세를 나도 다 알고 있다. 국내외에서 진정하게 고층차에로 공을 전수함을, 현재 나 한 사람만이 하고 있다. 왜 고층차에로 공을 전수하는 사람이 없는가? 왜냐하면 그가 몹시 큰 문제에 연관되며, 연관되는 역사 연원(淵源)이 몹시 깊은가 하면, 연관되는 면도 무척 넓으며 관련되는 문제도 대단히 첨예하기 때문이다. 그것 역시 일반 사람이 능히 전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허다한 공파(功派)의 것들을 움직여야 하는 문제에 연루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허다한 연공인(煉功人)들로 말하면, 그가 오늘은 이 공을 배우고 내일은 저 공을 배워, 자신의 신체를 혼잡하게 만들어 놓은 것으로 그는 기필코 수련해 올라가지 못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한 갈래 큰길에서 위로 수련하고 있는데 그는 모두 갈림길이다. 그가 이것을 수련하면 저것이 교란하고 저것을 수련하면 이것이 교란하여 모두가 다 그를 교란함으로써, 그는 이미 수련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이런 일을 모두 정리하여 좋은 것을 남기고 나쁜 것을 제거해 버려 당신이 앞으로 능히 수련할 수 있게끔 보증한다. 그러나 반드시 진정하게 대법(大法)을 배우러 온 사람이어야 한다. 만약 당신이 각종 집착심(執著心)을 품고 공능이나 얻고 병이나 치료하며 이론이나 들어보려 하거나 또는 그 무슨 좋지 않은 목적을 품고 온다면, 이것은 다 안 된다. 내가 이야기한 적 있지만 이 일을 오로지 나 혼자서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기회가 많지 않고 나 역시 줄곧 이렇게 전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생각에 내가 공을 전수하고 설법을 하는 것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내가 말한다면 정말로 …… 장래에 당신은 알 수 있겠지만, 당신은 이 한 단락 시간이 몹시 보람참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물론 우 리는 연분(緣分)을 중시하는데 여러분이 여기에 모여 앉게 됨은 다 연분이기 때문이다.

고층차에로 공을 전수함을 여러분 생각해 보라. 무슨 문제인가? 그것은 곧 사람을 제도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을 제도함이라, 당신은 진정으로 수련하게 된 것이고 다만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것뿐이 아니다. 그럼 진정한 수련은 수련생에 대한 心性(심성) 요구도 높기 마련이다. 우리 여기에 앉은 사람들은 대법을 배우러 온 사람들인 것만큼, 당신은 자신을 하나의 진정한 연공인(煉功人)이라 여기고 여기에 앉아 있어야 하며 당신은 집착심을 버려야 한다. 당신이 각종 구하고자 하는 목적을 품고 와서 공(功)을 배우고 대법을 배우려고 한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다 배우지 못할 것이다. 당신에게 하나의 진리를 알려주겠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사람은 속인사회(常人社會)에서 서로 다투고 빼앗고 서로 속이고 속이면서 개인의 고만한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해치는데, 이런 마음을 모두 버려야 한다. 더욱이 우리 오늘날 공을 배우고 있는 사람은 이러한 마음을 더욱 버려야 한다.

나는 여기에서 병치료를 이야기하지 않거니와 우리는 병을 치료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진정하게 수련하려는 사람으로서 당신이 병이 있는 몸을 가지고서는, 당신은 수련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당신의 신체를 정화(煖化)시켜 주려고 한다. 신체를 정화시켜 줌은 오로지 진정하게 공을 배우고 법을 배우러 온 사람에게만 국한된다. 우리가 강조할 점이라면, 당신이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당신이 그 병을 내려놓지 않으면 우리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없으며 당신에 대해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이 우주 중에 이런 하나의 이치가 있기 때문이다. 속인 중의 일은 불가(佛家)의 말에 의하면 모두 인연(因緣)관계가 있는 것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속인들에게 바로 이렇게 존재한다. 사람은 예전에 나쁜 짓을 하였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생기는 업력(業力)이 병이나 또는 시달림(磨難)을 조성하게 된다. 고통을 겪음은 바로 업력의 빚을 갚는 셈이다. 그러므로 누구도 함부로 그것을 고치지 못하며, 만일 고친다면 빚을 지고 갚지 않아도 되는 것과 같기 때문에 함부로 이리저리 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나쁜 일을 하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은 남에게 병을 치료해 주어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해주는 것을 좋은 일로 여긴다. 내가 보기에는 정말로 병을 다 치료하지 못했고 병을 다 미루어 놓았거나 또는 전화시켰을 뿐, 그에게서 없애버리지 못했다. 정말로 이 난(難)을 제거하려면 곧 업력을 없애버려야 한다. 만일 정말로 이 병을 치료할 수 있고 이런 업력을 철저히 없애버리며 정말로 이 점에 도달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의 층차 역시 낮지 않다. 그는 이미 하나의 이치를 보았는바 속인 중의 이치를 함부로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수련과정 중에서 수련자가 자비심이 우러나와 일부 좋은 일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람을 도와 병을 치료하며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해주는 이것은 허용한다. 하지만 남에게 완전히 치료해줄 수 없다. 만약 정말로 한 속인의 병을 뿌리째 없애버릴 수 있다고 하자. 수련하지 않는 일개 속인이 여기에서 나간 다음 아무런 병도 다 없다 할지라도 문만 나서면 여전히 일개 속인이라, 개인 이익에서 여전히 속인과 마찬가지로 쟁탈할 것인즉, 그의 업력을 어찌 함부로 없애버릴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럼 왜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해줄 수 있는가? 왜냐하면 수련하는 사람은 가장 진귀하기 때문이다. 그가 수련하고자 생각하기 때문에 발산하는 이 일념(一念)이 가장 진귀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불성(佛性)이라는 것을 말하는데, 불성이 나오기만 하면 각자(覺者)들은 그를 도와줄 수 있다. 무슨 뜻인가? 나더러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내가 고층차에서 공을 전수하기 때문에 고층차의 이치와 관련되며, 관련되는 문제가 몹시 크다. 이 우주 중에서 우리가 사람의 생명을 볼 때, 속인사회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사람의 진정한 생명의 생김은 우주공간에서 생긴 것이다. 왜냐하면 이 우주에는 생명을 만들어 내는 대단히 많은 각종 물질이 있기 때문에 이런 물질의 상호운동 하에서 생명이 생길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가장 태초의 생명은 우주에서 온 것이다. 우주공간은 본래 선량한 것이고 바로 眞ㆍ善ㆍ忍 (진선인)이런 특성을 갖고 있어 사람이 태어나서는 우주와 동성(同性)이었다. 그러나 생명체가 많이 생겨남에 따라 일종 군체적인 사회관계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중 일부 사람은 아마 사심이 더 많아지게 되므로 그들의 층차가 천천히 낮아지게 되어 이 한 층차에 있을 수 없게 되었고 그들은 곧 아래로 떨어져야만 하였다. 하지만 다른 한 층차에서 또 나쁘게 변하여 그들은 또 있지 못하고 계속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는데, 마지막에는 인류란 이 층차 중에까지 떨어져 내려오게 되었다.

전반 인류사회는 모두 이 층차 속에 있다. 이 지경에 떨어진 것을 공능의 각도에서 보거나 혹은 대각자(大覺者)의 각도에 입각하여 본다면, 워낙 이런 생명체들은 마땅히 없애버려야 하였다. 하지만 대각자들은 자비심을 베풀어 그들에게 다시 한 차례의 기회를 주고자 이런 하나의 특수한 환경, 특수한 공간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이 공간의 생명체는 우주 중의 모든 공간의 생명체들과는 다 다르다. 이 공간의 생명체는 다른 공간의 생명체를 보지 못하고 우주의 진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인간들은 미혹 속에 빠진 것과도 같다. 만일 병이 낫고 난(難)을 제거하고 소업(消業)하려면, 이런 사람들은 반드시 수련을 하여 반본귀진(返本歸眞)하여야 한다. 각종 수련에서는 이것을 모두 이렇게 보고 있다. 사람이 반본귀진하려는 이것이야말로 비로소 인간이 된 진정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이 수련하려고 생각하면 불성(佛性)이 나왔다고 인정한다. 이 일념(一念)이 가장 진귀하다. 왜냐하면 그가 반본귀진하려 하고 속인의 층차에서 벗어나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아마 불교에서 이런 한 마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불성(佛性)이 나오면 시방세계(十方世界)를 진동한다". 누가 보든 지간에 모두다 그를 도와주려 하며 무조건으로 그를 도와준다. 불가는 사람을 제도함에 조건을 논하지 않고 대가도 없으며 무조건으로 그를 도와 줄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수련생들에게 아주 많은 일을 해줄 수 있다. 그러나 일개 속인으로서 다만 속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 그가 병이 나아지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안 된다. 어떤 사람은, 내 병이 나아지면 나는 수련하겠다고 생각한다. 수련은 어떠한 조건도 없기 때문에 수련하려고 생각하면 곧 수련하라. 하지만 병이 있는 하나의 신체를 갖고 있거나, 또 일부 사람의 몸에는 정보가 아주 난잡하고 어떤 사람은 전혀 연공(煉功)을 하지 않았으며, 또 어떤 사람은 연공을 몇 십년 하였으나 아직도 기(氣)에서 배회하고 있으며 역시 수련하여 올라가지 못하였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의 신체를 정화(煖化)시켜 주어, 그로 하여금 고층차에서 수련 할 수 있게끔 한다. 가장 낮은 층차에서 수련할 때에는 하나의 과정이 있다. 즉 당신의 신체를 완전히 정화시켜 주며 사상 속에 존재하는 모든 좋지 못한 것들, 신체 주위에 존재하는 업력마당과 신체의 건강하지 못함을 조성하는 요소를 전부 다 청리(淸理)해 내보낸다. 청리하지 않는다면, 이런 하나의 혼탁한 신체, 거무칙칙한 신체와 하나의 더러운 사상을 가지고 어찌 고층차에로의 수련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우리 여기에서는 기를 연마(練)하지 않으며 낮은 층차의 이런 것들을 당신이 연마(練)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당신을 밀어 주어 당신의 신체로 하여금 병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게끔 한다. 동시에 우리는 또 낮은 층차에서 기초를 닦아야 할 이런 것들을 이미 갖추어진 한 세트로 당신에게 넣어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아주 높은 층차에서 연공하게 된다.

수련하는 설에 따라 기(氣)를 센다면 3개 층차가 있다. 그러나 진정한 수련 [기의 연마(練)를 제외]은 모두 두개의 큰 층차가 있는데, 하나는 世間法(세간법)수련이고, 하나는 出世間法(출세간법) 수련이다. 이 世間法(세간법), 出世間法(출세간법)는 절에서 말하는 출세간(出世間), 입세간(入世間)과는 다르다. 그것은 이론적인 것이다. 우리는 진정한 인체수련에서의 두개 큰 층차의 변화이다. 왜냐하면 世間法(세간법) 수련과정 중에서 사람의 신체는 모두다 끊임없이 정화(煖化)되고, 끊임없이 정화되기 때문에, 世間法(세간법)의 최고 형식에 이르렀을 때의 신체는 이미 완전히 고에너지물질로 대체된다. 그러나 出世間法(출세간법)의 수련이란 그것은 기본적으로 불체(佛體)의 수련이고 하나의 고에너지물질로 구성된 신체로서, 모든 공능이 다시 또 나타나게 된다. 우리가 가리킨 것은 이 두 개의 큰 층차이다.

우리는 연분(緣分)을 중시한다. 여러분이 여기에 앉게 된 만큼 나는 여러분에게 이 일을 해줄 수 있다. 현재 우리는 2천여 명이지만, 몇천 명, 심지어 더욱 많은 사람, 만여 명이라도 나는 다 감당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더는 낮은 층차에서 연마(練)할 필요가 없다. 당신의 신체를 정화시킨 다음, 당신을 밀어 주고 당신에게 일련의 완전한 수련계통을 넣어주어 당신이 올라오자마자 직접 고층차에서 수련하게 한다. 그러나 진정하게 수련하러 온 수련생에 한해서만 해준다. 당신이 여기에 앉아있다고 하여 당신이 수련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상상 근본적으로 전변되어 와야만 우리가 줄 수 있다. 다만 이런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당신들은 내가 여러분에게 어떤 것들을 주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병치료를 하지도 않지만, 우리는 수련생의 신체를 전체적으로 조절하여 주어 당신으로 하여금 연공할 수 있게 한다. 당신이 병 있는 신체를 갖고 있다면 당신은 공이 아예 나올 수 없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를 찾아 병치료를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하며, 나 역시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 내가 출산(出山)한 가장 중요한 목적은 바로 고층차에로 사람을 이끌며 진정하게 고층차에로 사람을 이끄는 데 있다.

부동(不同)한 층차(層次)에는 부동한 층차의 법이 있다

지난날 많은 기공사들이 기공에는 그 무슨 초급, 중급, 고급적인 것이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것은 모두다 기(氣)인즉, 모두 기를 연마(練)하는 그 한 층차 중의 것들을 가지고서도 또 무슨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누고 있다. 우리 광대한 수련자들의 머리 속에 진정한 고층차의 것들은 공백이며 전혀 모르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논술하고자 하는 것들은 모두 고층차의 법이다. 또한 나는 수련을 위하여 이름을 바로잡아 주려고 생각한다. 나는 강의 중에서 수련계에 존재하는 일부 불량한 현상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도 나는 다 말하려고 한다. 또한 고층차에서 공을 전수하고 법을 이야기하려면 관련되는 면, 관련되는 문제도 다 비교적 크며 심지어 아주 첨예한 것이라, 이러한 일들을, 나 역시 그것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일부 다른 공간에서 오는, 우리 속인사회에 대한 교란, 특히는 수련계에 대한 교란에 한해서 나 역시 그것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동시에 우리 수련생들에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공을 연마(煉)할 수 없다. 근본으로부터 이런 문제를 해결하여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여러분을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겨야 만이 비로소 이렇게 할 수 있다. 물론 단번에 당신의 사상을 전변시킨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것이지만, 앞으로 강의를 듣는 가운데서 당신은 천천히 당신의 사상을 전변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주의하여 듣기를 바란다. 내가 공을 전수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공을 전수하는 것과 같지 않다. 어떤 사람은 공을 전수함에 있어서 그는 다만 그의 공리(功理)만 간단히 소개하고 그 다음 정보(信息)나 받아들이게 하며 한 세트의 수법(手法)을 배워 주고는 끝난다. 사람들은 이미 이렇게 공을 전수하는 데 관습이 되어버렸다.

진정하게 공을 전수하려면 법을 이야기해야 하고 도(道)를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10회 수업 과목에서 내가 고층차의 이치를 논술하여야만 당신은 비로소 수련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아예 수련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이 전수한 것은 모두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그런 층차의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고층차에로 수련하려고 생각하지만 당신에게 고층차의 법적인 지도가 없이는 당신도 수련할 수가 없다. 마치 당신이 학교에 다니는 것과 같이, 당신이 초등학교(小學)의 교과서를 가지고 대학교를 다닌다 해도 당신은 여전히 초등학생이다. 어떤 사람은 배운 공이 많다고 여기는데, 이런 공, 저런 공을 배운 수료증만 해도 한 무더기나 되지만, 그의 공은 여전히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런 것이 바로 기공의 참뜻이며 전부라고 여긴다. 아니다. 그것은 다만 기공의 겉모양이고 가장 낮은 층차의 것일 따름이다. 기공은 이런 것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수련이며 하나의 박대정심(博大精深)한 것이다. 아울러 부동한 층차에 부동한 법이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기를 연마(練)하는 것과는 다르다. 당신이 아무리 많이 배웠다 하여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당신이 영국의 초등학교 교과서를 배웠고, 당신이 미국의 초등학교 교과서를 배웠으며, 당신이 일본의 초등학교 교과서를 배웠는가 하면, 당신이 중국의 초등학교 교과서도 배웠지만, 당신은 여전히 초등학생이다. 당신이 기공의 낮은 층차의 학과를 배운 것이 아무리 많을수록, 부어넣은 것이 아무리 가득할수록, 오히려 당신에게 더욱 해로운데, 당신의 신체는 이미 혼란하기 그지없다.

나는 또 한가지 문제를 강조하고 싶다. 우리의 수련은 공을 전수하고 법을 가르치게 된다. 일부 절의 스님들, 특히 선종(禪宗)은 아마 생각이 있을 것이다. 설법한다는 말만 들어도 그는 듣기 싫어한다. 무엇 때문인가? 선종은, 이 법은 말할 수 없는 것이고, 일단 법은 말하면 곧 법이 아니므로 말할 법이 없으며, 다만 마음속으로 깨닫고 이해해야 한다고 여긴다. 때문에 선종은 오늘에 이르러 아무런 법도 이야기하지 못한다. 선종의 달마(達摩)가 이런 것을 전함은 석가모니의 말 한마디에 근거한 것이다. 석가모니는 법무정법(法无定法)이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는 석가모니의 이 말씀에 근거하여 선종법문을 창립하였다. 우리는 이 한 법문은 쇠뿔을 파고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찌하여 쇠뿔을 파고드는 것이라고 하는가? 달마가 첫 번째로 파고 들어갈 때에는 그래도 좀 넓다고 느꼈지만, 2조(二祖)가 파고들 때는 그리 넓지 못했고, 3조는 그런 대로 그럭저럭 지내는 신세였고, 4조는 이미 매우 좁아져 버렸고, 5조는 기본적으로 뚫고 들어갈 곳이 없게 되었고, 6조 혜능(慧能)에 와서는 정점에 도달하여 더는 뚫고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다. 오늘날 당신이 만약 선종에 가서 법을 배운다면, 당신은 묻지 말라. 당신이 어떤 문제가 있어 그들에게 묻기만 하면 고개를 돌려 방망이로 당신의 머리를 향해 치는데, 이것을 '방할(棒喝)'이라고 한다. 그 뜻인즉 당신은 물어보지 말고 스스로 깨달으라는 것이다. 당신은 말할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여기에 와 배우려고 한 것인데 무엇을 깨달으란 말인가? 당신이 나에게 방망이로 칠 건 뭔가?! 이것은 이미 쇠뿔 끝까지 뚫고 들어가 더는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달마마저도 그는 6조까지만 전하고 그 후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였다. 몇 백년이 다 지나갔지만 어떤 사람은 지금도 선종의 이치를 죽기 내기로 부둥켜안고 놓지 않는다. 석가모니가 말한 '법무정법'의 진정한 함의는 무엇인가? 석가모니가 처한 층차는 여래인데, 나중에 많은 승려들을 포함하여 모두 석가모니의 층차, 그의 사상경지 중의 심태(心態), 그가 이야기한 법의 진정한 함의와 그가 한 말의 진정한 함의를 깨닫지 못하였다.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이렇게도 해석하고 저렇게도 해석하였는데, 아주 혼란하게 해석하였다. 법무정법이란 바로 당신은 말하지 말아야지, 말하기만 하면 곧 법이 아니라고 여겼다. 사실 이런 뜻이 아니었다. 석가모니가 보리수아래에서 개공개오(開功開悟)한 후, 단번에 여래 이 층차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그는 전반 49년 간 법을 전수하는 과정 중에서 역시 자신을 끊임없이 제고하여 왔다. 그가 매 하나의 층차를 높일 때마다 돌이켜보면 금방 자신이 이야기한 법이 모두 틀렸다. 다시 제고한 후 그는 이야기한 법이 또 틀렸음을 발견하였다. 그가 다시 제고한 다음에도 그는 금방 이야기한 법이 또 틀렸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전반 49년 간 그는 다 이렇게 끊임없이 승화시켜 왔으며, 매 한 층차가 높아진 이후 그가 예전에 이야기한 법이 인식 면에서 모두 매우 낮음을 발견하였다. 그는 또 매 한 층차에서의 법은 모두 그 층차에서의 법의 체현이며, 매 한 층차에는 모두 법이 있지만, 다 우주 중의 절대적인 진리가 아님을 발견하였다. 한 층 높은 층차의 법은, 한 층 낮은 층차의 법에 비하여 우주의 특성에 더 접근하였기 때문에 그는 곧 법무정법이라고 말씀하시었다.

마지막에 석가모니는 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일생동안 아무 법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선종은 또 말할 법이 없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석가모니는 만년(晩年)에 이미 여래의 층차에 도달하였다. 그는 왜 아무 법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말하였는가? 사실 그는 어떤 하나의 문제를 이야기한 것인가? 그는, 내가 여래 이런 층차에 도달하였지만 나 역시 우주의 최종적인 이치, 최종적인 법이 무엇인지를 보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때문에 그는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이야기한 말을 절대적인 진리, 변치 않는 진리로 여기지 말아야지, 그렇게 되면 후세 사람들을 여래 또는 여래 아래의 층차 중에 국한시켜 더 높은 층차에로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후세 사람들은 이 말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법을 말하면 곧 법이 아니라고 여기면서 이렇게 이해하여 왔다. 사실 석가모니는, 부동한 층차에는 부동한 법이 있으며, 매 한 층차의 법은 모두 우주의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지만, 이 한 층차 중의 법은 이 층차 중에서 지도적 작용이 있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그는 사실 이러한 하나의 이치를 이야기하였다.

예전에 많은 사람들, 특히 선종은 줄곧 이런 일종의 편견과 극히 그릇된 인식을 유지하여 왔다. 당신에게 가르치지 않는다면 어찌 연마(煉)함을 지도하며 어떻게 연마하고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불교에는 많은 불교이야기가 있는데 어떤 사람은 아마 읽어보았을 것이다. 하늘에 올라갔다고 말하는데, 천국에 올라간 후, 위의『금강경(金剛經)』과 아래의『금강경』은 매 하나의 글자마다 다 다를 뿐만 아니라, 의미도 다른 것을 발견하였다. 이『금강경』은 어찌하여 속인 속의 그『금강경』과 다른가? 또 어떤 사람은, 극락세계의 경서와 아래의 것은 그야말로 모습이 전혀 달라 도무지 같은 경우가 아니었는가 하면, 글자가 다를 뿐만 아니라 함의, 의미도 다 달랐고 변화가 발생했다고 말하였다. 사실 바로 같은 하나의 법이 부동한 층차에서 모두 부동한 변화와 현현형식(顯現形式)을 갖고 있으며, 수련자에 대해서는 부동한 층차에서 부동한 지도적 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러분이 알겠지만 불교에는『서방극락세계유람기』라는 소책자가 있다. 한 승려가 좌선(坐禪)하고 연공할 때, 元神(원신)이 극락세계에 가서 광경을 보게 되었는데 하루동안 돌고 인간으로 돌아오니 이미 6년이 지났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그가 보았는가 보지 못하였는가? 보았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진상이 아니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그의 층차가 모자라기 때문에, 다만 그의 그 층차에서 그가 마땅히 보아야 할 불법(佛法)의 체현을 그에게 나타냈을 따름이다. 왜냐하면 그런 하나의 세계는 바로 법의 구성 체현이기 때문에 그는 진상을 볼 수 없다. 나는 법무정법이란 바로 이런 하나의 함의라고 말한다.

眞ㆍ善ㆍ忍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

불교에서 사람들은 줄곧 무엇이 불법인가를 탐구하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불교에서 말한 법이 곧 불법의 전부라고 인정한다. 사실 아니다. 석가모니가 이야기한 법은 다만 2천 5백년 전에 층차가 극히 낮은 그런 속인들, 즉 원시사회에서 금방 탈태(脫胎)하여 나와 사상적으로 비교적 단일한 이런 사람들에게 이야기한 법이었다. 그가 이야기한 말법(末法)시기는 바로 오늘날로서, 지금의 사람들은 그 법으로 이미 수련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였다. 말법시기 절의 스님마저도 자신을 제도하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남을 제도함이랴. 석가모니가 당시 전수한 법은 그런 상황에 비추어 전수한 것이었다. 그도 자신이 있는 층차에서 알고 있는 전부의 불법을 다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그로 하여금 영원히 변치 않도록 유지하려는 것도 불가능하다.

사회가 발전하고 있고 인류의 사상도 갈수록 복잡하게 변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더는 이렇게 수련해 나가라고 하기는 쉽지 않다. 불교에서의 법은 전체 불법을 개괄할 수 없으며 그는 다만 불법 중의 작디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또 허다한 불가대법(佛家大法)이 민간에서 유전되고 있고 역대로 단독전수(單傳)되고 있다. 부동한 층차에는 부동한 법이 있고 부동한 공간에는 부동한 법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모두 불법이 각개 공간, 각개 층차에서의 부동한 체현이다. 석가모니도 부처수련(修佛)에 8만 4천 법문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불교에는 다만 선종·정토·천태·화엄·밀종 등 열 몇 개의 법문이 있을 뿐이므로, 불법의 전부를 개괄하지 못한다. 석가모니 본인도 그의 법의 전부를 전수하지 않았고 다만 당시 사람들의 받아들이는 능력에 따라 그의 일부분을 전수하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불법인가? 이 우주 중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 眞ㆍ善ㆍ忍, 그것이 바로 불법의 최고 체현이며 그것이 바로 가장 근본적인 불법이다. 불법은 부동한 층차에 부동한 체현형식이 있으며 부동한 층차 중에 부동한 지도적 작용이 있을 뿐만 아니라, 층차가 낮을수록 표현되는 것이 더욱 번잡하다. 공기의 미립자·돌·나무·흙·강철·인체·일체 물질 중에 모두 眞ㆍ善ㆍ忍이란 이런 특성이 존재한다. 고대에서는 오행(五行)이 우주의 만사만물을 구성한다고 하였는데, 모두 眞ㆍ善ㆍ忍이란 이런 특성이 존재한다. 수련하는 사람이 어느 층차에까지 수련되면 곧 그 한 층차 중의 불법의 구체 체현만을 인식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수련한 과위(果位)이며 층차이다. 펼쳐 놓고 이야기한다면 법은 매우 크다. 극히 높은 점에서 말한다면 그것은 아주 간단하다. 왜냐하면 법은 마치 금자탑 모양과도 같기 때문이다. 극히 높은 층차에 이르면 세 글자로 개괄할 수 있는 즉, 그것이 바로 眞ㆍ善ㆍ忍이며, 각개 층차에서 나타나게 되면 극히 복잡하다. 사람을 놓고 비유한다면 도가에서는 인체를 소우주라고 여긴다. 사람에게는 물질신체가 있는데, 이 물질신체만 가지고는 하나의 완전(完整)한 사람을 구성할 수 없다. 또 반드시 사람의 성격·천성·특성·元神(원신)이 있어야만 비로소 하나의 완전(完整)하고 독립적이며 자아개성을 가진 사람을 구성할 수 있다. 우리 이 우주도 마찬가지이다. 은하계가 있고 기타의 별나라가 있고 또 생명과 물이 있다. 이 우주 중의 만사만물, 이것은 물질존재의 한 면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역시 眞ㆍ善ㆍ忍의 특성이 존재한다. 어떠한 물질의 미립자 속이든지 모두 이런 특성이 포함되었고 극히 작은 미립자 속에도 이런 특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眞ㆍ善ㆍ忍 이런 특성은 우주 중에서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이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가? 바로 그것으로 가늠한다. 우리가 예전에 말한 德(덕)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오늘날 인류사회의 도덕수준은 이미 변화가 발생되어 도덕표준도 모두 삐뚤어졌다. 지금 어떤 사람이 뢰봉(雷鋒)을 따라 배운다면 아마 그를 정신병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5, 60년대에는 누가 그를 정신병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겠는가? 인류의 도덕수준이 크게 미끄럼치어 내려가고 세상기풍이 날따라 나빠지고 있으며, 유독 이익만을 추구하고 개인적인 그 조그마한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해치고 서로 빼앗으며, 어떤 수단이든 가리지 않으면서 이렇게 하고 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렇게 함을 허용할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이 나쁜 짓을 할 때, 당신이 그에게 나쁜 짓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어도 그는 다 믿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정말로 믿지 않는다. 일부 사람들은 그가 아직도 이미 미끄러져 내려온 도덕수준으로 자신을 가늠하면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여기는데, 가늠하는 표준마저 모두 변화를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인류의 도덕수준이 어떻게 변화될지라도 이 우주의 특성만은 오히려 변하지 않으며, 그는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 그럼 일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는 곧 우주의 이 특성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야 하며 속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반본귀진(返本歸眞)하려 하고 당신이 수련하여 올라가려 한다면, 당신은 곧 이 표준에 따라 해야 한다. 일개 사람으로서 능히 우주의 眞ㆍ善ㆍ忍 이 특성에 순응할 수 있다면 그것은 비로소 좋은 사람이고, 이 특성을 위반하여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정말로 나쁜 사람이다. 직장 또는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아마 당신을 나쁘다고 말했다 하더라도 당신은 정말로 나쁜 것이 아니며, 어떤 사람이 당신을 좋다고 하여 당신이 정말로 좋은 것도 아니다. 일개 수련자로서 이 특성에 동화되기만 하면 당신은 바로 하나의 도(道)를 얻은 사람이다. 바로 이렇게 간단한 이치이다.

도가(道家)는 眞ㆍ善ㆍ忍을 수련함에 진(眞)을 중점으로 수련한다. 그러므로 도가는 수진양성(修眞養性)을 하여, 참말을 하고 참된 일을 하며 참된 사람이 됨으로써 반본귀진하여 최후에 진인(眞人)으로 수련되는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인(忍)도 있고 선(善)도 있는데 중점을 진(眞)에 두고 수련한다. 불가는 眞ㆍ善ㆍ忍의 선(善)에 중점을 두고 수련한다. 선(善)을 수련하기 때문에 대자비심이 수련되어 나오게 된다. 이 자비심이 나오면 중생을 모두 고생스럽게 보기 때문에 중생을 제도하려는 소원을 품게 된다. 그러나 진도 있고 인도 있는데 선에 중점을 두고 수련한다.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 이 한 법문은 우주의 최고 표준 --- 眞ㆍ善ㆍ忍에 따라 함께 수련하므로 우리가 연마하는 공(功)은 대단히 크다.

기공은 사전문화(史前文化)이다.

기공이란 무엇인가? 많은 기공사들이 모두 말하고 있지만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것과 같지 않다. 많은 기공사들은 그 한 층차에서 말하였지만 나는 더욱 높은 층차에서 기공에 대한 인식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인식과는 뚜렷이 다르다. 어떤 기공사는 말하기를, 기공은 우리나라에서 2천년의 역사가 있다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3천년의 역사가 있다고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5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어 우리 중화민족의 문명역사와 비슷하다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출토한 문물로부터 보아 7천년 역사가 있기 때문에 우리 중화민족의 문명역사를 훨씬 벗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어떻게 인식하든 지간에 모두 인류의 문명역사를 얼마 더 벗어나지 못하였다. 다윈의 진화론(進化論)에 의하면, 인류는 수생식물로부터 수생동물에 이르렀고, 그 후 육지에 기어올라왔고 또 나무에로 기어올랐으며 다시 땅으로 내려와서는 원인(猿人)이 되었다. 최후로 문화가 있고 사상이 있는 현대인류로 진화됨을 추산한다 하더라도 인류의 진정한 문명의 출현은 역시 1만년을 초과하지 못하였다. 더 앞으로 추리해 보면 결승기사(結繩記事)마저도 없다. 그것은 곧 나뭇잎을 두르고 생고기를 먹은 것이며 더 앞으로는 아마 불조차도 사용할 줄 몰랐을 것인 즉, 완전히 그런 종류의 야만인, 그런 종류의 원시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하나의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세계 허다한 곳에 많고 많은 문명 고적들을 남겨 놓았는데 모두 우리 인류의 문명역사를 훨씬 능가하였다. 이런 고적들을 공예 각도에서 보면 모두 아주 높은 공예수준을 갖고 있고 예술수준에서 보면 재능이 무척 뛰어나 현대인은 그야말로 고대인의 예술을 모두 모방하고 있음에 불과한 것으로, 아주 높은 감상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도리어 십 몇만 년 전, 몇 십만 년 전, 몇 백만 년 전, 심지어는 억년 전에 남겨 놓은 것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것이 그래 오늘날의 역사와 농담하는 것이 아닌가? 농담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인류 역시 자신을 끊임없이 완벽히 하고 있고 자신을 끊임없이 새롭게 인식하고 있으며 사회는 바로 이렇게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초의 인식이 절대로 정확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마 '사전문화'란 말을 들었을 것인데 또 '사전문명'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그 사전문명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지구에는 아세아주, 유럽주, 남미주, 북미주, 대양주, 아프리카 주와 남극주가 있다. 지질학자는 그것을 통칭하여 '대륙판막(大陸板塊)'이라고 한다. 대륙판막이 오늘날의 형태로 형성되기까지는 이미 몇 천만 년의 역사가 있다. 다시 말해서 많은 육지는 바다 밑에서부터 올라왔고 또 많은 육지가 바다 밑에 잠기었는데, 오늘 이 상태로 안정되기까지는 이미 몇 천만 년의 역사가 있다. 그러나 많은 바다 밑에서 도리어 일부 높은 고대 건축물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런 건축물들은 조각이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웠는데, 우리 현재 인류의 문화유산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긍정적으로 바다 밑에 침적하기 전에 건축한 것이다. 그럼 몇 천만 년 전에 누가 이런 문명을 창조하였는가? 그때 우리 인류는 아직 원숭이조차도 아니었을 텐데, 어찌 이처럼 높은 지혜의 물건들을 창조해 낼 수 있겠는가? 세계적으로 고고(考古)학자들은 일종의 생물을 발견하였는데 '삼엽충(三葉蟲)'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6억 년부터 2억 6천 만년 전의 산물로서, 2억 6천 만년 후에는 이런 생물이 없었다. 미국의 한 과학자가 삼엽충 화석 하나를 발견하였는데, 위에는 또 한 사람의 발자국이 동시에 있었으며 신을 신고 디딘 것이 위에 또렷이 찍혀 있었다. 이것은 역사학자들과 농담하는 것이 아닌가? 다윈의 진화론에 따른다면 2억 6천 만년 전에 어떻게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페루 국립대학의 박물관에 돌이 하나 있는데, 돌에는 한 사람의 초상이 조각되어 있다. 고찰에 따르면, 이 사람의 초상은 3만 년 전에 조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 초상은 오히려 옷을 입고 모자를 썼으며 신을 신었을 뿐만 아니라 손에는 망원경 하나를 들고 천체(天體)를 관찰하고 있었다. 3만 년 전의 사람이 어떻게 천을 짜고 옷을 입을 수 있는가? 더욱 불가사의한 것은, 그가 또 망원경을 들고 천체를 관찰하고 있었는데 또 일정한 천문지식까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줄곧 망원경은 유럽사람 갈릴레이가 발명하였다고 인정하여 왔는데 오늘까지 3백여 년의 역사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러나 3만 년 전에 누가 이 망원경을 발명하였는가? 아직도 해석하지 못할 수수께끼가 많고도 많다. 예컨대 프랑스, 남아프리카, 알프스 산에는 많은 암석 동굴의 석판벽화들이 있는데, 새긴 것이 매우 신통하여 마치 살아 있는 것과 같다. 조각된 사람도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또 일종 광물질 염료로 칠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은 모두 현대인의 옷차림이었고 양복과 비슷한 옷에 팽팽한 바지를 입었다. 어떤 사람은 곰방대 비슷한 물건을 들었고 어떤 사람은 개화장을 쥐고 모자를 썼다. 몇 십만 년 전의 원숭이가 어찌 이런 높은 예술수준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좀 더 먼 것을 말하면 아프리카 주 가봉공화국에는 우라늄(?)광석이 있다. 이 나라는 비교적 낙후하여 자체로 우라늄을 제련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선진국에 수출하였다. 1972년 프랑스의 한 공장에서 이 우라늄 광석을 수입하였다. 화학분석을 거쳐 발견한데 의하면, 이 우라늄 광석은 모두 이미 제련되었고 이용했던 것이었다. 너무도 이상하게 생각되어 과학기술 인원을 파견하여 현지 조사를 하였고, 많은 나라의 과학자들도 모두 가서 현지 조사를 하였다. 나중에 실증한 데 의하면, 이 우라늄 광산은 대형 핵원자로이며 또한 배치가 아주 합리적이어서 우리 지금의 사람들도 창조해 낼 수가 없다. 그럼 어느 때에 세워진 것인가? 20억 년 전이고, 그것이 50만년을 운행하였다. 이것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숫자로서 다윈의 진화론으로는 전혀 해석할 수가 없는데 이런 일은 몹시 많다. 지금 과학기술계에서 발견한 것으로만 하여도 우리 오늘날의 교과서를 바꾸기에 넉넉하다. 인류의 고유적인 낡은 관념이 일련의 사업, 사유방법으로 형성된 후, 새로운 인식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렵다. 진리가 나타나도 그것을 감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일종 배척이 생기게 된다. 전통관념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지금 이런 것들을 계통적으로 정리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관념은 언제나 발전을 따르지 못한다. 당신이 이런 것들을 담론하기만 하면 비록 그것이 보급되지 못하였어도 이미 발견된 것이지만, 어떤 사람은 미신이라고 말하며 받아들이지 않는다.

국외의 많은 대담한 과학자들은 이미 그것을 일종 사전문화(史前文化)라고 공개적으로 승인하였으며 우리 인류의 이번 문명 이전의 문명으로서, 우리 문명 이전에 또 문명시기가 존재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 한 차례뿐만이 아니라고 하였다. 출토한 문물로부터 보면 모두 하나의 문명시기 산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인류의 여러 차례 문명은 훼멸적인 타격을 받은 후, 오로지 소수사람만 살아남아서 원시생활을 하게 되었고 또 점차적으로 새로운 인류가 번성하고 퍼지어 새로운 문명으로 들어갔다고 여겼다. 그런 후에 또 훼멸에로 나아갔고 또다시 새로운 인류가 번성하여 퍼져 나갔다. 그는 바로 이런 부동한 하나 하나의 주기적인 변화를 거쳐왔다. 물리학자들은 물질운동은 법칙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전체 우주의 변화도 법칙이 있는 것이다.

우리 지구의 운동은, 이 가없이 넓은 우주 중에서, 은하계의 운행 중에서 순풍에 돛단듯이 순조로울 수 없다. 아주 가능하게 어느 별나라에 부딪힐 수도 있고 또는 기타 문제가 발생되어 대단히 큰 재난이 일어날 수도 있다. 우리 공능의 각도에 입각하여 본다면 바로 그렇게 배치된 것이다. 한번은 내가 자세히 밝혀보았는데, 인류는 81차례나 완전한 훼멸상태에 처했던 것이고, 오로지 소수사람만 살아남아서 원래의 사전문명을 좀 남기게 되었고 다음 시기에로 들어가서 원시생활을 하였음을 발견하였다. 인류가 많이 번성하여 퍼지면서 최후에 또 문명이 출현되었다. 81차례의 이러한 주기적인 변화를 거치었지만, 나 이것은 아직 끝까지 밝혀내지 못한 것이다. 중국 사람은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를 이야기한다. 부동한 천상(天象)의 변화, 부동한 천시(天時)는 속인사회에 부동한 사회상태를 가져다준다. 물리학적으로 말하면, 물질운동은 법칙이 있는 것으로 우주의 운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앞에서 말한 사전문화는 주로 여러분에게, 기공도 오늘의 우리 인류가 발명한 것이 아니라, 역시 무척 오랜 연대를 거쳐 남겨 놓은 것으로 역시 일종 사전문화임을 여러분에게 알려주는 바이다. 우리는 경서 중에서도 일부 논술을 찾아볼 수 있다. 석가모니는 당시 자신은 몇 억겁(億劫) 전에 수련되어 도를 얻었던 것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일겁(一劫)이란 몇 년인가? 일겁(一劫)은 몇억 년이다. 이렇게 방대한 숫자는 그야말로 불가사의하다. 만약 정말이라면, 이는 인류의 역사, 전체 지구의 변화와 서로 맞는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석가모니는 또 말하기를, 그에 앞서 원시칠불(原始七佛)이 있었고 그 역시 사부님이 있었다는 등등, 모두 몇 억겁 전에 수련하여 도를 얻었다고 하였다. 만약 이런 일들이 모두 정말이라면, 그럼 오늘 우리 사회에서 전해진 그런 진정한 정통공법, 진전공법(眞傳功法)은 곧 이런 수련방법이 있는 것이 아닌가? 나더러 대답하라면 물론 긍정적이다. 그러나 얼마 많지는 않다. 지금 가짜기공(假氣功), 위기공(僞氣功), 부체(附體)를 갖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일부 것들을 만들어 사람을 속이는데, 진정한 기공을 몇 배나 초과하여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기가 어렵다. 진정한 기공은 분별하기 어려우며 역시 찾기도 그리 쉽지 않다.

사실 기공만이 오랜 연대를 거쳐 남겨진 것이 아니다. 태극(太極)·하도(河圖)·낙서(洛書)·주역(周易)·팔괘(八卦) 등등은 모두 사전(史前)에서 남겨 내려온 것들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속인의 각도에 입각하여 그것을 연구하고 그것을 인식하고 있지만, 어떻게 하여도 명백하게 연구하지 못하고 있다. 속인의 이런 층차, 이런 각도, 이런 사상경지에 입각해서는 진정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기공은 곧 수련이다

기공이 이렇게 오랜 역사가 있다면 도대체 무엇을 하는 데 쓰는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우리 이것은 불가수련대법(佛家修煉大法)으로서, 물론 부처수련(修佛)을 하는 것이고, 그 도가(道家)는 물론 도를 닦아 도를 얻는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줄 것은, 이 '불(佛)'이란 미신이 아니다. 이 '불'은 범어(梵語)로서 고대 인도어이다. 당시 우리 중국에 전해 들어올 때는 두 글자로서 '불타(佛陀)'라고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그를 '부도(浮圖)'라고도 번역하였다. 전하는 중에서 우리 중국 사람은 한 글자를 생략하여 그것을 '불(佛)'이라고 불렀다. 중국말로 번역하면 무슨 뜻인가? 바로 각자(覺者)이며 수련을 통하여 깨달은 사람이다. 여기에 어디 미신 색채가 있는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수련하면 특이공능(特異功能)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6가지 공능이 공인받고 있는데 이것뿐이 아니다. 내가 말한다면 진정한 공능은 만여 종이나 된다. 사람이 거기에 앉아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발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다른 사람이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여서도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고, 우주 각 공간의 진정한 이치를 볼 수 있으며 우주의 진상을 볼 수 있는가 하면, 속인들이 보지 못하는 일들을 보게 된다. 이것이 그래 수련하여 도를 얻은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그래 대각자(大覺者)가 아니란 말인가? 속인과 같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래 수련하여 깨달은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각자(覺者)라고 부름이 틀리는가? 고인도 말로 번역하면 곧 부처이다. 사실 바로 이러하며 기공은 바로 이것을 하는 데 쓴다.

기공을 담론만 하면, 어떤 사람들은 병이 없이는 누가 기공을 연마(練)하겠는가? 라고 말한다. 그 말 밖의 뜻인즉 기공은 곧 병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천박하고도 너무나 천박한 인식이다. 이 한 점 역시 여러분을 탓할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기공사들이 모두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이 일을 하고 모두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것을 말하였을 뿐, 누구도 고층차에로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사람들의 공법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명이 바로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그 한 층차의 것을 전수하는 것이고 기공을 보급하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고층차에로 수련하고자 함에 이런 생각도 있고 이런 소망도 있었지만, 수련에 법을 얻지 못한 결과, 매우 큰 곤란이 조성되었으며 또한 많은 문제가 나타나게 되었다. 물론 진정하게 고층차에서 공을 전수하자면 아주 높은 문제가 관련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에 대해 책임지고 사람에 대해 책임지는 데 입각하였기 때문에 공을 전수하는 전반적인 효과가 좋았다. 어떤 것은 확실히 아주 높아, 말하게 되면 미신과도 같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되도록 현대과학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우리가 일부 것을 이야기하기만 하면 어떤 사람은 곧 미신이라고 말한다. 무엇 때문인가? 그의 표준이라면, 바로 과학이 아직 인식하지 못하였거나 또는 그 자신이 아직 접촉하지 못하여 그가 존재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그는 모두 미신이며 모두 유심이라고 여기는데, 그는 바로 이런 관념이다. 이런 관념이 옳은가? 과학이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아직 이 단계까지 발전하지 못했다고 하여 미신이고 유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사람은 그 자신이 미신 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유심적인 것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관념에 따른다면 과학이 진보하고 발전할 수 있겠는가? 인류사회도 앞으로 밀고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우리 과학기술계에서 발명한 것들은 모두 전인(前人)들에게 없었던 것인데, 모두 미신이라고 보면 물론 발전하지도 말아야 한다. 기공도 무슨 유심적인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공을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늘 기공을 유심적인 것으로 인정한다. 현재 계기(儀器)로 기공사의 몸에서 아음파·초음파·전자파·적외선·자외선·γ방사선·중자·원자와 미량 금속원소 등 성분을 측정해 냈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물질이 존재하는 물체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 역시 물질이다. 어떠한 것이든지 모두 물질로 구성되지 않았는가? 다른 시공(時空)도 물질로 구성된 것이 아닌가? 어찌 미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기공이 기왕 부처수련에 쓰는 것이라면, 그럼 필연적으로 높고 깊은 많은 문제들과 관련되는데, 우리는 모두 이야기하고자 한다.

기공이 기왕 이런 것들을 하는 데 쓰인다면 우리는 왜 그것을 기공이라고 하는가? 사실 그것을 기공이라고 하지 않는다. 무엇이라고 하는가? '수련'이라고 부르는데, 곧바로 수련이다. 물론 그는 다른 구체적인 이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수련이라고 한다. 그러면 왜 기공이라고 하는가? 여러분이 알다시피, 기공이 사회에 보급된지는 이미 20여 년이란 역사가 있다. '문화대혁명' 중기로부터 시작되어 후기에는 고조로 진입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때는 극좌적인 사조가 무척 심각하였다. 우리가 기공이 사전문화에서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 이번 인류 발전과정 중에서 그가 봉건사회를 거쳤기 때문에 흔히 봉건적 색채가 아주 농후한 이름을 갖고 있다. 종교와 관계있는 것은 흔히 종교적 색채가 매우 짙은 이름을 갖고 있다. 예컨대 무슨 '수도대법(修道大法)'·'금강선(金剛禪)'·'나한법(羅漢法)'·'수불대법(修佛大法)'·'구전금단술(九轉金丹術)' 모두 이런 것들이다. 만일 '문화대혁명' 때 이렇게 부르면 당신이 투쟁을 당할 것이 아닌가? 비록 기공사가 기공을 보급하려는 염원은 좋고 광대한 군중을 위하여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여 사람들의 신체소질을 높이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얼마나 좋은가. 그래도 안 된다. 사람들은 감히 이렇게 부르지 못하였다. 때문에 많은 기공사들은 기공을 보급하기 위하여 단경도장(丹經道藏) 중에서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두 글자를 뽑아내어 기공(氣功)이라고 불렀다. 어떤 사람은 기공이라는 명사 속에 파고들어 연구하는데, 이는 무엇을 연구할 것이 없다. 예전에는 그것을 수련이라고 불렀다. 기공이란 다만 현대인의 사상의식에 부합시키기 위해 만들어 낸 새 명사에 불과할 따름이다.

왜 연공(煉功)을 하여도 공이 자라지 않는가?

왜 연공을 하여도 공이 자라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은 이런 생각이 있다. 내가 연공함에 진정한 전수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어느 선생이 나에게 절기(絶招)를 좀 가르치고 고급적인 수법을 좀 알려준다면 나의 이 공이 자라날 것이다. 지금 95%의 사람들은 모두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데, 내 생각에는 매우 가소롭다. 왜 가소롭다고 하는가? 기공은 속인 중에서의 기능이 아니라 그것은 완전히 초상(超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곧 고층차의 이치로 그것을 가늠해야 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는바, 공이 올라가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은 '修·煉' 두 글자에서 사람들은 다만 그 연마를 중시하고 그 수(修)를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밖에서 추구하고자 하지만 어떻게 하여도 얻어내지 못한다. 당신은 한 속인의 신체, 속인의 손, 속인의 사상으로, 당신이 고에너지물질을 연화(演化)하여 공으로 되게 하려는가? 곧 자랄 수 있단 말인가? 어찌 말처럼 쉽겠는가! 내가 보기에는 웃음거리이다. 이것이 바로 밖을 향해 추구하고 밖에서 찾으려는 것인데 영원히 찾지 못하고 만다.

이것은 속인 속에서의 그 무슨 기능과 달라서 당신이 돈을 좀 쓰고 기술을 좀 배우면 배워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는 이러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속인의 층차를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당신에게 초상(超常)적인 이치로 요구하기 마련이다. 어떻게 요구하는가? 당신은 안으로 향하여 수련해야 하지, 밖에서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두 밖에서 추구하고 있다. 오늘은 이것을 추구하고 내일은 저것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집착심을 갖고 공능을 추구하는데 여러 가지 목적이 다 있다. 어떤 사람은 또 기공사가 되려 하고 또 병치료를 하여 부자가 되려고 생각한다! 진정한 수련은 당신의 이 마음을 수련해야 하는데 心性(심성)수련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말한다면,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 속에서, 개인의 칠정육욕(七情六慾), 각종 욕망을 좀 담담하게 내려놓아야 한다.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다투고 싸울 때, 당신이 공이 자라고자 한다면 어찌 말처럼 쉽겠는가! 당신 이것은 속인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당신은 어떻게 공이 자랄 수 있는가? 때문에 心性(심성)수련을 중히 여겨야만 비로소 당신의 공이 자랄 수 있으며 비로소 층차도 제고(提高)될 수 있다.

心性(심성)이란 무엇인가? 心性(심성)은 德(덕)[德(덕)은 일종 물질이다]을 포괄하고, 참음(忍)을 포괄하며, 깨달음(悟)을 포괄하고, 버림(舍)을 포괄하여 속인 중의 각종 욕망, 각종 집착심을 버림을 포괄하고, 또한 능히 고생을 겪을 수 있는 등등, 많은 면의 것을 포괄한다. 사람의 心性(심성)이 여러 면에서 모두 높아져야 하며, 이래야 만이 당신은 비로소 진정하게 제고되어 올라올 수 있다. 이는 공력(功力)을 높이는 관건 원인의 하나이다.

어떤 사람은, 당신이 말하는 心性(심성)문제란 의식형태의 것이고 사람의 사상경지 면의 일인데, 그것은 우리가 연마하는 공과 같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찌 같은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 사상계에는 역대로 물질이 일차적인가, 아니면 정신이 일차적인가 하는 문제가 존재하였으며 늘 이 문제를 의논하고 논쟁한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물질과 정신은 일차적이다. 인체 과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현재 과학자들은 사람의 대뇌가 발산한 사유는 곧 물질이라고 인정하였다. 그렇다면 그것은 물질존재의 물체인데 그것이 곧 사람의 정신 중의 것이 아닌가? 그것은 곧 일차적이 아닌가? 내가 말한 우주도 마찬가지로 그의 물질존재가 있으며 동시에 그의 특성이 존재한다. 속인은 우주 중의 眞ㆍ善ㆍ忍 특성, 그것의 존재를 감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속인들이 모두가 다 이 한 층차 면에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속인의 이 층차를 벗어났을 때에야 능히 체험해 낼 수 있다. 어떻게 체험해 낼 수가 있는가? 우주 중의 어떠한 물질, 전체 우주에 꽉 차 있는 모든 물질을 포함하여 모두 영체(靈體)이고 모두 사상이 있으며 모두 우주의 법이 부동한 층차에서의 존재형태이다. 그가 당신을 승화하지 못하게 하면 당신이 제고하려고 해도 제고할 수 없다. 그가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한다. 왜 당신을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가? 왜냐하면 당신의 心性(심성)이 제고되어 올라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 층차에는 모두 부동한 표준이 있기에, 층차를 제고하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당신의 나쁜 사상을 버리고 당신의 더러운 것들을 쏟아내어 그 한 층차의 표준요구에 동화되어야 한다. 이래야만 당신은 비로소 올라올 수 있다.

당신의 心性(심성)이 제고된다면 당신의 신체는 하나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당신의 心性(심성)이 제고되어 올라온다면 당신 신체의 물질도 보증하고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어떤 변화인가? 당신이 집착스레 추구했던 그런 좋지 못한 것들을 당신은 버리게 될 것이다. 예컨대 병(甁) 하나에 더러운 것을 가득 채워넣고 그 마개를 꽉 틀어막아 물 속에 던지면 그것도 물밑까지 쭉 가라앉는다. 당신이 그 속의 더러운 것을 쏟아 버리되, 많이 쏟아 버리면 버릴수록 그는 더욱 높이 떠오르게 되며 몽땅 쏟아 버리면 그는 완전히 떠오르게 된다. 우리는 수련과정 중에서 바로 사람 몸에 존재하는 각종 좋지 않은 것들을 버림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당신으로 하여금 승화되어 올라 올 수 있게 한다. 이 우주의 특성은 바로 이런 일종의 작용을 하고 있다. 당신이 당신의 心性(심성)을 수련하지 않고 당신의 도덕수준이 제고되어 올라오지 못하며 나쁜 사상, 나쁜 물질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그는 당신을 승화하여 올라오지 못하도록 한다. 당신이 말해보라. 그것이 어찌 일차적이 아니겠는가? 우리 우스갯소리를 한 마디 하자. 만약 어떤 사람이 속인 속의 칠정육욕(七情六慾)을 다 갖고 있는데 그더러 올라가서 부처가 되게 한다면, 여러분이 생각해 보라. 가능한가? 그는 그 대보살님이 이처럼 아름다운 것을 보고 그는 사념(邪念)이 생길 지도 모른다. 질투심이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처님과 모순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존재함을 허용할 수 있는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은 반드시 속인 속의 각종 좋지 않은 사상들을 전부 제거하여야만 당신은 비로소 제고하여 올라올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心性(심성)수련을 중시해야 하며 우주의 眞ㆍ善ㆍ忍특성에 따라 수련하여 속인 속의 욕망, 좋지 못한 마음, 나쁜 짓을 하려는 생각들을 제거해 버려야 한다. 사상경지가 조금이라도 높아졌다면 자신의 나쁜 것들도 이미 버려진 것이다. 동시에 당신은 또 고생을 좀 겪고 고통을 좀 겪어 자신의 업력(業力)들을 없애버려야 한다. 그러면 당신은 좀 승화되어 올라올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주의 특성이 당신에 대해 제약하는 힘이 그다지 크지 않게 된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修在自己, 功在師父). 사부는 당신에게 공이 자라게 하는 공을 준다. 이 공이 작용을 하여 당신의 체외에서 德(덕)이란 이런 물질을 공으로 연화(演化)시킬 수 있다. 당신이 끊임없이 제고하고 끊임없이 위로 수련한다면 당신의 공기둥(功柱)도 끊임없이 위로 돌파할 것이다. 일개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속인들의 환경 속에서 자신을 수련하고 자신을 단련(磨煉)하여 집착심과 각종 욕망을 점차적으로 버려야 한다. 우리 인류가 흔히 좋다고 인정하는 것을 고층차에서 보게 되면 흔히 나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것, 속인 속에서 개인이익을 많이 얻을수록, 잘 살수록 대각자들이 볼 때 이 사람은 더욱 좋지 않다. 어디가 좋지 않은가? 그가 얻은 것이 많을수록 다른 사람을 더욱 해치게 되고 얻지 말아야 할 것을 얻게 된다. 그가 명리를 중히 여길 수 있기 때문에 그는 德(덕)을 잃게 된다. 당신이 공을 자라게 하려면 당신이 心性(심성)수련을 중시하지 않고서는 당신의 공은 전혀 자라날 수 없다.

우리 수련계에서 사람의 元神(원신)은 불멸이라고 이야기한다. 예전에 사람의 元神(원신)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아마 미신이라고 말할 것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물리학에서 우리 인체를 연구함에 있어서, 분자·질자·전자, 아래로 줄곧 쿼크와 중성미자 등을 연구하였다. 그 정도에 도달하면 현미경마저도 보아내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생명의 본원(本源), 물질의 본원과는 거리가 아직 멀고도 멀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원자핵의 분열은 상당한 에너지의 충격과 무척 큰 열량이 있어야만 비로소 그로 하여금 핵융합이 생기게 하며 비로소 핵으로 하여금 분열되게 한다. 사람이 죽을 때, 인체 중의 원자핵이 어떻게 함부로 죽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죽게 되면 다만 우리가 있는 이 한 층 공간, 이 한 층의 가장 큰 분자성분이 탈락되었을 뿐, 다른 공간에서의 그 신체는 훼멸되지 않았음을 발견하였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현미경 아래에서 본 인체는 어떤 모양인가? 사람의 온 몸은 운동하며 당신이 거기에 앉아 움직이지 않아도 온 몸은 운동하며 분자세포가 운동하고 있는데, 온 몸은 성기여 마치 모래로 구성(組成)된 것과 같다. 현미경 아래에서 본 인체는 바로 이러한 것으로서 우리가 눈으로 본 인체와는 변화가 뚜렷이 발생하였다. 이것은 사람의 이 한 쌍의 눈이 당신에게 일종 가상(假象)을 조성하여 주어 당신으로 하여금 이런 것들을 보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천목(天目)이 열리면 물체를 확대하여 볼 수 있는데 본래 그것은 사람의 본능이다. 지금은 특이공능이라고 하는데 당신이 특이공능이 나오게 하려면 반드시 반본귀진(返本歸眞)하여 되돌아 수련해야 한다.

우리는 이 德(덕)을 말해 보기로 하자. 그것들의 구체적인 사이의 연대적 관계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분석(剖析)하여 이야기하련다. 우리 사람은 대단히 많은 공간에 모두 하나의 신체가 존재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사람의 신체성분을 보면 가장 큰 것이 세포로서, 이것은 우리 사람의 육체이다. 가령 당신이 세포와 분자 사이, 분자와 분자 사이에 들어간다면 당신은 곧 이미 다른 공간에 들어갔음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신체의 존재형식은 어떤 것인가? 물론 당신은 현존의 이 공간개념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당신의 신체는 그런 공간 존재의 형식 요구에 동화되어야 한다. 다른 공간의 신체는 본래부터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는데, 그때에 가서 당신은 그 역시 하나의 더없이 광활한 공간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른 공간이 존재하는 일종 간단한 형식이며 동일한 시간과 동일한 지점에 다른 공간이 존재하고 있음을 가리킴이다. 사람은 다른 허다한 공간에 모두 하나의 특정된 신체를 갖고 있다. 하나의 특정된 공간 속에서 인체 주위에는 그러한 하나의 마당이 존재하고 있다. 무슨 마당인가? 이 마당이 곧바로 우리가 말하는 德(덕)이다. 德(덕)은 일종 백색물질로서 그것은 우리가 예전에 인정하여 온 것처럼 사람의 정신적인 것이거나 사람의 의식형태 속의 것도 아니라, 그것은 완전히 일종 물질존재이다. 때문에 예전의 노인들이 德(덕)을 쌓는다던가, 德(덕)을 잃는다고 이야기하였는데 그 말은 너무나도 맞는 것이다. 이 德(덕)이 인체 주위에서 그는 하나의 마당을 형성한다. 예전에 도가에서는 사부가 제자를 찾지, 제자가 사부를 찾지 않는다고 한다. 무슨 뜻인가? 그는 이 제자의 몸에 갖고 있는 德(덕)의 성분이 큰가, 크지 않는가를 보는바, 크게 되면 그가 수련하기 쉽고 크지 않으면 그가 수련하기 어려우며 그는 높은 공이 자라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또 일종의 흑색물질을, 우리 여기에서는 업력(業力)이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그것을 악업(惡業)이라고 한다. 백색물질과 흑색물질, 이 두 가지 물질은 동시에 존재한다. 이 두 가지 물질 사이는 어떠한 관계인가? 德(덕)이란 이 물질은 우리가 고생을 겪고 타격을 감당하며 좋은 일을 하여 얻어진 것이고, 그 흑색물질은 사람이 나쁜 짓을 하고 좋지 못한 일을 하며 남을 업신여기는데서 이런 흑색물질을 얻게 된다. 지금은 유독 이익을 도모하는 것만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악한 짓이란 악한 짓을 하지 않는 것이 없고, 돈을 위해서는 그 어떤 나쁜 짓이든지 다 한다. 즉 살인하여 생명을 해치고 돈으로 목숨을 사며 동성애, 독물을 피우기, 그 어떤 일이든 다 있다. 사람이 좋지 않은 일을 할 때 德(덕)을 잃게 된다. 어떻게 잃는가? 이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욕할 때 그는 이득을 보았고 분풀이를 하였다고 생각한다. 이 우주에는, 잃지 않는 자는 얻지 못하고 얻었다면 곧 잃어야 하고, 당신이 잃지 않으려 해도 강제로 잃게 한다는 이치가 있다. 누가 이 역할을 하는가? 바로 우주의 이 특성이 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은 얻으려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가 다른 사람을 욕하고 업신여길 때, 그는 德(덕)을 남에게 던져준다. 상대방은 억울함을 당한 쪽이고 잃은 쪽이며 고통을 받은 쪽에 속하기 때문에 그에게 보상하여 준다. 그가 이 쪽에서 그를 욕할 때, 그가 욕함에 따라 곧 자기의 공간마당 범위 내에서 한 덩이 德(덕)이 날아가 남의 몸에 떨어진다. 그가 욕하는 것이 심할 수록 남에게 주는 德(덕)이 더욱 많게 된다. 사람을 때리고 업신여겨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그를 주먹으로 한 방 때리고 발로 그를 찰 때, 이 사람이 얼마나 중하게 때림에 따라 그만한 德(덕)이 넘어가게 된다. 속인은 이 한 층의 이치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얕잡아 보였다고 여기어 견뎌내지 못한다. 네가 날 때리는가, 나도 되돌아 너를 치겠다. "탁"하고 그에게 한 주먹 맞받아 쳐서 이 德(덕)을 되돌아 밀어 보내어, 두 사람은 다 잃지도 않고 얻지도 못했다. 아마 그는, 네가 나를 한 방 쳤으니 나는 너를 두 방 치지 않고서는 이 분풀이를 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는 또 한 방 더 쳐서 자신의 몸으로부터 또 한 덩이 德(덕)을 날려보내어 상대방에게 주게 된다.

왜 이 德(덕)을 이렇게 중히 보는가? 이 德(덕)의 전화(轉化)는 일종 어떤 관계인가? 종교에서는 이야기하기를, 이 德(덕)이 있으면 금생에 얻지 않으면 내생에서 얻는다고 한다. 그는 무엇을 얻는가? 그의 德(덕)이 크면 아마 큰 벼슬을 할 수 있고 큰 부자가 될 수 있으며 무엇을 원하면 무엇이 있게 되는데, 바로 이 德(덕)으로 바꾸어 온 것이다. 종교에서는 또 이야기하기를, 만약 이 사람이 德(덕)이 없다면 형신전멸(形神全滅)된다고 한다. 그의 元神(원신)이 소각되어 그는 백년 후에 전부가 모두 죽어 버리게 되고 아무것도 없게 된다. 그러나 우리 수련계에서는 德(덕)이 직접 공으로 연화(演化)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德(덕)이 어떻게 공으로 연화되는가를 이야기하련다. 수련계에는 이런 한마디 말이 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안정설로(安鼎設爐)·채약련단(采藥煉丹), 의념(意念)활동을 말하면서 아주 중요하다고 그는 여긴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생각을 많이 하면 곧 집착심이다. 당신이 지나치게 생각한다면 당신이 바로 집착하여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으므로 당신은 이런 소원만 있으면 된다. 진정하게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사부가 해주는 것이며 당신은 도저히 해낼 수 없다. 당신이 일개 속인의 신체로서 이런 고에너지물질로 구성된 그런 고급생명체를 능히 연화(演化)해낼 수 있단 말인가? 전혀 불가능하며 말만 해도 모두 웃음거리이다. 인체가 다른 공간에서 연화되는 과정은 무척 현묘(玄妙)하며 무척 복잡한 것으로서 당신은 이런 일을 도저히 해낼 수 없다.

사부는 당신에게 어떤 것을 줄 수 있는가? 당신에게 하나의 공이 자라는 공을 줄 수 있다. 德(덕)은 사람의 체외에 있기 때문에 사람의 진정한 공은 곧 이 德(덕)에서 생긴다. 한 사람 층차의 고저와 공력이 얼마 큰가는 모두 그 德(덕)에 의해 생긴다. 그가 당신의 德(덕)을 공으로 연화시켜 나선식으로 위로 자라게 한다. 진정하게 사람의 층차 고저를 결정하는 공은 체외에서 자라며 최후에 나선식으로 머리꼭지에까지 자란 다음 한 가닥의 공기둥을 형성한다. 이 사람의 공이 얼마나 높은가는 그의 공기둥이 얼마나 높은가를 척 보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곧 그의 층차이고 불교 중에서 말하는 과위(果位)이다. 어떤 사람은 좌선했을 때 元神(원신)이 신체를 떠날 수 있어, 단번에 얼마 높이에로 올라갔는데, 더 높이 올라가려고 해도 올라가지 못하며 감히 올라가지 못한다. 그가 자신의 공기둥에 앉아 올라간 것이기 때문에 그만한 높이에만 올라갈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공기둥이 그만큼 높기 때문에, 그도 높게 올라가지 못한다.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과위(果位) 문제이다.

心性(심성)이 얼마 높은가를 가늠하는 데는 또 하나의 척도가 있다. 척도와 공기둥은 동일한 공간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것들은 도리어 동시에 존재한다. 당신의 心性(심성)이 수련되어 올라왔다면, 예컨대 속인 중에서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욕을 한 마디 해도 당신은 대꾸하지 않았고 당신은 마음이 아주 태연하며, 당신을 주먹으로 한 방 쳐도 역시 대꾸하지 않으며 웃어 버리고 지난다면, 이 사람의 心性(심성)은 이미 아주 높은 것이다. 그럼 당신은 연공인으로서 당신이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당신은 공을 얻지 않는가? 당신의 心性(심성)이 제고되어 올라왔기 때문에 당신의 공은 곧 자라 오르게 된다. 心性(심성)이 얼마나 높으면 공이 얼마나 높다.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이다. 예전에 어떤 사람은 공원에서 연공하든 집에서 연공하든, 되게 알심을 드리고 아주 경건하게 하며 연마함도 괜찮았다. 하지만 문만 나서면 그가 아니다. 제멋대로 행사하며 속인 중에서 명예와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과 다투고 싸우는데, 그의 공이 자랄 수 있는가? 전혀 자랄 수 없다. 그의 병이 나을 수 없는 것도 역시 이 원인이다. 왜 어떤 사람은 장기적으로 연공(練功)해도 병이 낫지 않는가? 기공은 수련으로서 초상(超常)적인 것이며 속인 중의 체조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心性(심성)을 중히 여겨야만 비로소 병이 나을 수 있거나 또는 공이 자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안정설로(安鼎設爐)·채약련단(采藥煉丹)의 이 단(丹)이 바로 공이라고 인정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 단(丹)은 그가 일부분 에너지만 축적하는 것으로 그것은 에너지의 전부가 아니다. 단(丹)이란 어떤 물건인가? 여러분이 알다시피, 우리에게는 또 일부분의 명을 닦는 다른 것들이 있는데, 신체에 또 공능이 나와야 하며 또한 많고 많은 술류(術類)의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의 대부분은 잠겨 있어 당신더러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허다한 공능이 있는데 만여 종 되는 공능을 하나가 형성되면 하나를 잠가 둔다. 왜 나오지 않는가? 목적은, 당신으로 하여금 속인사회에서 그것을 운용하여 함부로 쓰지 못하게 하는 데 있고, 속인사회를 함부로 교란하지 못하게 하며, 또 속인사회에서 당신의 재간을 함부로 나타낼 수 없게 함이다. 왜냐하면 이런 것은 속인사회의 상태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깨달음 속에서 수련한다. 당신이 그에게 모두 나타낸다면, 사람들은 보고 정말이기에 모두 와서 수련할 것이며 십악불사(十惡不赦)한 자도 모두 와서 수련하려 할 것인즉, 그러면 안 된다. 당신으로 하여금 이렇게 과시하지 못하게 함은, 당신이 또 나쁜 짓을 하기 쉽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것의 인연관계를 보아내지 못하고 당신은 그것의 본질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당신은 좋은 일을 한다고 하지만, 한 것은 아마 나쁜 일일 수 있다. 때문에 당신으로 하여금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일단 나쁜 일만 하면 층차가 떨어져 헛수련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많은 공능들을 잠가 둔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개공개오(開功開悟)하는 그 날에 가서 이 단(丹)은 곧 하나의 작탄이다. 그는 모든 공능, 신체의 모든 자물쇠와 백규(百竅)를 전부 폭발시켜, '팍' 하고 진동하자 전부가 진동하여 열리게 되는데, 바로 이것을 하는 데 쓰는 것이다. 스님이 백년 후 화장하면 사리(舍利子)가 있게 되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뼈나 이라고 말한다. 속인은 왜 없는가? 바로 그 단(丹)이 폭발하여 그의 에너지를 석방한 것으로 그 자체는 다른 공간의 물질을 대량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필경 역시 물질존재의 물건이지만 그 역시 아무런 쓸모도 없다. 지금의 사람은 그것을 아주 진귀한 물건으로 본다. 그는 에너지가 있고 광택이 있으며 매우 딴딴한데 바로 이 물건이다.

공이 자라지 않는 데는 또 하나의 원인이 있다. 즉 고층차 중의 법을 모르기 때문에 수련하여 올라갈 수 없다. 무슨 뜻인가? 내가 금방 말한 것처럼 일부 사람들은 허다한 공법을 연마하였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이 아무리 많은 것을 배웠다 해도 쓸모가 없고, 역시 다만 초등학생(小學生)이며 수련 중에서는 초등학생으로서 모두 낮은 층차 중의 이치일 따름이다. 당신이 이런 낮은 층차 중의 이치로서 고층차에로 수련하고자 한다면 지도적 작용이 없는 것이다. 대학교에서 초등학교 교과서를 읽는다 해도 당신은 여전히 초등학생이고 배운 것이 아무리 많아도 쓸모 없을 뿐더러 오히려 더 잘못된다. 부동한 층차에는 부동한 층차 중의 법이 있다. 법은 부동한 층차 중에서 부동한 지도적 작용이 있기 때문에 당신이 낮은 층차 중의 이치를 가지고는 당신이 고층차에로의 수련을 지도할 수가 없다. 우리가 나중에 진술하고자 하는 것들은 모두 고층차 중에서 수련하는 이치이다. 나는 부동한 층차 중의 것들을 결부하여 강의하기 때문에 당신의 앞으로의 수련에 줄곧 지도적 작용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몇 권의 책이 있고 또 녹음테이프, 비디오테이프가 있는데, 당신은 그 속에서, 당신이 한 번 보고들은 다음, 한 시기 지나 다시 보고 다시 들으면 보증하고 당신에게 또 지도적 작용이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 역시 끊임없이 자신을 제고함에 따라 당신에 대해 끊임없이 지도적 작용이 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법이다. 이상은 연공하여도 공이 자라지 않는 두 가지 원인이다. 즉 고층차 중의 법을 모르기에 수련할 방법이 없으며, 안으로 수련하지 않고 心性(심성)을 수련하지 않기에 공이 자라지 못한다. 바로 이 두 가지 원인이다.

法輪大法의 특징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은불가의 8만 4천 법문 중의 한 법문(法門)으로서 우리 이번 인류문명 역사시기에 여태껏 공개적으로 전수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사전(史前) 한 시기에는 광범하게 사람을 제도하였었다. 내가 말겁(末劫) 최후시기에 그것을 다시 한 번 널리 내놓고 전수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극히 진귀한 것이다. 나는 德(덕)이 직접 공으로 전화되는 이런 일종 형식을 이야기하였다. 사실 공은 연마하여 나온 것이 아니라 그것은 수련하여 나온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공이 자라는 것을 추구한다. 다만 어떻게 연마하겠는가만 중시하고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는 중시하지 않는데, 사실 공은 완전히 心性(심성)을 수련함에 의해 수련해 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 여기에서도 사람에게 연공을 가르치는가? 우선 스님이 왜 연공하지 않는가를 말해 보겠다. 그는 주로 가부좌하고 경을 읽으며 心性(심성)을 닦아서 그는 공이 자라는데 그는 곧 그의 층차 고저의 공이 자라게 된다. 왜냐하면 석가모니는 本體(본체)를 포함한 세상의 일체를 포기하라고 이야기하였기 때문에 형체적인 동작이 필요하지 않았다. 도가는 중생을 제도함을 주장하지 않으므로 그가 상대하는 사람은 각종 심태(心態), 각종 층차, 어떠한 사람도 다 있어, 어떤 사람은 사심이 크고 어떤 사람은 사심이 작은 것이 아니다. 그는 제자를 선택함에 있어서 제자 셋을 찾아도 그중 한 사람에게만 진정하게 전수할 따름이다. 이 제자는 기필코 德(덕)이 높고 좋기에 문제가 생길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중점적으로 그의 수법(手法)적인 것을 전수하여 명(命)을 수련한다. 신통술류(神通術類)와 같은 것을 연마하려면 또 일부 동작이 있어야 한다.

法輪大法(파룬따파) 역시 성명쌍수(性命雙修)의 공법이기에 동작으로 연마해야 한다. 동작은 한 면으로 공능을 가지(加持)하는 것인데 무엇을 가지(加持)라고 하는가? 당신의 강대한 공력으로 당신의 공능을 강화하여 더욱더 강하게 하며 다른 한 면으로는 당신의 신체 속에서 많은 생명체를 연화해내는 것이다. 고층차에서 수련하게 되면, 도가에서 말하는 원영출세(元?出世), 불가에서 말하는 금강불괴지체(金剛不壞之體)가 나오며 또한 많고 많은 술류(術類)의 것들을 연화해 낸다. 이런 것들은 모두 수법을 통하여 연련(演煉)하는데 동작은 곧 이런 것들을 연마하는 것이다. 완전(完整)한 한 세트의 성명쌍수 공법이라면, 또 수련하기도 해야 하고 연마하기도 해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이 공이 어떻게 왔는가를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하게 당신 층차의 고저를 결정하는 공은 전혀 연마해낸 것이 아니라 수련해낸 것이다. 당신이 수련하는 과정 중에, 속인 중에서 당신의 心性(심성)을 높이고 우주의 특성과 동화함으로써, 우주의 특성이 당신을 제약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은 승화하여 올라올 수 있다. 이 德(덕)은 공(功)으로 연화되기 시작하는데, 당신의 心性(심성)표준이 높아짐에 따라 그는 곧 올라오게 된다. 그는 바로 이런 일종의 관계이다.

우리 이 한 세트의 공법은 진정한 성명쌍수 공법에 속한다. 우리가 연마하는 공은 신체의 매 하나의 세포 중에 축적되고 줄곧 극히 미시적인 상태에서 존재하는 물질본원(物質本源)의 미립자 성분 중에까지 모두 그 고에너지물질의 공(功)을 축적한다. 당신의 공력이 더욱더 높아짐에 따라 그의 밀도도 더욱더 커지며 그의 위력도 더욱더 커진다. 이런 고에너지물질은 영성(靈性)을 갖고 있다. 그는 사람 신체의 매 하나의 세포 중에, 생명의 본원에 이르기까지 줄곧 축적되기 때문에 그가 오래오래 되면 당신의 신체세포와 같은 하나의 형태로, 분자 배열순서 역시 같고, 일체 원자핵의 형태와도 같은 것으로 형성된다. 그러나 본질만은 오히려 변화가 생겨 이미 원래 육체세포로 구성된 이런 신체가 아닌지라, 당신은 오행(五行) 중에 있지 않은 것이 아닌가? 물론 당신의 수련이 아직 결속되지 않았고 당신은 아직도 속인 속에서 수련해야 하므로 표면적으로 보면 속인과 같다. 유일한 구별이라면 바로 당신은 동년배에 비하여 아주 젊어 보인다. 물론 질병을 포함한 당신 신체의 모든 좋지 않은 것들을 우선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병치료는 하지 않는다. 우리는 신체를 청리(淸理)하기에 명사 역시 병치료라 부르지 않고 우리는 곧 신체청리(淸理身體)라고 부른다. 진정하게 수련을 하는 사람을 위해서 신체를 청리하여 준다. 어떤 사람은 바로 병을 치료하려고 온 것이다. 병이 아주 위독한 환자를 우리가 수련반에 들여놓지 않음은, 그가 병을 치료하려는 이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며 그가 병이 있다는 이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중병에 걸려 매우 괴로운데 그가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 그는 수련할 수 없다. 우리는 재삼 강조하는바, 위독한 환자를 우리는 받지 않는다. 여기서는 수련하기에 그가 생각하는 일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그는 다른 기공사를 찾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물론 많은 수련생들은 병이 있는 것이지만, 당신은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는 당신에게 이 일을 해주려고 한다.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 수련생은 한 시기 수련을 거친 후, 표면으로 보게 되면 변화가 아주 크다. 피부는 부드럽게 변하여 희고도 불그스름하며, 연세가 아주 많은 사람도 주름살이 적어지고 심지어 아주 적고 아주 적어짐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하나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우리 여기 앉은 많은 老수련생들은 내가 여기서 허황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 한 점을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년 부녀들은 달거리(월경)가 오는 경우가 있다. 성명쌍수의 공법이기에 경혈지기(經血之氣)로 당신의 명(命)을 수련하기 마련이다. 달거리가 오지만 많지 않으며 지금 단계에 조금 쓸 수 있는 정도면 되는데, 이 역시 하나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렇지 않고 당신은 그것이 결핍하면 어떻게 명(命을) 수련하겠는가? 남자 역시 늙은이나 젊은이나 모두 온 몸이 거뿐함을 느끼게 된다.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이런 변화를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 이 한 세트의 공법은 연마함이 아주 큰데 허다한 공법들처럼 동물을 모방하여 연마하지 않는다. 우리 이 한 세트 공법의 연마는 그야말로 너무나도 크다. 당시 석가모니, 노자가 이야기한 이치는 모두 우리 은하계 범위 내의 이치였다.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이 연마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우주의 연화원리에 따라 수련하며 우주의 최고 특성 --- 眞ㆍ善ㆍ忍 표준에 따라 우리의 수련을 지도한다. 우리가 이처럼 큰 하나의 것을 연마함은 우주를 연마하는 것과 같다.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은 또 하나의 극히 특수하고 모든 공법과 다 같지 않은 최대의 특징이 있다. 지금 사회적으로 유전되고 있는 기공은 모두 단도(丹道)로 가며 연단(煉丹)함에 속한다. 연단하는 기공이 속인 속에서 개공개오에 도달하자면 대단히 어렵다.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은 단도(丹道)로 가지 않는다. 우리 이 한 세트의 공법은 아랫배 부위에 하나의 法輪(법륜)을 수련하여 내는 것인데 수련반에서 내가 친히 수련생들에게 넣어준다. 내가 法輪大法(법륜대법)을 강의할 때에 우리는 여러분에게 法輪(법륜)을 계속 넣어주게 된다. 어떤 사람은 감각이 있고 어떤 사람은 감각이 없을 것이다. 대다수 사람은 감각이 있는데 사람마다의 신체소질이 다 같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法輪(파 룬)을 연마하지, 단(丹)을 연마하지 않는다. 法輪(법륜)은 우주의 축소판이기 때문에, 우주의 일체 공능을 구비하고 있으며 그는 능히 자동적으로 운행하고 회전할 수 있다. 그는 당신의 아랫배 부위에서 영원히 돌고 있을 것인즉, 일단 당신에게 넣어진 후부터는 더는 멎지 않으며 장기간 영원히 이렇게 돌게 된다. 그는 바른 쪽으로 도는 과정에서 자동적으로 우주 중의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으며 그 자신 역시 에너지를 연화(演化)시킬 수 있어, 당신 신체 모든 각개 부분의 연화에 수요되는 에너지를 공급하여 준다. 동시에 그가 반대(時針)방향으로 돌 때에는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어 폐기 물질을 쳐내 보낸 후 신체주위에서 흩어져 버린다. 그가 에너지를 방출할 때 아주 멀리 쳐서 내보내고 새로운 에너지를 다시금 끌어들인다. 그가 쳐서 내보낸 에너지는 당신 신체 주위에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득을 보게 한다. 불가는 자신을 제도하고 남을 제도하며 중생을 제도함을 중시한다. 자신을 수련할 뿐만 아니라 또 중생을 제도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따라서 득을 보게 된다. 능히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의 신체를 조절해 주거나 병을 치료해 줄 수 있는 등등이다. 물론 에너지는 잃어버릴 수 없다. 法輪(법륜)이 바른(順時針) 방향으로 돌 때 그 자신이 걷어들일 수 있다. 그가 멎지 않고 항상 돌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왜 이 法輪(법륜)은 멎지 않고 항상 돌고 있는가? 라고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은 나에게 묻는다. 그는 어찌하여 돌 수 있는가? 원리는 어디에 있는가? 에너지가 많이 모여 단으로 형성된다는 이것은 이해가 잘 되지만 法輪(법륜)이 회전함은 불가사의하다고 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예를 들겠다. 우주는 운동하고 있으며 우주 중의 모든 은하계, 모든 별나라는 모두 운동하고 있으며, 9대 행성이 태양을 둘러싸고 돌고 있는가 하면 지구는 또 자전하고 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누가 그것을 밀어 주었는가? 누가 그것에 힘을 가하여 주었는가? 당신은 속인 중의 그런 개념으로 그를 인식하여서는 안 된다. 그는 바로 이런 일종의 선기(旋機)이다. 우리의 法輪(법륜) 역시 이러하며 그가 곧 돌고 있는 것이다. 그는 속인이 정상적인 생활상태에서 연공하는 문제를 해결하여 주었고 연공시간을 증가시켰다. 어떻게 증가시켰는가? 그가 멎지 않고 회전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우주 중에서 에너지를 흡수하고 에너지를 연화한다. 당신이 출근하여도 그가 당신을 연마시킨다. 물론 또 法輪(법륜) 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당신 몸에 넣어 주게 되는 많고 많은 기능(機能), 기제(機製)들이 法輪(법륜)과 함께 모두 자동적으로 돌고 있으며 자동적으로 연화하고 있다. 때문에 이 공(功)은 모두 완전히 자동적으로 사람을 연화시킨다. 이렇게 되어 일종 '공이 사람을 연마시키는(功煉人) 것'이 형성되었는데, 또 '법이 사람을 연마시킨다(法煉人)'고도 한다. 당신이 연공하지 못하였을 때에 공(功)이 당신을 연마시키고 당신이 연공할 때 공은 여전히 당신을 연마시킨다. 당신이 식사하거나, 잠을 자거나, 출근하여도 모두 공의 연화 중에 있다. 당신은 연공하여 뭘하는가? 당신은 연공을 하여 法輪(법륜)을 가지(加持)하며 내가 당신에게 넣어 준 모든 기능과 氣機(치지)를 가지한다. 고층차 중에서 수련할 때는 모두 무위(無爲)적인 것이라, 동작 역시 기(機)에 따라 움직이며 어떤 의념(意念)의 유도도 없고 또 호흡 등을 논하지 않는다.

우리는 연공함에 또 어느 시간, 지점을 가리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어느 시간에 연공하면 좋은가? 고 묻는다. 자시(子時), 진시(辰時), 오시(午時)인가? 우리는 시진(時辰)을 가리지 않는다. 당신이 자시에 연공을 하지 못하여도 공이 당신을 연마시키는가 하면, 당신이 진시에 연공하지 못하여도 공이 당신을 연마시키는가 하면, 당신이 잠을 자도 공은 당신을 연마시키는가 하면, 당신이 길을 걸어도 공이 당신을 연마시키는가 하면, 당신이 출근하여도 공은 역시 당신을 연마시킨다. 이것은 당신의 연공시간을 대대적으로 축소시킨 것이 아닌가? 우리 많은 사람들은 진정하게 도를 얻으려는 한가지 마음을 품고 있는데, 그것은 물론 수련의 목적이다. 수련의 최종 목적은 곧바로 도를 얻고 원만(圓滿)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사람은 그의 유생지년(有生之年)에 연세가 이미 아주 제한되어 있고 모자랄 수도 있는데,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은 능히 이러한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여 연공 노정을 단축시킬 수 있다. 동시에 또한 성명쌍수 공법이라, 당신이 끊임없이 수련할 때 끊임없이 당신의 생명을 연장시켜 준다. 당신이 끊임없이 연마하면 끊임없이 연장하여 주어 근기(根基)가 좋고 연세가 많은 사람은 당신의 연공시간이 넉넉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의 표준이 있다. 당신이 하늘에서 정한 원래의 생명노정을 벗어나 나중에 이어온 생명은 완전히 당신에게 연공을 하는 데 쓰라고 준 것이기에, 당신이 사상적으로 약간이나마 편차(偏差)가 생기는 경우에는 곧 생명위험을 초래하게 된다. 왜냐하면 당신의 생명노정은 일찍이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다만 당신이 世間法(세간법) 수련을 벗어난 후에야 만이 이런 통제를 받지 않게 되는데, 그때에 가게 되면 또 다른 하나의 상태이다.

방위(方位)를 가리지 않으며 공도 거두지(收功)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法輪(법륜)은 멎지 않고 항상 돌고 또한 멎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전화가 오거나 다른 사람이 문을 노크하면 당신은 즉시로 사무를 보며 공을 거둘 필요도 없다. 당신이 일 처리를 할 때에 法輪(법륜)은 즉시 시계바늘이 도는 방향으로 회전하여, 체외에 발산되어 나간 에너지를 단번에 흡수하여 들인다. 인위적인 봉기관정(捧氣灌頂)은 당신이 아무리 받든다 하여도 잃게 된다. 法輪(법륜)은 영성(靈性)이 있기 때문에 그 자신이 이런 일을 할 줄 안다. 또 방위도 가리지 않는다. 전체 우주가 모두 운동하고 있고, 은하계가 돌고 있으며, 9대 행성이 태양을 둘러싸고 회전하고 있는가 하면, 지구도 자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주의 그렇게 큰 이치에 따라 연마하고 있는데, 어디가 동남서북인가? 없다. 어느 방위를 향하여 연마하든, 모두 전 방위적인 연마이며 어느 방위를 향하여 연마하든, 모두 동시에 동남서북을 향하여 연마하는 것과 같다.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은 수련생이 편차(偏差)가 생기지 않도록 보호한다. 어떻게 보호하는가? 당신이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으로 된다면, 우리 法輪(법륜)은 당신을 보호해 줄 것이다.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며, 명백하게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이야기한 말을 듣기에는 아주 허황한 것 같지만, 당신이 앞으로 계속 배우게 되면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또 기타의 것들도 있지만 너무 높은 것을 나는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옅은 데로부터 깊은 데로, 계통적으로 고층차의 법을 논술할 것이다. 만약 당신 자신의 心性(심성)이 똑바르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이 추구하고자 한다면, 아마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나는 많은 노수련생의 法輪(법륜)이 그래도 변형된 것을 발견하였다. 무엇 때문인가? 당신은 기타 것들을 섞어서 연마하였으며 당신이 다른 사람의 것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法輪(법륜)은 왜 당신을 보호하지 않는가? 당신에게 주었기에 곧 당신의 것이고 당신의 의식지배를 받는다. 당신이 가지려는 것은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데 이것은 이 우주의 이치이다. 당신이 수련하지 않으려면 아무도 당신을 강제적으로 수련하게끔 할 수 없는 즉, 그렇게 되면 나쁜 짓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누가 능히 당신의 마음을 전변시키도록 당신을 강제할 수 있는가? 당신은 자신이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 여러 가(家)의 장점을 취하고 누구의 것도 다 가져와서, 오늘은 이 공을 연마(練)하고 내일은 저 공을 연마(練)하는데 목적은 당신의 병을 제거하려는 데 있다. 병을 제거했는가 못했는가? 제거하지 못했다. 다만 당신에게 뒤로 미루어 놓았을 따름이다. 고층차에서 수련하려면 하나의 전일(專一)해야 하는 문제를 이야기하게 된다. 한 문(門)을 틀어쥐고 수련해야 하므로 어느 문(門)을 수련하든지 마음을 반드시 그 문에 두어야 한다. 줄곧 이 한 문에서 개공개오(開功開悟)해야 만이 당신은 비로소 다른 공법으로 전입(轉入)하여 다시 수련할 수 있게 되는데, 그것은 다른 한 세트의 것들이다. 왜냐하면 진정하게 한 세트의 것을 전해 내려감은 무척 멀고 오랜 연대를 거쳐서야만, 남겨 내려오게 되는 것으로, 그것은 모두 하나의 무척 복잡한 연화(演化)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느낌에 의하여 연공하는데 당신의 느낌이 다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진정한 연화과정은 다른 공간에서 극히 복잡하며 현묘한 것으로서, 조금만 차이가 나도 안 된다. 마치 정밀계기처럼 당신이 기타 부속품을 하나 넣으면 곧 못쓰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당신의 모든 각개 공간의 신체가 다 변화를 발생하고 있는데 아주 현묘한 것으로 조금만 차이가 나도 다 안 된다. 내가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는가.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고. 당신이 함부로 다른 사람의 것을 가져와 안에다 넣기만 하면 다른 정보가 있게 되어 곧 이 한 법문의 것을 교란하게 되며 당신은 삐뚤게 나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속인사회에 반영될 수 있으며 속인의 번거로움을 가져오게 될 수 있다. 당신 자신이 가진 것이므로 다른 사람은 상관할 수 없는데 이것은 오성(悟性)문제이다. 동시에 당신이 섞어 넣은 것이 이미 공으로 하여금 난잡해지게 하였다. 당신은 이미 수련할 수 없게 되는데 이러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나도 여러분이 꼭 法輪大法(법륜대법)을 배워야만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法輪大法(법륜대법)을 배우지 않고 당신이 기타 공법에서 진정한 전수를 받는다면 나 역시 찬성이다.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알려줄 것이라면, 진정한 고층차에서의 수련은 반드시 전일(專一)해야 한다. 나는 당신에게 또 한가지를 말하련다. 현재 나처럼 이렇게 진정하게 고층차에로 공을 전수하는 사람은 둘도 없다. 당신은 나중에 내가 당신에게 무슨 일을 해주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도 오성(悟性)이 너무 낮지 말기를 희망한다. 많은 사람들이 고층차에로 수련하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것을 당신 앞에 놓아주었는데도 당신은 아마 반응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당신이 여기저기에서 사부를 모시고 돈을 얼마 판다 해도 당신은 찾지 못한다. 오늘 당신에게 문 앞까지 갖다 주었건만, 당신은 아직 인식마저 하지 못할 수 있지 않는가! 이것이 바로 깨닫는가 깨닫지 못하는가 하는 문제이며, 역시 제도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이다.

제 2 강 의


천목(天目)에 관한 문제

많은 기공사들도 천목의 일부 상황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법은 부동한 층차 중에 부동한 현현형식(顯現形式)이 있다. 어느 한 층차에로 수련된 사람, 그는 다만 그 층차 중에서의 광경을 볼 수 있고 이 층차를 벗어난 진상을 그는 볼 수 없으며 또 믿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이 층차 중에서 본 것만이 옳은 것이라고 여긴다. 그가 아직 그처럼 높은 층차에로 수련되지 못하였을 때, 그는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으며 믿을 수 없다고 여기는데 이것은 층차가 결정하는 것으로 그의 사상도 승화되어 올라갈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천목 문제에서 어떤 사람은 이런 것이라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은 저런 것이라 이야기하여 결국 이야기들이 아주 난잡하지만 아무도 최후로 그것을 똑똑히 말하지 못하였다. 실제로 이 천목 역시 낮은 층차에서 똑똑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 천목의 구조는 비밀 중의 비밀에 속하였기 때문에 속인들이 알지 못하게끔 하였다. 때문에 역대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 여기서도 예전의 그런 이론을 둘러싸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현대과학으로, 가장 알기 쉽고 통속적인 현대언어로 그를 해석하며 아울러 그의 근본 문제를 이야기한다.

우리가 말하는 천목은 실질적으로 곧 사람의 양미간 조금 위에 송과체(松果體)를 연결하는 이 위치를 말한다. 이것이 주통로이다. 신체에는 또 많고 많은 눈이 있다. 도가에서는 매 규(竅)는 다 하나의 눈이라고 한다. 도가는 신체의 혈위(穴位)를 규(竅)라고 하며 한의에서는 혈위(穴位)라고 부른다. 불가는 매 하나의 땀구멍을 모두 하나의 눈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귀로 글자를 알아내고 또한 손이나 뒤통수로도 보며 또 어떤 사람은 발로 보고 배로 보는데, 모두 그렇게 할 수 있다.

천목을 이야기하게 되어 우리는 우선 우리 사람의 이 한 쌍의 육안을 말해 보자. 지금 어떤 사람들은 이 한 쌍의 눈은 우리 이 세계 중의 어떠한 물질, 어떠한 물체도 보아 낼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일종 고집스런 관념이 생겼다. 그는 눈을 통하여 본 것만이 확실한 것이라고 여기며 그가 보지 못하는 것은 믿지 않는다. 예전에는 이런 사람을 줄곧 오성(悟性)이 좋지 않다고 인정했다. 일부 사람들은 왜 오성이 좋지 않은가를 똑똑히 이야기하지 못하였다.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이 말을 듣기에는 아주 이치에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약간 높은 층차에서 보게 되면 그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어떤 하나의 시공(時空)이든 모두 물질로 구성되었다. 물론 부동한 시공은 부동한 물질구조가 있으며 부동한 생명체의 각종 현현형식이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예를 들겠다. 불교에서는 인류사회의 일체 현상은 모두 환상이고 진실이 아니라고 한다. 어찌하여 환상인가? 이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거기에 놓여 있는 물체를 누가 그것을 가짜라고 말할 수 있는가? 물체존재의 형식은 이러한 것이지만 그의 표현형식은 도리어 이러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은 오히려 일종 공능이 있어, 우리 물질공간의 물체를 우리가 지금 본 이런 상태로 고정시킬 수 있다. 사실 그는 이런 상태가 아니며 우리 이 공간에서 그 역시 이 상태가 아니다. 예컨대 현미경 아래에서 본 사람은 어떤 모양인가? 온 몸은 하나의 성기고 소분자로 구성된, 마치 모래와 같은 과립(顆粒)모양이며 운동하는 것이라, 전자는 원자핵을 둘러싸고 운동하고 있고 온 몸은 모두 꿈틀거리며 운동하고 있다. 신체표면은 매끌매끌한 것이 아니며 규칙적이 아니다. 우주 중의 어떠한 한가지 물체, 강, 철, 돌 모두가 마찬가지로서, 그 속의 분자성분은 다 운동하고 있다. 당신은 전반 형식을 다 보지 못하는데 사실 그는 다 안정된 것이 아니다. 이 책상 역시 꿈틀거리고 있지만 눈이 오히려 진상을 보지 못함은, 이 한 쌍의 눈이 사람에게 일종 착각을 조성하여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시적인 것들을 보아낼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이런 재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천성적으로 이런 일종의 재간을 갖추고 있으며 그는 일정한 미시적인 아래의 것들을 능히 볼 수 있다. 우리 사람은 바로 이 물질공간에 이 한 쌍의 눈이 있게 된 후부터 사람에게 이런 일종의 가상을 만들어 줄 수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예전에 말하기를,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승인하지 않음을 수련계에서는 역대로 이런 사람을 오성이 좋지 않고 속인의 가상에 미혹되었으며 속인 중에 미혹되었다고 여겼다. 이것은 종교에서 역대로 내려오며 한 말인데 사실 우리가 보아도 역시 이치가 있다.

이 한 쌍의 눈이 능히 우리 현존 물질공간의 물건을 이런 상태로 고정시킬 수 있는 이것 외에 그는 무슨 큰 재간이 없다. 사람이 물건을 보는 것도 눈이 직접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눈은 사진기의 렌즈와도 같이 다만 일종 공구의 작용을 할 따름이다. 먼 곳을 보려면 렌즈를 길게 뽑아야 하는데 우리의 눈도 이러한 한가지 작용을 하고 있다. 어두운 곳을 볼 경우에 동공을 확대해야 하는데 사진기도 어두운 곳에서 찍을 때 역시 광선조절기를 확대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노출량이 부족하여 모두 꺼멓게 된다. 밖에 아주 밝은 곳으로 가게 되면 동공은 급작스레 축소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눈이 부시여 아무것도 똑똑히 보이지 않는다. 사진기 역시 이런 원리로서 광선 조절기도 축소되어야 한다. 그는 다만 물체를 섭취할 수 있으며 그는 다만 일종 도구일 따름이다. 우리가 진정하게 물건을 보며 한 사람을 보거나 한 물체가 존재하는 형식을 보는 것은 사람의 대뇌에서 형상이 이루어진다. 즉 사람의 눈을 통하여 보며 다시 시신경(視神經)을 통해 대뇌 후반부의 송과체(松果體)에 전도(傳導)되어 이 구역에서 그로 하여금 영상으로 반영되어 나오게 한다. 이것은 진정하게 영상이 반영되어 물건을 보는 것은 우리 대뇌의 송과체 이 한 부분이라는 것을 말한다. 현대 의학도 이 점을 인식하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천목 열기는, 바로 사람의 시신경을 피하고 사람의 양미간에 하나의 통로를 열어 놓아 송과체로 하여금 직접 밖으로 내다보게 하는 것인데, 이것을 곧 천목 열기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이것은 현실적이 아니지 않는가, 이 한 쌍의 눈은 필경 공구의 작용을 할 수 있어 그가 능히 물체를 섭취하기에 눈이 없어서는 안 되잖은가. 현대 의학의 해부에서는 이미 이 송과체 전반(前半)부분에 사람의 눈이 갖고 있는 모든 조직구조가 구비되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것이 사람의 대뇌 안에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하나의 퇴화된 눈이라고 한다. 퇴화된 눈인지 아닌지에 대하여, 우리 수련계는 아직 보류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필경 지금 의학에서는 이미 사람의 대뇌 중간 그 부위에 하나의 눈이 있음을 인식하였다. 우리가 열어 놓는 이 한 갈래의 통로는 그의 이 한 점을 마주 대하고 있는데 마침 현대 의학상의 인식과 들어맞는다. 이 하나의 눈은 우리 이 한 쌍의 육안처럼 사람에게 가상을 만들어 주지 않으며 그는 능히 사물의 본질을 보아내고 물질의 본질을 보아낼 수 있다. 그러므로 천목 층차가 아주 높은 사람은 우리 공간을 꿰뚫고 다른 시공(時空)을 보아 낼 수 있으며 속인이 볼 수 없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층차가 높지 않은 사람은 꿰뚫는 힘이 있기 때문에 벽을 사이 두고 물체를 보거나 인체를 투시할 수 있다. 그는 바로 이러한 일종 공능을 구비하고 있다.

불가에서는 5통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육안통(肉眼通)·천안통(天眼通)·혜안통(慧眼通)·법안통(法眼通)·불안통(佛眼通)이다. 이것은 천목의 5대 층차로서, 매 한 층차는 또 상·중·하로 나뉜다. 도가에서는 구구팔십일층 법안(法眼)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여기서 여러분의 천목을 열어주지만 천안통(天眼通)이하로는 열어주지 않는다. 무엇 때문인가? 비록 당신은 여기에 앉아서 수련을 시작하였지만 당신은 필경 속인 중에서 금방 시작하였으므로 아직도 속인의 많은 집착심을 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천안통 이하로 열어준다면 당신은 속인이 인정하는 특이공능이 나타나게 되어, 당신은 벽을 사이 두고 물체를 보며 인체투시를 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우리가 이 공능을 이처럼 대면적으로 전수하여 사람마다 모두 이런 정도로 열어준다면, 속인사회를 엄중히 교란하게 되며 속인사회 상태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 나라 기밀도 다 지켜낼 수 없고, 사람이 옷을 입으나 입지 않으나 마찬가지이고, 사람이 집안에 있어도 당신은 밖에서 다 보게 되고 거리에 가서 복권을 보면 그 일등상도 당신이 당첨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면 안 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사람마다 모두가 천안통 천목이 열렸다면 그것은 인류사회인가? 인류사회를 심하게 교란하는 현상이 존재함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내가 만약 정말로 당신을 이 층차에로 열어준다면 당신은 아마 즉시로 기공사가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예전에 기공사가 되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천목이 열렸으므로 마침 다른 사람의 병을 봐줄 수 있게 되었다. 이건 내가 당신을 나쁜 길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닌가?

그럼 나는 당신을 어느 층차에 열어주는가? 나는 당신을 직접 혜안통 이 층차에 열어준다. 고층차로 열어주자니 당신의 心性(심성)이 모자라고 낮은 층차로 열어주자니 속인사회 상태를 심하게 파괴할 수 있다. 혜안통에 열어 줌으로써, 당신은 벽을 사이 두고 물체를 보며 인체를 투시하는 이런 재간을 구비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은 오히려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무슨 좋은 점이 있는가? 그는 당신이 연공하는 신심을 북돋워 줄 수 있고 속인이 볼 수 없는 것을 확실히 보았기 때문에, 당신은 그것이 진실한 존재라고 느껴질 것이다. 지금 당신이 똑똑히 보아도 좋고 똑똑히 보지 못해도 좋다. 다 이 층차에로 열어줌으로써, 당신의 연공에 좋은 점이 있다. 진정하게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은 心性(심성)의 제고를 엄격히 요구하기만 한다면, 이 책을 보아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사람의 천목 층차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에게 천목을 열어준 후에 무엇이나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이 아니며 그것은 또 하나의 층차의 구분이 있다. 그러면 이 층차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요소는, 바로 사람의 천목은 안에서부터 밖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하나의 마당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정화지기(精華之氣)라고 한다. 그는 무슨 작용을 하는가? 마치 텔레비전의 형광막처럼 만약 형광분이 없다면 텔레비전을 켠 후, 그는 하나의 전구라 빛만 있고 영상은 없다. 바로 형광분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는 비로소 영상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예가 아직 그렇게 적당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직접적으로 보는 것이고 그것은 형광막을 통하여 나타내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그러한 뜻이다. 요만한 정화지기(精華之氣)는 극히 진귀한 것으로, 德(덕)에서부터 정련(提煉)해 낸 더욱 정화(精華)적인 것으로 구성된 것이다. 흔히 매 사람에게 존재하는 정화지기는 다 같지 않은데, 아마 만 사람 중에 같은 층차에 있는 사람을 두 사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천목의 층차는 직접적으로 우리 이 우주 중에서의 법의 체현이다. 그것은 초상(超常)적인 것으로서 사람의 心性(심성)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한 사람의 心性(심성)이 낮으면 그의 층차는 곧 낮다. 心性(심성)이 낮으면 그의 요만한 정화지기가 많이 산실(散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람의 心性(심성)이 아주 높아, 그는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속인사회 명(名), 리(利),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 개인 이익, 칠정육욕에 대하여 모두 담담히 여겨 아마 정화지기가 비교적 잘 보존되었을 수 있으므로, 천목이 열린 후에 비교적 똑똑히 볼 수 있다. 여섯 살 이하의 어린이는 열린 후에 아주 똑똑히 볼 수 있으며 열리기도 쉬워, 말 한 마디면 곧 열리게 될 수 있다.

속인사회의 거센 흐름, 큰 염색독의 오염으로 하여 사람들이 옳다고 인정하는 일들은 사실 많은 것이 모두 잘못된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잘 살려고 생각하지 않는가? 잘 살려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의 이익에 손해를 끼칠 수 있고 사람의 이기적인 심리를 키워 줄 수 있으며, 아마 다른 사람의 이익을 점유하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며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속인 중에서 다투고 싸운다면 이것은 우주의 특성과 상반되지 않는가? 때문에 사람들이 맞다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꼭 맞는 것은 아니다. 어린애를 교육할 때에 어른은 흔히 그가 장래에 속인사회에서 발붙일 곳이 있도록 하기 위하여 어릴 적부터 "너는 좀 약게 놀아라" 하고 교육한다. '약다'는 것이 우리 이 우주에서 볼 때 이미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고 개인의 이익을 담담히 보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약다는 것은 바로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이다. "누가 널 얕잡아 보면 너는 그의 선생님을 찾고 그 집 학부모를 찾아라", "돈을 보면 주워라", 바로 이렇게 그를 교육한다.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이 어린이가 받아들이는 것이 많아져, 그는 속인사회에서 천천히 이기적 심리가 갈수록 커지고 그는 이득을 챙기게 되며 그는 곧 德(덕)을 잃게 된다.

德(덕)이란 이런 물질은 손실된 후에 산실되는 것이 아니라, 그는 다른 사람에게로 전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화지기는 흩어져 버릴 수 있다. 만약 이 사람이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매우 교활하여 개인 이익이 아주 강하고 유독 이익만 탐낸다면, 흔히 이런 사람은 천목이 열린 후에도 안되며 똑똑히 보지 못한다. 그러나 금후 영원히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무엇 때문인가? 우리는 수련과정 중에서 반본귀진하고자 끊임없이 연공하므로 곧 끊임없이 보충되며 새롭게 보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心性(심성)을 중히 여겨야 한다. 우리는 전체적인 제고와 전체적인 승화를 중시한다. 心性(심성)이 올라오면 다른 것들도 모두 따라 올라오게 되며 心性(심성)이 올라오지 못하면 천목의 고만한 정화지기도 보충될 수 없음이 바로 이 이치이다.

두 번째 요소는, 자신이 연공할 때 만약 근기가 좋다면 역시 천목을 열 수도 있다. 흔히 어떤 사람은 천목이 방금 열릴 때에 깜짝 놀라게 된다. 왜 깜짝 놀라게 되는가? 일반적으로 연공은 모두 저녁 자시(子時), 밤이 깊어 조용할 때를 선정하기 때문이다. 그가 연마하고 연마하는 중에 갑자기 하나의 큰 눈을 보게 되어 대번에 그를 깜짝 놀라게 한다. 이렇게 놀란 것이 이만저만이 아닌지라, 그 후부터 다시는 감히 연마하지 못한다. 이 얼마나 사람을 놀라게 하는가! 그렇게도 큰 하나의 눈이 깜박깜박 거리면서 보는 것이 똑똑하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그것을 마(魔)의 눈이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부처님의 눈 등등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것이 바로 당신 자신의 눈이다. 물론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 수련인의 공의 전반 연화(演化)과정은 다른 공간에서 아주 복잡한 하나의 과정으로서 또 다른 하나의 공간뿐이 아닌, 모든 공간, 각개 공간 속의 신체가 모두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당신 자신이 이렇게 할 수 있는가? 못 한다. 이런 일은 사부가 배치한 것으로 사부가 책임지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고 한다. 당신 자신은 다만 이런 염원만 있고 이렇게 생각을 하였을 따름이지, 진정한 그 일은 사부가 해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연마하여 천목을 열게 된다. 우리는 당신의 눈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당신 자신이 연화해낼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사부가 있어, 사부가 당신의 천목이 열린 것을 보게 되면 당신에게 눈을 하나 연화하여 주는데 그것을 진안(眞眼)이라고 부른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사부가 없다. 그러나 오히려 길을 지나가는 사부가 있게 된다. 불가에서는, 부처님은 계시지 않는 곳이 없고 곳곳에 다 계시며 이런 정도로 많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머리 석자 위에 신령(神靈)이 있다고 하는데, 바로 매우 많다는 이야기이다. 길을 지나던 사부가 볼 때, 당신이 연공을 아주 괜찮게 하여 천목은 이미 열렸는데 눈이 하나 모자라기에, 하나를 연화(演化)하여 당신에게 준다. 이것 역시 당신 자신이 연마한 것으로 여긴다. 왜냐하면 사람을 제도함에 조건을 논하지 않고 대가를 논하지 않으며 보수를 따지지 않고 이름도 따지지 않는 것으로 속인 중의 모범 인물 보다는 훨씬 더 높다. 이는 완전히 자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사람의 천목이 열린 후에 한가지 상태가 나타날 수 있다. 즉 빛에 의해 되게 눈부시어 눈을 자극함을 느끼게 된다. 사실 당신의 눈을 자극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송과체를 자극하였는데 당신은 마치 눈을 자극한 것 같은 감각을 느낀다. 그것은 당신이 아직도 이 하나의 눈이 없기 때문이며 당신에게 이 하나의 눈을 넣어 준 후에는 당신은 눈을 자극하는 감각이 없을 것이다. 우리 일부분 사람들은 이 하나의 눈을 감각할 수 있고 볼 수 있다. 그와 우주의 본성은 같은 것으로, 그는 아주 천진하고 또 아주 신기로워, 안으로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당신의 천목이 열렸는가 열리지 않았는가, 볼 수 있는가 없는가 하고 그 역시 안으로 당신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때 당신의 천목도 열렸다. 그가 한창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데 당신이 그를 갑자기 보게 되어 깜짝 놀란다. 사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눈이다. 당신이 앞으로 다시 물건을 볼 때는 바로 이 하나의 눈을 통하여 보게 된다. 이 하나의 눈이 없으면 당신은 전혀 보지 못하며 열렸다 해도 보지 못한다.

세 번째 요소는, 바로 층차의 돌파가 각개 공간의 차이를 나타내게 되는데 이것이 진정하게 층차를 결정하는 문제이다. 물건을 보는데는 주통로(主通道) 외에 사람은 또 허다한 부통로(副通道)가 있다. 불가에서는 매 하나의 땀구멍이 다 하나의 눈이라고 이야기하며, 도가에서는 신체의 모든 규(竅)가 다 눈이며 모든 혈위가 다 눈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가 말한 것은 여전히 법이 신체에서 변화발전된 일종 형식으로서, 보지 못하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층차는 이것과 또 같지 않다. 주통로 이외에 두 눈썹, 눈까풀 위, 눈까풀 아래와 산근(山根) 몇 개 부위에 또 몇 개의 주요한 부통로가 있다. 그것들이 층차 돌파의 문제를 결정한다. 물론 일반 수련인으로서 만약 이 몇 개 곳으로 모두 볼 수 있다면, 이 사람이 돌파한 층차는 이미 아주 높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눈으로도 볼 수 있는데 그는 눈까지도 수련되어 각종 공능의 형식을 구비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이 눈을 잘 장악하지 못하여 그가 늘 이 하나의 물체는 보지만 저 하나의 물체를 보지 못한다면 역시 안 된다. 때문에 어떤 사람은 흔히 한 쪽 눈으로는 저쪽을 보고 다른 한 쪽 눈으로는 이쪽을 보고 있다. 그러나 이 한 쪽의 눈(오른 눈) 아래는 부통로가 없다. 이것은 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인데, 사람들이 좋지 않은 일을 할 때 오른쪽 눈을 잘 쓰므로 오른 쪽 눈 밑에는 부통로가 없다. 이는 世間法(세간법) 수련 중에 나타나는 몇 개 주요한 부통로를 가리킨 것이다.

극히 높은 층차에 이르러 世間法(세간법) 수련을 벗어난 이후에는 일종 복안(復眼)과 같은 그런 눈이 나타날 수 있다. 즉 온 얼굴의 상반부에 하나의 큰 눈이 생기게 되며 그 속에는 무수한 작은 눈들이 있다. 대단히 높은 어떤 대각자들이 수련하여 낸 눈은 특별히 많아 온 얼굴에 다 있다. 모든 눈은 모두 이 큰 눈을 통해서 보며 무엇을 보려 하면 곧 무엇을 볼 수 있는데 한눈에 모든 층차를 다 보아낸다. 현재 동물학자, 곤충학자들은 파리를 연구하고 있다. 파리의 눈은 아주 크다. 현미경으로 보면 그 속에는 무수한 작은 눈이 있는데 그것을 복안(復眼)이라고 한다. 극히 높은 층차에 이르면 이런 상태가 나타날 수 있는데 여래보다 무척 높고도 높아야만 비로소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속인은 보아내지 못하고 일반적인 층차에서도 그의 존재를 보아내지 못하며, 다만 정상적인 사람과 같음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공간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층차의 돌파를 이야기한 것이며 바로 각개 공간을 능히 돌파할 수 있다는 문제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천목의 구조를 여러분에게 이야기하였다. 우리가 외력(外力)으로 당신의 천목을 열어줌은 비교적 빠르고도 비교적 쉽다. 내가 천목을 이야기할 때, 우리 매 사람의 앞이마가 다 조여들며 살이 한데로 모이고, 모여서는 안으로 뚫고 들어감을 느끼게 된다. 이렇지 않은가? 바로 이러하다. 오로지 여기에서 진정하게 마음을 내려놓고 法輪大法(법륜대법)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사람마다 모두 감각이 있게 되고 힘 또한 아주 커서 안으로 민다. 우리는 전문적으로 당신의 천목을 여는 공(功)을 내보내어 당신의 천목을 열어주는 동시에 또 法輪(법륜)도 내보내어 당신에게 손질해 준다. 우리가 천목을 이야기할 때, 오로지 法輪大法(법륜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사람마다 열어준다. 하지만 사람마다 모두 똑똑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 사람마다 모두 보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당신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괜찮다. 당신이 보지 못하여도 괜찮은 즉, 천천히 수련하면 된다. 당신이 끊임없이 층차를 높임에 따라 당신은 점차적으로 보게 되며 똑똑히 보지 못하던 데로부터 차츰 똑똑히 보게 된다. 오로지 당신이 수련하고 당신이 결심을 굳게 내리고 수련할 때면, 당신의 산실되었던 것이 모두 보충되어 올 것이다.

자체로 천목을 열기란 비교적 곤란하다. 나는 자체로 천목을 여는 몇 가지 형식을 이야기하겠다. 예컨대 우리 어떤 사람은 가부좌하고 있을 때 앞이마를 관찰하고 천목을 관찰하게 되면 앞이마는 꺼멓게 아무것도 없음을 느낀다. 시간이 길어지면 그는 앞이마가 점차적으로 하얗게 됨을 느낀다. 한 시기 수련하면 그는 앞이마가 점차적으로 밝아지며 밝은 후에 붉어짐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에 그는 꽃잎처럼 뒤집혀지는데 마치 영화나 텔레비전에서와 같이 꽃봉오리가 순식간에 피는 이런 장면이 나타나게 된다. 그 붉은 색은 원래 평평한 것인데 단번에 가운데서부터 부풀어올라 끊임없이 뒤집혀지고 끊임없이 뒤집혀진다. 당신이 자체로 그것을 모두 뒤집혀 넘기려 한다면, 10년 8년이라도 곤란할 것이다. 왜냐하면 온 천목이 다 막혔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천목은 막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통로를 구비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연공하지 않기 때문에 에너지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가 연공할 때 갑자기 눈앞에 하나의 검고 둥그런 것이 나타날 수 있다. 연공시간이 길어지면 그는 점차적으로 하얗게 되며, 하얀 데서부터 점차적으로 밝아지게 되는데, 나중에는 갈수록 밝아져 눈을 좀 자극함을 느끼게 된다. 어떤 사람은, 나는 태양을 보았다, 나는 달을 보았다고 말한다. 사실 당신은 태양을 보지 못하였고 달도 보지 못하였다. 그럼 당신이 본 것은 무엇인가? 바로 당신의 이 통로이다. 어떤 사람은 층차를 돌파함이 비교적 빨라 눈을 넣어 준 후에는 직접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매우 어렵다. 그는 이 통로를 따라 마치 터널(隧道)같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우물 같기도 한데, 연공만 하면 나오려고 내달리고, 심지어 잠자면서도 자신이 밖으로 뛰고 있는 감각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말을 타고 달리며, 어떤 사람은 날고 있고, 어떤 사람은 내달리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차를 탄 것과 같이 밖으로 내달리는 감각들을 느끼지만, 늘 끝까지 도달하지 못한 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자체로 천목을 열기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도가는 인체를 하나의 소우주로 여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만약 하나의 소우주라면 앞이마로부터 송과체(松果體)까지 10만 8천리도 더 될 것이므로, 그는 늘 나오려고 달리며 늘 달려도 끝에 도달하지 못한 감을 느끼게 된다.

도가는 인체를 하나의 소우주라고 보는데 아주 이치가 있다. 그의 조직구조가 우주와 아주 유사하다는 말이 아니고 우리 이 물질공간의 신체 존재형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말한다. 지금 과학이 인식한 물질신체의 세포 이하는 어떤 상태인가? 각종 분자성분, 분자 이하는 원자·질자·원자핵·전자·쿼크이고 현재 연구한 최소의 미립자는 중성미자이다. 그럼 가장 작고 가장 작은 미립은 무엇인가? 연구하자면 실로 너무나도 어렵다. 석가모니는 만년에 이런 한 마디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크기로는 밖이 없고 작기로는 안이 없다"고 말하였다. 무슨 뜻인가? 여래의 이 층차에서, 크다면 우주의 변두리를 보아내지 못하고, 작다면 물질의 최소 미립자를 보아내지 못한다. 때문에 그는 "크기로는 밖이 없고 작기로는 안이 없다"라고 이야기하였다.

석가모니는 또 3천 대천세계 학설을 이야기하였다. 그는 우리 이 우주 중에, 우리 이런 은하계 속에 우리 인류와 마찬가지로 색신(色身)신체가 존재하고 있는 별나라가 3천 개나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또 하나의 모래알 속에 또 이러한 3천 대천세계가 있다고 하였다. 하나의 모래알은 바로 하나의 우주와 마찬가지로서, 속에는 우리와 같은 지혜로운 사람이 있으며 이와 같은 별나라가 있는가 하면 산천 하류도 있다. 듣기에는 아주 허황하다! 만약 이렇다고 한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 속에 또 모래가 있을 것이 아닌가? 그 모래 속에 또 3천 대천세계가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럼 그 3천 대천세계 속에 또 모래가 있고 그 모래 속에 또 3천 대천세계가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여래 이 층차에서는 그의 밑바닥을 보아낼 수 없었다.

사람의 분자세포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우주가 얼마나 큰가 라고 묻는데,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이 우주, 그는 변두리가 있다. 그러나 여래 이런 하나의 층차에서는 그를 모두 변두리가 없이 무한히 큰 것으로 보게 된다. 사람 신체의 내부는 분자로부터 미시적 아래에서의 미립자에 이르기까지 이 우주와 마찬가지로 큰데, 듣기에는 아주 허황하다. 일개 사람, 일개 생명을 육성함에 있어서 극히 미시적 아래에서 이미 그의 특정된 생명성분과 그의 본질이 구성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현대의 과학이 이것을 연구함에 있어서는 아직 차이가 너무나도 멀며 전체 우주 중에 존재하고 있는 고급 지혜인 별나라의 그런 생명들과 비교하여 볼 때, 우리 인류의 과학기술 수준은 상당히 낮다. 바로 같은 시간, 같은 곳에 존재하는 다른 공간도 우리는 돌파하지 못하고 있지만, 다른 별나라에서 날아온 비행접시(飛蝶)는 직접 다른 공간 속에서 가기 때문에 그 시공(時空)적 개념도 모두 변화를 발생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오려고 하면 곧바로 오고 가려고 하면 곧 가며, 어찌나 빠른지 인간의 관념으로 하여금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

우리는 천목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이러한 문제를 언급하게 된다. 왜냐하면 당신이 통로로부터 밖을 향해 내달릴 때에 당신은 그것이 가없이 무한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다른 한가지 상황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한 갈래의 터널을 따라 뛰는 것이 아니라 한 갈래의 끝없는 큰길을 따라 앞으로 달리고 있는데, 길의 양측에는 산이 있고 물이 있고 도시가 있다. 줄곧 밖으로 내달리게 되는데 듣기에는 더욱 허황하다. 나는 어느 한 기공사가 이런 말을 한 것이 기억된다. 그는, 사람의 땀구멍 하나 속에 한 도시가 있고 그 속에서 기차가 달리고 자동차가 달린다고 말하였다. 다른 사람은 듣고서 몹시 놀랐고 대단히 허황하게만 생각되었다. 여러분 알다시피 물질은 미립자 아래로 분자·원자·질자가 있으며 마지막에 계속 아래로 파고 들어가서, 만약 당신이 매 한 층에서 어느 한 점이 아니라 그 한 층의 면을 능히 볼 수 있어, 분자 한 층의 면, 원자 한 층의 면, 질자 한 층의 면, 원자핵 한 층의 면을 볼 수 있다면, 당신은 부동한 공간의 존재형식을 보게 된 것이다. 사람의 신체를 포함한 어떠한 물체이든 모두 우주공간 층차와 동시에 존재하며 서로 통하고 있다. 우리 현대 물리학에서 물질의 미립자를 연구함은 다만 하나의 미립자를 연구하며 그를 분석, 분열하고, 원자핵이 분열한 후에 또 그의 열변(裂變) 후의 성분을 다시 연구한다. 만일 이러한 계기가 있어 능히 전개할 수 있다면, 그가 이 한 층차에서의 모든 원자 성분 또는 분자 성분이 이 한 층에서의 전체적인 체현을 보아내며 이러한 광경을 보아낼 수 있다면, 당신은 곧 이 공간을 돌파하였고 다른 공간이 존재하는 진상을 보게 된다. 사람의 신체는 바깥공간과 대응된 것이라, 그는 모두 이러한 존재형식이 존재하고 있다.

자체로 천목을 여는 데는 또 일부 부동한 상태가 있는데 우리는 주로 비교적 보편적인 일부 현상을 이야기하였다. 어떤 사람은 또 천목이 돌고 있음을 보았다. 도가 공을 연마하는 사람은 늘 천목 안이 돌고 있음을 보게 되는데 태극판이 '팍' 하고 갈라진 다음 그는 영상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 머리 속에 태극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부가 처음부터 당신에게 한 세트의 것들을 넣어 준 것이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태극이다. 그가 당신의 천목을 봉하였다. 당신이 열게 될 때에 그것은 갈라진다. 그가 특별히 당신에게 배치한 것이지, 당신의 두뇌 속에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다.

또 일부분 사람들은 천목 열리기를 추구하고 있는데 연마할수록 더욱 열리지 않는다. 무슨 원인인가? 그 자신도 똑똑히 모른다. 주로는, 천목은 추구할 수 없는 것이고 추구할수록 더욱 없게 되기 때문이다. 추구하면 할수록 그가 열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그의 천목에서부터 일종의 것들이 넘쳐 나오게 되는데,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 그것이 당신의 천목을 덮어 버리게 된다. 시간이 길어지면 그는 하나의 몹시 큰 마당을 이루어 넘쳐 나올 수록 더욱 많아진다. 천목이 열리지 않을수록 더욱 그를 추구하면 이런 것들이 더욱 많이 넘쳐 나온 결과, 그 사람의 온 몸을 모두 포위하며 심지어 그것의 두께가 아주 두터워 매우 큰 하나의 마당을 갖는다. 이 사람의 천목이 정말로 열렸다 하여도 그는 역시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이런 집착심에 봉해졌기 때문이다. 장래에 그가 다시는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이런 집착심을 완전히 버렸을 때에야 만이 그것이 천천히 흩어지게 된다. 그러나 아주 간고하고 오랜 한 동안의 수련과정을 거쳐서야 만이 제거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불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그 자신이 모르기에 사부가 그에게 추구해서는 안되며 추구하지 말라고 알려주었지만 그는 믿지 않고 줄곧 추구한 결과 바라는 바와 정반대가 되었다.

요시공능(遙視功能)

천목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일종 공능을 요시(遙視)라고 부른다. 어떤 사람은, 나는 여기에 앉아서 능히 북경의 광경을 볼 수 있고 미국의 광경을 볼 수 있으며 지구의 저쪽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이해가 되지 않아 하며 과학적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해석하고 저렇게 해석해도 납득이 잘 되지 않아 사람이 어찌 이렇게 큰 재간이 있겠는가고 여긴다. 이런 것이 아니다. 世間法(쓰잰f아)의 층차에서 수련하는 사람은 이런 재간이 없다. 그가 본 것은 요시를 포괄하고 많고 많은 특이공능을 포괄하여 모두 하나의 특정된 공간 내에서 작용을 일으키며, 가장 크다 해도 우리 인류가 생존하는 이 물질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일반적으로 모두 자신의 공간마당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신체는 하나의 특정된 공간 속에 하나의 마당이 존재한다. 이 마당과 德(덕)의 그 마당은 또 하나의 마당이 아니며 같은 하나의 공간이 아니다. 하지만 크기가 같은 마당의 범위이다. 이 마당과 우주는 일종 대응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우주 저쪽에 무엇이 있으면 그의 이 마당에 무엇이 대응되어 오며 모두 대응되어 올 수 있다. 그것은 일종의 영상으로서 진실한 것이 아니다. 예컨대 지구에 미국이 있고 워싱턴이 있다면, 그의 마당에도 미국이 비추어 나오고 워싱턴이 비추어 나오지만 그것은 그림자이다. 하지만 그림자 역시 일종 물질존재로서 그는 대응되어 온 관계이며 저쪽의 변화에 따라 변화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말하는 요시공능이란 곧바로 그 자신의 공간마당 범위 내의 물체를 보는 것이다. 그가 世間法(세간법) 수련을 벗어난 후에는 이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직접 보게 되는데 불법신통(佛法神通)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위력이 비할 바 없이 큰 것이다.

世間法(세간법) 중에서 요시공능은 어찌된 일인가? 내가 여러분에게 분석하여 주겠다. 이 마당의 공간에서 사람의 앞이마 부위에는 한 면의 거울이 있다. 연공하지 않는 사람의 것은 엎어져 있고 연공하는 사람의 그것은 뒤집혀져 있다. 사람의 요시공능이 나올 때에는 그것이 엎치락뒤치락, 반복적으로 뒤집혀지고 있다. 여러분 알다시피, 영화필름은 매초 24프레임(격자)이어야만 동화를 연관시킬 수 있으며 24프레임보다 적을 때는 뛰는 감이 있게 된다. 그것이 뒤집혀지는 속도가 매초 24프레임을 초과하여 그가 비춰진 물체를 거울에 찍어 놓고 뒤집혀져서는 당신이 보게끔 하고, 다시 뒤집혀진 후에는 지워버린다. 그런 다음 다시 비추고 다시 엎어지며 다시 지우고 하여 끊임없이 뒤집혀지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보게 되는 것은 운동적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당신의 공간마당 내의 물체를 비추어 당신에게 보게 한 것이다. 공간 마당에서의 물체는 큰 우주로부터 대응되어 온 것이다.

그러면 사람의 몸 뒤를 어떻게 보는가? 이렇게 작은 거울로 신체 주위를 모두 비출 수는 없잖은가? 여러분 알다시피, 사람의 천목 층차가 천안통을 초과하여 열리고 혜안통으로 들어갈 때에 곧 우리 이 공간을 돌파하게 된다. 바로 이런 경우에, 곧 돌파하게 되지만 아직 완전히 돌파되지 않았을 때에 천목은 일종 변화를 발생할 수 있다. 즉 물체를 보아도 존재하지 않고 사람을 보아도 없고 벽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며 물질마저도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 특정된 공간 중에 종심(縱深)으로 볼 적에 사람이 없으며 다만 한 면의 거울만 당신의 이 공간마당 범위 내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거울은 당신의 공간 마당에서 당신의 전체 공간마당과 똑같이 크다. 그러므로 그것이 안에서 뒤집혀지고 뒤집혀질 때 비춰지지 않는 곳이 없다. 오로지 우주로부터 대응하여 온 것들이라면, 당신의 공간마당 범위 내에서 그는 당신에게 전부 다 비춰 들어가게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요시공능이다.

인체과학 연구를 하며 이 공능을 측정할 때, 흔히 그것을 부정하기 쉽다. 부정하는 이유라면 이러하다. 예를 들어 말하자. 아무개는 북경 집의 친척이 뭘 하고 있는가? 그 친척의 이름과 대략적인 상황을 말하면 그는 곧 보아낸다. 그는, 이 층집은 어떤 모양이고, 이 문으로 어떻게 들어갔고 방으로 들어갔으며, 방안의 꾸밈은 어떠하다고 말하였다. 전부 다 맞게 말하였다. 사람은 뭘 하고 있는가? 사람은 지금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실을 실증하려고 전화를 들고 그의 친척을 찾았다. 당신은 지금 뭘 하고 있느냐? 라고 하자 나는 밥을 먹고 있다고 했다. 이것은 그가 본 것과 맞아들지 않잖은가? 예전에 이런 공능을 부정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그가 본 환경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우리 이 공간과 시간을 우리는 시공(時空)이라고 한다. 그와 공능이 존재하는 그 공간의 시공은 하나의 시간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양쪽의 시간개념은 같지 않다. 그는 방금 거기에서 글을 썼고 지금은 밥을 먹고 있다. 이러한 시간적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인체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만일 통상적인 이론에 입각하여, 현재 과학에 따라 이렇게 추리하고 연구한다면 1만년이 더 지나도 헛수고이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본래 속인을 초월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사상은 일종 전변을 가져와야 하며, 다시는 이런 일을 이렇게 이해하여서는 안 된다.

숙명통공능(宿命通功能)

또 일종의 공능이 천목과 직접 관계가 있는데 숙명통(宿命通)이라고 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6종의 공능이 공인을 받고 있다. 그 중에 천목, 요시 그리고 숙명통이 포괄된다. 무엇을 숙명통이라고 하는가? 바로 한 사람의 장래와 과거를 알아내며, 크게는 사회의 성쇠를 알아내며, 더욱 크게는 온 천체(天體)의 변화법칙을 보아낼 수 있는, 이것이 바로 숙명통공능이다. 왜냐하면 물질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수한 공간 중에서 어떠한 물체이든지 모두 다른 많고 많은 공간 중에 존재하는 형식이 있다. 예를 들어 말한다면, 사람의 신체가 움직이기만 하면 사람 신체 내의 세포들이 모두 따라 움직이며, 미시적인 아래에서의 모든 분자·질자·전자, 제일 작고도 제일 작은 모든 성분은 모두 따라 운동을 발생하게 된다. 그는 오히려 그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형식을 갖고 있고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신체형식도 일종 변화를 발생할 수 있다.

우린 물질은 불멸(不滅)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나의 특정된 공간 중에서 사람들이 이 일을 끝마치거나 손을 한 번 놀려 무슨 일을 하더라도 모두 물질존재이다. 어떠한 일을 하든지 모두 하나의 영상과 정보를 남길 수 있다. 다른 공간에서 그것은 불멸하는 것으로 영원히 거기에서 존재할 수 있다. 공능이 있는 사람은 예전에 존재했던 광경을 보기만 하면 곧 알게 된다. 장래에 당신이 숙명통공능이 있게 된 후, 당신은 오늘 우리가 여기서 강의하고 있는 그런 형식을 보고자 한다면, 그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며, 이미 동시에 그곳에 존재하고 있다. 한 사람이 태어날 때에 하나의 특수하고 시간개념이 없는 공간 중에 사람의 일생은 이미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데, 어떤 것은 일생뿐만이 아니다.

아마 어떤 사람은, 그럼 우리들의 개인분투, 자아개조가 필요 없는 것인가?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실 개인분투는 인생의 작은 것을 개변할 수 있으며 일부 작은 것은 개인분투를 통하여 일부 변화를 발생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당신이 노력으로 개변하였기 때문에 아마 업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업을 빚어내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으며 좋은 일을 하고 나쁜 일을 하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억지로 이렇게 할 경우에 그는 곧 다른 사람의 이익을 점유하게 되어 그는 나쁜 짓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수련에서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라고 거듭 말하는 것이 바로 이 이치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노력을 거친다면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래 당신 생명 중에 이것이 없다. 그러나 당신은 사회에서 본래 다른 사람에게 속하는 것을 얻었기 때문에, 당신은 남에게 빚을 진 것으로 된다.

큰 일은 그가 움직이려고 하여도 속인으로서는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이 사람이 나쁜 짓을 기껏 하고 악한 짓이란 악한 짓을 다 하게 되면, 그는 가히 그의 인생을 개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직면한 것은 철저한 궤멸이다. 우리가 고층차에서 볼 때, 사람은 죽었지만 元神(원신)은 불멸이다. 어찌하여 元神(원신)은 불멸하는가? 사실 우리들이 보건대 사람이 죽은 후에 영안실에 놓인 그 사람, 그는 다만 우리 이 공간 중의 인체세포에 불과할 따름이다. 내장이나 신체 속의 각개 세포 조직, 온 하나의 인체, 이 공간 중의 세포가 탈락된 것이지, 다른 공간의 분자·원자·질자 등 성분이 더욱 작은 물질 미립자의 신체는 전혀 죽지 않았다. 그것은 다른 공간 속에서, 미시적 아래에서의 공간 속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악한 짓이란 악한 짓을 다한 사람이 직면한 것은 바로 전체 세포의 전부 해체이라, 불교에서는 형신전멸(形神全滅)이라고 한다.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일생을 고치게 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이것은 유일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바로 이 사람은 이때로부터 수련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수련의 길을 걷게 되면 그의 인생을 개변할 수 있는가? 이것을 누가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인가? 왜냐하면 이 사람이 수련의 길을 걷겠다는 생각을 하여, 이 의념(意念)이 움직이면 마치 금과도 같이 빛을 뿌려 시방세계(十方世界)를 진동하기 때문이다. 불가가 우주에 대한 개념은 시방세계 학설이다. 고급생명이 볼 때 사람의 생명은 인간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생명은 우주 공간에서 생긴 것으로서, 우주와 동일한 성질이고 선량한 것이며 眞ㆍ善ㆍ忍 이런 물질로 구성된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도 군체적인 관계를 갖고 있어, 그가 군체 속에서 사회관계를 발생할 때 일부는 좋지 않게 변하였기 때문에 아래로 떨어졌다. 이 층차 중에서 그는 또 있을 수 없게 되었으며 그는 더욱 나쁘게 변하여 그는 또 한 층차 떨어지게 되었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져, 마지막에는 속인의 이 층차에까지 떨어져 왔다.

이 층차 중에서 이 사람은 마땅히 훼멸되고 소멸되어야만 하였다. 그러나 그런 대각자들은 대자비심이 우러나와 특별히 이러한 공간을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우리 인류사회, 이 공간 같은 것이다. 이 공간에서 그에게 사람의 육신을 하나 더 주었고 우리 이 물질공간에만 국한되어 물체를 볼 수 있는 한 쌍의 눈을 더 주었다. 즉 미혹 속에 떨어져서 그로 하여금 우주의 진상을 보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기타 공간에서는 모두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미혹 중에서, 이 상태에서 그에게 이런 하나의 기회를 남겨주었다. 미혹 속에 있기 때문에 가장 고달프며 이 신체가 있기에 그로 하여금 고생을 겪게 한다. 사람이 이 공간에서 되돌아 올 수 있다면, 도가의 연공에서는 반본귀진을 말하는데, 그에게 수련하려는 마음이 있기만 하면 바로 불성(佛性)이 나온 것으로 이 하나의 마음을 가장 진귀하게 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도와 줄 수 있다. 사람이 이처럼 고생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아직 방향을 잃지 않고 또 되돌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도와줄 수 있으며 무조건적으로 도와주며 무엇이든 모두 그를 도와줄 수 있다. 왜 수련하는 사람을 위하여 우리는 이런 일을 할 수 있지만 속인에게는 할 수 없는가? 바로 이 이치이다.

그럼 일개 속인으로서 병을 고치고자 한다면 당신에게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다. 속인은 여전히 속인인바, 속인은 마땅히 속인사회의 상태이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부처님은 중생을 제도하지 않는가, 불가는 중생을 제도함을 주장하지 않는가, 라고 말한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줄 것은, 당신이 불교 중의 모든 경전을 다 뒤집어 보아도 속인의 병을 제거해 줌이 바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라는 말이 없다. 이 몇 해에 그런 가짜 기공사들이 이 일을 화란(禍亂)시켰다. 진정한 기공사와 길을 닦은 그 기공사들은 여태껏 당신더러 남의 병을 고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자신이 단련하여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라고 가르칠 따름이다. 당신은 속인으로서 당신이 이틀 간 배우고 어떻게 병을 고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집착심을 키워주는 것이 아닌가? 명리를 추구하고 초상(超常)적인 것을 추구하여 속인 속에서 과시하려고 한다! 그것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추구할수록 더욱 없는데, 당신이 이렇게 함을 허용하지 않으며 또 당신이 이처럼 속인의 사회상태를 함부로 파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 우주에는 바로 이런 하나의 이치가 있다. 당신이 반본귀진하려고 할 때, 남들은 당신을 도와줄 수 있다. 그는 사람의 생명은 마땅히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지, 속인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인정한다. 인류로 하여금 아무 병도 없이 편안히 지내게 한다면, 당신더러 신선이 되라고 하여도 당신은 가지 않을 것이다. 병도 없고 또 고생도 없으며 무엇을 갖고자 한다면 무엇이 있다. 이것은 얼마나 좋은가. 정말로 신선세계이다. 그러나 당신은 좋지 못하게 변하여 이 지경에 떨어진 것이므로 당신은 편안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미혹 속에서 쉽게 나쁜 짓을 하게 되는데, 불교에서는 업력륜보(業力輪報)라고 한다.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그 자신이 종종 무슨 시달림(磨難)이 있거나 좋지 않은 일이 있을 경우, 모두 업력륜보 중에서 그의 업을 갚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또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없다고 말하였다. 부처님 한 분이 손을 한 번만 휘저으면 전 인류의 병이 모두 없어진다. 이것은 보증하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부처님들이 왜 이 일을 하지 않고 있는가? 왜냐하면 그가 예전에 좋지 않은 일을 하여 빚을 졌기 때문에 그는 비로소 이 죄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그를 잘 치료해 주었다면 우주의 이치를 파괴하는 것과 같으며, 이 사람은 나쁜 짓을 해도 되고 다른 사람에게 진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같기 때문에, 이것은 허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누구도 속인사회의 상태를 수호하고 있으며 누구도 그것을 파괴하지 않는다. 당신이 유일하게 진짜로 병 없이 편안하고도 편안함을 찾을 수 있고 진짜로 해탈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수련뿐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정법(正法)을 수련하게 하는 것만이 진정하게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많은 기공사들은 어찌하여 병을 치료할 수 있는가? 그는 왜 병을 치료함을 이야기하는가? 어떤 사람은 아마 이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 대다수의 이런 것들은 모두 올바른 길이 아니다. 진정한 기공사가 자비심이 우러나오고 불쌍히 여기는데서, 수련과정 중에서 중생이 모두 고생스러운 것을 보고 그가 다른 사람을 돕는 이것은 허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치료를 잘 할 수 없고 그는 다만 이 병을 당신에게 잠시나마 억제시켜 주거나 또는 당신에게 추이하여, 지금 얻지 않으면 장래에 얻게 하여 병을 뒤로 밀어 놓았거나 또는 당신에게 전화시켜 주어 당신 육친들 몸에 전화시킨다. 그러나 정말로 철저하게 당신의 이 업을 없애 버리는 것은 그가 할 수 없다. 속인에게 함부로 이렇게 함을 허용하지 않고 수련하는 사람에게 만 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이치이다.

불가가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 이 한 마디 말의 함의는, 당신을 속인의 가장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고층차에로 끌어올려 영원히 고생을 겪지 않게 하며 해탈시킨다는 것이다. 그가 이야기한 것은 이런 함의이다. 석가모니는 열반(涅槃)의 피안을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이것은 그가 중생을 제도하는 진정한 함의이다. 당신으로 하여금 속인 속에서 복만 누리게 하고 돈이 많아 당신 집의 침대도 모두 돈으로 깔아놓은 것으로 아무런 고통도 다 없다면, 당신더러 신선이 되라고 하여도 당신은 되지 않을 것이다. 일개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인생행로를 개변시켜 줄 수 있다. 또 오로지 수련을 하여야만 비로소 개변할 수 있는 것이다.

숙명통공능의 형식은, 사람의 앞이마 부위에 텔레비전 같은 작은 형광 막 같은 것이 하나 있다. 어떤 사람은 앞이마 이 부분에 있고 어떤 사람은 앞이마와 거리가 아주 가까우며 어떤 사람은 앞이마의 속에 있다. 어떤 사람은 눈을 감고도 볼 수 있으며 만일 그것이 아주 강하다면 어떤 사람은 눈을 뜨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공간마당 범위 내의 물체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이런 공능이 나온 후에 또 일종 공능을 운반체로 삼아 다른 공간에서 본 광경을 반영하여 오기 때문에 이 천목에서 보게 된다. 한 사람의 장래를 보아내고 한 사람의 과거를 보는데 아주 정확하게 보아낸다. 점을 아무리 명백하게 친다 하여도 작은 일과 세부적인 것은 잘 추산해 내지 못하지만, 그는 오히려 아주 똑똑히 보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연대까지도 모두 보아낼 수 있다. 변화된 세부까지도 모두 보아낼 수 있는데 그가 본 것은 바로 부동한 공간의 사람 또는 물체의 진실한 반영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法輪大法(법륜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사람마다 천목을 열어준다. 그러나 우리가 이후에 이야기하게 되는 일부 공능, 이것은 열어주지 않는다. 층차가 끊임없이 높아짐에 따라 숙명통공능은 자연히 나타나게 될 수 있는바 장래의 수련 중에서 이런 경우에 부딪힐 수 있다. 이런 공능이 나타날 때에 어찌된 일인가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법이요, 이치요 하는 것을 모두 이야기해 준다.

오행(五行) 중에 있지 않고 삼계(三界)를 벗어나다

무엇이 "오행(五行) 중에 있지 않고 삼계(三界)를 벗어나는" 것인가? 이 문제를 말하자면 아주 첨예하다. 예전에 많은 기공사들이 이 문제를 언급하였는데 기공을 믿지 않는 사람한테 말문이 딱 막혀버렸다. "당신들 연공하는 누가 오행 중에 있지 않고 당신들 누가 삼계에 있지 않는가?" 일부 사람은 그가 기공사가 아니며 그의 이 기공사는 그 자신이 봉한 것이다. 똑똑히 모르면 말하지 말 것이지, 그가 또 감히 말하므로 남들은 그의 입을 막아버린다. 수련계에 아주 큰 손실을 조성하였고 아주 큰 혼란을 조성하였다. 남들은 이 기회를 빌어서 기공을 공격한다. 오행 중에 있지 않고 삼계 밖을 벗어난다는 것은 수련계의 한 마디 말로서, 그것은 종교에서 왔고 종교에서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역사배경을 이탈할 수 없으며 당시의 환경을 이탈하여 이 문제를 이야기할 수 없다.

무엇이 오행 중에 있지 않는 것인가? 우리 중국 옛적의 물리학, 현재의 물리학도 다 중국의 오행학설은 맞다고 인정한다. 금·목·수·화·토, 이 오행이 우리 우주 중의 만사만물을 구성하였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맞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 오행을 이야기한다. 이 사람이 오행을 벗어났다는 것을 지금의 말로 한다면 우리 이 물질세계를 벗어났다는 뜻인즉, 듣기에는 참 허황하다. 여러분은 이런 하나의 문제를 생각해 보라. 기공사는 공을 갖고 있다. 나는 실험을 하였고 많고 많은 기공사들도 다 이런 측정을 하였으며 그의 에너지를 측정하였다. 이 공(功) 중의 물질성분을 우리 현존의 많은 계기(儀器)로써 모두 측정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기공사가 내보내는 성분을, 그러한 계기가 존재한다면 공의 존재를 능히 측정할 수 있다. 현재의 계기로는 적외·자외·초음성·아음성·전(電)·자(磁)·γ방사선·원자·중자를 측정해 낼 수 있다. 기공사는 모두 이런 물질을 갖고 있다. 계기가 없기에 또 일부 기공사가 내보내는 물질을 측정할 수 없다. 무릇 계기가 있는 것은 전부 측정해 낼 수 있는데 기공사가 내보내는 물질은 극히 풍부함을 발견하였다.

하나의 특수한 전자마당의 작용 하에서 기공사는 강대한 빛을 뿌릴 수 있는데 특별히 아름답다. 공력이 높을수록 내보내는 에너지마당도 더욱 크다. 속인도 있지만 매우 작고 매우 작은 일종 빛이다. 고에너지 물리학 연구에서 사람들은 에너지란 곧 중자, 원자 이런 것들이라고 여긴다. 많은 기공사들도 모두 측정하였고 비교적 성망이 있는 기공사들도 모두 측정했다. 나도 측정을 받게 되었는데 측정 시에 내보낸 γ방사선과 열중자(熱中子)는 정상적인 물질 발사량의 80배로부터 170배를 초과하였다. 이때에 측정 계기의 지침이 극한을 가리키고 지침이 끝에 도달하였기에 최후로 얼마나 큰가를 아직 모른다. 이렇게 강대한 중자는 그야말로 불가사의하다! 사람이 어찌 이처럼 강대한 중자를 내보낼 수 있는가? 이 역시 우리 기공사는 공(功)이 존재하며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즉, 이 점은 과학기술계에서 실증이 되었다.

오행을 벗어나자면 그 역시 성명쌍수(性命雙修)의 공법이어야 한다. 성명쌍수의 공법이 아니면 그의 층차 고저의 공만 자랄 뿐이다. 명(命)을 닦지(修) 않는 공법은 아직 이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오행을 벗어남을 말하지 않는다. 성명쌍수 공법은 그의 에너지를 신체의 모든 세포 중에 저장한다. 우리 일반적으로 연공하는 사람, 금방 공이 자라는 사람이 내보내는 에너지의 과립은 아주 굵고 간극이 있으며 밀도가 크지 않기 때문에 위력도 아주 작다. 층차가 더욱 높아질 때에 가서, 그 에너지의 밀도는 일반 물분자의 백 배, 천 배, 억 배를 더 초과할 수 있는데 모두 가능하다. 왜냐하면 층차가 더욱 높을수록 그의 밀도는 더욱 크며 더욱 세밀하고 위력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너지를 신체의 매 하나 세포 속에 저장하게 된다. 또 우리 이 물질공간 신체의 매 세포뿐만이 아니라, 기타 공간의 모든 신체, 분자·원자·질자·전자, 극히 미시적 아래에서의 세포 속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런 에너지로 충만된다. 오래고 오래면 사람의 신체는 완전히 이런 고에너지물질로 충만된다.

이런 고에너지 물질은 영성(靈性)이 있으며 그것은 재간이 있다. 그것이 많아지고 밀도가 크게 되어 인체의 모든 세포를 충만시킨 후, 그는 사람의 육체세포, 가장 무능한 세포를 능히 억제시킬 수 있다. 일단 억제된 후에는 신진대사가 생기지 않으며 나중에 완전히 사람의 육체세포를 대체하게 된다. 물론 내가 이야기하기는 쉬우나, 이 지경에까지 수련되어 오려면 대단히 느린 과정이다. 당신이 이 지경에까지 수련되었을 경우, 당신 신체의 모든 세포는 모두 이런 고에너지물질로 대체되었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당신의 신체는 아직도 오행으로 구성된 것인가? 아직도 우리 이 공간의 물질인가? 그것은 이미 다른 공간에서 채집한 고에너지물질로 구성된 것이다. 그 德(덕)의 성분 역시 다른 공간 중에 존재하는 물질로서, 그도 역시 우리 이 공간의 시간마당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현재 과학은, 시간이란 마당이 존재하고 있고 시간마당의 범위 내에 있지 않으면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고 인정한다. 다른 공간, 그의 시공(時空)개념과 우리 이쪽은 모두 같지 않은데 그것이 어찌 다른 공간의 물질을 제약할 수 있겠는가? 전혀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때에 당신은 오행 중에 있지 않은 것이 아닌가? 당신은 아직도 속인의 신체란 말인가? 전혀 아니다. 그러나 하나만은 있는데 속인은 도리어 보아내지 못한다. 비록 그의 신체가 이런 정도로 바꿔졌지만 아직 수련의 결속이라고 할 수 없다. 그는 아직 계속 층차를 돌파하고 위로 수련해야 하기 때문에, 그는 여전히 속인 속에서 수련해야 하며 사람들이 모두 그를 볼 수 없으면 안 된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가 수련과정에서 그의 모든 분자세포가 비록 고에너지물질로 대체되었지만 그 원자는 배열순서가 있는 것으로서 분자, 원자핵의 배열순서는 변화를 발생하지 않았다. 세포의 분자 배열순서는 곧 그런 하나의 상태인 것으로, 만지면 부드럽고 뼈의 분자 배열순서는 밀도가 커서 만지면 딴딴하며, 혈액의 분자 밀도는 아주 작은데 그것은 곧 액체이다. 속인이 표면적으로 당신의 변화를 보아내지 못하는 원인은 그것의 분자세포가 여전히 원래 그러한 일종 구조와 배열순서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것의 구조가 변화를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속의 에너지는 개변(改變)이 발생되었기 때문에 이 사람은 그 이후로부터 자연노쇠가 되지 않으며 그의 세포는 죽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는 영원히 젊을 것이다. 수련과정 중에 사람은 젊어 보일 수 있고 최후에는 곧 거기에 정해져 있게 된다.

물론 그 신체가 자동차에 부딪히게 되면 여전히 골절할지도 모르며 칼로 한 번 베면 여전히 출혈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분자 배열순서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자연적으로 죽지 않으며 자연적으로 노화되지 않고 신진대사가 없을 따름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오행을 벗어남이다. 여기에 무슨 미신이 있는가? 과학적 이치로도 다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일부 사람은 똑똑히 말하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기에 남들은 당신이 미신을 퍼뜨린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한 마디 말은 종교에서부터 왔고 우리 현대 기공이 달아준 명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이 삼계(三界)를 벗어남인가? 내가 그날 말한바와 같이 공이 자라는 관건은, 우리가 心性(심성)을 수련하여 우주의 특성에 동화시킴으로 하여 우주의 특성이 당신에 대하여 제약을 하지 않게 된다. 당신의 心性(심성)이 승화되어 올라오면 그 德(덕)의 성분은 공으로 연화(演化)된다. 끊임없이 위로 자라고 위로 상승하여 고층차에로 승화된 후, 한 가닥의 공기둥을 형성하게 된다. 이 한 가닥의 공기둥이 얼마나 높으면 당신의 공도 얼마나 높다. 이러한 한 마디 말이 있다. 대법은 끝없으므로 전적으로 당신의 그 마음에 의하여 수련해야 하며 당신이 얼마나 높이 수련할 수 있는지는 완전히 당신의 인내력과 고통을 이겨내는 능력에 달렸다. 당신 자신의 백색물질을 다 썼다면, 당신 자신의 흑색물질은 고생을 통해 그것 역시 백색물질로 전화될 수 있다. 그래도 모자란다면 친구나 친척들의 것을, 그가 수련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이 그를 대신하여 죄를 담당한다면 당신은 여전히 공이 자랄 수 있다. 이것은 극히 높은 층차로 수련된 사람을 가리킨다. 일개 속인이 수련함에 있어서 당신은 육친들을 대신하여 죄를 담당할 생각을 갖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큰 업력을 일반적인 사람으로는 수련될 수 없다. 내가 여기에서 이야기한 것은 부동한 층차의 이치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삼계란 9층천(九層天) 또는 33층천이다. 다시 말해서 천상·지상·지하로 삼계 내의 중생을 구성한다. 그는 33층천 내의 일체 생물은 모두 육도윤회(六道輪回)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육도윤회란 뜻은 바로 금생은 사람이지만 내생은 동물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살아있는 동안에 다그쳐서 지금 수련하지 않고 언제 수련하겠는가? 라고 한다. 왜냐하면 동물이 수련함을 허용하지 않고 법을 듣는 것도 허용하지 않으며 수련한다 해도 정과(正果)를 얻지 못하고 공이 높게 되면 또 천벌을 받기 때문이다. 당신은 몇백 년에 하나의 인체를 얻지 못하고 천여 년에 하나의 인체를 얻고도, 얻어 온 인체의 소중함을 모르고 있다. 만일 당신이 하나의 돌로 태어난다면 만년이 되어도 나오지 못하며 그 돌이 부서지지 않고 풍화되지 않으면 당신은 영원히 나올 수 없는 즉, 인체를 하나 얻기란 얼마나 쉽지 않는가! 만약 진정하게 능히 대법을 얻을 수 있다면 이 사람은 그야말로 너무나도 행운하다.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다는 것은 이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연공함에 있어서 층차문제를 이야기하게 된다. 이 층차는 전적으로 자신에 의해 수련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그의 삼계를 벗어나려고 한다면 당신의 공기둥이 아주 높고도 높이 수련되어야 하는데, 당신은 그의 삼계를 돌파한 것이 아닌가? 어떤 사람은 가부좌하여 元神(원신)이 몸을 떠날 때 단번에 아주 높이 올라갔다. 어떤 수련생은 나에게 쓴 심득체험에서, 스승님, 나는 몇몇 층 하늘에 올라가서 어떤 광경을 보았습니다 라고 하였다. 내가 그더러 좀 더 위로 올라가라고 하니 그는, 저는 올라갈 수 없고 감히 올라가지 못하겠으며 다시 더 올라가지 못하겠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무엇 때문인가? 그의 공기둥이 곧 그만큼 높고 그는 그의 공기둥에 앉아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과위(果位)인즉, 그 과위까지 수련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수련인으로 말하면 아직 과위의 정점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그는 아직도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며 끊임없이 승화하고 끊임없이 제고하게 된다. 당신의 공기둥이 삼계의 한계를 돌파했다면 당신은 바로 삼계를 벗어난 것이 아닌가? 우리가 한 번 측정하였는데 종교에서 말하는 삼계는 우리 9대 행성 범위 내에 불과함을 발견하였다. 어떤 사람은 10대 행성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는, 예전의 그런 기공사들의 어떤 공기둥은 은하계를 벗어났으며 무척 높아 그 삼계를 그는 일찍 지나갔다. 내가 금방 이야기한 삼계를 벗어난다는 것은 사실 바로 층차 문제이다.

구하고자 하는 문제

많은 사람들은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우리 수련장에 들어온다. 어떤 사람은 공능을 구하고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론을 들으려고 생각하며, 어떤 사람은 병을 치료하려 생각하며 또 어떤 사람은 法輪(법륜)을 얻으려고 생각하여 왔는데, 어떠한 심태(心態)도 다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저의 집에 아직 이 수련반에 참가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데 내가 학비를 바칠 테니까, 당신이 그에게 法輪(법륜)을 하나 주십시오 라고 말한다. 우리는 수많은 세대의 사람을 거치고, 하나의 극히 멀고 오랜 연대를 거치었는데, 그 숫자를 말 만 해도 모두 깜짝 놀랄 것이다. 이런 하나의 멀고 오랜 연대로 형성된 것을 당신이 몇십 원을 주고 이 法輪(법륜)을 사려고 하는가? 우리는 왜 무조건으로 여러분에게 줄 수 있는가? 바로 당신이 수련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기 때문이며, 이 마음은 얼마나 되는 돈으로도 살 수 없고 불성이 나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비로소 이렇게 하는 것이다.

당신이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당신은 이것을 얻으려고 온 것인가? 당신이 사상 중에서 무엇을 생각하든지 다른 공간에 있는 나의 법신은 무엇이든 다 알고 있다. 두개 시공(時空)의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공간에서 볼 때, 당신의 사유의 구성은 하나의 극히 느린 과정이다. 당신이 생각하기 전에 그는 다 알고 있으므로 당신은 당신의 부정확한 사상을 모두 버려야 한다. 불가는 연분(緣分)을 중히 여긴다. 여러분은 모두 연분이 변화되어 왔기 때문에 얻었다면 아마 당신이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소중히 여겨야 하며 그 어떠한 구하고자 하는 마음도 품지 말아야 한다.

과거의 종교 수련에서 불가는 공(空)을 주장하여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공문(空門)으로 들어가고 도가는 무(無)를 주장하여 아무것도 없으며 가지지도 않고 추구하지도 않는다. 연공인은 유심연공(有心煉功), 무심득공(無心得功)을 주장한다. 일종 무위(無爲)적인 상태로 수련하며 당신의 心性(심성)만 수련한다면 당신의 층차는 곧 돌파될 것이며 당신이 마땅히 있어야 할 것들이 물론 있게 된다. 당신이 내려놓지 못하면 집착심이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가 여기에서 단번에 이렇게 높은 법을 전수하므로, 물론 당신의 心性(심성)에 대한 요구도 역시 높은 것이다. 그러므로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와서 법을 배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에 대해 책임을 지기 위하여, 우리는 여러분을 올바른 길로 이끌며 이 법을 당신에게 투철히 이야기하여 준다. 어떤 사람이 천목을 추구할 때, 이 천목은 스스로 막히게 되며 당신 자신을 봉해놓을 수 있다. 아울러 내가 또 여러분에게 알려줄 것이라면, 世間法(세간법)에서 수련할 때에 사람의 몸에서 나온 일체 공능은 모두 육신 자체가 갖고 있는 일종 선천적인 본능으로서, 우리는 현재 특이공능이라고 한다. 그는 현존의 공간과 우리 이 공간 내에서만 그의 작용을 발휘할 수 있으며 속인을 제약할 수 있을 따름이다. 당신은 이런 소능소술(小能小術), 그것을 추구하여서 뭘 하겠는가? 추구하고 추구하여도 出世間法(추쓰잰 f아)에 이른 후에 다른 공간에서는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世間法(세간법) 수련을 벗어날 때에 이러한 모든 공능을 전부 던져버리게 되는데, 그것들을 하나의 극히 깊은 공간에로 눌러 넣고 나뒀다가, 당신이 장래 수련과정 중의 하나의 기록으로 삼는, 고만한 작용을 할 뿐이다.

世間法(세간법)를 벗어난 후 사람은 다시금 수련을 하여야 한다. 그러한 신체는 내가 방금 이야기한 오행을 벗어난 신체로서 그는 하나의 불체(佛體)이다. 그러한 신체를 그래 불체라고 하지 않는가? 이 불체는 다시 수련을 시작하여 공능이 다시금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것을 공능이라고 하지 않고 불법신통(佛法神通)이라고 한다. 그는 위력이 무궁무진하여 각개 공간을 제약하며 진정하게 효력을 발휘한다. 당신이 말해보라. 당신이 공능을 추구하여 무슨 쓸모가 있는가? 무릇 공능을 추구하는 사람은, 당신이 속인 중에서 쓰거나 속인 중에서 과시하려는 생각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그것을 가져서는 뭘 하겠는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장식품으로 하려 해도 또한 보기 좋은 물건으로 찾아야 할텐데! 보증하고 당신의 잠재의식에서 그것을 쓰려는 목적이 있다. 그것을 속인 중의 기능으로 삼아 구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완전히 일종 초상(超常)적인 것으로 당신더러 속인 속에서 과시하지 못하게끔 한다. 과시한다는 자체가 바로 일종 아주 강한 집착심이고 아주 좋지 않은 마음이라, 수련인이 제거해야 할 마음이다. 당신이 그것으로 돈을 벌고 그것으로 부자가 되려 하고 개인분투 중에서 속인 중의 목표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더욱 안 된다. 그것은 고층차의 것으로 속인사회를 교란하며 속인사회를 파괴하는 것으로서, 생각이 더욱 나쁘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들이 공능이 나오는 것은 흔히 양쪽에 비교적 많은데, 어린이와 연세가 많은 노인이다. 특히 연세가 많은 부녀들은 흔히 心性(심성)을 파악할 수 있고 그는 속인 중에서 아무런 집착심도 없다. 공능이 나온 후에도 그는 쉽게 파악하며 그런 과시심리가 없다. 젊은이들은 왜 나오기 어려운가? 특히 남성 청년들은 속인사회에서 한 번 분투해 보려 하고 어떤 목표에 도달하려고 한다! 일단 공능이 나오게 되면 그것을 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려고 하며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는 일종의 재간으로 삼을 것인 즉, 그것은 절대 허용할 수 없으므로 그는 곧 공능이 나올 수 없다.

수련의 일은 애들 장난이 아니며 속인 중의 기능도 아니라 매우 엄숙한 일이다. 당신이 수련하려고 생각하는가 하지 않는가, 당신이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 자신의 心性(심성)을 어떻게 높이는가에 달렸다. 만약 이 사람이 정말로 공능을 추구해 올 수 있다면 그건 참으로 잘못된다. 당신이 보라. 그가 무슨 수련이고 수련이 아니고를 불문하고 이런 일을 아예 생각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心性(심성)이 속인에 기초하였기 때문이며 공능 또한 추구하여 온 것이라, 그는 무슨 나쁜 짓이든지 다 할 수 있다. 은행에 돈이 수두룩하여 좀 운반해 오고 거리에 복권이 많아 그 일등상을 뽑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존재하지 않는가? 어떤 기공사는, 德(덕)을 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공능이 나온 후에 나쁜 짓을 하기 쉽다고 말한다. 나는 이것을 그릇된 설이라고 말한다. 전혀 그런 일이 아니다. 당신이 德(덕)을 중히 여기지 않고 心性(심성)을 수련하지 않으면 공능이 아예 나올 수 없다. 어떤 사람은 心性(심성)이 좋기 때문에 그 층차에서 일단 공능이 나오게 되었지만 후에 그가 잘 파악하지 못하여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하는데, 이런 현상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가 일단 나쁜 짓을 하게 되면 공능은 곧바로 약화되거나 또는 없어지게 된다. 이렇게 한 번 잃으면 영원히 잃어버리게 될 뿐만 아니라, 가장 심각한 것은 사람의 집착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어떤 기공사는, 그의 공을 배우면 3일 내에 병을 치료할 수 있고 5일 내에 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서 광고를 하다시피 말하고 있는데, 이것을 기공상(氣功商)이라고 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은 일개 속인으로서 당신이 기를 좀 내보냈다 하여 다른 사람의 병을 고쳐 줄 수 있단 말인가? 속인 몸에도 기가 있고 당신도 기가 있는데, 당신은 금방 연공하여 당신은 노궁혈(勞宮穴)이 열렸고 능히 기를 끌어들이고 내보낼 수 있을 따름이다. 당신이 다른 사람의 병을 치료할 경우에 다른 사람의 몸에도 기(氣)이므로 당신을 다스릴 수도 있는 것이다! 기와 기 사이에 어디 제약 작용이 있는가? 기는 전혀 병을 고칠 수 없다. 또한 당신이 그에게 병을 치료해 줄 때, 당신은 환자와 한 마당을 이루어 환자 몸의 병기(病氣)가 모두 당신 몸에 달라붙게 되어 똑같이 많게 된다. 비록 그 뿌리는 그의 몸에 있지만 만일 병기가 많으면 당신이 병에 걸리게끔 할 수 있다. 당신이 일단 당신이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여길 때, 당신은 문을 열어 놓고 남에게 병치료를 할 것이며 오는 자들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므로 당신은 집착심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남의 병을 잘 봐준다면 얼마나 기쁜가! 왜 잘 봐줄 수 있는가? 당신은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 가짜 기공사의 몸에는 모두 부체(附體)가 있는데 당신더러 믿게 하기 위하여 당신에게 고만한 정보(信息)를 준 것이다. 당신이 세 사람, 다섯 사람, 열 사람, 여덟 사람을 치료하고는 곧 없어진다. 그것은 일종 에너지의 소모로서 그 후부터 요만한 에너지도 더는 없다. 당신 자신이 공이 없는데 어디에서 온 공인가? 우리 기공사들은 몇십 년의 수련을 거치는데 과거에 도를 닦기란 아주 쉽지 않았다. 정법문(正法門)을 틀어쥐고 수련하지 못하고 편문(偏門)에서 수련하거나 소도(小道)에서 수련한다면 무척 어렵다.

당신이 보라. 어떤 대기공사들은 명성이 자자한데, 몇십 년을 수련하였다 해도 겨우 고만한 공밖에 수련해 내지 못했다. 당신은 수련하지 않고 학습반에 참가했다고 해서 당신에게 공이 올 수 있는가? 어디 그런 일이 있는가? 당신은 이때로부터 집착심이 생기게 되었다. 일단 집착심이 나와 당신이 병을 잘 고치지 못하면 당신은 조급해 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명성(名聲)을 지키기 위하여 심지어 그가 병을 볼 때 어떤 생각을 하는가? 이 병을 내가 얻고 그의 병이 낫게 하자고 한다. 그것은 자비심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 아니다. 그의 명리심(名利心)은 전혀 제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비심이 아예 나올 수 없다. 그는 자신의 명성을 잃을까봐 두려워, 이 병을 자기가 얻지 못함을 한스러워 한다. 그가 이 명성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는데 명리를 추구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렬한가! 그의 이 소원이 나타나면, 그럼 좋다, 그 병은 즉시 그의 몸으로 전화된다. 정말로 이런 작용이 일게 되어 그는 집에 가서 병에 걸리게 된다. 남은 나았지만 그는 남의 병을 봐주고 집으로 돌아가서 괴로워한다. 당신은 병을 잘 고쳤다고 느끼며 다른 사람이 당신을 기공사라고 한마디 부르게 되면 당신은 득의양양해 하며 기뻐서 어쩔 바를 모른다. 이것이 집착심이 아닌가? 병을 고치지 못하면 기가 꺾이어 머리를 수그리는데, 이것은 명리심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당신이 보아준 환자의 병기는 모두 당신 몸에 달라붙게 된다. 그 가짜 기공사는 당신에게 여차여차하게 배출시키라고 가르쳐 주지만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전혀 배출할 수 없으며 조금도 배출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 자신은 좋은 기와 나쁜 기를 분별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오래오래 되면 당신의 신체 속은 전부 시꺼멓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업력이다.

진정하게 수련할 때면 당신은 정말 어려워진다.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은 얼마나 되는 고통을 겪어서야만 비로소 그것을 백색물질로 전화시킬 수 있는가? 대단히 어렵다. 특히 근기가 더욱 좋은 사람일수록 이런 문제가 쉽게 발생한다. 어떤 사람은 줄곧 병치료, 병치료 하며 추구한다. 당신이 구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 동물이 보고 그것은 곧 올라오려 하는데, 이것이 바로 부체(附體)이다. 당신은 병을 치료하려고 하지 않는가? 당신더러 치료를 하게 한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이유없이 당신더러 치료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잃지 않는 자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 아주 위험하다. 마지막에 당신은 그를 초래하게 되는데 당신은 무슨 수련을 한단 말인가? 철저히 끝장이다.

일부 근기가 좋은 사람은 자신의 근기로 다른 사람의 업을 바꾼다. 그 사람은 병이 있으며 그의 업력은 크다. 당신이 한 중병 환자를 치료해 준다면, 당신이 병을 보고 집으로 돌아간 다음 얼마나 괴로운지를 말도 말라! 예전에 병을 보아주었던 우리 많은 사람들은 이런 감각이 있다. 환자는 좋아졌지만 당신은 집에 돌아가서 한 번 크게 앓게 된다. 시간이 길어지고 업력이 전환되어 오는 것이 많아지면 당신은 남에게 德(덕)을 주고 업력을 바꾸어 오게 되는데,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것이지 않는가. 당신이 가진 것이 병이라고만 보지 말라, 업 역시 德(덕)으로 교환해야 한다. 이 우주에는 이러한 이치가 있는 즉, 당신 자신이 가지려고 한 것은 누구도 상관계할 수 없으며 또 당신을 좋다고 말할 수도 없다. 우주에는 하나의 특정적인 것이 있다. 즉 누가 업력이 많으면 누가 바로 나쁜 사람이다. 당신은 자신의 근기로 그에게 업력을 전환하여 주는데, 업력이 많고서야 또 무슨 수련을 하겠는가? 당신의 근기는 전부 그에 의해 망가뜨렸다. 그래도 무섭지 않단 말인가? 다른 사람은 병이 나았고 그는 편안해졌지만 당신은 집에 가서 괴로워야 한다. 당신이 만약 암증 환자 둘을 낫게 하였다면 당신 자신은 그를 대신해서 가게 되는데 이래도 위험하지 않단 말인가? 바로 이러하다. 많은 사람은 그 중의 이치를 모르고 있다.

일부 가짜 기공사를, 당신은 그의 명성이 얼마나 큰가만 보지 말라. 유명(有名)하다는 명(名)은 꼭 명백하다는 명(明)이 아니다. 속인은 무엇을 아는가? 한 무리가 떠들썩거리면 곧 믿는다. 당신은 그가 지금 이렇게 하는 것만 보지 말라. 그는 사람을 해칠 뿐만 아니라 그 역시 그 자신을 해치는데 1, 2년이 지난 후에 당신은 그가 어떤 모양인가를 보라. 수련은 이렇게 파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수련은 능히 병치료를 할 수 있지만 병을 치료하는 데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 초상(超常)적인 것으로서, 우리 속인 중의 기능이 아니기 때문에 당신이 그것을 함부로 가져다 이처럼 마음대로 파괴함을 절대 허용할 수 없다. 지금 일부 가짜 기공사들은 정말로 난장판을 만들고 있다. 기공을 명리를 추구하고 돈벌이를 하는 수단으로 삼으며 그는 세력을 확대하는 사악한 단체를 꾸리고 있는데, 진정한 기공사보다 몇 배나 더 많다. 속인이 모두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한다고 해서 당신은 믿는가? 기공은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인정하는데,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진정한 이치이다.

속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각종 사회관계를 발생하게 될 때, 개인 이익을 위하여 나쁜 일을 하고 빚을 진 것은 곧 감당하고 갚아야 한다. 설령 당신이 함부로 치료하여 정말로 잘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을 허용할 수 있는가? 부처님은 없는 곳이 없다. 그렇게도 많은 부처님들이 왜 이런 일을 하지 않는가? 그가 인류로 하여금 모두 편안하게끔 하면 얼마나 좋은가! 그는 왜 하지 않는가? 사람은 자신의 업력을 자기 절로 갚아야 하는데 그 누구도 이 이치를 감히 파괴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수련과정 중에서 그가 자비심이 우러나와 이따금 사람을 도울 수는 있지만 그것 역시 그의 병을 뒤로 미루어 놓았을 따름이다. 당신이 지금 고통을 겪지 않으면 나중에 고통을 겪게 되거나 또는 당신에게 다른 것으로 전환시켜 당신이 병을 얻지 않으면 돈을 잃거나 재난을 당하게끔 하는데, 아마 이러할 것이다. 진정하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으며 단번에 그 업을 당신에게 없애 버릴 수 있는 것은 다만 수련하는 사람에게만 국한되며 속인에게는 해줄 수 없다. 내가 여기서 나의 이 한 가(家)의 이치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전체 우주의 진리를 이야기하며, 나는 수련계의 실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여기서는 당신으로 하여금 병을 치료하게끔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는 대도(大道)에로, 올바른 길로 당신을 이끌며 위로 당신을 이끌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수련반을 꾸릴 때마다 이야기하였다. 法輪大法(법륜대법)의 제자라면 병을 보는 것을 모두 허용하지 않으며, 당신이 병을 보게 되면 나의 法輪大法(법륜대법)의 사람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당신을 바른 길로 이끌며 世間法(세간법) 수련과정 중에서 줄곧 당신에게 신체를 정화(煖化)하여 주고, 신체를 정화하여 주고, 신체를 정화하여 주어, 줄곧 고에너지물질로 완전히 전화하기까지 이끌기 때문이다. 당신이 또 자신의 몸에 그런 검은 것들을 끌어넣게 되면 당신은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그것은 업력이다! 전혀 수련할 수 없다. 당신에게 많이 주면 당신은 감당해 내지 못하고 고생을 너무 크게 겪게 되면 당신은 또 수련하지 못할 것인데, 바로 이 이치이다. 내가 이 대법을 전수하였지만 당신은 아직도 내가 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를 수 있다. 이 대법을 이미 내놓은 것만큼 그를 보호할 방법이 있다. 당신이 만약 남의 병을 봐준다면, 당신의 몸에 넣어 준 일체 수련의 것들을 나의 법신이 전부 거두어들인다. 당신이 명리를 위하여 이처럼 진귀한 것을 함부로 훼손시키게 할 수 없다. 법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으면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의 사람이 아니며, 당신의 신체도 속인의 위치에로 되돌려 놓고 좋지 않은 것들을 당신에게 되돌려 준다. 왜냐하면 당신은 속인이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어제부터 강의를 들은 후, 우리 많은 사람들은 온몸이 거뿐한 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극소수 병이 심한 사람은 앞서게 되었는데 어제부터 괴롭기 시작했다. 어제 내가 여러분의 신체에서 좋지 않은 것을 떼어버린 다음, 우리 대다수 사람들은 몸이 거뿐하고 신체가 아주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이 우주 중에는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는 이치가 있기 때문에, 당신에게서 전부 다 제거해 버릴 수는 없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감당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당신의 병의 근본원인, 신체가 좋지 않은 근본원인을 우리가 제거해버렸다. 그러나 당신은 아직도 하나의 병적 마당이 있다. 천목 층차가 아주 낮게 열렸을 때, 신체에 한 덩이 한 덩이의 검은 기와 혼탁한 병기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역시 농축되고 농도가 아주 큰 하나의 검은 기의 덩어리로서, 그것이 일단 흩어지게 되면 당신의 온 몸에 가득 차기 마련이다.

오늘부터 시작하여 어떤 사람은 온 몸이 추워지고 마치 심한 감기에 걸린 것과 같아 뼈까지 다 아파질 수 있다. 대다수 사람은 국부적으로 불편하고 다리가 아프거나 머리가 어지러워짐을 느낄 수 있다. 당신이 예전에 병이 있던 곳은 기공을 연마(練)하여 나았고 또 어느 기공사가 봐주어 나았다고 느껴졌지만 다시 되살아나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당신에게 잘 고쳐주지 못하였고 다만 당신에게 병을 뒤로 미뤄 놓았기 때문에, 아직도 그 위치에 있으며 당신더러 지금 재발하지 않으면 장래에 재발하게 한다. 우리는 이것들을 모두 뒤집어 내어 당신에게서 모두 쳐 내보내며 뿌리로부터 전부 없애 버린다. 이렇게 되면 당신은 병이 또 발작했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이것은 근본적으로 업을 제거하기 때문에 당신은 반응이 있을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은 국부적인 반응이 있어 이렇게 괴롭고 저렇게 괴로우며 각종 괴로움이 모두 나오게 되는데, 다 정상적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어떻게 괴롭든지 와서 강의를 듣는 것을 꼭 견지해야 한다. 오로지 당신이 이 강당에 들어서기만 하면 당신은 아무런 증상(症狀)도 없게 되며 그 어떤 위험도 나타날 수 없을 것이다. 이 한 점을 여러분과 말하는데, 당신이 '병'으로 인해 얼마나 고통스럽다고 느낄지라도 당신이 다 견지하여 오기를 희망하는데, 법을 얻기란 어렵다. 당신이 괴로울 때일수록, 사물은 극점에 달하면 필연코 대립 면으로 나간다는 것을 설명하는 즉, 당신의 온 몸을 정화(煖化)하여야 하며 반드시 전부 정화하여야 한다. 병근(病根)은 이미 뽑아 버렸고 요만큼 남은 검은 기가 스스로 나가게끔 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요만한 난(難)을 겪게 하며 요만한 고통을 받게 하므로, 당신이 조금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속인사회에서 명, 리를 위하여, 사람과 사람사이의 쟁탈에서 당신은 잠도 잘 자지 못하고 잘 먹지 못하면서 당신은 신체를 이미 무척 말이 아닐 정도로 만들었다. 다른 공간에서 당신의 신체를 보게 되면 그 뼈마저도 군데군데 시꺼멓다. 바로 이러한 신체를 단번에 당신에게 정화하여 주는데 조그마한 반응이 없어도 안 되므로 당신은 반응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설사하며 토하기도 한다. 예전에 많은 지방의 수련생들은 나에게 써 온 심득체험 중에서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스승님, 나는 수련반에서 강의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줄곧 화장실만 찾게 되었는데 집에 도착할 때까지 찾았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내장을 모두 정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개별적인 사람은 또 잠을 자는데, 내가 강의를 끝내면 그도 잠을 깬다. 무엇 때문인가? 그의 머리 속에 병이 있으므로 그에게 조절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머리를 조절하려면 그는 전혀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에 꼭 그로 하여금 마취 상태에 들어가게 한 것인즉, 그는 모른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청각부분이 문제가 없기 때문에 그는 잠을 달콤히 자면서도 도리어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다 들었다. 사람은 이때로부터 정기가 있게 되어 이틀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다. 모두 부동한 상태로서 모두 조절할 것인즉, 당신에게 온 몸을 전부 정화시켜 준다.

진정하게 法輪大法(법륜대법)을 연마하는 사람으로서 당신이 능히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경우, 지금부터 시작하여 모두 반응이 있다. 내려놓지 못하는 그러한 사람들은 그가 입으로는 내려놓았다고 하지만 사실 그는 전혀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에 해주기가 대단히 어렵다. 또 일부분 사람들은 후에 와서야 내가 강의한 내용을 알아듣고, 그는 마음을 내려놓아 몸도 정화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몸이 거뿐해졌는데 그는 이제야 병을 제거하기 시작하며 이제부터 괴롭기 시작한다. 매 번 수련반에 모두 이렇게 낙후하고 오성이 좀 차한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당신은 어떠한 경우에 부딪히더라도 다 정상적인 것이다. 기타 곳에서 수련반을 열 적에도 모두 이러한 상황이 나타났는데, 어떤 사람은 몹시 괴로워 걸상에 엎드린 채 가지 않고 내가 강단에서 내려와 그를 치료해 주기를 기다린다. 나는 손을 대어 치료하지 않을 것이다. 이 하나의 고비도 넘기지 못한다면, 앞으로 당신 자신이 수련할 적에 당신은 허다한 큰 난(難)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것마저도 넘기지 못한다면 당신은 또 무슨 수련을 할 것인가? 당신은 요만한 것도 넘기지 못하는가? 다 넘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더는 나를 찾아 병을 치료해 달라고 하지 말라. 나 역시 병을 치료하지 않는다. 당신이 '병'이란 이 글자를 제기만 하여도 나는 듣기가 싫다.

사람을 제도하기란 매우 어렵다. 매 수련반마다 언제나 5%, 10%의 사람들이 따라가지 못한다. 사람마다 모두 도를 얻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연마를 견지하여 나가는 사람일지라도, 또 당신이 수련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아야 하며, 또한 당신이 결심을 내리고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아야 한다. 사람마다 부처님이 되기는 불가능하다. 진정하게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은 책을 보아도 마찬가지로 같은 상태가 나타나게 되며, 마찬가지로 마땅히 얻어야 할 일체를 얻게 된다.


제 3 강 의


나는 수련생을 모두 제자로 여긴다

여러분은 알고 있는가? 나는 한가지 어떤 일을 했는가? 나는 자습하여 진정하게 수련할 수 있는 사람들까지 포함하여 모든 수련생을 다 나의 제자로 삼고 이끈다. 고층차에로 공을 전수하기에 당신을 이렇게 이끌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책임지지 않는 것이며 함부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당신에게 이처럼 많은 것을 주고 당신으로 하여금 속인이 알지 말아야 할 이처럼 많은 이치를 알게끔 하였으며, 내가 이 대법을 당신에게 전해 주었는가 하면 또 당신에게 많고 많은 것들을 준다. 당신의 신체를 정화(煖化)시켜 줌과 아울러 또 기타의 일부 문제들이 관련되기 때문에 당신을 제자로 삼고 이끌지 않는다면 전혀 안 되는 것이다. 함부로 일개 속인에게 이렇게 많은 천기(天機)를 누설함은 허용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가 있다. 지금 시대도 변하였기에 우리는 절을 하고 읍(作揖)하는 그런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런 형식은 아무 쓸모가 없으며 하게 되면 마치 종교와도 같아, 우리는 이것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이 절을 하고 스승을 모셨다 해도, 당신이 문만 나서면 역시 제멋대로인지라, 속인 중에서 당신이 뭘 하고 싶으면 무엇을 하고, 당신의 명예 이익을 위하여 당신은 다투고 싸울 것인즉, 그것이 무슨 쓸모가 있는가? 당신은 아마 나의 깃발을 쳐들고 대법(大法)의 명예만 훼손시킬 것이다!

진정하게 수련하는 일은 전적으로 당신의 이 마음에 의하여 수련해야 하기 때문에, 오로지 당신이 능히 수련할 수 있고 오로지 당신이 능히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확고하게 수련해 나간다면 우리는 당신을 제자로 삼아 이끌 것인즉, 이렇게 대하지 않으면 다 안 된다. 그러나 일부 사람은 진정하게 자신을 수련인으로 간주하고 수련해 나가지 않을 수도 있으며 일부 사람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진정하게 수련해 나갈 것이다. 오로지 당신이 수련해 나간다면 우리는 당신을 제자로 삼아 이끈다.

날마다 이 몇 장의 동작만 연마한다고 法輪大法(법륜대법)의 제자로 인정할 수 있는가?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진정한 수련은 우리들이 말하는 그 心性(심성)표준으로 요구해야 하기 때문에 진정하게 자신의 心性(심성)을 높여야만 그것이 비로소 진정한 수련이다. 당신이 그 동작들만 연마하고 心性(심성)이 제고되지 않아, 강대한 에너지로 일체를 가지(加持)하지 못한다면 수련이라 할 수 없으며 우리도 당신을 法輪大法(법륜대법)의 제자로 인정할 수 없다. 당신이 장기적으로 이렇게 나간다면 당신이 연공한다고 만 보지 말라.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고 당신의 心性(심성)을 높이지 않으며 속인 중에서 당신은 역시 제멋대로인지라, 당신은 기타 번거로운 일들에 봉착할 수도 있다. 자칫하면 당신은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을 연마하여 이런 편차(偏差)가 생겼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모두 가능하다. 그러므로 당신은 진정하게 우리 心性(심성)표준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똑똑히 이야기하였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더는 나를 찾아 무슨 스승을 모시는 이런 형식적인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오로지 당신이 진정하게 수련한다면 나는 곧 이렇게 당신을 대할 것이다. 나의 법신(法身)은 많기로 이미 계산할 방법이 없다. 이만한 수련생들은 물론, 얼마나 더 많더라도 나는 다 책임질 수 있다.

불가공(佛家功)과 불교

불가공은 불교가 아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 한 점을 똑똑히 이야기한다. 사실은 도가공도 도교가 아니다. 우리 일부 사람은 늘 이러한 문제를 똑똑히 가리지 못하고 있다. 일부 사람은 절의 스님이고 또 어떤 사람은 거사(居士)이다. 그는 그가 불교에 대한 일을 좀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는 우리 수련생들 속에서 불교에 대한 일을 크게 선전하고 있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은 이렇게 하지 말라. 이것은 부동한 법문 중의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종교의 형식이 있고, 우리 여기에서는 우리 이 한 법문 수련의 일부분을 전수하고 있다. 法輪大法(법륜대법)의 전업수련 제자를 제외하고 종교적 형식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에, 말법시기(末法時期)의 불교가 아니다.

불교에서의 법은 다만 불법(佛法)중의 작디작은 일부분일 따름이다. 또 허다한 높고 깊은 대법이 있으며 각개 층차에는 부동한 법이 있다. 석가모니는 수련을 함에 있어서 8만 4천 법문이 있다고 말하였다. 불교 중에는 겨우 몇 개 법문이 있다. 그는 천태종·화엄종·선종·정토·밀종(密宗) 등등 이 몇 개 법문이 있는데 나머지 숫자마저도 못 채우고 있지 않는가! 그러므로 그는 전체 불법을 개괄할 수 없으며 그는 다만 불법의 작디작은 일부분일 따름이다.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 역시 8만4천 법문 중의 한 법문으로서, 원시 불교 및 말법시기의 불교와 관계가 없으며 현재의 종교와도 관계가 없다.

불교는 2,500년 전 고인도의 석가모니로부터 창립한 것이다. 당시 석가모니가 개공개오(開功開悟)한 후, 그는 기억 속에서 그 자신이 예전에 수련하였던 것들을 생각하게 되어 그것을 내놓아 사람을 제도하였다. 그의 한 법문은 몇 만권의 경서가 나왔든지 막론하고 실제로는 곧 세 글자이다. 그의 그 한 법문의 특징을 '계(戒)·정(定)·혜(慧)'라고 부른다. 계란, 바로 속인 중의 일체 욕망을 끊어버리고 당신으로 하여금 이익에 대한 추구를 강제적으로 잃게끔 하며 세속간(世俗間)의 일체 것들을 단절하게 하는 등등이다. 이래서 그의 마음은 텅 비우게 되며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되어 정(定)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서로 보완하고 완성하는 것이다. 정(定)해진 다음 가부좌하고 실속 있는 수련을 하며 입정력(定力)에 의해 위로 수련하는 이것이 바로 그 한 법문에서 진정하게 수련하는 부분이다. 그는 역시 수법(手法)적인 것을 주장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본체를 개변하지도 않는다. 그는 다만 그의 층차 고저의 이 공(功)을 수련할 뿐이다. 그러므로 줄곧 그의 心性(심성)을 수련하고 명(命)을 닦지 않으며 공의 연화(演化)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는 定(띵) 중에서 그의 입정력(定力)을 증강하며 가부좌 중에서 고생을 겪고 그의 업을 없애 버린다. 혜(慧)란, 바로 사람이 개오(開悟)하여 대지대혜(大智大慧)한 것을 가리킨다. 우주의 진리를 보게 되며 우주 각개 공간의 진상을 보게 되어 신통이 크게 나타나게 된다. 개혜(開慧), 개오(開悟)를 개공(開功)이라고도 한다.

당시 석가모니가 이 한 법문을 창립할 때, 인도에는 8종의 종교가 동시에 유전되고 있었다. 뿌리가 아주 깊은 일종 종교가 있었는데 바라문교(婆羅門敎)라고 불렀다. 석가모니의 유생지년(有生之年)에 줄곧 기타 종교와 의식형태의 투쟁이 있었다. 왜냐하면 석가모니가 전한 것은 정법(正法)이였기 때문에 법을 전하는 전반 과정 중에서 그가 전한 불법은 더욱더 강성(强盛)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타 종교들은 더욱더 쇠약하게 되었으며, 그 뿌리가 깊은 바라문교도 멸망의 변두리에 이른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석가모니가 열반한 이후, 기타 종교들이 또다시 흥성하게 되었는데 특히 바라문교가 다시금 흥성하기 시작하였다. 불교에는 오히려 일종 어떤 상황이 나타나게 되었는가? 일부 승려는 부동한 층차에서 개공하였고 개오하였다. 그러나 열린 층차가 비교적 낮았다. 석가모니는 여래(如來)의 층차에 도달하였지만 많은 승려들은 이 층차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부동한 층차에서의 불법은 부동한 나타남이 있다. 하지만 더욱 높을수록 진리와 더욱 접근하며 더욱 낮을수록 진리와 더욱 멀어진다. 그러므로 그 승려들은 낮은 층차에서 개공개오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그 층차에서 본 우주 중의 현상(顯象), 이해된 상황과 깨달은 이치로 석가모니가 하신 말씀을 해석하였다. 다시 말해서, 어떤 승려는 석가모니가 이야기한 법에 대하여 이렇게 해석하고 저렇게 해석하였다. 또 일부 승려는 자신이 깨달은 것을 석가모니의 말로 삼아 이야기하며 석가모니 원래의 말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로 하여 불법은 면목이 전부 달라져 석가모니가 전한 법이 전혀 아니었으며, 마지막에는 불교 중의 불법이 인도에서 소실되었다. 이것은 한 차례 중대한 역사적 교훈이다. 그러므로 나중에 인도에는 도리어 불교가 없게 되었다. 소실되기 전에 불교는 여러 차례의 개량을 거쳤으며 나중에는 바라문교의 것들을 결부시켜 인도에서 일종 현재의 종교를 형성하였는데 힌두교라고 부른다. 무슨 부처님도 모시지 않고 다른 일부 것들을 모시며 석가모니도 믿지 않는다. 그것은 이러한 일종 상황이다.

불교는 발전과정 중에서 몇 차례 비교적 큰 개량이 나타났다. 하나는 석가모니가 세상에 계시지 않은 후, 얼마 되지 않아 어떤 사람은 석가모니가 이야기한 고층차의 이치로 대승불교를 창립하였다. 석가모니가 공개적으로 설법한 것은 일반 사람을 듣게 한 것이라고 여기며 자신이 해탈하고 나한과위(羅漢果位)에 도달하며 중생을 제도함을 주장하지 않는, 이것을 가리켜 소승불교라고 한다. 동남아 나라의 스님은 원시적인 석가모니 시대의 수련방법을 유지하고 있는데 우리 한인지역(漢地)에서는 그것을 소승불교라고 한다. 물론 그 자신은 승인하지 않으며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석가모니 원래의 것을 계승하였다고 인정한다. 확실히 이렇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석가모니 시대의 수련방법을 계승하였다.

개량을 거친 이런 대승불교가 우리 중국에 전해 들어온 후, 우리 중국에서 고정하게 되었는데 바로 지금 우리나라에서 유전되고 있는 이런 불교이다. 그는 실제적으로 석가모니 시대의 불교와는 이미 면목이 전혀 다르며 옷차림에서부터 줄곧 전반 깨우침의 상태, 수련 과정에 모두 변화를 발생하게 되었다. 원시불교는 오로지 석가모니만을 조상으로 모셨다. 그러나 현재의 불교는 많고 많은 부처님과 대보살 등등이 나타났으며 아울러 다불(多佛)적 신앙이다. 많은 여래 부처님에 대한 신앙이 출현되어 일종 다불(多佛)적 불교로 되었다. 예를 들어 아미타불(阿彌陀佛), 약사불(葯師佛), 대일여래(大日如來) 등등인가 하면 많은 대보살(大菩薩)도 출현되었다. 이렇게 되어 전반 불교는 당시 석가모니가 창립할 때와는 이미 완전히 달라졌다.

이 기간에 또 일종 개량과정이 발생하게 되었다. 용수보살(龍樹菩薩)로부터 일종의 비밀수련(密修)방법이 전해지게 되었는데, 인도로부터 아프가니스탄을 거치고 그런 다음 우리 신강에 들어와서 한인지역(漢地)으로 전해 들어오게 되었다. 마침 당나라 때였기에 그것을 당밀(唐密)이라고 불렀다. 우리 중국은 유가(儒家)영향을 비교적 크게 받았기 때문에 도덕관념이 일반적인 민족과는 다르다. 이 밀종(密宗)수련법에는 남녀쌍수(男女雙修)라는 것이 있는데 당시 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그러므로 당나라 회창년 간 불멸할 적에 그를 제거해 버려, 당밀은 우리 한인지역에서 소실되어 버렸다. 지금 일본에는 동밀(東密)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는데 당시 우리 중국으로부터 배워 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관정(灌頂)을 거치지 않았다. 밀종에 따르면 관정을 하지 않고 밀종의 것을 배운다면 법을 도둑질함에 속함이라 친히 전수하였다고 승인하지 않는다. 다른 한 갈래는 인도, 네팔로부터 티베트(西藏)으로 전해 들어 왔는데 장밀(藏密)이라고 하며, 지금까지 줄곧 유전되어 오고 있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상황이다. 나는 극히 간단하고도 개괄적으로 그의 발전변화 과정을 이야기하였다. 전반 불교는 발전 과정 중에서 또 달마(達摩)가 창립한 선종(禪宗), 또한 정토종, 화엄종 등등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모두 석가모니가 당시에 말한 것들에 의하여 깨우쳐낸 것이며, 이것들 역시 개량불교에 속한다. 불교에는 이 열몇 개 법문이 있으며 그것들은 모두 일종 종교형식에 들어갔기 때문에 모두 불교에 속한다.

본 세기에 생긴 종교, 어찌 본 세기뿐이겠는가. 몇 세기 전에 세계 각지에 허다한 새로운 교가 생기게 되었다. 이것들 대부분은 모두 가짜에 속한다. 대각자들이 사람을 제도함에 있어서, 모두 자신의 하나의 천국을 갖고 있다. 석가모니, 아미타불, 대일여래 등등, 이러한 여래 부처님들이 사람을 제도함에 모두 자신이 주지하고 있는 하나의 세계가 있다. 우리 이 은하계에 이러한 세계는 1백여 개나 된다.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 역시 法輪世界(f아 룬쓰제)가 있다.

일부 가짜 법문은 사람을 제도한다는데,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그는 사람을 제도할 수 없으며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법이 아니다. 물론 일부 사람들이 종교를 창립할 적에 초기 목적은 그가 정교(正敎)를 파괴하는 마(魔)가 되자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부동한 층차에서 개공개오하게 되어 조그마한 이치를 보게 되었지만 사람을 제도하는 각자(覺者)와는 차이가 너무 멀며 그는 아주 낮다. 그는 일부 이치를 발견하였는바, 속인 중의 일부 일들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역시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좋은 일을 하라고 알려주고 시작에는 기타 종교를 반대하지 않았다. 남들이 최후에 그를 신봉하게 되었고 그가 한 이야기가 일리가 있다고 여겨, 그 다음부터 점점 더 그를 믿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사람들은 그를 숭배하고 종교를 숭배하지 않게 되었다. 그 자신도 명리심이 일어나 대중으로 하여금 그를 무엇이라 봉(封)하게 하며 그 후로부터 그는 하나의 새로운 종교를 세우게 되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바, 이런 것들은 모두 사교(邪敎)에 속한다. 그가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역시 사교(邪敎)이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들이 정교(正敎)를 믿는 것을 교란하였기 때문이다. 정교(正敎)는 사람을 제도할 수 있지만 그는 오히려 하지 못한다. 오래오래 발전하여 내려간다면 뒤에서 나쁜 짓을 하게 된다. 최근에 허다한 이런 유의 것들이 우리 중국에로 유전되어 왔다. 예를 들어 이른바 관음법문(觀音法門)이 곧 그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절대 주의해야 한다. 듣는데 의하면 동남아 어떤 나라에는 2천여 종이나 있다고 하는데, 동남아와 기타 서양 나라에서는 무엇이든 다 믿는 것이 있다고 한다. 어느 한 나라에는 단도직입적으로 무당교(巫敎)가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말법시기에 나타난 마(魔)이다. 말법시기는 불교만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하나의 아주 높은 층차 아래에 많은 공간이 모두 부패함을 가리키는 것이다. 말법이란, 다만 불교의 말법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인류사회는 도덕을 유지할 심법구속(心法約束)이 없음을 말한다.

수련은 전일(專一)해야 한다.

수련은 전일(專一)해야 한다고 우리는 주장한다. 당신이 어떻게 수련하든지, 기타의 것들을 섞어서 함부로 수련할 수 없다. 어떤 거사는 불교 중의 것을 수련하면서 또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의 것을 수련한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줄 것이라면, 당신은 마지막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며 누구도 당신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불가이지만 여기에는 心性(심성)문제가 있는 동시에 또 전일해야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오로지 하나의 신체를 갖고 있는데 당신의 신체에 어느 문(門)의 공을 생기게 하겠는가? 어떻게 당신에게 연화(演化)해 주겠는가? 당신은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당신이 어느 법문(法門)에 따라 수련하면 당신은 곧 어디로 가게 된다. 당신이 정토에 따라 수련한다면 당신은 바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로 가게 되며, 당신이 약사불에 따라 수련한다면 당신은 바로 유리세계(琉璃世界)에로 가게 된다. 종교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불이법문(不二法門)이라고 한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연공도, 확실히 공(功)의 전반 연화과정에서 모두 그 자신의 수련법문에 따라 걷는 것이다. 당신이 말해보라. 당신은 어디로 가려는가? 당신이 두 배에 발을 딛고 있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연공을 절에서의 부처수련과 뒤섞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수련방법사이, 기공과 기공사이, 종교와 종교사이에도 뒤섞을 수 없다. 동일한 종교라 할지라도 그 중의 몇 개 법문 역시 서로 혼동하여 수련할 수 없으며 오로지 하나의 법문만 선정할 수 있을 뿐이다. 당신이 정토를 수련하면 그것은 정토이고, 당신이 밀종을 수련하면 그것은 밀종이며, 당신이 선종을 수련하면 그것은 선종이다. 당신이 만일 두 배에 딛고 서서 이것도 수련하고 또 저것도 수련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불교 중에서도 다 불이법문을 이야기하는데 역시 당신이 섞어서 수련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 역시 연공이고 그 역시 수련이기 때문에, 그의 공(功)의 생성과정은 모두 그 자신의 법문 중에 수련되고 연화되는 과정에 따라 간다. 다른 공간 속에도 역시 공의 연화과정이 있으며 역시 하나의 극히 번잡하며 극히 현묘(玄妙)한 과정으로서 제멋대로 기타의 것을 섞어 수련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거사는 불가공을 연마한다는 말만 들으면 우리의 수련생을 끌고 절에 가서 귀의(?依)하게끔 한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우리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수련생들은 누구도 이런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우리의 대법을 파괴하며 불교 중의 계율도 파괴하는 동시에, 당신 역시 수련생을 교란하여 당신은 사람들로 하여금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하는데, 이러면 안 된다. 수련은 엄숙한 문제로서 반드시 전일해야 한다. 우리가 속인 속에서 전수하는 이 부분은 비록 종교는 아니지만 수련하는 목표는 일치하다. 모두 개공(開功), 개오(開悟)에 도달하며 공성원만(功成圓滿), 이러한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말법시기에 이르면 절의 승려마저도 자신을 제도하기 아주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하물며 거사는 관계할 사람이 더욱 없다. 당신이 스승을 모셨다 하지만 그 이른바 스승도 수련하는 사람이라, 그도 실속 있게 수련하지 않으면 헛된 것이다. 이 하나의 마음을 수련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다 올라가지 못한다. 귀의(?依, 歸依)는 속인 중의 형식으로서 당신이 귀의하였다고 하여 곧 불가(佛家)의 사람인가? 부처님이 당신을 책임지는가? 그런 일이 없다. 당신이 날마다 이마가 터지도록 절을 하고 향을 한 줌 한 줌 피운다 하여도 쓸모가 없다. 당신은 진정하게 당신의 그 마음을 실속 있게 수련해야만 된다. 말법시기에 이르러 우주는 이미 아주 큰 변화가 발생하였고 심지어 종교 신앙을 하는 곳도 잘못되었다. 공능이 있는 사람(스님을 포함)도 이러한 상황을 발견하였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오로지 나 한 사람만이 공개적으로 정법(正法)을 전하고 있다. 나는 전인(前人)들이 여태껏 하지 못했던 한가지 일을 하며, 아울러 말법시기에 이렇게 큰 하나의 문을 열어놓았다. 사실은 천년에 만나기 어려우며, 만년에도 만나기 어렵다. 하지만 능히 제도될 수 있는가 없는가, 말하자면 능히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여전히 자신에 의거해야 한다. 내가 이야기한 것은 하나의 방대한 우주의 이치이다.

나도 당신더러 반드시 나의 이 法輪大法(법륜대법)을 배워야만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의 이치이다. 당신이 수련하려면 반드시 전일(專一)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전혀 수련할 수 없다. 물론 당신이 수련하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도 당신을 상관하지 않는다. 법은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이 듣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전일해야 하며 기타 공법의 의념(意念)마저도 섞어 넣을 수 없다. 나는 여기에서 의념활동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은어떠한 의념활동도 없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 속에 무슨 의념적인 것을 넣지 말아야 한다. 꼭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의념활동이 없는 즉, 불가는 공(空)을 주장하고 도가는 무(無)를 주장한다.

나는 어느 한 번 자신의 사상을 층차가 극히 높은 4, 5명의 대각자(大覺者), 대도(大道)와 연결시켰다. 그 높음을 말하자면 속인이 볼 때는 그야말로 너무 높아 놀랄 정도였다. 그들은 내가 마음속으로 무엇을 생각하는가를 알고자 하였다. 나는 수련을 이렇게 오랫동안 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나의 사상을 알고자 함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며 다른 사람의 공능은 전혀 들어올 수 없다. 누구도 나를 알아낼 수 없으며 그도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알아낼 수 없다. 그들이 나의 사상활동을 이해(了解)하였으면 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나의 동의를 거쳐 어느 한 단계의 나의 사상을 그들과 연결시켰다. 연결한 후 나는 좀 견뎌내기 어려웠다. 나의 층차가 얼마나 높든지, 또 나의 층차가 얼마나 낮든 지간에, 나는 필경 속인 중에서 나는 아직도 일종 유위(有爲)적인 일, 사람을 제도하는 일들을 하고 있으며 마음은 사람을 제도함에 가 있다. 그러나 그들의 그 마음은 어느 정도로 조용한가? 조용하기로 일종 두려울 정도이다. 당신 일개 사람이 이런 정도로 조용하다면 괜찮지만 4, 5명이 거기에 앉아 모두 그런 정도로 조용하고, 마치 하나의 고인 물과도 같이 아무 것도 없어, 내가 그들을 느껴 보려고 하여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 며칠 동안 나는 정말 마음속으로부터 매우 괴로웠는데 일종 그러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 일반 사람은 상상하지도 못하며 감각할 수도 없는 완전히 무위(無爲)적이며 텅 빈 것이었다.

아주 높은 층차에서의 수련은 의념활동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속인에서 기초를 닦는 이 층차에서 그 한 세트의 기초를 이미 닦았기 때문이다. 고층차의 수련에 이르면, 특히 우리의 공법은 자동적이며 모두 완전히 자동적인 수련이다. 당신이 오로지 당신의 心性(심성)을 높이기만 하면 당신의 공은 자라며 당신은 심지어 어떠한 수법을 쓸 필요가 없다. 우리의 동작은 자동적인 기제(機製)를 강화하는 것이다. 왜 선정(禪定) 중에서 그는 늘 좌선하고 움직이지 않는가? 완전히 무위(無爲)적인 것이다. 당신이 보기에, 도가에서는 이러한 수법, 저러한 수법, 무슨 의념활동, 의념의 인도를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줄 것은, 도가가 그 기의 층차를 조금 벗어난 후에는 아무 것도 없으며 이런 의념, 저런 의념을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부 기타 기공을 연마했던 사람은 늘 무슨 호흡이요, 생각이요 하는 등등을 내려놓지 못한다. 내가 그에게 대학의 것을 가르치는데도 그는 늘 나에게 초등학생(小學生)의 일들을 묻게 되는데, 어떻게 인도해야 하는가, 어떻게 의념활동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들이다. 그는 이미 이렇게 관습이 되었으며 그는 기공이란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는데, 사실 이런 것이 아니다.

공능(功能)과 공력(功力)

우리 많은 사람은 기공 중의 명사에 대하여 인식이 똑똑하지 않으며 또 일부 사람들은 늘 뒤섞고 있다. 그는 공능을 공력이라고 말하고 공력을 공능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자신의 心性(심성)에 의하여 수련해 낸 이러한 공은, 우주의 특성에 동화되어 자신의 德(덕)가 공으로 연화(演化)한 것이다. 이것이 곧 한 사람 층차의 고저, 공력의 대소, 그의 과위(果位)의 고저를 결정하는 문제이며 이것이 바로 가장 관건적인 공이다. 수련 과정 중에서 사람은 일종 어떤 상태가 나타나게 되는가? 곧 일부 특이공능이 나타날 수 있는데 우리는 간칭하여 공능이라고 부른다. 방금 내가 말한 층차를 높이는 공을 공력이라고 부른다. 층차가 높을수록 공력이 더욱 크며 공능이 더욱 강하다.

공능은 다만 수련과정의 부산물일 뿐, 그는 층차를 대표하지 않으며 한 사람의 층차 고저, 공력 대소를 대표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아마 많이 표출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좀 적게 표출될 것이다. 아울러 공능도 일종 주로 수련하는 것으로 추구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은 반드시 그가 진정하게 수련하려는 것을 확정하는 동시에 비로소 공능이 나올 수 있는 것인데, 주요한 목적으로 삼아 수련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이런 것을 연마해서는 뭘 하는가? 속인 중에서 써먹으려는가? 그건 당신으로 하여금 속인 중에서 절대 함부로 쓰게 할 수 없다. 때문에 당신이 추구할수록 더욱 없게 된다. 당신은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추구하는 자체가 집착심이라, 수련에서 제거해야 할 것이 바로 집착심이다.

많은 사람은 아주 높고 깊은 경지에로 수련되였어도 그는 공능이 없다. 사부가 그에게 잠가 놓음은 그가 잘 파악하지 못하여 나쁜 짓을 할까봐 두려워서이다. 그러므로 줄곧 그가 그의 신통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러한 사람이 무척 많다. 공능은 사람의 의식지배를 받는다. 사람이 잠을 잘 때에 아마 자신을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어 꿈을 꾸고 나면 이튿날 아침 하늘땅이 뒤집혀질지도 모르는데, 그것은 허용할 수 없다. 속인 중에서 수련하기 때문에 무릇 큰 공능들은 일반적으로 사용함을 허용하지 않으며 대다수는 잠가놓고 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수련을 괜찮게 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잘 파악할 수만 있다면, 일부분 공능이 있음을 허용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당신이 그더러 공능을 마음대로 과시하라고 하여도 그는 절대 내놓지 않을 것이며 그는 자신을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반수(返修)와 차공(借功)

어떤 사람은 공을 연마한 적이 없거나 또는 다만 어느 기공 학습반에서 그런 솜씨를 좀 배웠다. 그러나 그것은 다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데 속하는 것이며 또 무슨 수련도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사람들은 진정한 전수를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하루 밤사이에 공이 오게 되었다. 우리는 이런 공이 어떻게 오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하려는데, 몇 가지 형식이 있다.

일종은 반수(返修)에 속한다. 무엇이 반수인가? 바로 우리 일부 사람은 연세가 비교적 많아서 수련을 하려고 하나 처음부터 시작하여 수련하자면 이미 늦었다. 기공 고조 중에서 그도 수련하려고 생각하였다. 그는 기공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동시에 자신도 제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러한 일종 소원을 품고 제고하려 하며 수련하고자 생각한다. 그러나 몇 년 전 기공 고조 중에서 그런 기공사들은 모두 기공을 보급할 뿐, 진정하게 고층차의 것을 전수하는 사람이 없었다. 바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진정하게 공개적으로 고층차에서 공을 전수하는 것 역시 오로지 나 혼자 할 뿐이며 두 번째 사람이 없다. 무릇 반수하는 사람은, 모두 50세 이상이며 연령이 비교적 많은 사람으로서 근기가 몹시 좋으며 몸에 갖고 있는 것이 아주 좋아 거의 남이 가르치려는 제자, 물려 줄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이 나이가 많아 수련하려고 생각하는데 어찌 말처럼 쉽겠는가! 어디에 가서 사부님을 찾겠는가? 그러나 그는 수련하려고 생각한다. 이 마음이 이렇게 생각하면 마치 금과도 같이 빛나 시방세계(十方世界)를 진동한다. 사람들이 불성(佛性), 불성이라고 말하는데 곧 이 불성이 나온 것을 가리킨다.

고층차에서 볼 때, 사람의 생명은 인간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은 우주공간에서 생겼으며 우주의 眞ㆍ善ㆍ忍특성과 동화된 것이기에 성(性)은 본래 착한 것이고 선량한 것이다. 그러나 생명체가 많아진 후에 그도 일종 사회관계가 생기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중 일부분 사람들이 이기적이거나 좋지 못하게 변하였기 때문에 아주 높은 층차에 있을 수가 없어 곧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고 하나의 층차 중에 떨어지게 되었다. 이 한 층차 중에서 그는 또 좋지 못하게 변하여 또다시 아래로 떨어졌고 아래로 떨어져, 마지막에는 속인 이 한 층차에까지 떨어져 오게 되었다. 이 층차에 떨어지면 사람을 철저히 훼멸시켜야 하였지만 그런 대각자(大覺者)들은 자비심이 우러나와, 가장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사람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로 결정하여 이런 하나의 공간을 창조하였다.

기타 공간의 사람은 모두 이러한 신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뜰 수도 있고 그는 또 크게 변할 수도 있고 축소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공간에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하나의 신체, 우리 이 육신을 갖게 하였다. 이 신체가 있게 된 후, 추워도 안되고 더워도 안되며 지쳐도 안되고 굶어도 안 되는데, 어쨌든 고생이다. 병이 있게 되면 당신은 괴롭게 되고 생로병사(生老病死)하기 마련이다. 바로 당신으로 하여금 이런 고생 속에서 업을 갚게 하며 당신이 되돌아갈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며 당신에게 이런 기회를 다시 한 번 준 셈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미혹 중에 떨어졌다고 한다. 여기로 떨어진 후에 당신에게 이 한 쌍의 눈을 창조해 주어 당신으로 하여금 기타 공간을 보지 못하게 하고 물질의 진상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 당신이 능히 되돌아 갈 수 있다면 가장 고통스러운 것도 가장 진귀한 것이 된다. 미혹 중에서 깨달음에 의해 되돌아 수련하려면 고생이 매우 많은데, 되돌아가는 것도 빠르다. 당신이 만일 더 나빠진다면 생명은 곧 훼멸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이 볼 때 사람의 생명은 인간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당신으로 하여금 반본귀진하여 되돌아가는 것이다. 속인은 이 한 점을 깨닫지 못한다. 속인은, 속인사회 중에서는 바로 속인이기 때문에 어떻게 발전을 하며 어떻게 잘 살 것인가 라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 그가 더욱 잘 지낼수록 그는 더욱 이기적이며 더욱 점유하려고 생각한다. 그가 우주의 특성과 어긋날수록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고층차에서는 바로 이렇게 보고 있다. 당신은 앞으로 나아갔다고 느끼지만 실제적으로는 뒤로 후퇴한 것이다. 인류는 과학을 발전시켜 진보한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우주 법칙에 따라감에 불과할 따름이다. 여덟 신선 중의 장과로(張果老)는 당나귀를 돌아앉아 탔다. 그가 왜 당나귀를 돌아앉아 탔겠는가를 아는 사람이 아주 적다. 그는 앞으로 나아감이 곧바로 후퇴라는 것을 발견하였으므로 돌아앉아 탄 것이다. 그러므로 일부 사람이 수련하고자 생각할 경우, 각자(覺者)들은 이 마음을 극히 진귀한 것으로 여겨 무조건으로 도와줄 수 있다. 마치 오늘 여기에 앉은 수련생들처럼 당신이 수련하려고 하면 나는 무조건으로 당신을 도와준다. 하지만 일개 속인으로서 당신이 병을 보려 하고 이것을 추구하고 저것을 추구하려 한다면 안되며 또 당신을 도울 수도 없다. 무엇 때문인가? 당신은 속인이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속인이라면 마땅히 생로병사(生老病死)해야 한다. 마땅히 그러해야 하며 일체는 모두 인연(因緣)관계가 있는 것으로 함부로 혼란시키지 못한다. 일개 사람이 당신의 생명 중에 원래 수련이 없었지만 지금 당신이 수련하려고 생각한다면, 당신 앞으로의 노정을 새롭게 배치해 줄 수 있으며 당신의 몸을 조절시켜 줄 수 있다.

그럼 사람이 수련하고자 하는 이 소원이 나오면 각자들은 보고 그야말로 너무나도 진귀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어떻게 도울 것인가? 세상에 어디 사부가 있어 가르치겠는가? 또한 50여세의 사람이라, 대각자들은 가르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당신 앞에 나타나서 당신을 가르치고 당신에게 설법하고 공을 배워준다면 그것은 천기누설로서 그 역시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나쁜 짓을 하여 이 미혹 중에 떨어져 왔기 때문에 곧 이 미혹 중에서 깨우쳐 수련해야 한다. 그러므로 각자가 가르칠 수 없다. 생생한 부처님이 당신에게 설법하고 또 공을 가르쳐주는 것을 본다면, 십악불사(十惡不赦)한 사람도 모두 와서 배울 것이며 누구도 다 믿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뭘 깨달을 것인가, 깨닫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사람은 스스로 이 미혹 속에 떨어져 왔기 때문에 마땅히 훼멸시켜야 하지만 당신에게 미혹 중에서 되돌아 올라갈 한 차례의 기회를 주었다. 되돌아 갈 수 있으면 되돌아가고 되돌아가지 못하게 되면 곧 계속 윤회하거나 훼멸을 당하기 마련이다.

길은 자신이 걷는 것으로, 당신이 수련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때에 기공 고조가 출현하게 되었는데 이 역시 일종 천상(天象)의 변화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천상(天象)에 배합하기 위하여 남은 그의 心性(심성)이 처한 위치에서 그에게 공(功)을 넣어 준다. 그의 몸에 일종 연한 수송관을 넣어 주는데, 마치 수도꼭지와도 같아 열기만 하면 그것이 곧 온다. 그가 공을 내보내려 하면 공이 곧 오고 그가 공을 내보내지 않으면 그 자신은 아무런 공도 없는데, 바로 이러한 하나의 상태이다. 이것을 반수(返修)라고 부르는데, 위에서부터 아래로 수련하여 원만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들의 일반적인 수련은 아래에서부터 위로 수련하며 줄곧 개공(開功)하여 원만(圓滿)할 때까지 수련한다. 반수(返修)라고 하는 것은 나이가 많아 아래로부터 위로의 수련에 늦었기 때문에 위에서부터 아래로 수련하게 되면 빨랐는데, 역시 그 때에 조성된 일종 현상이다. 이런 사람은 그의 心性(심성)이 반드시 아주 높아야 하며 그의 心性(심성)의 위치에 그만큼 큰 에너지를 그에게 넣어 준다. 목적은 뭘 하려는 것인가? 하나는 그 때의 천상(天象)에 배합한 것으로서 이 사람은 좋은 일을 하는 동시에 그는 고통을 겪을 수 있다. 속인을 상대하기 때문에 각종 속인의 마음이 모두 당신을 교란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당신이 그에게 병을 잘 봐주었지만 그는 당신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당신이 그에게 병을 봐줄 때 얼마나 많은 나쁜 것들을 떼어버리고 그에게 어느 정도로 치료해 주었지만 그 당시에는 꼭 뚜렷한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좋아하지 않고 당신에게 감사도 드리지 않으며 당신이 그를 속였다고 욕할지도 모른다! 이런 문제를 견주고 당신의 마음으로 하여금 이런 환경 중에서 단련(磨煉)하게 한다. 그에게 공을 준 목적은 그더러 수련하여 위로 제고하라는 것이었다. 좋은 일을 하는 동시에 자신의 공능을 개발하여 자신의 공을 자라게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 이치를 모르고 있다.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그에게 설법을 할 수 없다. 깨달을 수 있으면 깨닫고, 깨닫는 문제이므로 깨닫지 않는다면, 방법이 없다.

어떤 사람은 공이 올 때, 어느 날 저녁, 잠을 자다가 갑자기 너무 더워서 이불도 덮을 수 없는데, 아침에 일어나 어디를 만지면 어디에 전기가 있게 된다. 그는 공이 온 것을 알게 되었다. 누가 몸이 어디 아프다고 하여 척 문질러 주면 괜찮았고 아주 좋았다. 그는 그후로부터 자신이 공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기공사가 되었다. 간판을 걸고 스스로 자신을 기공사라고 봉하였다. 시작에는 이 사람이 괜찮았기 때문에 그가 다른 사람의 병을 고쳐준 다음, 남들이 그에게 돈을 주거나 그에게 무슨 물건을 주어도 그는 아마 모두 받지 않으며 거절할 것이다. 하지만 속인의 이 큰 염색독 속에서 오염되는 것을 막아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한 부류 반수(返修)를 하는 사람은 진정한 心性(심성)수련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心性(심성)을 파악하기가 아주 곤란하다. 천천히 작은 기념품으로부터 점점 큰 물건도 받는가 하면 마지막에는 적게 주어도 안되었다. 마지막에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많은 물건을 주어서는 뭘하는가. 돈을 주십시오! 라고 말하는데, 돈을 적게 주어도 안 된다. 그는 정전(正傳)기공사도 불복하며 귀에 가득찬 것은 사람들이 모두 그를 어떻게 재간이 있다고 칭찬하는 말이다. 만일 누가 그를 좋지 않다고 하면 그는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명리심이 모두 일어나서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고명하며 그가 대단하다고 여긴다. 그는 자기에게 이 공을 준 것은 그더러 기공사가 되어 부자가 되게끔 한 것이라고 여기지만 사실은 그더러 수련하라고 한 것이다. 명리심이 일어나게 되어 그의 心性(심성)은 사실상 떨어진 것이다.

나는 心性(심성)이 얼마나 높으면 공이 얼마나 높다고 말하였다. 떨어졌다면 이 공도 그에게 그처럼 크게 줄 수 없다. 역시 心性(심성)에 따라 주게 되는데 心性(심성)이 얼마나 높으면 공이 얼마나 높다. 이 명리심이 심할수록 속인 중에 떨어지는 것도 더욱 심하며 그의 공도 따라서 떨어지기 마련이다. 마지막에 그가 완전히 떨어져 내려오게 될 때면 공도 주지 않게 되어, 아무런 공도 다 없게 된다. 몇 년 전에 이러한 사람이 적지 않게 나타났는데 50여세의 부녀가 비교적 많았다. 당신은 그 노친이 공을 연마(練)하는 것을 보라. 아무런 진짜 전수(眞傳)도 받지 못하였다. 혹시 어느 기공반에서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그런 몇 개 동작을 배웠을 수도 있다. 어느 하루 갑자기 공이 오게 되었다. 心性(심성)이 나쁘기 때문에 명리심이 일어나자 곧 떨어지게 되었는데 결국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며 공도 없다. 지금 반수(返修)하다가 떨어진 이런 사람이 대단히 많은즉, 남은 사람이란 불과 몇 사람도 되지 않는다. 무엇 때문인가? 그는 이것은 그더러 수련하라고 한 것임을 몰랐다. 그는 그더러 속인 중에서 돈벌이를 하고 이름을 날리며 기공사가 되라고 한 것이라고 여기는데, 사실은 그더러 수련을 하라는 것이었다.

무엇이 차공(借功)인가? 이것은 연령 제한이 없다. 그러나 하나의 요구가 있는데, 반드시 心性(심성)이 특별히 좋은 사람이어야만 된다. 그는 기공이란 수련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며 또 그도 수련하고자 한다. 이 마음이 수련하고자 하지만 어디 가서 사부를 찾겠는가? 몇 년 전에는 확실히 진정한 기공사가 공을 전수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전한 것은 모두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것들이었고, 고층차에로 전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남들도 가르치지 않았다.

차공(借功)을 이야기하게 되어 나는 또 한가지 문제를 이야기하겠다. 사람은 그의 主元神(주원신)[主意識]이외에 또 副元神(부원신)[副意識(f우 이스)]가 있다. 어떤 사람은 副元神(부원신)이 하나, 둘, 셋, 넷까지 있으며 또 다섯까지 있는 사람도 있다. 이 副元神(부원신)은 그의 성별과 같지 않을 수도 있어, 어떤 것은 남자이며 어떤 것은 여자인데 다 같지 않다. 사실 主元神(주원신)도 육신과 꼭 같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발견에 의하면, 지금 남자들에게는 여자 元神(원신)이 특별히 많으며 여자에게는 남자 元神(원신)이 특별히 많은데, 바로 도가에서 말하는 음양이 바뀌고 음(陰)이 성하고 양(陽)이 쇠퇴되는 천상(天象)과 부합된다.

사람의 副元神(부원신)이 온 층차는 흔히 主元神(주원신)보다 높다. 특히 일부 사람은 그의 副元神(부원신)이 온 층차가 대단히 높다. 副元神(부원신)은 부체(附體)가 아니다. 그는 당신과 동시에 모태에서 나왔고 당신과 하나의 이름을 갖고 있으며 모두 당신 신체의 일부분이다. 평소에 사람들이 무슨 문제를 생각하거나 무슨 일을 함은 主元神(주원신)의 말이 선다. 副元神(부원신)은 주로 사람의 主元神(주원신)을 통제하여 되도록 나쁜 짓을 하지 않도록 한다. 하지만 主元神(주원신)이 아주 집착할 경우에 副元神(부원신)은 무력해지고 만다. 副元神(부원신)은 속인사회에 미혹되지 않지만 主元神(주원신)은 속인사회에 쉽게 미혹된다.

어떤 副元神(부원신)이 온 층차는 아주 높아 가능하게 고만한 차이가 아니었더라면 정과(正果)를 얻을 뻔했다. 副元神(부원신)은 수련하려고 하나 主元神(주원신)이 수련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방법이 없었다. 어느 날 主元神(주원신)이 기공의 고조 중에서 공을 배우려 하며 고층차에로 수련을 하려고 한다. 물론 사상은 아주 소박하며 명리나 이런 것들을 추구할 생각이 없었다. 副元神(부원신)은 참으로 기뻤다. 내가 수련하려고 하였지만 나의 말이 서지 못하였는데, 당신이 수련하려고 하니, 나의 뜻에 딱 맞는다. 그러나 어디에 가서 사부를 모시겠는가? 副元神(부원신)은 아주 능력이 있어 그는 신체를 떠나 그가 생전에 알아두었던 대각자를 찾아갔다. 어떤 副元神(부원신)은 층차가 대단히 높기 때문에 인체를 떠날 수 있어, 가서는 수련하겠다고 말하면서 차공(借功)을 요청한다. 남들이 보니 이 사람 역시 괜찮았다. 수련하고자 하면 물론 도와야 하잖은가. 이리하여 副元神(부원신)은 공을 빌려오게 된다. 흔히 이런 공은 흩어진 에너지가 있어 수송관을 통하여 보내게 된다. 또 어떤 것은 이미 다 만들어진 것을 빌려오게 되는데 기성적인 것은 흔히 공능과 함께 존재한다.

이렇게 됨으로써 그는 동시에 아마 공능을 갖고 있을 수 있다. 이 사람은 역시 내가 방금 말한 것과 같이 밤에 잠잘 때 너무 더워나다가 이튿날 아침잠에서 깨어나자 공이 오게 되었다. 어디를 만지면 어디에 전기가 있어, 남들에게 병을 고쳐줄 수 있게 되었으므로 그도 공이 옴을 알게 되었다. 어디에서 왔는가? 그는 똑똑히 모르고 있다. 그는 대체적으로 우주공간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왔는지를 그는 모르고 있으며 副元神(부원신)은 그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副元神(부원신)이 수련하기 때문에 그는 다만 공이 온 것만을 알고 있다.

흔히 차공(借功)한 사람은 연령의 제한을 받지 않는데 젊은 사람이 비교적 많다. 그리하여 몇 년 전에 20여세, 30여세, 40여세의 사람들이 모두 있었으며 연세가 많은 사람도 있었다. 젊은 사람은 자신을 파악하기가 더욱 쉽지 않다. 당신이 보라. 그는 평상시에 참으로 괜찮았다. 속인사회 속에서 어떤 재간이 없을 때에 그의 명리심은 아주 담담하였다. 일단 두각을 나타낼 경우에 종종 명리적인 교란을 쉽게 받는다. 그는 유생지년에 아직도 먼 길이 있으며 아직도 보람차게 해보려고 하며 한 번 분투를 하여 속인의 어떤 목표에 도달해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일단 공능이 나와 재간이 있게 되면 그는 그것을 흔히 속인사회에서 일종 개인목표를 추구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안되며 이렇게 사용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쓸수록 이 공은 더욱 적어지게 되어 마지막에는 역시 아무것도 없게 된다. 이러한 사람이 떨어져 내려온 것이 더욱 많은데, 내가 보기에는 지금 하나도 없다.

방금 내가 이야기한 이 두 가지 경우는 모두 心性(심성)이 비교적 좋은 사람이 공을 얻음에 속한다. 이 공은 자신이 연마하여 나온 것이 아니라, 각자(覺者) 거기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공(功) 자체는 좋은 것이다.

부체(附體)

우리 많은 사람들은 아마 수련계에서 말하는 동물·여우·족제비·귀신·뱀 등등 이런 것들이 몸에 업히는 데 대한 일을 들었을 것이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어떤 사람은 연공하여 특이공능을 개발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특이공능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다. 그 특이공능은 바로 사람의 본능이다. 다만 인류사회가 앞으로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은 우리 이 물질공간의 유형적인 것에 더욱더 눈을 박으며 우리 현대화된 공구에 더욱더 의뢰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람의 본능은 더욱더 퇴화되었으며 마지막에는 이런 본능이 완전히 소실되었다.

공능이 있으려면 또 수련을 거쳐 반본귀진하여 그것을 수련해 내야 한다. 그러나 동물은 이런 복잡한 사상이 없기 때문에 그것들은 우주특성과 통할 수 있으며 그것들은 선천적인 본능을 갖고 있다. 어떤 사람은, 동물이 수련할 줄 안다고 하며 여우는 어떻게 단(丹)을 연마하고, 그 뱀 등등도 수련할 줄 안다고 말한다. 그것들이 수련할 줄 아는 것이 아니다. 초기에 그것들은 무슨 연마이고 연마가 아님을 아예 모르며 그것들은 다만 선천적인 그런 본능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특정된 조건하에서, 특정된 환경 하에서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 효능을 발휘할 수 있으며 그것이 공을 얻을 수 있는 즉, 또 공능도 나타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그것은 재간이 있게 되어 우리들은 예전에 그것이 영기(靈氣)를 얻었고 재간이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하였다. 속인이 볼 때 동물은 여차여차하게 대단하여 사람을 쉽게 좌우지 할 수 있다고 한다. 내가 말한다면 사실 그리 대단하지 않다. 진정한 수련자 앞에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당신은 그것들이 천여 년 좌우 수련하였다고만 보지 말라. 아직 새끼손가락으로 비빌 나위도 없다. 우리는 동물이 이런 선천적 본능을 갖고 있고 그것이 재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 이 우주에는 또 하나의 이치가 있는데 바로 동물이 수련됨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고서 중에서 몇백 년에 한 차례씩 그것들을 죽여버리는데 큰 겁(劫)이거나 작은 겁(劫)이었다고 쓴 것을 보았을 것이다. 동물은 일정한 시간이 되어 공이 자라게 되면 그를 소멸해 버린다. 벼락으로 그것들을 치는 등등, 그가 수련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가 사람의 본성을 구비하지 못하였으며 그가 사람처럼 이렇게 수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특징을 구비하지 못하였으므로 그가 수련된다면 보증하고 마(魔)가 되기 때문에 곧 그가 수련됨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천벌을 받는데, 그도 이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말했다. 인류사회는 지금 크게 미끄럼 치어 내려가고 있으며 일부 사람은 악한 짓이란 악한 짓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 인류사회는 위험하지 않단 말인가?

물극필반(物極必反)이다! 우리는 인류사회가 사전시기(史前時期) 매 차례 부동한 주기마다 훼멸될 경우, 모두 인류의 도덕이 극히 부패한 상황하에서 발생되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현재 우리 인류가 생존하는 공간과 많은 기타 공간은 모두 하나의 극히 위험한 경지에 처해 있다. 이 층차 중의 기타 공간 역시 마찬가지이므로 그것도 빨리 도망을 치려고 하며 그것도 고층차에로 오르려고 한다. 그는 층차가 제고되면 도망갈 수가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어찌 말처럼 쉽겠는가? 수련하려면 반드시 인체(人體)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공을 연마(練)하는 사람이 나타났으며 부체(附體)가 달려 붙게 되는 것이 그중 하나의 원인이다.

어떤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은 대각자들과 이렇게 많은 높은 재주(功夫)의 사부들이 단속하지 않는가? 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 이 우주에는 또 하나의 이치가 있다. 당신 자신이 추구하고 당신이 가지려고 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간섭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여기에서 여러분을 바른 길로 가라고 가르치는 동시에 법을 당신에게 투철히 이야기하여 당신 자신이 깨닫게 하지만, 배우고 안 배우고는 당신 자신의 문제이다. 사부는 문으로 들어오도록 이끌고 수행은 자신에게 달렸다. 당신을 강박하고 핍박하여 수련하게 하는 사람은 없다. 수련하고 안하고는 당신 개인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어느 길로 가려고 하며, 당신이 무엇을 가지려고 하며, 당신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는 누구도 당신을 간섭하지 않을 것이며, 다만 착해짐을 권할 따름이다.

어떤 사람은 그가 연공(練功)하지만 사실은 모두 부체(附體)더러 얻게 하였다. 왜 부체를 초래하게 되는가? 전국 각지 연공(練功)하는 사람들, 얼마나 되는 사람의 몸 뒤에 부체가 있는가? 말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감히 연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 숫자가 무척 사람을 놀랠 지경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상태가 나타나게 되는가? 이런 것들은 속인사회를 화란(禍亂)시키는데, 어찌하여 이처럼 사나운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는가? 이 역시 인류 자신이 초래한 것이다. 인류가 부패하기 때문에 곳곳에 모두 마(魔)이다. 더욱이 그 가짜 기공사들 몸에는 모두 부체를 갖고 있으며 그가 공을 전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인류 역사상에 동물이 사람의 몸에 업히는 것을 모두 허용하지 않았으며 올라붙게 되면 죽여야 했고 누가 보아도 모두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어떤 사람은 그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가지려고 하며 그것을 모시고 있다.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나는 명확하게 그것을 추구하지 않았다! 라고 한다. 당신이 그것들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당신은 공능을 추구하였다. 정법수련의 각자(覺者)가 능히 줄 수 있는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속인 중의 집착이라, 이 마음은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럼 누가 줄 수 있는가? 오로지 기타 공간의 마(魔)와 각종 동물이 줄 수 있는 것으로, 그렇다면 그것을 추구한 것과 같지 않은가? 그것은 왔다.

얼마나 되는 사람이 정확한 생각을 갖고 연공(練功)하고 있는가? 연공(煉功)은 德(덕)을 중시하고 좋은 일을 해야 하며 착해지도록 해야 한다. 곳곳마다 일마다 모두 이렇게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 공원에서 연마해도 좋고 집에서 연마해도 좋은데 몇 사람이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가? 어떤 사람은 그가 어떤 공을 연마(練)하는지는 모르지만, 한편으로 연마(練)하며 흔들거리면서 입으로는 또 말을 하고 있다. 참! 우리 집 며느리는 나한테 정말 효심이 없다, 나의 시어머니는 왜 그렇게 못되었는지!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부터 국가 대사에까지 지껄이며 그가 지껄이지 않는 것이 없다. 자기 개인관념에 부합되지 않으면 치가 떨려 야단이다. 당신이 말해보라. 이것이 그래 연공이란 말인가? 또 어떤 사람은 연공(練功)하느라고 거기에서 참장(站?)을 연마(練)하는데, 다리가 지쳐서 부들부들 떨면서도 그의 머리만은 한가하지 않다. 지금의 물건은 왜 이렇게 비싼가, 물가도 올랐는데 우리 직장에서는 노임도 주지 못한다, 나는 왜 공능을 연마해 내지 못할까? 내가 공능을 연마해 내면 나도 기공사가 되어 부자가 될텐데. 나도 다른 사람의 병을 봐주고 돈을 벌어야겠다. 그는 다른 사람이 공능이 나온 것을 보고 그는 더욱 조급해 하며 줄곧 공능을 추구하고 천목을 추구하며 병을 치료할 수 있기를 추구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것은 우리 우주 중의 특성 眞ㆍ善ㆍ忍과 얼마나 거리가 먼가! 모든 것이 다 위반된 것이다. 좀 엄중하게 말하면 그는 사법(邪法)을 연마(練)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각적이 아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할수록 내보내는 의념(意念)은 더욱 나쁘다. 이 사람은 그가 법을 얻지 못하고 德(덕)을 중시 해야 함을 모르기에 연공(練功)함에 있어서 수법을 쓰면 공을 연마해 낼 수 있는 줄로만 알고 있으며 그가 무엇을 바란다면 추구하여 될 수 있는 줄로 알고 있는데, 그는 이렇다고 여긴다.

바로 자신의 사상이 똑바르지 못하기에 좋지 않은 것들을 초래하게 된다. 그 동물은 보아냈다. 이 사람은 연공하여 부자가 되려고 하는구나, 저 사람은 이름을 날리려 하고 공능을 얻으려고 하는구나. 참, 신체도 괜찮고, 갖고 있는 것도 좋구나. 그러나 그의 사상은 참말로 나빠 공능을 추구하고 있구나! 그는 아마 사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가 사부가 있다 해도 나 역시 두렵지 않다. 그는 알고 있다. 정법수련의 사부는 그가 이처럼 공능을 추구하는 것을 보고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더 주지 않는데, 마침 집착심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가 이런 생각이 있을수록 공능을 더욱 주지 않는다. 그는 더욱 깨닫지 못하여 추구할수록 생각이 더욱 좋지 못하다. 마지막에 그 사부는 한탄하며 이 사람은 안되겠다는 것을 보아내고 더는 상대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사부가 없고 아마 지나가던 분이 그를 좀 상관할 것이다. 각개 공간에 각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 각자가 이 사람을 한 번 본다. 그를 보고 하루 동안 따르다가, 보아하니 안되기 때문에 가 버린다. 내일에 또 한 분이 와서 보다가 이 사람이 안되기 때문에 또 가 버린다.

동물은, 그가 사부가 있어도 좋고 지나가던 사부가 있어도 좋고, 그가 추구하는 것을 그의 사부가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동물은 대각자가 있는 공간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가 빈틈을 탄 것이다. 우리 우주에는 하나의 이치가 있다. 그 자신이 추구하고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일반적인 경우에 간섭하지 못한다. 그가 이런 하나의 틈을 탔다. 그가 가지려고 하면 내가 주겠다. 내가 그 사람을 돕는 것은 잘못이 없잖은가? 그것이 준다. 그것도 처음에는 감히 올라붙지 못하고 그것은 먼저 그 사람에게 공을 조금 주어 시험해 본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정말로 공을 추구하여 오게 되었으며 또 병을 치료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가 보니 아주 좋았다. 마치 연주할 악곡에 전주(前奏)를 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는 갖기를 원한다. 그럼 내가 올라가자, 올라가야 많이 주고 통쾌하게 주게 된다. 당신이 천목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가? 이번에는 당신에게 무엇이든 다 주겠다고 하며 그것이 올라붙는다.

그가 추구하는 사상은 바로 이런 것들을 추구한다. 천목이 열렸고 또한 공도 내보낼 수 있게 되었으며 조그마한 공능도 오게 되었다. 그는 정말로 기뻤다. 그는 자신이 마침내 이런 것을 추구해 왔으며 연마(練)해 냈다고 여겼다. 사실 그는 아무것도 연마해 내지 못했다. 그는 자기가 인체투시를 하고 사람의 몸에 어디에 병이 있는가를 능히 볼 수 있다고 느꼈다. 사실 그의 천목은 전혀 열리지 않았으며 그 동물이 그의 대뇌를 통제하고 그 동물이 자기의 눈으로 본 다음 그의 대뇌에 반영시킨 것인데, 그는 자기 천목이 열렸다고 여겼다. 공을 내보내려는가, 당신이 내보내라. 그가 손을 내밀어 공을 내보낼 때 그 동물의 작은 발이 그의 몸 뒤로부터 내미는가 하면, 그가 공을 내보낼 때 그 작은 뱀 대가리는 혀를 날름거리면서 병이 있는 곳과 혹이 자라는 곳을 혀로 핥고 또 핥고 있다. 이런 유의 경우가 무척 많은바, 이 사람들의 부체(附體)는 모두 그 자신이 추구하여 온 것이다.

그가 추구하기 때문에 그는 돈을 벌고 이름을 날리려고 한다. 좋다. 이 공능도 있고 병치료도 할 수 있으며 천목이 볼 수도 있다. 이리하여 그는 기뻐했다. 동물이 보니 당신은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닌가? 좋다. 내가 당신을 돈 벌게 해주겠다. 일개 속인의 대뇌가 통제되기란 그야말로 쉽고도 쉬운 일이다. 그가 많은 사람을 통제하여 그에게로 병을 보려 오게끔 하는데, 무척 많이 오게 한다. 거 참, 이쪽에서는 병을 보게 하고 저쪽에서는 신문사의 기자들을 시켜 신문에 홍보를 하게 한다. 그것이 속인들을 통제하여 이런 일들을 한다. 병 보려 온 어느 사람이 돈을 적게 내놓아도 안되며 당신으로 하여금 머리가 아프게끔 한다. 어쨌든 당신은 돈을 많이 주어야 한다. 명리 쌍수확이라, 돈도 벌었고 이름도 날렸으며 기공사 노릇까지 하게 되었다. 흔히 이런 사람은 心性(심성)을 지키지 않고 무엇이든지 감히 말하며 하늘이 첫째이고 그가 둘째이다. 그는 자신을 서왕모, 옥황상제가 세상에 내려온 것이라고 감히 말하며 자신을 부처라고도 감히 말한다. 그가 진정하게 心性(심성)의 수련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연공(練功)함에 공능을 추구하여 결국 동물의 부체를 초래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아마 생각할 것이다. 이건 나쁠 것이 뭔가. 어쨌든 돈만 벌고 부자가 되면 되는 것이지 또 이름도 날리지 않는가, 적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준다. 사실 그것은 목적이 있으며 그것이 아무런 이유없이 당신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이 우주에는 하나의 이치가 있는 즉, 잃지 않는 자는 얻지 못한다고 한다. 그것은 무엇을 얻는가? 나는 방금 이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당신 신체의 고만한 정화(精華)를 얻어 사람의 형태로 수련되고자 한다. 그것이 인체에서 사람의 정화를 채집하고 있다. 인체의 정화는 단 한 몫으로서 수련하려면 이 한 몫밖에 없다. 당신은 그것이 얻어가게끔 한다면, 당신은 수련할 생각을 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또 무슨 수련을 하겠는가? 당신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당신은 아예 수련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아마 말할 것이다. 나는 수련하려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부자가 되려고 생각하므로 돈만 있으면 된다. 그걸 상관할 게 뭐냐!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줄 것은, 당신이 부자가 되려 하지만 내가 이 이치를 이야기해 준 다음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만약 그것이 당신 몸에서 일찍이 떠난다면 당신은 사지가 무력하게 된다. 그로부터 평생토록 모두 이러한데, 원인은 사람의 정화를 그것이 너무 많이 뽑아갔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당신 몸에서 늦게 떠난다면, 당신은 곧 식물인이 되며 후반생에 당신은 숨만 남아 침대에 드러누울 것이다. 당신이 돈이 있다 해서 쓸 수 있는가? 당신이 이름이 있다 하여 향수(享受)할 수 있는가? 무섭지 않는가?

이런 일은 오늘날 연공(練功)하는 사람들 중에 특별히 뚜렷하며 특별히 많다. 그것이 몸에 붙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元神(원신)까지도 죽여 버린다. 그것은 사람의 니환궁(泥丸宮)에 뚫고 들어가 거기에 틀어박혀 있다. 보기에는 그가 사람 같지만 그는 사람이 아니다. 지금 이러한 경우까지도 나타났다. 인류의 도덕수준이 모두 변화를 발생하였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나쁜 짓을 할 때 그에게 나쁜 짓을 한다고 알려 주어도 그는 믿지를 않는다. 그는 돈을 벌고 돈을 추구하고 부자가 되는 이것은 천경지의(天經地義)이며 이것이야말로 맞는 것이라고 인정한다. 때문에 다른 사람을 해치고 다른 사람을 손해주며 돈벌이를 위해서 악한 짓이란 악한 짓을 다하며 무엇이든 그는 모두 감히 한다. 그것이 잃지 않으면 그것은 얻지 못하는지라, 그것이 아무런 이유없이 당신에게 그것을 주겠는가? 그것이 당신 몸의 것을 얻으려고 한다. 물론 우리가 말했지만 사람은 모두 자신의 관념이 옳지 않고 마음이 똑바르지 않아 번거로움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法輪大法(법륜대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이 법문을 수련함에 있어서 오로지 당신이 心性(심성)을 파악할 수 있다면 일개 올바름이 백개 사악을 제압(一正壓百邪)하는 것이라, 당신은 어떠한 문제도 나타날 수 없다. 만약 당신이 心性(심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당신이 이것을 추구하고 저것을 추구한다면 긍정하고 번거로움을 초래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그가 원래 연마(練)했던 그런 것들을 내려놓지 못한다. 우리는 연공(煉功)은 전일(專一)해야 하며 진정한 수련은 전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은 일부 기공사가 책까지 써냈다는 것만 보지 말라.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그 책 속에는 무엇이든 다 있다. 그가 연마(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서, 그것은 뱀이고 그것은 여우이며 그것은 족제비이다. 당신이 그 책들을 보게 되면 이런 것들이 글자 속에서부터 밖으로 뛰어나온다. 내가 말했지만, 이 가짜 기공사는 진짜 기공사보다 몇 배나 더 많아 당신은 가려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반드시 잘 파악해야 한다. 나는 여기에서 당신이 반드시 法輪大法(법륜대법)을 수련해야만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어느 문(門)을 수련해도 다 된다. 그러나 예전에는 이런 말이 있다. 천년에 정법을 얻지 않을지언정 하루 야호선(野狐禪)을 수련하지 않는다고. 때문에 반드시 잘 파악하여 진정하게 정법을 수련해야 하는데, 다른 어떠한 것도 섞어 수련하지 말아야 하며, 의념(意念)마저도 넣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法輪(법륜)마저도 변형되었다. 왜 변형되었는가? 그는, 나는 그 공을 연마하지 않았는데요? 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연공(煉功)하기만 하면 그의 의념 속에 그의 원래의 것들을 넣는데, 그렇다면 끌어넣은 것이 아닌가? 부체(附體) 이 문제를 우리는 이만 이야기한다.

우주어(宇宙語)

무엇이 우주어인가? 바로 이 사람이 갑자기 일종 영문도 모를 말을 하게 되는데, 주절주절, 주절주절 대는 것이 뭐라 말하는지 그 자신도 모르고 있다. 타심통공능(他心通功能)이 있는 사람은 하나의 대체적인 뜻을 알 수 있으나 구체적으로는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다. 또한 어떤 사람은 몇 가지 부동한 언어를 말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또 아주 대단하게 느끼며 재간이고 공능이라고 여긴다. 그것은 공능이 아니며 수련자의 재간도 아니고 당신의 층차를 대표할 수도 없다. 그것은 어찌된 영문인가? 바로 당신의 사상이 일종 외래의 영체(靈體)에게 통제당한 것이다. 그럼에도 당신은 아주 좋다고 느낀다. 당신은 갖기를 좋아하며 당신은 기뻐하는데, 당신이 기뻐할수록 그것이 당신을 더욱 단단히 통제한다. 진정하게 수련하는 일개 사람으로서, 당신이 그것에게 통제당해서야 되겠는가? 또한 그것이 온 층차가 아주 낮다. 때문에 우리는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번거로움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가장 진귀한 것으로, 만물의 영장인데 당신은 어찌 이런 것들에 의해 통제당할 수 있는가? 당신의 신체마저 버린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이런 것들은 어떤 것은 사람의 몸에 달라붙고, 또 어떤 것은 사람의 몸에 붙지 않고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지만 그것이 당신을 조종하고 당신을 통제하고 있다. 당신이 말하려고 하면 그것이 당신더러 말하게 하는데 주절대며 말하게 한다. 또 전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배우려고 생각하며 담대해져 입을 벌리면 그 역시 말한다. 사실 그것들도 한 둥지 한 둥지씩이다. 당신이 말하려고 하면 그것 하나가 올라와 당신더러 말하게끔 한다.

왜 이러한 경우가 나타나는가? 역시 내가 말한바와 같이 그것도 자신의 층차를 높이고자 하지만 그쪽에는 고생이 없기 때문에 수련을 할 수 없고 제고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의 방법을 생각하여 사람을 도와 좋은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내보낸 에너지가 병 있는 사람에게 약간의 제약작용을 일으키며 환자의 당시 고통을 제거할 수 있지만 치료하여 낫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의 입을 빌어 내보내는 것이 이러한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일이다. 또 어떤 사람은 그것을 하늘의 말이라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그것을 부처님의 말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다. 내가 말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짓이다!

여러분 알다시피, 부처님은 경솔히 말하지 않는다. 만약 그가 우리 이 공간에서 말을 한다면, 그는 우리 인류로 하여금 지진이 일어나게 할 수 있는데, 그래서야 될 말인가! 그 윙윙거리는 소리 말이다. 어떤 사람은, 그가 나와 이야기함을 나의 천목이 보았다고 말한다. 그는 당신과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나의 법신을 보았지만 역시 당신과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그가 내보낸 생각은 입체 음향이 있기 때문에 당신이 듣기에는 마치 그가 이야기하는 것과 같게 된다. 그는 보통 그가 있는 그 공간에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전도(傳導)되어 온 후에 당신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똑똑히 알아들을 수 없다. 두 개 공간의 시공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여기 공간의 한 시진(時辰)은 바로 지금의 두 시간이다. 그러나 그 큰 공간에는 우리 이 하나의 시진이 바로 그의 1년이 되며 그의 시간보다 오히려 느리다.

예전에 이런 말이 있다. "하늘에선 금방 하루가 지났는데 지상은 이미 천년이 지났다." 이는 그 공간이 없고 시간개념이 없는 단원세계(單元世界)를 가리킨 것이며 바로 대각자들이 있는 세계이다. 예를 들어 극락세계(極樂世界), 유리세계(琉璃世界), 法輪世界(f아 룬쓰제), 연화세계(蓮花世界) 등등 그런 곳이다. 그러나 그 큰 공간의 시간은 도리어 더욱 빠르다. 당신이 만약 그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면, 어떤 사람은 천이통(天耳通)으로서 이 귀가 열려 그가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경우, 당신은 똑똑히 듣지 못한다. 당신이 무엇을 들어도 모두 그러한데, 마치 새들이 우짖는 소리와 같고 축음기가 빨리 돌아가는 것과 같아 무엇인지를 들어낼 수가 없다. 물론 어떤 사람은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말하는 것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반드시 일종 공능을 운반체로 하여 시간적 차이를 없애 버린 후, 당신 귀로 전해와야 만이 당신은 비로소 똑똑히 들을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상황이다. 어떤 사람은 부처님의 언어라고 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아니다.

그 각자들은 서로 만나 두 사람이 웃기만 하면 무엇이든 모두 명백하다. 이것은 무성(無聲)의 사유전감(思惟傳感)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입체음성이기 때문이다. 그 두 사람이 웃을 적에 이미 의견 교환이 끝났다. 단지 이런 형식만 취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때에는 다른 일종의 방법도 취한다. 여러분 알다시피 밀종(密宗)에서 티베트(西藏)의 라마(喇?)는 수인(手印)을 하는 것을 강구한다. 그러나 당신이 그 라마한테 물어보라. 수인(手印)이 무엇인가를? 그는 당신에게 무상유가(無上瑜?)라고 알려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무엇인가? 그도 모르고 있다. 사실은 곧바로 대각자(大覺者)의 언어이다. 사람이 많을 경우에 그는 대수인(大手印)을 하는데, 아주 멋들어진 각종 대수인(大手印)이다. 사람이 적을 경우에 그는 소수인(小手印)을 하는데, 역시 보기 좋은 각종 자세의 소수인으로, 무척 복잡하며 무척 풍부하다. 그것은 언어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이것은 다 천기(天機)였는데 우리는 모두 이야기하였다. 티베트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은 다만 단일하게 연공하기 위한 그 몇 개 동작에 불과하며 그가 그것들을 귀납하여 계통화시킨 것이다. 그것은 다만 연공의 그런 단일한 언어일 뿐이며 아울러 그 몇 가지 연공의 형식일 따름이다. 진정한 수인(手印)은 무척 복잡하다.

스승님은 수련생에게 무엇을 좀 주었는가

어떤 사람은 나를 만난 후 나의 손을 잡고는 놓아주지 않는다. 기타 사람도 다른 사람이 악수하는 것을 보고 그 역시 나와 악수한다. 나는 그가 마음속으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 어떤 사람은 스승님과 악수를 하고는 아주 기뻐한다. 어떤 사람은 정보를 좀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손을 붙잡고는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바, 진정한 수련은 당신 개인의 일이다. 여기는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며 당신에게 정보를 좀 주고 병을 좀 제거해 주는 것이 아니며 우리 또한 이런 것을 주장하지 않는다. 당신의 병은 내가 직접 당신을 위해 제거해 버리며, 연공장(煉功点)에서는 나의 법신이 제거해 주며, 책을 보고 자습하여도 나의 법신이 제거해 준다. 당신은 나의 손만 만지면 공이 늘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웃음거리가 아닌가?

공은 자신의 心性(심성)에 의하여 수련해야 한다. 당신이 실속 있게 수련하지 않는다면 그 공은 자라날 수 없다. 그의 心性(심성)표준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공이 늘 때, 층차가 높은 사람은 당신의 그 집착심, 그 물질이 제거되었고 머리 위에 하나의 척도가 생김을 볼 수 있다. 또한 이런 척도는 공기둥 식의 존재로서, 척도가 얼마나 높으면 공기둥도 얼마나 높다. 그는 당신이 수련해 낸 공을 대표하며 당신의 心性(심성)고저도 대표한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얼마 가하던지 모두 안되며 약간만 가해 놓아도 견디지 못하고 모두 떨어져 내려오게 된다. 나는 당신을 즉시로 '삼화취정(三花聚頂)'에 도달하게 할 수 있지만, 당신이 문만 나서면 그 공은 떨어진다. 그것은 당신의 것이 아니며 당신이 수련해 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올려놓을 수 없다. 당신의 心性(심성)표준이 거기에 있지 않으므로 누가 가하려고 하여도 가해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완전히 자신에 의하여 수련해 낸 것이며 자신의 그 마음을 수련한 것이다.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공이 위로 자라고 끊임없이 자신을 높이어 우주특성에 동화되어야만 당신은 비로소 올라올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나를 찾아 서명을 해 달라고 하는데, 나는 그 서명을 하기가 싫다. 어떤 사람은 스승님이 나에게 서명을 해주었다면서, 그는 과시하려고 하며 스승님 정보의 보호를 받으려고 한다. 이것 또한 집착심이 아닌가? 수련은 자신에 의거해야 하는데 당신은 무슨 정보를 말하고 있는가? 고층차의 수련에서 당신은 이것을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이 다 무엇인가? 그것은 다만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함에 대해서만 하는 말이다.

당신 자신이 연마해 낸 그 공은 극히 미시적인 아래에서 그 공의 미립자와 당신의 형상은 똑같은 모양이다. 世間法(세간법)를 벗어날 때에 당신은 바로 불체(佛體)수련이다. 그 공은 모두 불체의 형태로서 대단히 멋있다.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매 하나 작은 미립자가 모두 그러하다. 그러나 동물의 그 공은 모두가 작은 여우,?작은 뱀 그런 것이고 극히 미시적인 아래에서의 작은 미립자마다 모두 이런 것들이다. 또 무슨 정보라는 것이 있는데, 찻물을 휘휘 저어서 당신이 마시라. 어쨌든 그 역시 공이라고 한다. 속인은 잠시 고통을 제거하고 병을 뒤로 좀 미루고 억제하기 위함이다. 어쨌든 속인은 곧 속인이라, 그가 신체를 어떤 정도로 나쁘게 만들던지 우린 상관하지 않는다. 우리는 연공인이기 때문에 나는 비로소 당신에게 이러한 일들을 이야기해 준다. 앞으로 여러분은 이러한 일을 하지 말라. 무슨 정보요, 이것저것들을 절대 갖지 말도록 해야 한다. 어떤 기공사는, 내가 당신들에게 정보를 보낼 테니 당신들은 전국 각지에서 받으라고 말한다. 받기는 뭘 받는단 말인가? 내가 당신에게 말한다면, 이러한 일들은 아무런 큰 작용도 할 수 없다. 설령 그것이 좋은 점이 있더라도 그것은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것을 추구함에 불과할 따름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개 연공인으로서 공은 자신이 수련해 낸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내보내는 그 무슨 정보공(信息功)은 층차를 높일 수 없으며 다만 속인에게 병을 제거하여 줄뿐이다. 반드시 마음을 똑바로 잡아야 하는바, 수련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오로지 당신 자신이 진정하게 수련해야만 자신이 비로소 층차를 높일 수 있다.

그럼 나는 여러분에게 무엇을 좀 주는가? 여러분 알다시피 우리 많은 사람들은 공을 연마한 적이 없고 신체에는 병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비록 다년간 연공하였어도 여전히 기(氣)에서 배회하며 또 공이 없다. 물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병을 치료하여 주었는데, 당신은 어떻게 치료했는지도 모르고 있지 않는가? 내가 부체에 대한 문제를 말할 때, 나는 진정하게 능히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의 신체에 갖고 있는 부체를,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신체적으로 안에서부터 밖에까지 갖고 있는 모든 좋지 않은 이런 것들을 전부 다 떼어버렸다. 진정하게 자체로 수련하는 사람이 이 대법을 보게 될 때, 마찬가지로 당신의 신체를 청리(淸理)해 줄 것이며 아울러 당신 집의 환경도 청리하여 줄 것이다. 예전에 당신이 모셨던 그 여우, 족제비의 위패(牌位)도 당신은 그것을 어서 빨리 던져버려라. 당신에게 모두 청리하였는바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이 수련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당신에게 가장 편리한 문을 열어줄 수 있으며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해줄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에만 한정된다. 물론 어떤 사람은 수련할 생각을 하지 않고 지금까지도 아직 명백치 않다면, 우리는 책임질 수 없다. 우리가 책임지는 것은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이다.

또 한 종류의 사람이 있다. 예전에 다른 사람이 그의 몸에 부체가 있다고 하여 그 자신도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일단 그에게서 떼어버린 후에도 그의 그 심병(心病)은 없어지지 않아 그는 늘 그런 상태가 존재한다고 느끼며 그는 아직도 있다고 여긴다. 이것은 이미 일종의 집착심으로서 의심이라고 한다. 오래오래 되어 그 자신이 잘못하면 또 그것을 초래할 수도 있다. 당신 자신이 그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는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일부 사람은 우리가 예전에 수련반을 꾸릴 때 그에게 처리하여 주었다. 나는 이미 이러한 일을 하였고 모든 부체를 떼어버렸다.

도가는 낮은 층차에서 연공함에 일부 기초적인 것을 닦아야 한다. 주천(周天)을 형성하고 단전(丹田)이란 그 전(田)도 형성해야 하며 또 기타 일부 면의 것들도 형성해야 한다. 우리 여기서는 法輪(법륜), 氣機(치지)를 넣어주고 일체 수련의 기제(機製) 등 많고 많은, 만(萬)도 넘는 이런 것들을 모두 당신에게 주며 마치 종자마냥 당신 몸에 심어준다. 당신의 병을 제거한 후, 해야 할 것을 모두 했다. 주어야 할 것을 모두 당신에게 넣어주어야만 당신은 비로소 우리 이 법문 중에서 진정하게 수련해 낼 수 있다. 그렇지 아니하고 당신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것이다. 명백하게 말하면 일부 사람은 心性(심성)을 중시하지 않는데 체조를 하기만도 못하다.

진정하게 수련을 한다면 당신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사람들이 자체로 수련하여도 마찬가지로 얻을 수 있으나 반드시 진정하게 수련하여야만 된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모두 진정한 수련자에게만 준다. 내가 말했듯이 당신을 진정하게 제자로 삼아 이끌 것이다. 이것 이외에 고층차의 법을 반드시 투철히 배워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가를 똑똑히 알아야 하는가 하면, 5장 공법을 한꺼번에 전부 배우게 한다. 장래에 당신은 하나의 무척 높은 층차에로 도달할 수 있으며 당신이 생각지도 못한 그러한 고층차에로 도달할 수 있어, 정과(正果)를 얻기는 문제가 없다. 오로지 당신이 수련하기만 한다면, 이 법을 나는 부동한 층차에 결부하여 강의하였기 때문에, 앞으로 당신이 부동한 층차의 수련 중에서 당신은 그것이 당신에게 모두 지도적 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일개 수련인으로서 앞으로의 인생 행로는 개변될 수 있을 것이며 나의 법신이 당신에게 새롭게 배치할 것이다. 어떻게 배치하는가? 어떤 사람은 생명노정이 아직 얼마 있는지? 그 자신도 모르고 있다. 어떤 사람은 1년 또는 반년이 지나 큰 병에 걸릴 수 있고 병에 걸리면 몇 년이 될 수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뇌혈전 또는 기타 병에 걸려 아예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다. 앞으로의 인생 행로에서 당신은 어떻게 수련할 것인가? 우리는 모두 당신에게 청리(淸理)하여 주며,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지 못하게끔 한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말해 둘 것은, 다만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에게 이런 일을 해줄 수 있다. 속인에게 함부로 해준다면 그건 안 된다. 그건 나쁜 짓을 하는 것과 같다. 속인의 생로병사(生老病死) 이런 일들은 모두 인연관계가 있는 것으로 함부로 파괴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을 가장 진귀하게 여기고 있다. 때문에 오로지 수련하는 사람에게만 해 줄 수 있다. 어떻게 해주는가? 만약 사부의 위덕(威德)이 아주 높다면, 즉 사부의 공력이 아주 높다면 그가 당신에게 소업(消業)해 줄 수 있다. 사부의 공이 높으면 당신에게 많이 없애줄 수 있고 사부의 공이 낮으면 다만 조금 없애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예를 들어 말한다면, 당신의 앞으로 인생행로의 각종 업력(業力)을 모두 집중시켜 그중 일부분을 없애버리고 절반을 없애버린다. 나머지 절반이 있지만 산보다도 더 높아 당신은 넘지 못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이 아마 도를 얻을 때에, 장래에 많은 사람이 모두 이득을 보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대신하여 한 몫씩 담당하게 된다. 물론 그들로 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또한 당신 자신이 연련(演煉)해낸 많은 생명체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의 主元神(주원신), 副元神(부원신)을 제외하고도 또 많은 당신이 있는데 모두 당신을 대신하여 한 몫씩 담당하게 된다. 당신이 겁난(劫難)을 지날 때에는 얼마 남지 않게 된다.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 역시 무척 커서 당신은 여전히 넘지 못하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을 무수한 여러 몫으로 나누어 당신이 수련하는 각개 층차에 배치하여 놓고 그것을 이용하여 당신의 心性(심성)을 제고하게 하며 당신의 업력(業力)을 전화시켜 당신의 공이 자라게 한다.

또한 일개 사람이 수련하고자 함은 한가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아주 엄숙한 일이며 아울러 그는 속인을 벗어난 것으로서, 속인 중의 어떠한 일보다도 더 어렵다고 나는 말한 적이 있다. 그것은 초상(超常)적인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속인 중의 어떠한 일보다도 당신에 대한 요구가 더 높아야 한다. 우리 사람은 元神(원신)이 있으며 元神(원신)은 불멸(不滅)하는 것이다. 만일 元神(원신)이 불멸이라면 여러분 생각하여 보라. 당신의 元神(원신)이 당신 생전의 사회활동 중에서 나쁜 짓을 한 것이 아닌가? 아주 가능하다. 살생을 했거나, 누구에게 빚을 졌던가, 누구를 얕잡아 보았던가, 누구를 해쳤던가, 이런 일들을 했을 수 있다. 만약 이렇다면 당신이 이쪽에서 수련하고 있음을 그는 저쪽에서 똑똑히 보고 있다. 당신이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만 한다면 그는 당신을 상관하지 않는데, 그는 당신이 뒤로 미루어 당신이 지금 갚지 않으면 장래에 갚게 되며, 장래에 가서 갚을 적에는 더욱 심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잠시 갚지 않아도 그는 그것을 상관하지 않는다.

당신이 수련하려 한다고 당신이 말하면 그는 가만있지 않는다. 당신이 수련하려 하고 당신은 갈려고 하는가, 당신이 공이 자라면 나는 당신에게 가 닿지 못하고 나는 당신을 건드릴 수도 없다. 그는 가만 있으려 하지 않는다. 그는 천방백계로 당신을 방해하여 당신을 수련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여러가지 방법을 취하여 당신을 교란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정말로 와서 당신을 죽일 수 있다. 물론 당신이 여기에서 가부좌하고 있을 때 머리가 떨어져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속인사회 상태에 부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능하게 문을 나서면 자동차와 부딪히거나, 층집에서 떨어지거나 또는 기타 위험한 일들이 발생하게 된다. 아마 이런 일들이 나타날 수 있는데 무척 위험하다. 진정한 수련은 당신이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당신이 수련하고자 하면 곧 수련하여 올라가게 되는가? 당신이 진정하게 수련한다면 즉시로 생명위험에 부딪치게 되며 즉시 이 문제가 관련되게 된다. 많고 많은 기공사는 감히 고층차에로 공을 전수하고 사람을 이끌지 못한다. 무엇 때문인가? 그는 바로 이러한 일을 하지 못하며 그는 당신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도를 전수하는 허다한 사람들은 그가 다만 제자 하나를 가르칠 수 있었고 그가 제자 하나만을 지키기에는 그래도 괜찮았다. 그러나 이렇게 큰 면적을 일반적인 사람은 감히 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여러분과 이미 이야기하였다. 나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무수한 법신(法身)이 있으며 나의 굉장히 큰 신통법력(神通法力)을 구비하고 있어 대단히 큰 신통(神通)과 굉장히 큰 법력(法力)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가 오늘날 이런 일을 함은 우리가 표면에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며, 나도 머리가 화끈 달아올라서 비로소 나와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당신에게 알려줄 수 있다. 많은 대각자들이 모두 이 일을 주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말법시기 최후 한 차례 정법(正法)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함에 있어서 편차(偏差)가 생기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진정하게 바른 길에서 수련하게 되면 누구도 감히 경솔하게 당신을 건드릴 수 없다. 또한 당신은 나의 법신이 당신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위험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빚진 것은 갚아야 하므로 수련의 길에서 일부 위험한 일들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나타날 경우에 당신은 두렵지 않을 것이며 당신한테 진정한 위험이 나타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일부 예를 들겠다. 내가 북경에서 수련반을 꾸릴 때에 한 수련생이 자전거를 타고 길을 건너는데, 길의 커브에 이르렀을 때에 고급 승용차 한 대가 급커브에서 우리 이 수련생을 부딪혔다. 이 수련생은 50여세 되는 여성이었다. 그 승용차는 단번에 그녀를 부딪혀 놓았는데 아주 세게 부딪혀, '땅'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머리를 박았고 그녀의 머리는 마침 승용차에 부딪히게 되었다. 이때 이 수련생의 발은 아직도 자전거에 걸친 채로 있었으며 머리를 부딪치고서도 도리어 아픈 것을 느끼지 못했다. 아프지 않을 뿐더러 출혈도 하지 않았고 부어난 곳도 없었다. 그 기사는 정말로 겁을 먹고 차에서 뛰어내리자마자 그녀에게 어디 다친 데 없는지요 라고 물어보면서, 우리 병원에 갈 가요? 라고 하였다. 그녀는 괜찮다고 말했다. 물론 우리 이 수련생의 心性(심성)이 아주 높아 다른 사람에게 번거로움을 안기려 하지 않았다. 괜찮다고 말하였지만 그 승용차는 부딪혀 홈이 크게 패어 들어갔다.

이와 같은 일들은 모두 목숨을 빼앗으려 온 것이다. 그러나 위험에 부딪힐 수 없다. 우리가 저번에 길림대학에서 수련반을 열 때에, 한 수련생이 길림대학 정문으로 자전거를 밀고 금방 가운데까지 갔는데 두 승용차가 단번에 그를 가운데 끼워 넣어 당장 부딪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이러한 일들에 부딪혀도 모두 겁나하지 않는다. 그 순간에 차가 멎었으며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다.

북경에 또 이런 한가지 일이 있었다. 겨울은 비교적 일찍이 어두워져 사람들도 잠을 비교적 일찍 잤다. 큰길은 사람이 없이 아주 조용했다. 한 수련생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앞에는 지프 한 대만 달리고 있었다. 달리고 달리던 그 지프가 갑자기 멎었다. 그는 주의하지 않고 머리를 수그린 채로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그러나 그 지프는 또 갑자기 뒤로 뒷걸음질을 쳤는데 급작스레 뒷걸음쳤고 차가 뒷걸음치는 것도 대단히 빨랐다. 이 두 가닥 힘이 한데로 쏠리게 되였는데 그 역시 목숨을 빼앗으려 온 것이다. 막 부딪히려는 그 순간, 한 가닥 힘이 단번에 그의 자전거를 반 미터 넘게 뒤로 잡아당기었고 또한 지프는 곧 그의 자전거 바퀴와 맞대어 급정거를 하였다. 아마 차안의 기사가 뒤에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이 수련생은 당시에 두려움도 없었다. 무릇 이러한 경우에 부딪히게 되면 모두 겁나하지 않는데, 아마 나중에 겁날 것이다. 그는 우선 어이구, 누가 나를 잡아당겨 주었는가, 나는 그에게 감사를 드려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머리를 돌려 감사하다고 말하려고 보니, 큰길에는 한 사람도 없었고 조용하였다. 그는 즉시로 알았다. 스승님이 나를 보호한 것이었구나!

또 한가지는 장춘에서의 일이다. 한 수련생의 집 옆에서는 층집을 짓고 있었다. 지금 층집들은 모두 높게 짓는다. 그 비계(手脚架)는 모두 2촌 굵기의 철관인데 4미터나 길다. 이 수련생이 집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철관 한 대가 그 높은 층집으로부터 수직으로 떨어져 내려왔는데 곧추 그의 머리를 향하여 내리 박히게 되어, 큰길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란 나머지 모두 멍해 있었다. 그는, 누가 나를 치는가? 라고 말했다. 그는 누가 그의 머리를 한 번 툭 치는 것으로만 여겼다. 바로 이 순간 고개를 돌릴 때, 머리 위에 하나의 큰 法輪(법륜)이 빙빙 돌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 한 대의 철관이 그의 머리를 스치며 미끄러져 내려왔다. 미끄러 떨어져 땅에 박힌 채 넘어가지 않았다. 그것이 정말로 사람의 몸에 꼽히게 되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렇게 무거운데 그것은 정말로 아가위 뀀과 같이 단번에 밑바닥까지 꿸 것인즉, 얼마나 위험한가!

이런 유의 일은 너무나도 많아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위험이 나타난 것은 없다. 이런 유의 경우를 꼭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개별적 사람들이 만나게 된다. 만나도 좋고 만나지 않아도 좋고, 당신은 보증하고 어떠한 위험도 생기지 않을 것인즉, 이 한 점을 나는 보증할 수 있다. 어떤 수련생은 그가 心性(심성)의 요구대로 하지 않고 동작만 연마하고 心性(심성)을 수련하지 않는다면 그를 연공인이라고 여길 수 없다.

스승님이 무엇을 좀 주는가 하는 문제를 말하게 되어, 나는 여러분에게 이런 것들을 준다. 나의 법신(法身)은 당신이 스스로 당신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때까지 줄곧 보호해 줄 것이다. 그때에 가서는 당신이 世間法(세간법)의 수련을 벗어나게 되어 당신은 이미 도를 얻었다. 그러나 당신은 반드시 당신 자신을 하나의 진정한 수련인으로 간주해야만 비로소 이 한 점을 해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나의 책을 손에 들고 거리에서 걸어가는 한편, 이스승님의 보호가 있어 자동차에 부딪힌다 해도 무섭지 않다고 고아댄다. 이것은 대법을 파괴하는 것으로서 이런 사람은 보호해 줄 수 없다. 사실 진정하게 수련하는 제자는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에너지마당

우리가 연공할 적에 주위에는 하나의 마당이 생기는데 이 마당은 무슨 마당인가? 어떤 사람은 기의 마당, 자기마당, 전기마당이라고도 한다. 사실 당신이 무슨 마당이라고 불러도 모두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런 마당이 포함한 물질이 극히 풍부하기 때문이다. 우리 우주의 모든 공간을 구성하는 물질이 이 공(功)에 거의 다 들어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에너지마당이라고 함이 비교적 적합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통 그것을 에너지마당이라고 부른다.

그럼 이 마당은 무슨 작용을 하는가? 여러분 알다시피 우리 정법수련을 하는 사람은 일종 이런 감각이 있다. 정법수련을 하여 왔기 때문에 그는 자비(慈悲)를 중시하는 것이며 그는 우주의 眞ㆍ善ㆍ忍특성과 동화된다. 그러므로 우리 수련생들이 이 마당에 앉기만 하면 모두 감수가 있는 즉 사상 속에는 나쁜 생각이 없다. 아울러 우리 많은 수련생은 여기 앉아서 담배 피울 생각마저도 나지 않으며 일종 몹시 상서롭고 화애한 기분을 느끼어 몹시 편안하다. 이것이 바로 정법수련자가 갖고 있는 이런 에너지가 이 마당범위 내에서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장래에 당신이 이 수련반에서 나간 후에 우리 절대 대부분 사람은 다 공이 있게 되며 진정으로 공이 나오게 된다. 내가 당신에게 전수하여 준 것은 정법수련의 것들이기 때문에 당신 자신도 이 心性(심성)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 당신이 끊임없이 연공하고 우리 心性(심성)의 요구에 따라 수련함과 더불어 당신의 에너지는 점차적으로 더욱더 커질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제도하고 남을 제도하며 중생을 제도함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法輪(법륜), 그가 안으로 돌 때는 자신을 제도하고 밖으로 돌 때는 남을 제도할 줄 안다. 밖으로 돌 때는 에너지를 내보내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이득을 보게 한다. 이렇게 되면 당신 에너지마당이 덮인 범위 내에 있는 사람은 모두 이득을 보게 되어 그는 아주 편안한 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당신이 거리에 나가도 좋고 직장이나 집에서도 모두 이러한 일종의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당신 마당의 범위 내의 사람을 당신은 무의식중에 그의 신체를 조절하여 주게 되는데 이런 마당은 일체 부정확한 상태를 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신체는 마땅히 병이 있지 말아야 한다. 병이 있다는 것이 바로 부정확한 상태에 속한다. 그는 이런 부정확한 상태를 시정할 수 있다. 나쁜 사상이 있는 사람이 부정확한 것을 생각할 때에 당신 마당의 강렬한 작용 하에서 그의 사상도 개변을 가져오게 되어, 그는 당시에 나쁜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마 어떤 사람이 사람을 욕하려고 생각했다가 갑자기 사상을 개변하여 욕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정법수련을 하는 에너지마당만이 비로소 이러한 일종의 작용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전에 불교 중에는 이런 한 마디 말이 있다. '불광이 널리 비추거니 예의가 원명하고도 밝도다(佛光普照, 禮義圓明)'라고 하는데, 바로 이 뜻이다.

法輪大法 수련생은 어떻게 공(功)을 전하는가

우리 많은 수련생들이 돌아간 후, 공법이 아주 좋다고 생각하여 친척과 친우에게 전하려고 생각한다. 좋다. 당신은 전할 수 있으며 누구에게 전해주어도 다 된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성명(聲名)한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많은 것을 주었는데 가치로는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왜 여러분에게 주는가? 당신더러 수련하라는 것이다. 오로지 수련을 해야 만이 당신에게 이런 것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서, 당신들이 장래에 공을 전할 때에도 이런 것으로 명예를 추구하거나,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당신은 나처럼 이렇게 수련반을 열고 비용을 받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책을 찍어야 하고 자료를 찍어야 하며 곳곳에서 공을 전수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수요된다. 우리가 비용을 받음은 전국적으로 이미 가장 낮지만 우리가 주는 것은 가장 많다. 우리는 진정하게 고층차에로 사람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이 점은 여러분이 자체로 체험이 있을 것이다. 하나의 法輪大法(법륜대법) 수련생으로서 당신이 장래에 공을 전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당신에게 두 가지 요구가 있다.

첫 번째 요구는, 비용을 받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렇게 많은 것을 당신에게 줌은 당신이 돈을 벌고 명예를 추구하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을 제도하기 위함이며 당신더러 수련하라고 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당신이 비용을 받는다면 나의 법신이 당신 몸에 있는 모든 것들을 전부 다 회수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당신은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의 사람이 아니며 당신이 전한 것도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가 아니다. 당신들이 공을 전할 때 명예를 추구하지 말며 이익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며 의무적으로 여러분을 위하여 봉사하여야 한다. 우리 전국 각지의 수련생은 모두 이렇게 하고 있고 각지의 보도원(輔導員) 역시 모두 이렇게 이신작칙(以身作則) 하고 있다. 우리의 공을 배우려 옴에 있어서 오로지 당신이 배우고자 한다면 당신이 와서 배우면 된다. 우리는 당신을 책임질 수 있으며 돈 한푼도 받지 않는다.

두 번째 요구는, 대법에 개인적인 것을 섞어넣지 말아야 한다. 공을 전하는 과정 중에 당신의 천목이 열렸어도 좋고, 당신이 무엇을 보아도 좋고, 어떤 공능이 나와도 좋은데 당신은 당신이 본 그 상황으로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당신의 그 층차에서 본 고만한 일은 아직 차이가 멀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법의 진정한 함의와는 차이가 너무나도 멀다. 그러므로 앞으로 당신이 공을 전할 때 이 일을 절대 주의해야 한다. 이래야 만이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의 고유한 것이 변치 않게끔 담보할 수 있다.

또한 나처럼 이런 형식으로 공을 전함을 허용하지 않으며 나처럼 대보고의 형식을 취하여 설법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당신은 법을 이야기할 수 없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의의가 아주 심원(深遠)한 것으로서 고층차의 것을 결부하여 이야기한 것이다. 당신은 부동한 층차에서 수련하기 때문에 장래 당신이 제고된 후, 당신이 돌아가 이 녹음을 듣게 되면 당신은 끊임없이 제고된다. 당신이 끊임없이 들을수록 당신은 줄곧 새로운 체득과 새로운 수확이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 더욱 이러하다. 나의 이러한 이야기는 아주 높고 깊은 것을 결부하여 한 말이기 때문에 당신은 이 법을 이야기할 수 없다. 당신이 나의 원래의 말을 자신의 말로 삼아 이야기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바로 법을 훔치는 행위이다. 당신은 다만 나의 원래 말로 이야기하면서, 스승님은 어떻게 이야기했으며 책에서는 어떻게 썼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다만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무엇 때문인가. 당신이 이렇게 말함으로써 대법의 힘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당신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일을 法輪大法(법륜대법)로 간주하여 전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전한 것은 法輪大法(법륜대법)가 아니며 당신은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 당신이 당신의 생각에 따라, 당신의 사상에 따라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법이 아니며 사람을 제도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작용도 일으킬 수 없다. 그러므로 누구도 이 법을 이야기할 수 없다.

당신들이 공을 전하는 방법은, 바로 연공장(煉功点)에서나 또는 공을 전수하는 마당에서 수련생들에게 녹음, 비디오를 시청하게 하며 그런 후에 보도원(輔導員)이 그들에게 연공을 가르칠 수 있다. 좌담회라는 이런 형식에 따라 여러분이 서로 의논하고 서로 담론하며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으로, 우리는 이렇게 할 것을 요구한다. 동시에 法輪大法(법륜대법)을 전파하는 수련생(제자)을 스승님, 대사님 등으로 부르지 못한다. 대법 사부님은 오로지 하나이다. 입문(入門)에는 선후를 가리지 않고 모두 제자이다.

당신들이 공을 전할 때 어떤 사람은 아마 생각할 것이다. 스승님은 法輪(법륜)을 넣어줄 수 있고 사람들의 신체를 조절시켜 줄 수 있지만 우리는 못하지 않는가. 괜찮다.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이야기하였다. 개개 수련생의 몸 뒤에는 모두 나의 법신(法身)이 있으며 또 하나 뿐만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의 법신은 이런 일들을 할 줄 안다. 당신이 그를 가르쳐 줄 때, 만약 그가 연분(緣分)이 있으면 그 즉시로 法輪(법륜)을 얻게 된다. 만약 연분이 조금 부족하다면 신체의 조절을 거쳐 연공한 후에 점차적으로 얻을 수 있으며 나의 법신이 그를 도와 신체를 조절해 줄 수 있다. 이런 것뿐이 아니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준다. 나의 책을 보고 나의 비디오를 보거나 또는 나의 녹음을 듣고 법을 배우며 공을 배워, 진정하게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한다면 모두 마땅히 얻어야 할 이런 것들을 마찬가지로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수련생들이 다른 사람의 병을 치료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法輪大法(법륜대법)의 수련생이 다른 사람에게 병을 치료해 주는 것을 절대로 금지한다. 우리는 당신을 위로 수련하게끔 가르쳤고 당신으로 하여금 어떠한 집착심도 일지 않게끔 했으며 당신 자신이 자신의 신체를 망쳐버리지 못하게끔 하였다. 우리의 연공마당은 기타 어떤 공법의 연공마당에 비해 다 좋으며 우리의 그 마당은 오로지 당신이 가서 연공하기만 하면 당신이 병을 조리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나의 법신(法身)들이 빙 둘러앉았고 연공마당 하늘에는 또 갓이 있으며 위에는 큰 法輪(법륜)이 있고 큰 법신(法身)이 갓 위에서 마당을 지키고 있다. 그 마당은 일반적인 마당이 아니며 일반적으로 연공하는 그런 마당이 아니라 수련하는 마당이다. 우리 공능이 있는 많은 사람들은 모두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의 이 마당이 붉은 빛으로 씌워졌고 온통 붉은 것을 보았다.

나의 법신도 직접 法輪(법륜)을 넣어 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집착심을 키워주지 않는다. 당신이 그에게 동작을 가르칠 때에 그가 어이구, 나한테도 法輪(법륜)이 있구나 라고 하게 된다. 당신은 자신이 넣어준 것이라고 인정할 것인데 이건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이 집착심을 키우지 말아야 한다. 모두 나의 법신이 하고 있다.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 제자는 바로 이렇게 공을 전해야 한다.

누가 만약 法輪大法(법륜대법) 중의 공법을 고친다면 그는 바로 대법을 파괴하며 이 법문을 파괴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공법을 순구류(順口溜)로 만들었는데 이것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 진정한 수련방법은 모두 사전시기(史前時期)로부터 남겨 온 것이며 무척 멀고도 오랜 연대를 거쳐 남겨 온 것으로서, 무수한 대각자들을 수련해냈다. 그 누구도 감히 이것을 다치지 못하였는데 이 역시 우리 이 말법시기에 이르러 이러한 일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역사상 이러한 일이 모두 나타날 수 없는 것으로, 여러분은 이 점을 절대 주의해야 한다.


제 4 강 의


실(失)과 득(得)

수련계에서 늘 실과 득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고 속인 속에서도 실과 득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연공인은 실과 득을 어떻게 대하는가? 이것은 속인과 다르다. 속인이 얻으려 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이며 어떻게 잘 살고 편안히 살겠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연공인은 오히려 이런 것이 아니라 그와 마침 반대로서, 우리는 속인이 얻고자 하는 것을 추구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가 얻는 것은 속인이 수련을 하지 않고서는 얻으려 해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실(失)은 역시 아주 작은 범위 내의 잃음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잃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그것은 돈이라든가 재물을 좀 시주하고 누가 곤란하면 좀 도와주고 거리에서 거지를 보면 돈을 좀 주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 이 역시 일종의 버림이고 역시 일종의 잃음이다. 하지만 이것은 다만 이 하나의 문제에서 금전을 대하거나 또는 물질적으로 좀 담담하게 여긴 것뿐이다. 재물에 대한 포기도 물론 한 면이며 역시 비교적 주요한 한 면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야기하는 실(失)은 이런 작은 범위가 아니다. 우리 사람이 수련과정 중에서 하나의 연공하는 사람으로서 버려야 할 마음이 너무나도 많다. 과시심·질투심·쟁투심·환희심·많고 많은 각종 집착심, 그것을 모두 다 제거해야 한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실(失)은 하나의 광의적인 것으로, 전반 수련과정 중에서 속인이 갖고 있는 그런 집착과 각종 욕망을 마땅히 잃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아마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속인 중에서 수련하는데 모두 잃어버린다면 이것은 스님과 같지 않는가? 비구니와 같지 않는가? 다 잃는다면 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 이 한 법문, 속인 중에서 수련하는 이 한 부분은 속인사회에서 수련하며 최대 한도로 속인과 같게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지, 물질 이익에서 당신더러 그 무슨 것을 정말로 잃으라는 것이 아니다. 설령 당신이 얼마나 큰 벼슬을 하든지, 또 설령 당신이 얼마나 큰 재산이 있든지, 당신이 그러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없는가가 관건이다.

우리 이 한 법문은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 것(直指人心)으로서 개인 이익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 속에서 이러한 문제를 담담하게 보고 경하게 볼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이것이 관건 문제이다. 절에서의 수련과 심산 밀림에서의 수련은 당신으로 하여금 속인사회와 완전히 격리시키고 강제적으로 당신으로 하여금 속인 중의 이 마음을 잃게 한다. 물질 이익에서 당신으로 하여금 얻지 못하게 하고 당신으로 하여금 잃게끔 한다. 속인 중에서 수련하는 사람은 이렇게 가는 것이 아니라, 속인의 이런 생활상태 속에서 그것들을 어떻게 담담히 보아야 하는가를 요구한다. 물론 이것은 아주 어려운 것으로 이 역시 우리 이 한 법문의 가장 관건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는 잃음이란 곧 하나의 광의적인 것이요, 아주 협소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좋은 일을 하고 돈과 재물을 좀 시주해야 함을 이야기하는데 당신이 보라. 지금 거리의 거지를. 어떤 사람은 직업적인 거지로서 그는 당신보다도 돈이 더 있다. 우리는 큰 면에 착안해야지 작은 면에 착안하는 것이 아니다. 수련인만큼 마땅히 정정당당하게 큰 면에 착안하여 수련하여야 한다. 우리는 잃는 과정 중에서 우리가 진정하게 잃을 것은 바로 그런 좋지 못한 것들이다.

사람은 흔히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것은 모두 좋은 것이라고 여긴다. 사실 고층차에서 볼 때 모두 속인 중의 이미 얻은 고만한 이익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종교에서 말하기를, 당신이 돈이 아무리 많고 벼슬이 아무리 크다 해도 몇십 년이라, 태어날 때 갖고 오지 못하며 죽어서 갖고 가지 못한다고 한다. 이 공은 왜 이렇게 진귀한가? 바로 그가 직접 당신의 元神(원신) 몸에 자라기 때문에, 태어날 때 갖고 올 수 있으며 죽어서 갖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가 직접 당신의 과위(果位)를 결정하기 때문에 수련하기가 어렵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버리는 것은 좋지 못한 것들인데 이래야 만이 당신은 비로소 반본귀진할 수 있다. 얻게 되는 그것은 무엇인가? 바로 층차의 제고이며 최후에 정과를 얻어 공성원만(功成圓滿)하는 것이라, 해결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이다. 물론 우리들이 속인의 각종 욕망을 잃고 진정한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하지만 단번에 이 점에 도달하기는 아직 그리 쉽지 않은즉, 천천히 해야 한다. 당신은 내가 천천히 하라는 말을 듣고 당신은, 스승님이 천천히 하라고 했는데 그럼 천천히 하자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안 된다! 당신은 자신에 대해 엄격한 요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이 천천히 제고함을 허용한다. 오늘 당신이 단번에 하였다면 오늘 당신은 부처이다. 그러므로 역시 현실적이 못되기에 당신은 천천히 이 점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실질적으로 좋지 못한 것인데 무엇인가? 바로 업력이다. 그는 사람의 각종 마음과 서로 보완되고 완성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속인은 각종 좋지 못한 마음이 있으며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각종 좋지 못한 일을 하였기 때문에 이런 흑색물질 --- 업력을 얻게 된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이 좋지 못한 것을 제거해 버리려면 우선 당신의 이 하나의 마음부터 돌려세워야 한다.

업력(業力)의 전화

백색물질과 흑색물질 사이에는 일종 전화(轉化) 과정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모순이 발생한 후, 그는 하나의 전화과정이 있다. 좋은 일을 하게 되면 백색물질 --- 德(덕)을 얻게 되고 나쁜 일을 하게 되면 흑색물질 --- 업력을 얻게 된다. 또 하나의 물려받고 이어주는 과정이 있는데 전반생(前半生)에서 좋지 못한 일을 한 것이 아닌가? 고 어떤 사람은 말한다. 꼭 다 이런 것도 아니다. 사람이 업력을 쌓은 것도 이 일생일세(一生一世)의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련계에서 元神(원신)은 불멸(不滅)이라고 한다. 만약 元神(원신)이 불멸이라면 그는 아마 그의 생전 사회활동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생전의 활동 중에서 아마 누구에게 빚을 졌거나 누구를 얕잡아 보았거나 또는 다른 좋지 못한 일들을 하였거나, 살생 등등을 했을 것인즉, 그렇다면 바로 이런 업력을 조성하게 된다. 이런 것들은 다른 공간에서 그는 아래로 내리 쌓이며 늘 갖고 있게 되는데, 백색물질도 마찬가지로서 이 한가지 내원(來源)만이 아니다. 또 한 가지 경우가 있다. 가족 중에서 조상으로부터도 아래로 내리 쌓일 수 있다. 과거에 노인들은 이런 한 마디 말을 하였다. 덕을 쌓아라, 덕을 쌓아라, 조상에서 덕을 쌓아라, 이 사람은 덕을 잃는다, 덕을 해치고 있다, 라고 한다. 그 말은 다 아주 맞게 하였다. 지금의 속인은 이미 이 말이 귀에 들어가지 않는다. 당신이 그 젊은이들과 덕이 없다, 덕이 적다를 말하게 되면 그는 아예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사실 그의 의의는 확실히 아주 깊은 것으로 그는 다만 근대인의 사상과 정신표준만이 아닌 진정한 물질존재로서, 우리 사람의 신체에는 이 두 가지 물질이 다 있다.

어떤 사람은, 흑색물질이 많게 되면 고층차에로 수련을 할 수 없지 않는가? 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흑색물질이 많은 사람은 그것이 오성(悟性)을 영향주게 된다. 그것이 당신 신체주위에 하나의 마당을 형성하기 때문에 바로 그 속에 당신을 둘러싸고 있어, 우주의 眞ㆍ善ㆍ忍 특성과 격리되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의 오성(悟性)은 가능하게 차할 수 있다. 남들이 수련이요, 기공이요 하면 그는 일률로 미신으로 여기며 아예 믿지 않고 그는 가소롭다고 생각한다. 흔히 이러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이 사람이 수련하려고 한다면 아주 어려우며 높은 공이 자랄 수 없지 않는가? 또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대법은 끝없는 것으로서 전적으로 당신의 이 마음에 의하여 수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부가 문으로 이끌어 들였으나 수행은 개인에 달린 것이라, 전적으로 당신 자신이 어떻게 수련하는가에 달렸다.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 가 하는 것도 전적으로 당신이 견뎌 낼 수 있는가 없는가,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가 없는가, 고생을 겪을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렸다. 만약 마음을 굳게 먹는다면 어떤 곤란도 가로막지 못할 것인즉, 그럼 문제가 없다고 나는 말한다.

흑색물질이 많은 사람은 흔히 백색물질이 많은 사람보다 대가를 많이 지불해야 한다. 백색물질은 직접 우주의 眞ㆍ善ㆍ忍 특성과 동화되기 때문에 오로지 그의 心性(심성)이 제고되어 올라오고 모순 속에서 능히 자신을 제고한다면 그는 공이 자랄 수 있는데 바로 이렇게 통쾌하다. 德(덕)이 많은 사람은 오성이 높고 또한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바, 신체적으로는 고통을 받고 마음으로는 시달림을 받아, 신체 면에서 좀 더 감당하거나 정신적으로 좀 적게 감당하여도 모두 공이 자랄 수 있다. 흑색물질이 많은 사람은 안 되는바, 반드시 먼저 이러한 하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우선 흑색물질을 백색물질로 전화하는 바로 이런 하나의 과정으로서 역시 극히 고통스럽다. 때문에 흔히 오성(悟性)이 좋지 못한 사람은 고통을 더 겪어야 하며 업력이 크고 오성이 차하면 그는 수련하기가 더욱 어렵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당신은 그가 어떻게 수련하는가를 보라. 선정(禪定) 중의 수련은 장기간 다리를 틀게 되는데, 다리를 틀면 다리가 아프고도 저리며 시간이 길어지면 마음이 소란스러워지고 소란하기가 대단하다. 신체적으로는 고통을 받고 마음으론 시달림을 받아, 신체는 불편하고 마음도 불편하다. 어떤 사람은 다리를 틀고 아픈 것이 두려워서 내려놓으며 견지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다리를 튼 시간이 조금만 길어도 견뎌내지 못한다. 일단 다리를 내려놓으면 연마는 헛된다. 다리를 틀어 다리가 아프기만 하면 얼른 좀 움직인 다음 다시 다리를 트는데, 우리가 볼 때 이렇게 하면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의 다리가 아플 때 우리는 흑색물질이 그의 다리에로 몰키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흑색물질은 바로 업력으로서 고통을 겪으면 곧 소업(消業)할 수 있어 이로써 德(덕)으로 전화된다. 아프기만 하면 그 업력은 아래로 제거되는데, 업력이 아래로 내리 누를수록 그의 다리는 더욱더 심하게 아프다. 때문에 그의 다리가 아픔은 아무런 연고가 없는 것이 아니다. 흔히 가부좌한 사람의 다리가 아픈 것은 진통이라, 한동안 아플 때면 특별히 아프지만 지나간 후에는 좀 완화되었다가 이윽고 또 아프기 시작하는데 흔히 이러하다.

업력은 한 덩이 한 덩이씩 소실되기 때문에 한 덩이가 소실되어 내려가면 다리는 좀 편해지고 잠시 후에 또 한 덩이가 나오면 또 아프기 시작한다. 흑색물질은 소실된 후에 흩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물질 역시 불멸하는 것이라 소실된 후에 직접 백색물질로 전화되는데 이 백색물질이 바로 德(덕)이다. 왜 그는 이렇게 전화될 수 있는가? 그가 고생을 겪었고 그 자신이 대가를 지불하였으며 그가 고통을 감당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德(덕)은 바로 자신이 고통을 감당하고 고생을 겪으며 좋은 일을 하여 얻어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좌선 중에서 이런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다리가 조금 아프기만 하면 훌쩍 뛰어내려서는 좀 움직이고 다시 틀어 올리는데, 전혀 작용을 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참장(站?)을 할 때 팔을 들어서 지치면 견뎌내지 못하고 내려놓는데, 전혀 작용을 하지 못한다. 요만한 고통이 다 무엇인가? 나는, 사람들이 연공함에 있어서 이처럼 팔을 쳐들어서 수련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너무나도 쉽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선정(禪定) 중의 수련에서 나타난 상황이다.

우리 이 한 법문은 주로 또 이렇게 걷는 것이 아니지만, 일부분은 이런 면에서 작용하고 있다. 우리 대다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心性(심성)마찰 속에서 업력을 전화하며 흔히 그 중에서 체현되고 있다. 사람은 모순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런 마찰 속에서, 심지어 그런 고통을 능가한다. 나는, 신체적인 고통은 감당하기가 가장 쉬우며 이를 악물기만 하면 넘길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 지간의 아귀다툼을 할 때의 그 마음은 파악하기가 가장 어렵다.

예를 든다면 이런 한 사람이 있었다. 출근하자마자 두 사람이 그에 대해 험담하는 것을 들었는데 아주 듣기 거북하게 말하자 화가 발끈 치밀었다. 그러나 우리는 일개 연공인으로서, 때려도 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으며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는 생각했다. 우리 연공인은 다른 사람과 같지 않아야 하며 높은 자태여야 한다고 스승님이 가르쳐 주었다. 그는 그 두 사람과 다투지 않았다. 그러나 모순이 생길 때 흔히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를 가져오지 못한다. 때문에 마음속으로 내려놓지 못하므로 고민에 빠져 아마 사람의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바, 그에 대해 험담을 하는 그 둘의 형상을 자꾸 되돌아보고자 한다. 되돌아보니 그 두 사람은 흉한 얼굴 표정에 한창 흥이 나서 말하고 있었다. 그는 단번에 참지 못하고 화가 치밀어 아마 당장 그들과 맞설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모순이 발생할 때 그 마음을 파악하기가 아주 어렵다. 나는 모두 가부좌 중에서 지난다면 그래도 쉽겠지만 늘 이럴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연공 중에서 당신은 여러 가지 시달림(磨難)에 부딪힐 수 있다. 이런 시달림이 없이 당신이 어떻게 수련을 하겠는가? 여러 사람들이 모두 너 좋고 나도 좋고 이익에서의 충돌이 없으며 인심의 교란이 없는데, 당신이 거기에 앉아 있기만 하면 心性(심성)이 제고되어 올라온단 말인가? 그것은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은 실천 중에서 진정하게 자신을 단련(磨煉)하여야만 비로소 제고되어 올라올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연공하는데 왜 늘 번거로운 일에 부딪히게 되는가? 속인 중의 번거로운 일과 비슷하다 라고 말한다. 당신이 속인 중에서 수련하기 때문에 그는 갑자기 당신을 머리가 아래로 드리우게, 거기에 둥둥 뜨게 걸어 놓고, 당신을 하늘에 보내어 고생을 겪게끔 할 수 없으며 그는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 속인 중의 상태로서 오늘 누가 당신을 건드렸거나, 누가 당신을 화나게 만들었거나, 누가 당신을 언짢게 대한다던가, 갑자기 당신에게 거친 어투로 걸고드는데, 당신이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본다.

왜 이러한 문제에 부딪히게 되는가? 모두 당신 자신이 빚진 업력이 조성한 것인데 우리는 당신에게 이미 무수하고도 무수한 몫을 없애주었다. 다만 얼마 남지 않은 고만한 것을 각개 층차 중에 나누어 놓았다. 당신의 心性(심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일부는 사람의 마음을 단련(磨煉)하고 각종 집착심을 제거하는 시달림으로 배치해 놓았다. 이것은 모두 당신 자신의 난(難)으로서 우리는 당신의 心性(심성)을 높이기 위하여 그것을 이용하였으며 당신으로 하여금 모두 넘기게끔 한다. 오로지 당신이 心性(심성)을 제고하면 꼭 넘을 수 있는데, 당신 자신이 넘으려 하지 않을까봐 걱정이지, 넘으려 한다면 꼭 넘을 수 있다. 때문에 앞으로 모순이 생겼을 때 당신은 그것을 우연한 것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모순이 생길 때 갑자기 나타나지만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당신의 心性(심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당신이 오로지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잘 처리할 수 있다.

물론 난(難)과 모순이 오기 전에 당신에게 알려줄 수 없으며 모두 알려준다면 당신은 또 무엇을 수련하겠는가? 그것 역시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것이 흔히 갑자기 나타나야 비로소 사람의 心性(심성)을 검증할 수 있으며, 비로소 사람의 心性(심성)으로 하여금 진정한 제고를 가져오게 하고, 心性(심성)을 지킬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며, 이렇게 하여야만 비로소 보아낼 수 있다. 그러므로 모순이 오는 것은 우연한 존재가 아니다. 전반 수련과정 중에 업력의 전화에서 이러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일반 사람들이 상상하는 신체적으로 고통을 받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것이다. 당신이 연공함에 있어서 좀 더 연마하였고 손이 시큼하도록 들었거나 또는 혹은 다리가 지치도록 서있었는데 이렇다고 공이 자라는 것인가, 당신이 몇 시간 더 많이 연마하면 공이 자라는가? 그는 다만 本體(본체)를 전화하는 작용을 할 따름이다. 하지만 여전히 에너지의 가지(加持)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은 층차를 높이는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마음으로 시달림을 받는 것만이 진정하게 층차를 제고하는 관건이다. 신체적으로 고통을 받아 제고된다고 말한다면, 중국 농민은 가장 고생스러운데 마땅히 다 대기공사여야 하지 않는가? 라고 나는 말한다. 당신이 아무리 신체적인 고통을 받는다 해도 그보다는 못하다. 날마다 내리쪼이는 해를 머리에 이고 일을 하는데 고생스럽고도 힘든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야기하였다. 진정하게 제고하려면 곧 진정하게 이 마음의 제고를 가져오게끔 해야 만이 비로소 진정하게 제고할 수 있다.

업력이 전화되는 과정 중에서 자신으로 하여금 파악할 수 있고 속인처럼 일을 그릇되게 하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평상시에 하나의 자비로운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하고 상서롭고 화애한 심태를 유지해야 한다. 갑자기 무슨 문제에 부딪혔을 경우 당신은 그것을 잘 처리할 수 있다. 흔히 당신의 마음이 늘 그처럼 자상자비(慈祥慈悲)하다면 갑자기 문제가 나타났을 경우에 당신은 하나의 완충적 여지가 있으며 사고할 여지가 있게 된다. 마음속으로부터 늘 다른 사람과 다투고 싸우려고 생각한다면, 문제에 부딪히기만 하면 당신은 남과 맞서 싸울 것이다 라고 나는 말한다. 보증하고 이러하다. 그러므로 당신이 어떤 모순에 부딪힘은 바로 당신 자체의 흑색물질이 백색물질로 전화(轉化)되며 德(덕)으로 전화되게끔 하는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우리 인류가 오늘날 이런 하나의 정도에로 발전하기까지는, 거의 사람마다 모두 업이 굴고 굴러서 온 것이므로 사람들의 몸에 모두 무척 큰 업력을 갖고 있다. 때문에 흔히 업력의 전화 문제에서 이런 경우가 나타나게 된다. 당신은 공이 자라는 동시에, 心性(심성)이 높아지는 동시에, 당신의 업력 역시 동시에 제거되며 동시에 전화된다. 모순에 부딪히게 될 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心性(심성)의 단련(磨煉) 속에서 표현될 수 있다. 당신이 참아 낼 수 있다면 당신의 업력도 제거되고 당신의 心性(심성)도 높아지며 당신의 공도 자라게 되는바, 그것은 한데로 융합되기 마련이다. 과거의 사람들은 德(덕)이 컸고 그의 心性(심성)이 본래부터 높기에 고생을 좀 겪기만 하면 공이 자랄 수 있었다. 지금의 사람은 이렇지 않다. 고생을 좀 하면 수련을 하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욱더 깨우치지 않아 수련하기가 더욱 어렵다.

수련 중에서 구체적으로 모순을 대할 때, 다른 사람이 당신을 좋지 않게 대할 때, 아마 두 가지 경우가 존재할 것이다. 하나는 당신이 생전에 남을 잘 대해주지 않은 적이 있을 수 있는데 당신 자신이 심리적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라고 할 것이다. 그럼 당신은 왜 예전에 남을 그렇게 대하였는가? 당신은, 당신이 그때의 일을 모르고, 이 한평생에 그 한평생의 일을 관계하지 않는다고 말하겠지만, 그건 안 된다.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모순 속에 하나의 업력전화 문제가 관련되기 때문에 우리는 구체적으로 대할 때 마땅히 높은 자태여야 하며 속인과 같아서는 안 된다. 직장에서나 기타 사업환경에서도 마찬가지이고 개인 업체를 꾸려도 역시 마찬가지로서,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제가 있기 마련인지라 사회와 접촉하지 않을 수 없고 적어도 또 이웃 사이에 관계가 있게 된다.

사회교제 중에서 여러 가지 모순을 다 만날 수 있다. 우리 속인이 수련하는 이 부분은, 당신이 돈이 얼마나 있고 얼마나 큰 벼슬을 하든지, 당신이 개인업체 경영을 하고 회사를 꾸리며 무슨 장사를 하든지를 막론하고 모두 관계없이, 공평하게 거래하고 마음을 똑바로 잡아야 한다. 인류사회의 각 업종은 마땅히 모두 존재해야 하는 것으로 사람의 마음이 똑바르지 않음이 문제이지, 무슨 직업에 종사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다. 예전에는 무슨 "장사꾼 열이면 아홉은 간상배"라는 설이 있는데, 이것은 속인들이 한 이야기로서, 그것은 사람의 마음 문제라고 나는 말한다. 사람들이 다 마음을 똑바로 잡고 공평하게 거래해야 한다. 당신이 대가를 많이 치렀으면 마땅히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그것 역시 속인 속에서 당신이 대가를 치러서 얻은 것이다.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함이라, 노동소득이다. 여러 가지 계층에서 모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즉, 부동한 계층에는 부동한 모순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높은 계층에는 높은 계층에서의 모순 형식이 있기 때문에 모두 모순을 정확하게 대할 수 있으며 어느 계층에서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든지 각종 욕망, 집착심을 모두 담담하게 내려놓을 수 있다. 부동한 계층에서 모두 좋은 사람으로 체현될 수 있으며 자신이 있는 계층에서 모두 수련할 수 있다.

지금 국내의 국영기업 또는 기타 기업을 막론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은 극히 특수하다. 기타 나라에서나 역사에 여태껏 없었던 한가지 현상이다. 그러므로 이익에서 모순이 특별히 첨예하며 옥신각신하면서 조그마한 이득을 위하여 다투고 싸우며, 발산하는 사상, 써먹는 수단은 다 아주 나빠서 좋은 사람이 되기도 아주 어렵다. 예를 들어 이 사람이 직장에 출근하여 직장 내의 기분이 이상한 것을 느끼게 된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그에게 누구누구가 당신에 대한 말을 엄청나게 퍼뜨렸고 상사에게 당신을 고발하여 당신을 아주 납작하게 만들었다고 알려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상한 눈길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 일반 사람은 이런 것을 견뎌 낼 수 있는가? 어찌 이런 화를 참아 낼 수 있는가? 그가 나를 헐뜯는다면 나도 그를 가만두지 않겠다. 그가 사람이 있으면 나도 사람이 있는데 우리 맞서 보자. 속인 중에서 이렇게 했다면 속인들은 당신을 강자(强者)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일개 연공인으로서 이렇게 한다면 그건 한심하기 그지없다. 당신이 속인과 마찬가지로 다투고 싸운다면 당신은 곧 속인이며 당신이 그보다 더한다면 당신은 그 속인보다도 못하다.

우리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이런 모순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우선 마땅히 냉정해야 하며 그와 마찬가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우리는 선의(善意)로 해석할 수 있으며 사정에 대하여 똑똑히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 관계가 없다. 그러나 당신이 너무 집착해도 안 된다. 만약 우리가 이런 번거로움에 부딪혔다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다투고 싸우지 말아야 한다. 그가 이렇게 한다 하여 당신도 이렇게 한다면 당신도 속인이 아니고 무엇인가? 당신은 그와 마찬가지로 다투고 싸우지 말아야 할 뿐더러 당신은 마음속으로 또 그를 미워해서도 안되며 정말 그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그를 미워하면 당신은 화를 낸 것이 아닌가? 당신은 참아내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眞ㆍ善ㆍ忍을 이야기하므로 당신의 선(善)은 더욱 없다. 때문에 당신은 그와 같아서는 안되며 당신은 정말로 그로 인하여 화를 내서는 안 된다. 그가 당신을 아래위로 납작하게 만들어 고개를 쳐들 수 없다는 것만 보지 말라. 당신은 그에게 화를 내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부터 그에게 또 감사를 드려야 하며 정말 그에게 감사를 드려야 한다. 속인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Q가 아닌가?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바, 이런 일이 아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은 연공인으로서 높은 표준으로 당신을 요구해야 하지 않는가? 속인의 그 이치로 당신을 요구할 수는 없지 않는가. 당신은 수련인으로서 당신이 얻게 되는 것은 고층차의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고층차의 이치로 당신을 요구해야 한다. 당신이 그와 마찬가지로 한다면 당신도 그와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러면 무엇 때문에 그에게 또 감사를 드려야 하는가? 당신이 생각해 보라, 당신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이 우주에는 하나의 이치가 있는바, 잃지 않는 자는 얻지 못하며 얻으려면 곧 잃어야 한다고 한다. 그가 속인 중에서 당신을 납작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가지게 된 일방으로서 그가 득을 보게 된다. 그가 당신을 더 납작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소문을 퍼뜨리면 퍼뜨릴수록 당신 자신은 더욱 크게 감당하게 되며 그가 잃는 德(덕)은 더욱 많게 되는데, 이런 德(덕)을 모두 당신에게 준다. 동시에 당신 자신이 감당할 때에 당신은 아마 마음을 아주 담담하게 내려놓아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을 것이다.

이 우주에는 또 하나의 이치가 있다. 당신이 아주 큰 고통을 감당하였기 때문에 당신 자신의 업력도 전화를 가져오게 된다. 당신이 대가를 치렀기 때문에 얼마나 크게 감당했으면 얼마나 크게 전화되어 모두 德(덕)으로 변하게 된다. 연공인은 바로 이 德(덕)을 가지려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양득이 아닌가. 업력도 제거했다. 만일 그가 당신에게 이러한 하나의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았다면 당신은 어디에 가서 心性(심성)을 높이겠는가? 너 좋고 나도 좋아 모두 화기애애하게 거기 앉아 있어도 공이 자란다면 어디 그런 일이 있는가? 바로 그가 당신에게 이런 하나의 모순을 만들어 주어 心性(심성)을 제고할 이런 하나의 기회가 생겼기 때문에 당신은 거기에서 자신의 心性(심성)을 높일 수 있게 되어 당신의 이 心性(심성)이 높아진 것이 아닌가? 삼득(三得)이다. 당신은 연공인으로서 당신의 心性(심성)이 올라오게 되면 당신의 공도 올라오게 된 것이 아닌가? 일거사득(一擧四得)이다. 당신은 어찌 그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있는가? 당신은 마음속으로부터 정말 그에게 감사를 드려야 하는 즉, 확실히 이렇다.

물론 그가 내보내는 마음은 좋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당신에게 德(덕)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당신에게 心性(심성)을 높이는 한 차례의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즉 말해서 우리는 心性(심성)수련을 반드시 중히 여겨야 한다. 心性(심성)수련을 하는 동시에 업력을 없애버려 德(덕)으로 전화시켜야만 당신은 비로소 층차를 높일 수 있는데 이것은 서로 보완하고 완성하는 것이다. 고층차에서 볼 때 이 이치까지 모두 변화를 발생하였다. 속인은 그가 이 일을 보아내지 못하는데 당신이 고층차에 이르러 이 이치를 보게 된다면 전체가 모두 변화를 발생하게 된다. 속인 중에서 당신이 이 이치를 볼 때 맞다고 여겨지지만, 그가 정말로 맞는 것이 아니다. 고층차에서 보아야만 진정하게 맞는 것이며 종종 이러하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치를 투철히 이야기하였다. 희망하건대 앞으로의 수련 가운데서 여러분은 자신을 하나의 연공인으로 간주하고 진정하게 수련하기를 바란다. 이 이치가 여기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아마 어떤 사람은 그가 속인 속에 있기 때문에 속인의 이 확실하고도 확실한 물질이익이 여기에 놓여 있는데, 아직도 이것이 실익이라고 여긴다. 속인의 거센 흐름 속에서 그는 아직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은 속인 중의 일개 좋은 사람으로 되려면 영웅모범인물을 본보기로 하여야 하지만 그것은 속인 중의 본보기이다. 당신이 일개 수련자로 되고자 한다면, 전적으로 당신 자신의 그 하나의 마음으로 닦아야 하며 전적으로 당신 자신이 깨우쳐야 하는바 본보기가 없다. 다행히 오늘날 우리는 대법을 내놓게 되었다. 예전에는 당신이 수련하고자 하여도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되어 당신이 대법에 따라 한다면 좀 잘할 수 있다.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가, 될 수 있는가 없는가, 어느 층차에까지 돌파할 수 있는가는 전적으로 당신 자신에게 달렸다.

물론 업력의 전화형식도 내가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완전히 그런 것은 아니며 기타 면에서도 표현될 수 있다. 사회적으로나 가정에서 모두 나타날 수 있다. 거리에서 다니거나 또는 기타 사회환경 속에서도 번거로운 일에 부딪힐 수 있다. 속인 속에서 내려놓지 못할 마음을 모두 당신더러 내려놓게끔 한다. 모든 집착심이 당신에게 있기만 하면 곧 각종 환경 속에서 그것을 없어지게(磨掉) 한다. 당신으로 하여금 곤두박질하게 하고 그 중에서 도(道)를 깨닫게 하는데 곧 이렇게 수련하여 온 것이다.

비교적 전형적인 것은 또 이러한 한가지 경우가 있다. 즉 우리 많은 사람은 수련과정 중에서 흔히 당신이 연공할 때에 당신의 남편 또는 아내가 특별히 좋아하지 않으며 당신이 연공하기만 하면 당신과 싸움을 벌인다. 당신이 다른 일을 하면 그는 상관하지 않는다. 당신이 마작을 놀아 시간을 많이 허비하여도 그는 좋아하지 않지만 연공할 때처럼 그렇지 않다. 당신이 연공해도 그를 건드리는 것이 아니고 신체를 단련하며 또한 그에게 영향주는 것도 아닌데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당신이 연공만 하면 그는 당신에게 물건을 마구 내동댕이치며 야단이다. 어떤 사람은 연공 때문에 부부가 이혼까지 한다. 많은 사람들은 생각해 보지 않는다. 왜 이런 경우가 나타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나중에 당신이 그에게, 내가 연공하는데 왜 당신은 그렇게 큰 성을 냈는가? 고 묻게 되면 그는 할 말이 없다. 정말로 할말이 없어 한다. 그래요. 나도 그렇게 큰 성을 내지 말아야 했을 텐데, 그때에는 그렇게 큰 화를 냈다고 한다. 실제로는 어찌된 영문인가? 연공을 하는 동시에 업력은 전화하게 되는 즉, 잃지 않는 자는 얻지 못하는 것이라, 잃는 것은 나쁜 것으로서 당신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아마 집에 방금 들어서자마자 당신의 남편 또는 아내는 당신에게 욕을 한바탕 퍼부을 것이다. 당신이 만약 참고 지났다면 당신은 오늘의 공(功)을 헛되게 연마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 역시 연공은 德(덕)을 중히 여겨야 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평소에 그의 남편 또는 아내와 잘 지냈었다. 한 번 생각해 보니, 내가 평상시에 말만 하면 그대로 했는데 오늘은 그가 내 머리 위에 올라앉으려고 하누나. 그래서 화를 참지 못하고 그와 맞서게 되는데, 이 바람에 오늘의 연마는 또 헛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업력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가 당신을 도와 제거해 버리려고 한 것인데, 당신이 말을 듣지 않고 그와 싸움을 벌렸기 때문에 없애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가 대단히 많다. 이 경우에 부딪혔던 우리 많은 사람은 왜 그런가를 생각해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당신이 다른 일을 하면 그는 당신을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워낙 좋은 일이지만 그는 오히려 당신과 늘 맞서고 있다. 사실 당신을 도와 소업(消業)해 주고 있지만 그 자신은 모르고 있다. 그는 표면적으로만 당신과 맞다 들어 싸우며 마음속으로는 당신을 아주 좋게 대하는 이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내심으로부터 화가 나 한다. 왜냐하면 업력이 누구에게 떨어지면 누가 괴롭게 되기 때문인데 보증하고 이러하다.

心性 제고

예전에 많은 사람들은 心性(심성)을 지키지 못하였기 때문에 문제들이 많이 나타나 일정한 층차까지 연마한 후 더 올라가지 못하였다. 어떤 사람은 본래부터 心性(심성)이 비교적 높기 때문에 연공 중에서 천목이 대번에 열리게 되었고 어느 한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 사람은 근기(根基)가 비교적 좋고 心性(심성)이 아주 높기 때문에 그의 공도 올라옴이 되게 빨랐다. 그의 心性(심성)이 있는 위치에 이르게 되면 그의 공도 여기까지 자란다. 그가 그의 공을 더 높이려고 하면 이 모순도 뚜렷하게 되어 그가 계속 그의 心性(심성)을 높일 것이 필요하다. 특히 근기가 좋은 데서 오는, 그가 그의 이 공이 괜찮게 자랐으며 연마도 아주 잘 되였다고 느끼는데, 어찌하여 갑자기 이처럼 많은 번거로움이 생기게 되는가? 어찌하여 무엇이나 다 좋지 않게 되었는지, 그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들이 좋지 않게 보고 상사도 그를 마음에 안 들어 하며 가정 내의 환경도 꽤 긴장해졌다. 어찌하여 갑자기 이처럼 많은 모순이 나타나게 되는가? 그 자신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가 근기가 좋고 일정한 층차에 도달하였기에 이러한 하나의 상태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수련인의 최후 원만(圓滿)의 표준인가? 위로 수련하자면 아직 멀고도 멀었다! 당신은 계속 자신을 제고하여야 한다. 그것은 자신이 갖고 온 고만한 근기가 작용을 하여 당신이 비로소 그런 상태에 도달하게 된 것인데, 더 제고하자면 그 표준도 높여야 한다.

어떤 사람은, 나는 돈을 좀 많이 벌어서 집을 잘 안착해 놓게 되면 나는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나는 다시 도를 닦겠다고 말한다. 당신은 망상이다 라고 나는 말한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생활을 간섭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우지 할 수 없다. 아내와 자식, 부모 형제 그들의 운명을 포함하여 그것은 당신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인가? 그밖에 당신은 뒷근심이 없어지고 당신에게 어떤 번거로움도 다 없다면 당신은 또 무엇을 수련하겠는가? 편안하고도 편안하게 거기서 연공을 한다고? 어디 그런 일이 있는가? 그것은 당신이 속인의 각도에 서서 생각한 것이다.

수련은 반드시 시달림(磨難) 속에서 수련해야 하는 것으로서, 당신의 칠정육욕(七情六慾)을 끊어버릴 수 있는가 없는가, 담담히 여길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 당신이 그런 것들에 집착한다면 당신은 수련해 낼 수 없다. 어떠한 일이든지 모두 인연관계가 있는 것이다. 사람은 왜 인간이 될 수 있는가? 바로 사람에게는 정(情)이 있고 인간은 바로 이 정을 위해서 산다. 육친 정, 남녀지정, 부모지정, 감정, 우정, 처사에 정분(情分)을 강구하고 곳곳마다 이 정을 떠날 수 없다. 하려고 하거나 안 하려고 하거나, 기뻐하거나 기뻐하지 않거나, 사랑과 증오, 전반 인류사회의 일체는 모두 이 정(情)에서 나왔다. 만일 이 정을 끊어 버리지 못한다면 당신은 수련할 수 없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이끌지 못하는바, 그것을 대체하게 되는 것은 자비(慈悲)이며 보다 더욱 고상한 것이다. 물론 단번에 이런 것들을 끊어버린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수련이란 하나의 긴 과정으로서 천천히 자신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하지만 당신은 자신이 자신에 대하여 엄격히 요구하여야 한다.

우리는 일개 연공인으로서 모순이 갑자기 발생할 수 있다.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당신이 평소에 늘 하나의 자비로운 마음과 하나의 상서롭고 화애한 심태(心態)를 갖고 있다면,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잘 처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완충적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늘 자비로우며 선의(善意)로 남을 돕고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에 부딪힐 때에 우선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가, 끼치지 않는가를 생각한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당신은 연공함에 있어서 높은 표준, 더욱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

흔히 어떤 사람은 깨우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천목이 열리어 부처님을 보게 되었는데 집에 가서 부처님에게 절을 하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기를, 당신은 왜 나를 책임지지 않습니까? 저를 도와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라고 한다. 부처님은 당연히 관계하지 않는다. 그 난(難)은 바로 그가 배치한 것으로서 목적은 당신의 心性(심성)을 높이여 모순 속에서 당신이 제고되어 올라오게끔 하기 위해서이다. 그가 당신에게 해결해 줄 수 있는가? 아예 해결해 주지 않는다. 해결되면 당신은 또 어떻게 공이 자라며 어떻게 心性(심성)과 층차를 높일 것인가? 당신으로 하여금 공이 자라게끔 함이 비로소 관건이다. 대각자들이 볼 때 인간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며 사람의 생명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으로 하여금 되돌아 올라가게끔 하는 데 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겪던지, 그는 고생을 많이 겪으면 겪을수록 더욱 좋으며 빚을 다그쳐 갚는 것이라고 여기는데, 그는 바로 이 생각이다. 어떤 사람은 깨닫지 못하고 부처님께 빌어서도 안되니 부처님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당신은 왜 나를 돕지 않는가? 매일마다 당신한테 향을 피우고 절을 하는데 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이 일로 하여 불상도 부숴버리고 이때로부터 부처님을 욕하였다. 그가 욕하기 때문에 心性(심성)도 떨어졌고 공도 없어졌다. 그는 아무것도 없게 된 것을 알고 부처님을 더욱 증오하였다. 그는 부처님이 자신을 해쳤다고 여긴다. 그는 속인의 이치로 부처님의 心性(심성)을 가늠하는데 그 어찌 가늠해 낼 수 있겠는가? 그가 속인의 표준으로서 고층차의 일을 대하고 있는데, 그 어찌 될 수 있는가? 그러므로 흔히 이러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생활 속에서의 고생을 자신에 대한 불공평으로 여기어 많은 사람이 척척 떨어진다.

몇 년 전 많은 대기공사들, 명성이 자자했던 사람도 거꾸러졌다. 물론 진정한 기공사들은 모두 돌아갔으며 그들의 역사 사명을 완수하고는 돌아갔다. 다만 속인 중에 잘못된, 心性(심성)이 떨어진 그러한 일부 사람들이 남아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지만, 그는 이미 공(功)이 없다. 예전에 비교적 성망이 있던 일부 기공사들이 아직도 사회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사부께서 그가 속인 중에 떨어졌고 명리(名利) 속에 떨어져 이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이미 잘못 된 것을 보고, 그는 그의 副元神(부원신)을 데리고 갔는데, 공은 모두 副元神(부원신)에게 있다. 이런 전형적인 예가 무척 많다.

우리 이 한 법문 중에 이러한 예가 비교적 적으며 있다 해도 그리 뚜렷하지 않다. 心性(심성)을 높이는 면에서 뚜렷한 예는 특히 많다. 한 수련생은 산동 ??시 편직물공장 사람인데 法輪大法(법륜대법)을 배운 후에 또 기타 종업원들을 연마하도록 배워 주어 결국 한 개 공장의 정신면모를 모두 이끌게 되었다. 예전에는 편직물공장의 수건 쪼가리들을 늘 자기 집으로 하나씩 가져갔었는데 종업원들은 모두 가져갔다. 공을 배운 후에 그는 더는 가져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미 집에 가져갔던 것도 또 되돌려 왔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을 보고 누구도 가져가지 않았으며 어떤 종업원은 또 자신이 예전에 가져갔던 것도 다 공장으로 되돌려 오게 되었는데, 전 공장에 이러한 경우가 나타났다.

모 시 한 보도소(輔導站)의 소장(站長)이 한 공장에 가서 法輪大法(법륜대법)을 연마하는 수련생들의 연마가 어떠한가를 알아보려고 갔을 때, 그 공장의 공장장은 그를 친히 접견하며 말하였다. 이 종업원들이 당신들의 法輪大法(법륜대법)을 배운 후에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을 하면서 상사가 무슨 일을 맡기던지 여태껏 가리지 않고 이익 앞에서도 다투지 않는다. 그들이 이렇게 함으로써 전 공장의 정신면모를 전부 이끌었으며 공장의 경제효율과 이익도 좋아지게 되었다. 당신들의 이 공은 참으로 대단하다. 당신들의 스승님이 언제 오시면 나도 가서 참가하겠다고 하였다. 우리가 法輪大法(법륜대법)을 수련하는 주요 목적은 고층차에로 사람을 이끄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사회의 정신문명에 커다란 촉진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만약 사람마다 모두 내심으로부터 찾고 사람마다 모두 자신이 어떻게 잘해야 되겠는가를 생각한다면, 그 사회는 안정하게 되며 인류의 도덕표준도 올라오게 된다고 나는 말한다.

내가 태원에서 설법하고 공을 전수할 때, 50여세 되는 수련생이 있었는데 노부부가 수련반에 참가하려 왔다. 그들이 큰길 중간에 도착하였을 때 승용차 한 대가 몹시 빨리 달려왔는데 승용차의 백미러가 단번에 노부인의 옷을 걸었다. 그를 건 후에 십여 미터나 끌고 가서는 '탁'하고 땅바닥에 둘러 메치고 차는 20여 미터나 가서야 정거하였다. 기사는 뛰어내린 후에 기분이 나빠하며 참, 당신은 길을 가면서 보지도 않다니 라고 하였다. 지금의 이 사람은 바로 이러하다. 문제에 부딪히면 우선 책임을 밀고 원망할 것이든지 안 할 것이든지 그는 다 남에게로 민다. 차안에 앉았던 사람이 말하였다. 어디에 다쳤는지 보고 병원에로 모셔야지. 기사는 정신을 차리고 얼른 물었다. 큰어머님, 어떠십니까? 넘어져서 다치지 않았습니까? 우린 병원에 가 봅시다. 그 수련생은 땅으로부터 천천히 일어나면서 괜찮네, 자네들은 가봐, 라고 말하면서 먼지를 툭툭 털고는 남편을 끌고 갔다.

수련반에 와서 나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였을 때 나도 아주 기뻤다. 우리 수련생의 心性(심성)은 확실히 제고되었다. 그녀는 나에게 스승님, 나는 오늘 法輪大法(법륜대법)을 배웠으니 말이지, 내가 만약 法輪大法(법륜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 이렇게 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퇴직 한데다 지금 물가가 이렇게 높고 아무런 복지대우도 없다. 50여세 나는 사람이 승용차에 그렇게 멀리 끌려가서 땅에 메쳤는데 어디 다쳤는가? 어디도 다 다쳤다. 땅에 엎드려 일어나지도 않는다. 병원으로 가자면 가자. 입원하고는 출원도 하지 않는다. 속인이었더라면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연공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린 말한다. 좋고 나쁨은 사람의 그 일념(一念)에 달렸다.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렇게 많은 연세에 속인이었더라면 상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러나 그는 껍질 하나 벗겨지지 않았다. 좋고 나쁨은 그 일념에 달렸는데 만약 그가 거기에 누워서 아이고, 난 안되겠다, 여기가 상하고 저기도 상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정말로 근육이 상하고 골절이 되어 몸을 운신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당신에게 돈을 얼마 준다 해도, 당신은 입원하여 후반생을 일어나지 못하는데 당신은 편안할 수 있는가? 구경꾼들도 이상하게 느꼈다. 이 노친은 왜 그에게 트집 잡아 돈을 좀 받아내지 않는가, 그에게서 돈을 달라고 해야 한다. 지금의 사람은 도덕수준마저 비틀어지게 되었다. 기사는 차를 빨리 몰았지만 그가 고의적으로 사람을 부딪힐 수 있겠는가? 그는 무의식적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 지금의 사람은 바로 이러하다. 만일 트집을 잡아 돈을 좀 받지 않고는 이 구경꾼들의 마음속도 평형을 이루지 못한다. 나보고 말하라면 지금은 좋고 나쁨도 가려내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당신이 나쁜 일을 한다고 알려주어도 그는 믿지 않는다. 사람의 도덕수준이 모두 변화되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이익만 탐내며 오로지 돈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떠한 일이든 다 한다. 사람이 자기를 위하지 아니하면 천벌을 받는다는 말이 이미 좌우명으로 되었다!

북경의 한 수련생은 저녁 식사 후 애를 데리고 전문(前門)에 가서 산책을 하는데 방송차가 복권을 당첨하는 선전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애는 끼어들어 재미로 복권을 당첨하려고 했다. 당첨하겠으면 당첨해라. 어린애에게 1원을 주어 당첨하게 했더니 대번에 2등상을 당첨하여 어린이용 고급 자전거 한 대를 타게 되어 애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 그는 머리가 '뻥'해졌다. 나는 연공인인데 어찌 이런 것을 추구할 수 있는가? 내가 이 부당한 재물을 얻음으로써 나는 그에게 얼마나 많은 德(덕)을 주어야 하는가? 그래서 애에게 우린 가지지 말자, 우리가 가지려고 하면 저절로 가서 사자고 말하였다. 애는 뿌루퉁해서 말했다. 사 달라고 하니 사주지도 않고 저절로 하나 탔는데 아빠가 날 못 가지게 할건 뭐예요. 울고불고 떼질 하여 할 수없이 밀고 집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돌아온 후 생각할수록 마음에 걸리어 아예 그들에게 돈을 가져다주고자 했다. 돌이켜 또 생각해 보니 복권도 없어졌는데 내가 돈을 그들에게 갖다준다면 그들이 나누어 가질 것이 아닌가? 아예 나는 돈을 직장에 가져가 찬조(贊助)하자고 했다.

다행히 직장에는 적지 않은 法輪大法(법륜대법) 수련생이 있고 상사도 그를 이해하여 주었다. 만약 일반적인 환경이고 일반적인 직장이라면, 당신이 연공인으로서 자전거를 하나 탔는데 당신이 가지지 않고 돈을 직장에 찬조하겠다고 말해보라. 상사까지도 이 사람은 정신이 잘못됐다고 생각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의논이 분분할 것이다. 이 사람은 연공해서 편차가 생겼고 주화입마(走火入魔)한 것이 아닌가? 내가 말했지만 도덕수준이 비틀어지게 되었다. 5, 60년대라면 이게 다 무슨 일인가. 평범하고 평범하여서 그 누구도 놀랍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인류의 도덕수준이 얼마나 큰 변화를 발생했든지, 이 우주의 특성 眞ㆍ善ㆍ忍, 그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당신을 좋다고 해서 당신이 정말로 좋은 것이 아니며, 어떤 사람이 당신을 나쁘다고 해서 당신이 정말로 나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마저 모두 비틀어졌기 때문이다. 오로지 우주의 이 특성에 부합되어야만 그는 비로소 좋은 사람이며, 이것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으로서, 이것은 우주 중의 승인을 받은 것이다. 당신은 인류사회가 얼마나 큰 변화를 발생하였는가 만 보지 말라. 인류 도덕수준이 크게 미끄럼 치어 내려가고, 세상 기풍이 날따라 저락되고 이익만 탐내고 있지만, 우주의 변화는 인류의 변화에 따라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일개 수련인으로서 속인의 표준으로 요구해서는 안 된다. 속인이 이 일이 옳다고 하여 당신이 이것에 따라 한다면 그것은 안 된다. 속인이 좋다고 하여 꼭 좋은 것이 아니며 속인이 나쁘다고 하여 꼭 나쁜 것도 아니다. 도덕표준이 비틀어진 시대에 일개 사람이 나쁜 짓을 할 경우 당신이 그에게 나쁜 일을 한다고 알려주어도 그는 다 믿지 않는다! 일개 수련인으로서 우주의 특성으로 가늠하여야만, 무엇이 진정하게 좋고 무엇이 진정하게 나쁜가를 분별해 낼 수 있다.

관정(灌頂)

수련계에는 관정(灌頂)이라고 부르는 이런 한가지 상황이 있다. 관정이란 불가 밀종 수련방법의 일종 종교 형식이다. 목적은 관정을 한 후, 이 사람은 다시 다른 법문에 들어갈 수 없는 것으로, 이 한 문(門)의 진정한 제자로 승인받는다. 지금은 어디가 이상한가? 연공(練功)하는데도 이런 한가지 종교 형식이 나타났으며 밀종(密宗)뿐만이 아니라 도가의 공법도 역시 관정을 한다. 나는 이야기하였다. 무릇 밀종의 기치를 들고 사회에서 밀종 공법을 전함은 전부가 다 가짜이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당밀(唐密)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없어진지 천여 년이 넘은 지라,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장밀(藏密)은 언어의 제한으로 말미암아 줄곧 우리의 한인(漢人) 지대로 완전하게 전해 들어오지 못하였다. 특히 그것은 밀교(密敎)로서 반드시 절에서 비밀리에 수련해야 하며 아울러 반드시 사부의 비밀전수를 받아야 하고 사부가 그를 데리고 비밀리에 수련해야 한다. 이 한 점을 할 수 없으면 절대로 전할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이러한 하나의 목적을 품고 공(功)을 배우려 티베트(西藏)에 가서는 남을 스승으로 모시고 장밀(藏密)을 배워다 장래에 기공사가 되어 이름을 날리고 부자가 되려고 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진정하게 진짜 전수를 받은 생불(活佛)라마는 모두 아주 강한 공능을 갖고 있어 공을 배우는 사람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다 알고 있다. 그가 뭘하려 왔는가는 그 마음을 한 번 보기만 하면 곧 안다. 여기에 와서 이런 것들을 배우고 나가서는 기공사가 되어 횡재하고 이름을 날리며 이 문(門)의 부처수련 방법을 파괴하려고 하누나. 이처럼 엄숙한 부처수련법문을, 당신이 무슨 기공사가 되어 명리를 추구하기 위하여 함부로 파괴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은 무슨 동기인가? 그러므로 전혀 그에게 전해 줄 수 없으며 진짜전수를 얻을 수 없다. 물론 절도 많기 때문에 겉모양의 것들을 좀 배울 수는 있을 것이다. 만약 마음이 똑바르지 못하여 기공사가 되고 나쁜 짓을 하려 한다면, 부체(附體)를 초래할 수 있다. 부체동물도 공이 있지만 장밀(藏密)은 아니다. 진정하게 법을 구하려 티베트에 간 사람은 한번 가면 그곳에 박혀서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인즉, 이는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이다.

괴상하다. 지금 많은 도가 공법도 관정을 주장하고 있다. 도가는 맥을 가는 것인데 무슨 관정을 하는가? 내가 아는 데 의하면, 내가 남방에서 공을 전수할 때 특히 광동 그 지역에 비교적 많았다. 열몇 개나 되는 난잡한 공법이 관정을 하고 있었다. 뜻은 무엇인가? 그가 당신에게 관정함으로써 당신은 그의 제자이므로 다시는 다른 공법을 배울 수 없으며 다른 공법을 배우면 그가 당신을 징벌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짓을 한다. 이것이 사문왜도(邪門歪道)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가 전한 것은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것으로서 군중들이 배워서 하나의 좋은 신체를 갖자는 데 있다. 이런 것을 해선 뭘 하는가? 어떤 사람은 그의 공을 연마(練)하면 다른 공을 연마(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가 사람을 제도하여 원만을 이루게 할 수 있는가? 남의 자제를 망치는 것이 아닌가! 많은 사람은 다 이렇게 하고 있다.

도가는 이런 것을 주장하지 않는데 역시 무슨 관정이라는 것이 나타났다. 나는 발견하였다. 관정을 가장 굉장히 한다는 그 기공사, 그의 그 공기둥이 얼마나 높은가? 해봤자 2, 3층집 높이 만큼밖에 높지 못하다. 대단히 이름있는 대기공사인데 내가 보니 공이 떨어진 것이 너무나도 가련하다.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그가 그들에게 관정을 해주고 있었다. 그의 공은 제한되어 있고 고만큼 밖에 높지 못하므로, 그 공은 한참 후이면 내려가고 곧 없어지게 되었는데 또 무엇으로 사람들에게 관정해 줄 것인가. 그것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진정한 관정이란 다른 공간에서 보면 사람의 뼈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모두 백옥처럼 변해버린다. 바로 공과 고에너지물질로 신체를 정화(煖化)시키며 온 머리에서부터 발까지 관(灌)해주는 것이다. 이 기공사는 이 한 점을 해낼 수 있는가? 그는 하지 못한다. 그는 뭘 하는가? 물론 모두 종교적이 아닐 수도 있지만, 목적은 그의 공을 배웠으므로 그의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이 그의 강습반에 참가해야 하며 그의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목적은 당신의 고만한 돈을 홀려 내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의 공을 배우지 않게 되면 돈벌이를 할 수 없다.

法輪大法(f아 룬따 f아)의 제자는 기타 불가 법문의 제자와 마찬가지로서 상사(上師)가 여러 차례 관정을 해주나 당신이 알지 못하게 한다. 공능이 있는 사람은 아마 알 것이고 민감한 사람도 아마 감수할 수 있는데 잠을 자거나 혹은 어떤 때든지 다 가능하게 갑자기 한 가닥 뜨거운 흐름이 머리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며 전신을 관통시킨다. 관정의 목적은 당신에게 높은 공을 넣어 주는 것이 아니다. 공은 당신 자신이 수련하여 나온 것이다. 관정은 한가지 가지(加持)방법으로서 바로 당신의 신체를 정화(煖化)하여 주고 당신의 신체를 진일보로 청리(淸理)하여 주는 것이다. 여러 번 관정해 주는데 매 층차마다 다 당신을 도와 신체를 청리하여 준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기 때문에 우리 역시 관정, 이런 형식을 주장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그 무슨 사부를 모시느라고 한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나온 김에, 나도 한번 제기하겠다. 많은 사람은 나를 사부로 모시려고 하고 있다. 우리 지금 이 역사시기는 중국 봉건사회와 다른바 거기 꿇어앉아 절을 하였다 하여 스승을 모시는 것인가? 우리는 이런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 우리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향불을 피우고 부처님께 절을 하는데, 마음속으로 경건하기만 하면 공이 자랄 수 있다. 내가 말한다면 그것은 다 가소롭다. 진정한 연공은 전적으로 자신에 의하여 수련해야 하며 그 무엇을 추구해도 다 소용이 없다. 부처님께 빌지 않고 향불을 피우지 않아도 진정하게 수련인의 표준에 따라 수련한다면 그가 당신을 보아도 특별히 기뻐할 것이다. 당신이 밖에서 나쁜 짓을 할대로 하고 당신이 부처님께 향불을 피우며 절을 한다면, 그가 당신을 보기만 해도 모두 괴로워한다. 이런 이치가 아닌가? 진정한 수련은 자신에 의거해야 한다. 오늘 당신이 절을 하고 사부를 모셨다 하여도 문만 나서면 제멋대로라, 그것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우리는 이런 형식을 전혀 주장하지 않는데 당신은 나의 명예를 더럽힐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많은 것을 주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오로지 실속 있게 수련하고 또 대법으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기만 한다면, 나는 당신을 다 제자로 삼아 이끌 것이다. 오로지 당신이 法輪大法(법륜대법)을 수련한다면 우린 당신을 제자로 삼고 이끌 것이다. 당신이 수련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방법이 없다. 당신이 수련하지 않는데 그 이름만 걸어놓아서는 무슨 소용이 있는가? 무슨 1기 수련생, 2기 수련생, 당신은 이 동작만 연마(練)한다 해서 우리 제자인가? 당신은 진정하게 우리 이 心性(심성)표준에 따라 수련해야만 비로소 건강한 신체에 도달할 수 있으며 비로소 진정하게 고층차에로 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형식을 주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당신이 수련한다면 곧 우리 이 한 문(門)중의 사람이다. 나의 법신은 무엇이나 다 알고 있다.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는 다 알고 있으며 그는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다. 당신이 수련하지 않는다면 그는 당신을 상관하지 않으며 당신이 수련한다면 끝까지 돕는다.

어떤 공법 중에는 연공인(練功人)이 아직 사부를 만나지도 못하고 어느 방향을 향하여 절을 하고 돈을 몇백 원만 바치면 된다고 한다. 이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또한 이 사람은 여전히 달갑게 여기면서 그때로부터 그 공과 그 사람을 수호하기 시작하며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공을 배우지 말라고 알린다. 내가 보기에는 매우 가소롭다. 또 어떤 사람은 무슨 골을 만지는 짓을 하는데 그가 한 번 만져서 무슨 작용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밀종(密宗)의 기치를 들고 공을 전수하는 것만이 가짜인 것이 아니라, 불교 그 한 문(門)의 기치를 들고 공을 전하는 것은 다 가짜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불교의 몇천 년래의 수련 방법이 곧 그런 형식이었는데 누가 고친다면 그가 여전히 불교이겠는가? 수련방법은 엄숙하게 부처를 수련하는 것이며 아울러 극히 현묘(玄妙)한 것으로서 약간만 고쳐놓아도 난잡하게 된다. 공의 연화(演化) 과정은 극히 복잡하기 때문에 사람의 감각은 아무 것도 아니며 감각에 의하여 수련해서는 안 된다. 스님의 종교형식은 바로 수련방법이라, 고친다면 곧 그 한 문(門)의 것이 아니다. 매 한 문(門)에 모두 대각자(大覺者)가 주지(主持)하고 있으며 매 한 문(門)에서 무척 많은 대각자를 수련하여 냈으나 누구도 감히 그 한 문(門)의 수련 방법을 함부로 고치지 못하였는데, 한 소기공사(小氣功師)가 무슨 위덕(威德)이 있어 감히 그 문(門)의 주인을 업신여기고 부처수련의 법문을 고친단 말인가? 만약 정말로 고쳐버릴 수 있다면 그것이 여전히 그 한 법문이겠는가? 가짜 기공은 분별해 낼 수 있는 것이다.

현관설위(玄關設位)

현관설위(玄關設位)를 또는 현관일규(玄關一竅)라고도 한다. 『단경(丹經)』,『도장(道藏)』,『성명규지(性命圭旨)』에서 이런 명사를 찾을 수 있다. 그럼 그것은 어찌된 일인가? 많은 기공사들은 똑똑히 말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일반 기공사가 있는 층차에서는 전혀 볼 수 없으며 또한 그가 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련인이 그것을 보려 한다면 혜안통(慧眼通)의 윗층 이상에 이르렀을 때야만 보아 낼 수 있다. 일반적인 기공사는 이 층차에 도달하지 못하므로 보아내지 못한다. 역대로 수련계에서 모두 무엇이 현관(玄關)인가? 그 어디가 일규(一竅)인가? 어떻게 설위(設位)하는가? 를 탐구하여 왔다. 당신이『단경(丹經)』, 『도장(道藏)』,『성명규지(性命圭旨)』에서 본다면, 그는 모두 이론을 둘러싸고 말했을 뿐이지, 당신에게 실질적인 것을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말하고 말한다는 것이 당신을 얼떨떨하게 만들었고 똑똑히 이야기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실질적인 것은 속인이 모르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그밖에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은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의 제자이기 때문에 나는 비로소 이런 말을 당신에게 알려준다. 절대 그 난잡한 기공책들을 보지 말아야 한다. 상기 몇 권의 고서(古書)가 아니라 현재 사람이 쓴 그 가짜 기공 책을 말하는데 당신은 펼치지도 말아야 한다. 당신 머리 속에 약간의 생각이라도 나오게 되어 어이구, 이 말은 일리가 있구나 라고 한다. 이 생각이 언뜻 스치는 순간, 그 안에 있던 부체(附體)가 곧 달려 붙게 된다. 많은 것은 부체가 사람의 명리심을 지휘하고 통제하여 쓴 것이다. 가짜 기공책은 많고도 많아 무척 많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책임을 지지 않으며 어떤 부체, 난잡한 그도 모두 쓰고 있다. 바로 상기 몇 권의 고서, 또는 기타 유관 고서까지도 일반적으로 모두 보지 않는 것이 좋다. 여기에는 전일불란(專一不亂)의 문제가 있다.

중국기공협회의 한 지도자가 나에게 한가지 일을 말해주었는데 나 역시 몹시 우스웠다. 말에 의하면 북경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 그가 늘 기공 강좌를 듣곤 하였는데 듣고 들은 시간이 길어지니 그는 기공은 바로 이러한 것들이라고 여겼다. 모두 하나의 층차 중에 있으며 다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가짜 기공사들과 마찬가지로 기공의 내포가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만 여겼다! 그럼 좋다. 그도 기공 책을 쓰려고 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연공하지 않는 사람이 기공책을 쓰는데 지금의 기공책은 바로 당신이 그의 것을 베끼고 그가 당신 것을 베낀 것이다. 그는 쓰고 쓰다가 현관(玄關)이란 여기까지 쓰고는 더 써 내려갈 수 없게 되었다. 현관(玄關)을 누가 아는가? 진정한 기공사도 똑똑히 아는 사람이 몇이 안 된다. 그는 한 가짜 기공사에게 물었다. 그는 가짜인 줄을 몰랐는데 워낙 그 역시 기공을 모른다. 그러나 이 가짜 기공사가 남의 물음에 말문이 막힌다면 남은 그가 가짜임을 알 수 있지 않는가? 때문에 그는 감히 허튼소리를 쳤다. 현관일규(玄關一竅)란 자지 끝에 있다고 하였다. 듣기만 하여도 가소롭다. 당신은 아직 웃지 말라. 이 책이 사회에까지 나왔다. 즉 말해서 우리 현재의 기공책은 이런 가소로운 정도에까지 도달하였는바, 당신이 그런 것을 봐서는 무슨 소용이 있는가. 쓸모 없으며 사람만 해칠 따름이다.

무엇을 현관설위(玄關設位)라고 하는가? 사람이 世間法(세간법) 수련 중에서 중층 이상의 수련에 이르렀을 때, 즉 世間法(세간법)의 고층차에서 수련할 때에 사람은 원영(元?)이 나오기 시작한다. 원영은 우리가 말하는 영해(?孩)와는 다르다. 영해는 아주 작고 까불기를 좋아하며 장난을 잘 친다. 원영은 움직일 줄 모르며 元神(원신)이 그를 주재(主宰)하지 않으면 그는 거기 앉아 움직이지 않으며 손을 結印(제인)하고서 연꽃 위에 다리를 틀고 앉아 있다. 원영은 단전에서 생겨나오며 극히 미시적인 아래에서 바늘 끝보다도 더 작을 때 그를 보아 낼 수 있다.

그밖에 하나의 문제를 설명하겠다. 진정한 단전(丹田)은 단 한 뙈기로서 아랫배 부위에 있다. 회음혈(會陰穴) 위, 인체 안의 아랫배 이하가 곧 이 한 뙈기 전(田)이다. 많은 공, 많은 공능, 많은 술류(術類)의 것들, 법신(法身), 원영(元?), 영해(?孩), 이런 많고 많은 생명체들은 모두 이 전(田)에서 생기게 된다.

과거에 개별적으로 도를 닦는 사람들이 상단전(上丹田), 중단전(中丹田), 하단전(下丹田)이란 말을 하였었는데 나는 그것은 틀린 것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그의 사부가 몇 대를 전했으며 책에서도 이렇게 썼다고 말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조잡한 이것은 고대에도 있었기 때문에 당신은 그가 몇 대를 이어받고 전했다고만 보지 말라. 그가 꼭 맞는 것이 아니다. 세간소도(世間小道) 역시 줄곧 속인 속에서 유전되지만 그는 수련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그것을 가리켜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이라고 하는데 그의 뜻은 단(丹)을 생기게 할 수 있는 곳은 곧 단전(丹田)이라 한다. 이것은 웃음거리가 아닌가? 사람의 의념(意念)이 한 곳에 집중되어 시간이 길면 에너지덩이가 생기게 되어서 단이 맺힌다. 믿어지지 않는가. 당신의 의념이 늘 팔에 있으며 늘 이렇게 지키고 있다면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그는 단을 맺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이런 경우를 보고 단전이 아닌 곳이 없다고 말하는데 듣기에는 더욱 가소롭다. 그의 인식은 단이 맺혔다면 곧 단전이다. 사실 그것은 단(丹)이지 전(田)이 아니다. 당신이 '단'이 없는 곳이 없다거나 혹은 상단(上丹), 중단(中丹), 하단(下丹)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그래도 괜찮다. 그러나 진정하게 무수한 법(法)을 생기게 하는 그 전(田)은 오로지 하나로서 곧바로 아랫배 부위의 그 전(田)이다. 그러므로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이라는 설은 그릇된 것이다. 사람의 의념(意念)이 어디를 지키며 시간이 길어지면 곧 단(丹)을 맺게 된다.

원영은 아랫배 부위의 이 단전으로부터 생겨 나와 천천히 자라면 자랄수록 더욱 크다. 탁구 알만큼 컸을 때에 온 신체의 윤곽이 똑똑히 보이게 되며 코, 눈이 다 생기게 된다. 탁구공만큼 큼과 동시에 그의 신변에는 또 하나의 동그랗고 작은 기포가 생겨 나온다. 생긴 다음 원영의 큼에 따라 그도 따라서 자란다. 원영이 4치만큼 높게 컸을 때 연꽃잎이 한 조각 피게 된다. 5∼6치 높이로 컸을 때에 연꽃잎은 기본적으로 다 자라서 한 층의 연꽃이 나타난다. 금빛 찬란한 원영이 금빛 연꽃 판에 앉아 있는데 대단히 예쁘다. 그것이 바로 금강불괴지체(金剛不壞之體)로서 불가에서는 불체(佛體)라 하고 도가에서는 원영(元?)이라고 한다.

우리 이 법문은 두 가지 신체를 모두 수련하며 모두 가지기 때문에 本體(본체)도 전화해야 한다. 여러분 알다시피 그 불체(佛體)는 속인 중에서 나타내서는 안되며 기껏해야 그의 형태를 나타낼 수 있는 즉, 속인의 눈으로는 그의 빛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이 신체는 전화를 거친 후 속인 중에서 속인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속인은 보아내지 못하지만 그는 또 공간을 넘나들 수 있다. 원영이 4∼5치 높이로 자랐을 때 기포(氣泡)도 이만한 높이로 자라며 그것은 마치 고무풍선 껍질과 같이 투명하다. 원영은 가부좌하고 움직이지 않는다. 이만큼 컸을 때 이 기포는 단전(丹田)을 떠나게 되는데 그것은 이미 생성되었고 박이 익어 꼭지가 저절로 떨어지듯이 되었기 때문에 위로 올라가려 한다. 위로 올라가는 과정은 아주 느린 과정이지만 매일 그것이 움직이고 있고 점차적으로 위로 이동하며 위로 올라가고 있음을 다 볼 수 있다. 우리가 자세히 체험하기만 하면 그것의 존재를 감각할 수 있다.

사람의 전중혈(?中穴)위치에까지 올라왔을 때 그가 이곳에서 한 동안 머무르게 된다. 인체의 정화(精華), 많은 것(심장도 여기에 있음)들이 모두 이 기포 안에서 한 세트로 형성되어야 한다. 정화적인 것들은 그의 그 기포 속을 충실해야 되기 때문이다. 한 동안 지난 후 그는 또 오르기 시작한다. 사람의 목을 지날 때에 매우 숨막히는 감을 느끼며 마치 혈관이 모두 막힌 것처럼 부어서 아주 견디기 어려운데, 그렇게 하루 이틀이면 지나가게 된다. 그가 머리꼭지에 오게 되는데 우리는 그것을 니환(泥丸)에 오른다고 한다. 니환에 온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당신의 온 대뇌와 같이 커서 당신은 머리가 뻥해나는 감을 느끼게 된다. 니환은 사람 생명의 아주 관건적인 곳이기에 그도 안에서 정화적인 것을 형성하려고 한다. 그런 후 그는 천목 이 통로를 따라 밖으로 밀고 나오는데 그때 기분은 참으로 견디기가 아주 어렵다. 천목이 부어 몹시 아프며 태양혈도 부어나고 눈도 안으로 꺼지면서 그가 밖으로 밀고 나올 때까지 줄곧 이러다가 단번에 앞이마 이곳에 드리워 있다. 이것을 바로 현관설위(玄關設位)라 하는데 여기에 드리워 있다.

천목이 열린 사람은 이때에 와서는 보이지 않는다. 불도(佛道) 양가(兩家)의 수련은 현관(玄關)안의 것으로 하여금 재빨리 생기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 문을 열지 않는다. 앞면에 두 짝의 대문이 있고 뒷면에 두 짝의 문이 있는데 모두 닫혀 있다. 마치 북경 천안문 대궐문처럼 대문 양쪽에 각각 양짝의 대문이 있는 것과 같다. 그로 하여금 되도록 빨리 형성되고 충실되게 하기 위하여, 그러므로 문은 극히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는 열지 않는데 천목으로 볼 수 있던 것이 이때에 와서는 보이지 않으며 보지 못하게 한다. 그가 여기에 드리워 있는 목적은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우리 신체의 백맥(百脈)은 모두 여기에서 합류되기 때문에, 그럼 이때 백맥이 다 현관을 거쳐 한바퀴 빙 돌아 나가게 된다. 다 현관을 거쳐야 하는데 목적은 현관 안에 기초적인 것을 더 넣어주어 이 한 세트의 것을 형성시키려는 데 있다. 인체는 곧바로 작은 우주이기 때문에 그가 하나의 작은 세계를 형성하게 되며 인체의 모든 정화적인 것이 모두 이 안에서 형성된다. 그러나 그는 다만 한 세트의 설비를 형성하는 것이며 아직 완전히 운용할 수 없다.

기문공법(奇門功法)의 수련은 현관(玄關)이 열려져 있다. 현관이 쏴 나올 때는 직통(直筒)이나 천천히 동그랗게 변한다. 그러므로 그 양쪽의 문은 열려져 있다. 기문공법은 부처수련도 하지 않고 도(道)도 닦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자신을 보호한다. 불도(佛道) 양가(兩家)의 사부는 많고도 많아 모두 당신을 보호할 수 있기에 당신이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으며 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기문공법은 안 된다. 그는 자신이 자신을 보호해야 하므로 그는 반드시 볼 수 있는 점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때에 천목으로 물체를 보는 것은 마치 망원경의 직통(直筒)을 통해 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 후 이 한 세트의 것이 형성된 다음, 한달 좌우가 되어 그는 되돌아가기 시작한다. 머리 속으로 돌아간 다음 그것을 현관환위(玄關換位)라고 한다.

되돌아갈 때에도 부풀어올라 견디기 어렵다. 그 다음 사람의 옥침혈(玉枕穴)로부터 빠져 나온다. 밀고 나오는 기분도 역시 매우 괴로우며 마치 머리가 갈라지는 듯 하다가 대번에 나오게 되는데, 그것이 나오게 되면 곧 홀가분한 감을 느끼게 된다. 나온 후에 그는 아주 깊은 공간 속에 드리워 있는데 아주 깊은 공간의 그 신체형식에 존재하기 때문에 잠을 자도 그는 배기지 않는다. 하지만 한가지가 있다. 현관(玄關)이 제1차로 설위(設位)할 적에 눈앞에 감각이 있다. 그것은 비록 다른 하나의 공간에 있지만 눈앞은 늘 흐리터분한 것이 마치 어떤 물건이 막는 것 같이 별로 편안치가 않다. 옥침혈(玉枕穴)은 아주 관건적인 하나의 큰 관문(關)이므로 뒷면에서도 한 세트의 것들을 형성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은 또다시 되돌아가기 시작한다. 이 현관일규(玄關一竅)는 실제로 일규(一竅)가 아니며 그는 여러 차례 자리를 바꾼다. 그가 니환(泥丸))으로 돌아온 후 내려가기 시작하는데 신체의 안으로부터 줄곧 명문혈(命門穴)까지 내려온다. 명문혈에서 그는 또 쏴 나온다.

사람의 명문(命門)은 극히 관건적인 주요한 대규(大竅)로서, 도가는 규(竅)라고 부르고 우리는 관(關)이라고 부른다. 주요한 하나의 큰 관문으로서 그는 정말로 철문이며 무수한 층의 철문이다. 여러분 알다시피 신체는 한 층, 한 층으로서 우리 현재의 육체세포는 한 층이며, 그 속의 분자도 한 층이며, 원자·질자·전자, 무한히 작고 무한히 작고 무한히 작아, 극히 작은 미립자까지 매 한 면에 모두 한 층의 문이 설치되었다. 그러므로 많고 많은 공능과 많고 많은 술류(術類)의 것들은 모두 각 층의 문안에 잠가져 있다. 기타 공법의 연단(煉丹)은 단(丹)이 폭발할 때 우선 이 명문을 진동시켜 열어야 하는데 그것이 진동해 열리지 않게 되면 공능은 석방되어 나올 수 없다. 현관(玄關)이 명문혈(命門穴)에서 이 한 세트의 것이 형성된 후 그는 다시 들어간다. 들어간 후 아랫배 부위로 되돌아가기 시작하는데 이것을 현관귀위(玄關歸位)라고 한다.

귀위(歸位)한 후 원래 그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때 원영은 아주 크게 자랐는데 기포는 원영을 씌우며 원영을 감싼다. 원영이 자라면 그도 역시 따라 자란다. 도가의 원영은 일반적으로 6-7세 어린이 모양으로 자랐을 때에 그로 하여금 신체를 떠나도록 하는데 원영출세(元?出世)라고 한다. 사람의 元神(원신)의 지배하에 그는 나와서 활동할 수 있다. 사람의 신체는 거기에서 定(띵)되여 움직이지 않고 元神(원신)만 나온다. 일반적으로 불가의 원영은 본인과 같이 크게 수련되었을 때면 위험이 없게 된다. 일반적으로 이때에 그가 신체를 떠남을 허락하는데, 이 신체를 이탈하여 나올 수 있다. 그때에 원영은 본인과 같게 크고 갓도 크며 그 갓은 이미 체외로 확대되는데 바로 그 현관이다. 왜냐하면 원영이 다 이만큼 컸기 때문에 그는 물론 체외로 확대된다.

여러분은 아마 절의 불상을 보았을 것이다. 불상은 언제나 하나의 원(圈)속에 있으며 특히 그려진 그 불상은 언제나 하나의 원(圈)이 있고 그 안에 부처가 앉아 있다. 많고 많은 불상은 모두 이러하다. 특히는 그 오래 된 절에 그려진 불상은 모두 이러하다. 왜 원(圈)안에 앉아 있는가를 누구도 똑똑히 말하지 못하였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는데 바로 이 현관(玄關)이다. 하지만 현재 그것을 이미 현관이라 부르지 않고, 세계라고 하며 아직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세계라고 부를 수 없다. 그는 다만 이 세트(套)의 설비로서 마치 우리 공장에 한 세트의 설비가 있지만 아직 생산능력이 없어 반드시 에너지 원천과 원료가 있은 다음에야 그것이 비로소 생산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몇 년 전에 많은 수련하는 사람들이 나는 보살님보다 공이 높고, 나는 부처님보다 공이 높다고 말하였다. 다른 사람들 듣기에는 아주 허황한 것만 같았다. 사실 그가 말한 것이 조금도 허황하지 않은데, 공은 확실히 세간(世間)에서 모두 높게 연마하여야만 한다.

그럼 무엇 때문에 수련되어 부처님보다도 더 높이 수련되었다고 하는 이 경우가 나타날 수 있는가? 이렇게 표면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그의 공은 확실히 대단히 높다. 왜냐하면 그가 아주 높은 층차 위에까지 수련된 후 그가 개공개오(開功開悟)에 도달할 적에 공이 확실히 대단히 높기 때문이다. 바로 그가 개공개오(開功開悟)하는 전야의 그 순간에 그 자신 공의 10분의 8을 꺾어서 그의 心性(심성)표준과 함께 모두 꺾어 놓는다. 이 에너지로서 그의 이 세계, 그 자신의 세계를 충실시킨다. 여러분 알다시피 수련인의 이 공, 특히 心性(심성)표준을 가한 이것은 사람이 일생 동안 무수한 고생을 겪고 간고한 환경 속에서 단련(磨煉)하고 수련해 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극히 진귀한 것으로서, 이 진귀한 것의 10분의 8로 그의 세계를 충실케 한다. 그러므로 장래 그가 수련성취 하였을 때에 무엇을 가지려고 손만 내밀면 곧 오게 되고, 무엇을 가지려면 무엇이 있고 무엇을 하려면 무엇을 할 수 있다시피, 그의 세계에는 무엇이든 다 있다. 이것은 그의 위덕(威德)인즉 자신이 고생을 겪어 수련해 낸 것이다.

그의 이런 에너지는 임의적으로 어떤 것이든지 변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부처가 무엇을 가지려고 하거나, 무엇을 먹으려고 하거나, 무엇을 놀고자 하여도 무엇이든 다 있게 된다. 이것은 그 자신이 수련해 낸 것으로서 바로 불위(佛位)이며 이것이 없이는 그가 수련될 수 없다. 이때에 그것을 하나의 자기의 세계라고 부를 수 있으며 그가 남은 10분의 2의 공(功)으로 원만(圓滿)을 이루고 도를 얻는다. 비록 다만 10분의 2가 남았지만 그의 신체는 잠기어 있지 않았거나 혹은 신체를 갖지 않거나 또는 신체를 갖고 있으나 신체는 이미 고에너지물질로 전화된 것이기 때문에 그때에 가서 그는 신통이 크게 나타나고 위력이 비할 바 없다. 그러나 속인 속에서 수련할 적에는 흔히 잠기어져 있으므로, 그렇게 큰 재간이 없으며 공이 아무리 높다 하여도 제한을 받아야 하는데 지금은 다르다.

 

제 5 강 의

법륜도형(法輪圖形)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의 표기(標記)는 法輪(법륜)이다. 공능이 있는 사람은 이 法輪(법륜)이 회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우리 그 작은 법륜휘장 역시 마찬가지로서 그도 회전하고 있다. 우리는 우주의 眞ㆍ善ㆍ忍특성에 따라 우리의 수련을 지도하고 있다. 우주의 연화(演化) 원리에 따라 연마하기 때문에 우리 이 공을 연마함은 무척 큰 것이다. 어떤 의의에서 말한다면 이 법륜도형은 우주의 축소판(縮影)이다. 불가(佛家)는 시방세계(十方世界)를 하나의 우주개념으로 본다. 사면 팔방, 여덟 개 방위, 아마 어떤 사람은 그가 상하로 존재하는 한 가닥의 공기둥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상하를 가하면 곧바로 시방세계로서 이 우주를 구성하며, 불가가 우주에 대한 개괄을 대표하고 있다.

물론 이 우주 중에는 우리 은하계를 포함하여 무수한 성계(星系)가 있다. 전체 우주가 운동하고 있으며 전체 우주 중의 모든 성계도 모두 운동하고 있다. 때문에 이 도형(圖形) 안에 있는 태극과 작은 卍자부호도 회전하고 있고 전체 法輪(법륜)도 회전하고 있으며 가운데 있는 이 큰 卍자부호도 회전하고 있다. 어떤 의의에서 말한다면, 이는 우리 은하계를 상징하며, 동시에 우리는 불가이므로 중심은 불가의 부호이다. 이것은 표면으로부터 본 것이다. 모든 부동한 물질은 모두 다른 공간에서의 존재 형식이 있는 것으로서, 다른 공간 속에서는 하나의 극히 풍부하고 극히 복잡한 하나의 연화과정과 존재형식이다. 이 법륜도형은 우주의 축소판으로서 그는 기타 각개 공간에도 그의 존재형식, 연화과정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세계라고 나는 말한다.

法輪이 시계바늘 방향으로 회전할 때에는 능히 자동적으로 우주 중의 에너지를 흡수하며, 시계바늘 반대방향으로 회전할 때에는 능히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다. 안으로 회전(시계바늘 방향)할 때는 자신을 제도하고 밖으로 회전(시계바늘 반대방향)할 때는 남을 제도하는데, 이는 우리 이 공법의 특징이다. 어떤 사람은, 우리는 불가(佛家)인데 왜 또 태극(太極)이 있는가? 이 태극은 도가(道家)의 것이 아닌가? 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공을 연마함이 무척 크므로 전체 우주를 연마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 우주에는 양대가(兩大家), 즉 불(佛), 도(道) 양대가가 있는데 어느 한 가(家)를 배제하여도 완전한 우주를 구성할 수 없으며 모두 완전한 우주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 여기에 도가의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은, 그렇다 해도 도가만이 아니지 않은가 라고 말한다. 또 무슨 기독교, 유교, 기타의 교 등등이 있지 않는가 라고 말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바, 유교가 극히 높은 층차에까지 수련되면 그는 도가에 귀속되며 서양의 많은 종교들이 높은 층차로 수련된 후에 그는 불가에 귀속되며 그는 불가의 한 체계에 속하게 된다. 곧 이 두 개의 큰 체계이다.

그럼 왜 태극도(太極圖)에 또 두 개는 위에 붉은 색이고 아래가 남색이며 또 두 개는 위가 붉은 색이고 아래는 검은 색인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태극은 흑백 두 가지 물질로 구성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는데 음양 양기(陰陽兩氣)가 아닌가. 그것은 하나의 아주 옅은 층차 중에 입각하여 인식한 것으로서, 부동한 공간에는 부동한 공간의 나타남이 있다. 최고 층차 중에서 나타나는 그것의 색깔은 곧바로 이러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도(道)는 바로 위는 붉은 색이고 아래가 검은 이런 색깔이다. 예를 들어 말해 보자. 우리 어떤 사람은 천목이 열렸는데 눈으로 보면 붉은 것이었지만 다만 한 층차의 차이가 있는 다른 공간에서 그것을 보게 되면 오히려 녹색으로 보이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황금색을 다른 공간에서 보면 도리어 자(紫)색인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는 이러한 하나의 대비가 있으므로 말미암아 부동한 공간의 색깔 역시 부동한 변화를 발생한다. 위는 붉은 색이고 아래가 남색인 태극은 선천대도(先天大道)에 속하는 것으로 기문(奇門)수련의 법문을 포함한다. 사면의 작은 卍자 부호는 불가의 것으로서 이는 중간의 것과 똑같이 모두 불가의 것이다. 이 法輪(법륜)색깔은 비교적 산뜻한데 우리는 그를 法輪大法(법륜대법)의 표기로 삼는다.

우리 여러분이 천목을 통하여 본 그 法輪(법륜)은 꼭 이런 색깔인 것만이 아니며 이 바탕색은 변할 수도 있으나 도안만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당신에게 넣어 준 아랫배 부위의 法輪(법륜)이 회전할 때에 당신 천목이 본 것은 아마 붉은 색일 것이며 아마 자색일 것이고 아마 녹색일 것이며 또 가능하게는 무색 일수도 있다. 적등황록청남자, 그의 바탕색은 끊임없이 색깔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보게 된 것은 아마 기타 색깔일 수 있으나 그 안의 卍자 부호, 태극의 색깔 도안만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 도안의 바탕색이 비교적 보기 좋다고 여겨져 우리는 그를 고정시켰다. 공능이 있는 사람은 이 한 층의 공간을 꿰뚫고 많고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이 卍자 부호가 마치 히틀러의 그것과 같다고 말한다. 여러분에게 말해 줄 것은 이 부호 자체는 무슨 계급개념이 없다. 어떤 사람은, 이 각이 이쪽으로 기울어지면 곧 히틀러의 그것과 같다고 말한다. 이런 것이 아니다. 이 양쪽은 다 회전하고 있다. 우리 인류사회가 이 도안을 보편적으로 인식하기는 2,500 년전 석가모니 시대에 그를 인식하게 되었다. 히틀러가 있던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지금까지 불과 몇십 년인데 그는 이것을 훔쳐 썼다. 그러나 그것의 색깔은 우리의 것과 다른 것으로, 그것은 검은 색이며 또한 그것의 끝도 위로 향하여 세워졌고 세워서 사용했다. 이 法輪(법륜)을 이만큼 이야기를 하겠는데 우리는 그의 표면형식만 이야기하였다.

그럼 이 卍자부호를 우리 불가에서는 무엇으로 보고 있는가? 어떤 사람은 길상여의(吉祥如意)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속인 중의 해석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卍자 부호는 부처님 층차의 표지로서 오로지 부처님 층차에 도달해야 만이 있을 수 있다. 보살(菩薩)이나 나한(羅漢)은 없다. 하지만 대보살(大菩薩), 4대보살은 다 있다. 우리는 이러한 대보살들이 일반 부처님의 층차를 모두 훨씬 능가하였으며 심지어 여래보다도 더 높은 것을 보게 된다. 여래 층차를 능가한 부처님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여래는 다만 하나의 卍자 부호가 있을 뿐이다. 여래 이상의 층차에 도달하기만 하면 卍자 부호가 많아지게 된다. 여래를 한배 능가하면 2개의 卍자 부호가 있게 되며 또 능가하게 되면 3개, 4개, 5개가 있으며 많은 것은 온 몸에 다 있다. 머리에, 어깨에, 무릎에 모두 나타나게 되며 놓을 자리가 없을 때에는 손바닥·손가락 장딴지·발바닥·발가락 장딴지 등의 곳에 다 나타나게 된다. 층차가 끊임없이 높아짐에 따라 卍자 부호는 끊임없이 증가된다. 그러므로 卍자 부호는 부처님의 층차를 대표한 것으로 부처님의 층차가 높을수록 卍자 부호가 더욱 많게 된다.

기문공법(奇門功法)

불도(佛道) 양가(兩家)의 공법 외에 또 일종의 기문공법(奇門功法)이 있는데 그들 자신은 기문수련이라고 한다. 우리 일반 속인은 수련 공법에 대하여 이런 한가지 인식이 있다. 즉 중국 고대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불도 양가의 공법은 정통적인 수련방법이라고 인정하며 그를 또는 정법문(正法門)수련이라고도 부른다. 이 기문공법은 여태껏 세상에 공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너무나 적으며 다만 예술작품 중에서 듣게 된다.

기문공법은 있는가 없는가? 있다. 나는 수련과정 중에서, 특히 후 몇 년내에 나는 세 분의 기문(奇門)중 고인(高人)을 만나게 되어, 나에게 그들 한 문(門) 중의 정화(精華)를 전하였는데 매우 독특하였고 몹시 좋았다. 바로 그의 것이 아주 독특하기 때문에 연마해 낸 것도 아주 괴상하여 일반 사람들에게 이해되지 않는다. 아울러 또한 비불비도(非佛非道)라, 수불(修佛)하지도 않고 수도(修道) 하지도 않는다는 한마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수불하지도 않고 수도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듣고 그를 방문좌도(旁門左道)라고 부르지만 그들 자신은 기문공법이라고 부른다. 방문좌도(旁門左道)라고 부름이 낮잡아 보는 뜻은 있지만 반대하는 뜻은 없어 그를 사법(邪法)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데, 이 한 점은 긍정적이다. 글자로 이해하여도 사법이란 뜻이 없다. 역대로 불, 도의 공법을 정법문(正法門)수련으로 불렀다. 그의 이 공법이 사람들에게 인식되지 못하였을 때 사람들은 그를 방문(旁門), 옆의 문이라며 정법문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그 좌도(左道)란? 좌는 바로 우둔하다는 뜻으로서 우둔한 도이다. 좌(左)란 중국 고대명사 중에서 그를 흔히 우둔한 것으로 말하였는데, 방문좌도는 이런 한 층의 뜻이 있다.

왜 그는 사법(邪法)이 아닌가? 왜냐하면 그도 엄격한 心性(심성) 요구가 있으며 그 역시 우주의 특성에 따라 수련하는 것으로, 그도 이 우주특성, 우주의 법칙을 위반하지 않으며 그 역시 나쁜 짓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를 사법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이 우주특성이 불도 양가의 수련방법에 부합되는 것이 아니라 불도 양가의 수련방법이 우주의 특성에 부합되기 때문에 비로소 정법(正法)으로 되었다. 기문공법 수련은 이 우주특성에 부합되려 하기에, 그렇다면 그는 사법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정법이다. 왜냐하면 좋은 것과 나쁜 것,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가늠하는 표준은 우주특성이기 때문이다. 그가 우주특성에 따라 수련하기 때문에 그 역시 바른 길이다. 다만 그의 요구 특징이 불도 두 가와 다를 뿐이다. 그도 광범하게 제자에게 전수하지 않고 전수하는 면적이 아주 작다. 도가에서 공을 전함에 많은 제자를 가르치지만 그중 오로지 한 제자에게만 진정한 전수를 한다. 불가는 중생을 제도함을 주장하기 때문에 누가 수련할 수 있으면 수련하도록 한다.

기문공법은 물려받고 전해 줌에 있어서 모두 두 사람을 찾지 못하며 아울러 무척 긴 역사시기에 한 사람을 선정하여 전하므로 그의 그것은 역대로 속인들이 보지 못하게끔 한다. 물론 기공고조 중에서 이 공법 중의 소부분의 사람이 나와 공을 전수하는 것을 나는 발견하였다. 그러나 그도 전해 오고 전해 가는 중에서 안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어떤 것들은 그의 사부가 그더러 아예 전하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당신이 공을 전수하려 한다면 당신은 사람을 고를 수 없게 된다. 오는 사람들은 心性(심성) 고저가 부동한 층차 중에 있다. 부동한 관념을 품고 와서 배우려 하며 별별 사람이 다 있기 때문에 당신은 제자를 골라 전수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기문공법은 보급하면 안되며 위험이 나타나기 쉽다. 왜냐하면 그의 그것이 매우 특수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생각한다. 불가는 부처수련이고 도가는 진인(眞人) 수련인데 그 기문공법에서 수련되면 무엇이 되는가? 그는 산선(散仙)으로서 그에게는 고정된 우주세계 범위가 없다. 여러분 알다시피 여래불, 석가모니는 사바세계(娑婆世界)가 있고, 아미타불은 극락세계(極樂世界)가 있으며, 약사불은 유리세계(琉璃世界)가 있으며, 각 여래와 큰 부처님은 자신의 세계가 있다. 매 하나의 대각자는 모두 그 자신이 조직한 하나의 천국이 있으며 그의 많은 제자들이 그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기문공법은 그의 고정된 우주 범위가 없기 때문에 그는 다만 마치 떠돌아다니는 신선과 같을 따름이다.

사법연마(練邪法)

무엇이 사법을 연마(練)하는 것인가? 이런 몇 가지 형식이 있다. 한 종류의 사람은 전문 사법을 연마(練)하고 있는데 이런 것을 대대로 전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것을 전하는가? 그가 속인 중의 명(名)이요, 리(利)요, 횡재를 추구함을 그가 주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心性(심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그는 공을 얻을 수 없다. 그는 무엇을 얻는가? 업력이다. 사람의 업력이 클 때면 역시 일종 에너지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층차가 없으므로 그가 연공인과는 비길 수도 없지만 속인과 비긴다면 오히려 능히 속인을 제약할 수 있다. 이런 것도 에너지의 체현이기 때문에 밀집도가 아주 클 때에는 인체의 공능을 강화시킬 수 있으며 이런 일종 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대로 어떤 사람은 이것도 전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나는 나쁜 짓을 하고 사람을 욕하기만 하면 나는 곧 공이 자란다. 그는 공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바로 이런 흑색물질의 밀도를 강화한 것으로 나쁜 짓을 하게 되면 흑색물질--- 업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도 자신의 몸에 고만큼 작은 공능을 갖게 되는데 이런 업력의 강화로 하여 조그마한 공능이 생길 수 있지만 무슨 큰 일을 해내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나쁜 짓을 하기만 하면 공이 자랄 수 있다고 여기는데 그에게는 이런 설이 있다.

어떤 사람은 그 무슨 도(道)가 한 자 높으면 마(魔)는 한 장 높다고 말한다. 그것은 속인 중의 일종 그릇된 설로서, 마(魔)는 영원히 도(道)보다 높을 수 없다. 이런 한가지 상황이 있다. 우리 인류가 이해(了解)한 우주는 다만 무수한 우주 중 하나의 소우주인데 우리는 약칭하여 우주라고 한다. 우리 이 우주는 매번 아주 멀고 오랜 연대를 거친 후, 다 한 차례 우주의 큰 재난이 발생할 수 있다. 이 한 차례의 재난은 별나라를 포함한 우주 중의 일체를 모두 훼멸시킬 수 있으며 우주 중의 일체 생명을 모두 훼멸시킬 수 있다. 우주 운동 역시 법칙이 있는 것으로서 우리 본 차례의 우주도 근근히 인류만 나쁘게 변한 것이 아니다. 많은 생명들도 이미 하나의 상황을 보아냈는데 현재로 말하면 이 우주 공간은 일찍이 대폭발이 발생되었다. 현재 천문학자들은 보아내지 못한다. 우리가 지금의 가장 큰 망원경으로 보면 보이는 광경(光景)은 15만 광년 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천체의 변화를 보려고 한다면 15만 광년 이후에야 만이 볼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은 무척 멀고 오랜 것이다.

지금 전체 우주는 이미 한가지 아주 큰 변화가 발생되었는데 매번 이런 변화가 발생할 때, 전체 우주 중의 생명은 전부 훼멸에 처하며 완전히 훼멸상태에 처한다. 매 한 차례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 우주 중에서 예전에 존재하였던 이런 특성과 그 속의 물질을 모두 폭발시켜야 하므로 일반적으로 모두 터져 죽었지만, 이제까지의 매회마다 모두 깨끗이 폭발시키지 못했다. 새로운 우주가 극히 높고 극히 높은 대각자들에 의하여 새롭게 건립된 후, 그 안에는 아직도 일부 터져 죽지 않은 것들이 있게 된다. 대각자들이 이 우주를 조직할 때에 모두 그 자신들의 그 특성에 따라 자신들의 표준으로 이 우주를 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한 시기의 우주특성과는 좀 다르게 된다.

터져 죽지 않은 것들은 원래의 그런 특성, 그런 이치로 이 우주 중에서 행사한다. 새로 만들어진 이 우주는 새로운 우주특성, 이 이치에 따라 행사한다. 때문에 터져 죽지 않은 것들은 우주의 이치를 교란하는 마(魔)가 된다. 그러나 그 역시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라 그는 다만 먼저 번 주기의 우주특성에 따라 행사할 뿐인데,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하늘의 마(天魔)이다. 하지만 그는 속인에 대하여 어떤 위협이 없으며 그는 사람을 전혀 해치지 않는다. 그는 다만 그의 그 이치에 따라 처사할 따름이다. 과거에 이것은 속인이 알지 못하게끔 되어 있었다. 내가 말한다면, 여래의 층차보다도 아주 높은 경지의 부처님이 많고도 많으므로 그 마(魔)가 다 무엇인가. 비교해 본다면 너무나도 작고 너무 작다. 노(老)·병(病)·사(死)역시 일종 마(魔)이지만 이 역시 우주특성을 수호하기 위하여 생긴 것이다.

불교에서 육도윤회(六道輪回)를 이야기하며 하나의 수라도(修羅道)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사실은 곧바로 부동한 공간의 생물이다. 하지만 사람의 본성을 갖추지 않고 있다. 대각자들이 볼 때 그것들은 극히 낮고 극히 낮으며 특별히 무능하지만, 속인이 볼 때는 아주 두렵다. 그것들은 일정한 에너지를 갖고 있으며 그것들은 속인을 짐승류로 여기기 때문에 사람을 잡아먹기를 즐긴다. 이 몇 년래 그것들도 뛰쳐나와 공을 전수하고 있다. 그것들은 무슨 물건 짝들인가. 그것들의 생김새가 사람과 같을 수 있는가? 몹시 무서운 것으로 그것들의 것을 배우기만 하면 곧바로 그들 거기에 가서 그것들과 한 무리가 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연공(練功)할 때에 사상이 올바르지 않아 그것들의 생각과 부합되게 되면 곧 그것들이 와서 당신을 배워준다. 일개 올바름이 백개 사악을 제압(一正壓百邪)하므로 당신이 추구하지 않을 때 누구도 감히 당신을 건드릴 수 없다. 당신이 만일 사념(邪念)을 가지고 좋지 않은 것을 추구한다면 그가 와서 당신을 돕는데 당신은 마도(魔道)를 닦게 되며 이러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또 한가지 상황이 있는데, 비자각적으로 사법(邪法)을 연마(練)한다고 한다. 무엇이 비자각적으로 사법을 연마하는 것인가? 즉 사람이 모르는 상황하에서 사법을 연마함이다. 이런 일은 아주 보편적이며 그야말로 너무나도 많다. 바로 내가 그날 이야기한 것처럼 많은 사람은 공을 연마함에 사상이 올바르지 않다. 당신은 그가 거기에서 참장(站?)을 하는 것을 보라. 지쳐서 손이 떨리고 다리도 후들후들 떨린다. 그러나 그의 머리만은 쉬지 않고 있으며 그는 생각한다. 물가가 오르게 되는데 나도 좀 사들여야겠다. 공을 연마함이 끝나면 나는 가서 사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물가가 오른다. 어떤 사람은 생각한다. 직장에서 지금 집을 분배하고 있는데 이 집들 중에 내 것이 있는가 없는가? 집 분배를 하는 사람은 어떻게 어떻게 나와 알륵이 있다.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난다. 그는 긍정적으로 나에게 집을 주지 않을텐데 나는 어떻게 그와 한바탕 해볼까?… 무슨 생각이든 다 있다. 바로 내가 말한 것처럼, 그들의 집으로부터 줄곧 국가 대사에까지 주절대며 화가 난 일을 말하게 되면 더욱 화가 나서 야단이다.

연공은 德(덕)을 중히 여겨야 하는데 우리가 연공을 할 때에 당신이 좋은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나쁜 일을 생각해서는 안되며 가장 좋기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낮은 층차에서 연공할 때 기초적인 것을 쌓아야 하는데 이런 기초적인 것은 오히려 극히 중요한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의념(意念)적인 활동이 일정한 작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의 공에 어떤 것들을 넣는다면 당신이 연마(練)해 낸 그것이 좋을 수 있는가? 그것이 꺼멓지 않을 수 있는가?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갖지 않고 연공(練功)하고 있는가? 왜 당신은 늘 연공하여도 병이 제거되지 않는가? 어떤 사람은 연공하는 장소에서 그런 나쁜 일은 생각하지 않지만 늘 일종 공능을 추구하고 이것저것을 추구하려 하며 각종 심태, 각종 강렬한 욕망을 품고 연마하고 있다. 사실 이미 비자각적으로 사법을 연마하고 있다. 당신이 그를 보고 사법을 연마하고 있다고 말해주면 그는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 어느 기공대사가 나를 배워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기공대사가 당신더러 德(덕)을 중시하라고 하였는데 당신은 중시하였는가? 당신이 연공할 때, 당신은 온통 좋지 못한 의념들만 걷어 넣는데, 당신이 말해보라. 당신은 좋은 것을 연마해 낼 수 있겠는가? 바로 이 문제로서, 이것은 비자각적으로 사법을 연마함에 속하는데 아주 보편적이다.

남녀쌍수(男女雙修)

수련계에 이런 일종의 수련방법이 있는데 남녀쌍수(男女雙修)라고 부른다. 여러분은 아마 티베트(西藏) 밀종(密宗) 수련방법 중에서나, 조각된 불상 또는 그림 중에서 한 남자 몸체가 한 여자 몸체를 끌어안고 수련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남자 몸체의 어떤 때의 표현형식은 부처님으로서 실 한 오리 걸치지 않은 여인을 끌어안고 있다. 또는 부처님이 변화된 몸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는 즉, 우두마면금강상(牛頭馬面金剛像)으로 변하여 한 여자 몸체를 끌어안고 있는데 역시 실 한 오리 걸치지 않았다. 왜 이럴 수 있는가? 우리는 우선 여러분에게 이러한 문제를 설명하겠다. 우리 지구에서 우리 중국만 유가(儒家)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 전체 인류는 몇 세기 전의 고대에 인류의 도덕관념은 모두 비슷하였다. 그러므로 이런 수련방법은 사실 우리 이 지구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는 다른 별나라에서 전해 온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확실히 수련할 수 있다. 이런 수련방법이 당시 우리 중국에 전해 들어올 때에 바로 그의 남녀쌍수(男女雙修)와 일부 비밀적으로 연마하는 부분이 있으므로 하여, 중국인들에게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당대(唐代) 회창년 기간에 한인지역의 황제에 의하여 취소 당하였다. 그것이 한인지역에서 유전됨을 허용하지 않았는데 그때에 당밀(唐密)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티베트의 그 특수한 환경, 특수한 지역에서 그것이 유전되어 왔다. 왜 이렇게 수련하는가? 남녀쌍수의 목적은, 음(陰)을 채집하여 양(陽)을 보충하고 양을 채집하여 음을 보충함으로써, 서로 보충하고 서로 수련하여 일종 음양평형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다.

여러분 알다시피 불가라도 좋고 도가라도 좋은바, 특히 도가 음양학설에서는 말하였다. 인체는 자체로 음양을 갖고 있고 인체에 음양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체는 비로소 각종 공능·원영(元?)·영해(?孩)·법신(法身) 등 생명체를 수련해 낼 수 있다. 왜냐하면 음양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많고 많은 생명체를 수련해 낼 수 있다. 남자 몸이든, 여자 몸이든지 불문하고 다 마찬가지로서 단전(丹田)이라는 그 전(田)에서 모두 생성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설은 아주 일리가 있다. 도가는 흔히 상반신을 양이라고 보고 하반신을 음이라고 보며, 뒷몸을 양이라고 보고 앞몸을 음이라고 보는가 하면 또 한 사람 신체의 왼쪽을 양으로 보고 오른쪽을 음으로 보고 있다. 우리 중국에는 남좌여우(男左女右)라는 말이 있는데 역시 여기에서 온 것으로서 아주 일리가 있다. 인체는 자체에 음양이 존재함으로 음양의 상호 작용하에서 자체로 능히 음양평형에 도달 할 수 있는바, 역시 많고 많은 생명체가 생기도록 할 수 있다.

이는 곧 하나의 문제를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는 남녀쌍수의 수련방법을 채용하지 않고서도 마찬가지로 아주 높은 층차에까지 수련할 수 있다. 만약 남녀쌍수 방법을 채용하여 수련하며, 만약 잘 장악하지 못하게 되면 곧 입마(入魔)할 수 있으며 곧 사법(邪法)으로 된다. 아주 높은 층차에서 밀종이 남녀쌍수를 채용하려고 한다면, 이 스님이나 라마가 반드시 아주 높은 층차에까지 수련되어야 한다. 그때에 가서 그의 사부가 그를 데리고 이런 수련을 하게 되는데 그는 心性(심성)이 아주 높기 때문에 그는 능히 파악할 수 있으며 사(邪)한 것에 치우치지 않는다. 그러나 心性(심성)이 아주 낮은 사람은 절대 채용하지 못하며 채용만 하면 곧바로 사법(邪法)에 든 것이라, 보증하고 이러하다. 心性(심성)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속인 경지에서의 욕망적인 마음이 제거되지 않았고 색에 대한 마음이 제거되지 않았으며 心性(심성)의 척도가 거기에 있기 때문에, 쓰기만 하면 보증하고 사악한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낮은 층차에서 이것을 함부로 전수한다면 그것은 곧 사법을 전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 몇 년래 적지 않은 기공사가 남녀쌍수를 전하고 있다. 어디가 이상한가? 도가(道家)도 남녀쌍수의 수련방법이 나타났으며 또한 현재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당나라 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도가에 어찌하여 남녀쌍수가 나타날 수 있는가? 도가 태극학설은 신체는 소우주로서 자체로 음양을 갖고 있다고 한다. 진정한 정전대법(正傳大法)은 모두 하나의 멀고도 오랜 연대를 거쳐서 유전되어 내려온 것으로서 함부로 고치거나 함부로 어떠한 것을 걷어 넣는다면 모두 그 한 법문의 것을 난잡하게 만들게 되며 그로 하여금 수련하여 원만을 이루는 목적에 도달할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그 공법에 남녀쌍수의 것이 없다면 절대 수련하지 말아야 한다. 쓰면 곧 편차가 생기고 곧 문제가 생기게 된다. 특히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 이 한 법문에는 남녀쌍수가 없으며 또한 이것을 주장하지 않는다. 이 문제를 우리는 바로 이렇게 보고 있다.

성명쌍수(性命雙修)

성명쌍수(性命雙修) 이 문제를 이미 여러분에게 논술하였다. 성명쌍수란 바로 心性(심성)수련을 하는 외, 동시에 또 명을 닦는다. 다시 말해서 本體(본체)를 개변하는 것이다. 개변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세포가 점차적으로 고에너지물질로 대체될 때 노쇠를 늦출 수 있다. 신체는 젊은 사람의 방향으로 되돌아가며, 점차적으로 되돌아가고 점차적으로 전화되어, 마지막에 완전히 고에너지물질로 대체하게 될 경우, 그럼 이 사람의 신체는 이미 완전히 다른 일종의 물질로 전화된 신체이다. 그러한 신체는 곧바로 내가 이야기한, 오행을 벗어났으며 오행 중에 있지 않는 것으로 그의 신체는 곧 하나의 불괴(不壞)의 신체이다.

절에서의 수련은 오로지 성(性)만 닦는다. 때문에 수법을 이야기하지 않고 명(命)을 닦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으며 그는 열반(涅槃)을 주장한다. 석가모니가 전한 방법이 바로 열반을 주장함인데, 사실 석가모니 자신은 고심대법(高深大法)이 있었기 때문에 本體(본체)를 완전히 고에너지 물질로 전화시켜 가지고 갈 수 있었다. 그는 이런 수련방법을 남겨두기 위하여 그 자신이 열반을 하였다. 그는 왜 이렇게 가르쳤는가? 그는 사람으로 하여금 최대 한도로 집착심을 버리게 하며 무엇이든 다 버리게 하기 위하여, 최후로 신체마저 포기함으로써 모든 마음이 다 없게 하는 데 있었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최대한도로 이 한 점을 하게 하기 위하여 열반의 이 길을 걸었다. 그러므로 역대 스님도 다 이 열반의 길을 걸었다. 열반이란 바로 스님이 죽은 다음 육신을 버리고 그 자신의 元神(원신)이 공을 갖고 올라가는 것을 말한다.

도가는 중점을 명(命)을 닦는 데 두고 있다. 그는 제자를 선정함에 있어서 중생을 제도함을 주장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대단히 좋고 대단히 좋은 사람을 상대로 한다. 그러므로 그는 술류(術類)의 것들을 이야기하며 그는 어떻게 명을 닦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불가 이런 특정한 수련방법에서는, 특히 불교 이 수련방법에서는 이것을 이야기할 수 없다. 다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많은 높고 깊은 불가대법 중에서는 역시 이야기하며 우리 이 법문은 곧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 이 한 문(門)은 本體(본체)도 가질 뿐만 아니라 원영(元?)도 가지는데 이 두 개는 구별이 있다. 원영 역시 일종 고에너지물질로 구성된 신체이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함부로 우리 이 공간에 나타날 수 없으며 이 공간에서 장기적으로 속인과 같은 형상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우리의 本體(본체)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本體(본체)가 전화된 후, 비록 그의 세포가 고에너지물질에 의하여 대체되었지만 그의 분자 배열순서는 변화를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볼 때에는 정상적인 사람의 신체와 별로 차별이 없다. 그러나 그래도 구별이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신체는 다른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성명쌍수(性命雙修)의 공법은 외관적으로 사람들에게 아주 젊은 느낌을 주게 되며 보기에는 이 사람이 실제 연령과 차이가 아주 크다. 그날 어떤 사람이 나를 보고 스승님, 내 나이가 얼마 되어 보입니까? 라고 물었다. 실제로 그녀의 나이가 70세에 가까우나 겉으로 볼 때에는 40여세 되어 보였다. 주름살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얼굴이 빤빤하고도 희며 흰 속에 불그스름한데, 이 어디 70세에 가까운 사람 같은가.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을 연마하는 사람은 이런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한마디 우스갯소리를 한다면, 젊은 처녀들은 늘 미용을 즐기며 피부가 희고 좋게 변할 것을 바란다. 내가 말한다면, 당신이 진정하게 성명쌍수의 공법을 연마하기만 하면 자연히 이 점에 도달하게 되는데, 보증하고 당신이 미용할 필요가 없다. 이 면의 예를 우리는 들지 않겠다. 예전에는 각 업종에 연세 많은 분이 비교적 많았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나를 젊은이로 인정했다. 지금은 좋게 되었다. 각 업종에 젊은이들이 비교적 많다. 사실 나도 젊지 않다. 좀 지나면 50세가 되는데 현재 벌써 43세이다.

법신(法身)

왜 불상에는 하나의 마당이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불상에 마당이 있는 것은 중이 불상에 대고 경을 읽음으로 하여 생긴 것이며, 다시 말해서 스님이 마주하고 수련하여 생긴 마당이라고 말한다. 스님이 수련해도 좋고 누가 수련해도 좋은데, 이런 에너지는 흩어지는 것이며 고정된 방향이 없는 것이므로 마땅히 온 불당(佛堂)의 땅, 천장, 벽에 모두 균등한 마당이 있어야 한다. 그럼 왜 불상의 마당만이 그렇게 강한가? 특히 심산 속, 또는 그 어느 산굴 속 또는 암석에 조각된 불상에 흔히 모두 하나의 마당이 존재한다. 왜 이 마당이 나타나게 되는가?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해석하고 저렇게 해석하지만, 어떻게 해석하여도 해석이 통하지 않는다. 사실 불상에 그 마당이 있게 되는 것은 불상에 한 각자의 법신(法身)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각자의 법신이 거기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는 에너지가 있을 수 있다.

석가모니도 좋고 관음보살도 좋고, 만약 역사적으로 확실히 그 사람이 있었다면 여러분 생각하여 보라. 그가 수련할 적에 그 역시 연공인이 아니었겠는가? 사람은 出世間法(출세간법) 이외의 무척 높은 일정한 층차에로 수련된 후, 곧 법신(法身)이 생기게 된다. 법신은 사람의 단전(丹田) 부위에서 생기게 되는 것으로, 법(法)과 공(功)으로 구성되었으며 다른 공간에서 체현되어 나온 것이다. 법신은 그 본인의 대단히 큰 위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법신의 의식, 법신의 사상은 오히려 주체(主體)의 통제를 받는다. 그러나 법신 자신은 또 하나의 완전하고 독립적이며 확실하고도 확실한 개체의 생명이기 때문에 또한 자신이 독립적으로 어떠한 일이든지 할 수 있다. 법신이 한 일과 사람의 主意識이 하고자 하는 일은 마찬가지로 똑같다. 그 일을 본인이 가서 하라 하여도 역시 그렇게 하며 법신이 가서 하여도 역시 그렇게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법신이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자 한다면, 예를 들어 진정하게 수련하는 제자에게 신체를 조절해 주는 것을 다 나의 법신이 가서 한다. 법신은 속인의 그 신체를 갖고 있지 않으므로 다른 공간에서 체현된다. 그 생명체도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그는 크게 변할 수도 있고 축소될 수도 있다. 어떤 때에 그는 아주 크게 변하여 법신의 온 머리를 다 보아내지 못할 정도로 크며, 어떤 때에는 아주 작게 변할 수도 있는데 작을 때에는 세포보다도 더 작다.

개광(開光)

공장에서 만들어 내는 불상은 다만 하나의 예술품에 지나지 않는다. 개광(開光)이란 곧 부처님의 법신 하나를 청하여 불상에 오르게 한 다음, 불상을 속인 속에서 하나의 유형적인 신체로 삼아 모시는 것을 말한다. 연공인은 이 공경하는 마음이 있음으로 하여, 수련할 때에 불상 위의 법신은 곧 그를 위해 법을 수호하고 그를 지켜주며 그를 보호해 주는데, 이것이 개광의 진정한 목적이다. 오로지 정식 개광하는 의식에서 정념(正念)을 내보내거나 또는 아주 높은 층차에 있는 대각자거나 또는 아주 높은 층차에서 수련하여 이런 힘을 갖춘 사람만이 이 일을 해낼 수 있다.

절에서는 불상은 개광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개광을 거치지 않은 불상은 영험하지 않다고 말한다. 지금 절의 스님들을 보면 진정한 그런 대법사(大法師)들이 모두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문화대혁명'이후, 그 나 어린 스님의 일부는 진정한 전수를 받지 못하고도 지금은 주지가 되어 많은 것이 실전(失傳)하게 되었다. 그에게 개광을 하여 뭘 하는가? 고 묻게 되면, 그는 개광을 하면 불상이 영험하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험한가를 그도 똑똑히 말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는 다만 의식을 거행할 따름이다. 불상 속에 하나의 작은 경문을 넣어 놓고 그런 다음 그것을 종이로 봉하고는 그를 마주 향하여 경을 읽는데 그는 곧 개광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개광에 도달할 수 있는가 없는가? 그건 그가 어떻게 경을 읽는가에 달렸다. 석가모니는 정념을 이야기하였다. 일심불란(一心不亂)으로 경을 읽어 진정하게 그가 수련하는 그 한 법문의 세계에 진동이 생길 수 있게끔 하여야만, 비로소 각자(覺者)를 초래할 수 있다. 그 각자의 법신이 하나 올라가게 되어야만 개광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어떤 스님은 거기에서 경을 읽지만 마음속으로는 도리어, 좀 지나 개광이 끝나면 나에게 돈을 얼마나 주겠는가를 생각하고 있다. 또는 경을 읽으면서 누구누구가 나에게 그처럼 못되게 논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의 거기에도 아귀다툼이 있는데, 현재 말법시기에 이르러 이런 현상을 승인하지 않아도 안 되는 것으로, 우리가 여기에서 불교를 비평하는 것이 아니라 말법시기 어떤 절은 좀처럼 깨끗하지 않다. 그가 머리 속에 이런 일들을 생각할 때에 이런 좋지 않은 생각을 내보내는데 그 각자가 올 수 있는가? 전혀 개광의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하지만 절대적이 아닌 것으로서 개별적으로 좋은 사찰과 도관(道觀)도 있다.

내가 ×시에서 한 스님을 보았는데 그 손이 시꺼멓다. 경문을 불상 속에 밀어넣고 대충 바르고서 입으로 두어 번 중얼거리고는 개광했다고 한다. 또한 불상을 하나 갖다놓고 또 두어 번 중얼거리는데 개광을 하나 하면 40원이다. 지금 스님은 이것도 상품으로 삼아 불상개광의 횡재를 하고 있다. 내가 보니 개광되지도 않았고 전혀 개광될 수 없는데 지금의 스님은 공공연히 이런 일을 하고 있다. 나는 또 한가지 어떤 일을 보게 되었는가? 절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마치 거사인 것 같았다. 불상에 개광을 한다면서 그는 한 면의 거울을 들고서 태양을 마주하고 그 빛을 불상 몸에 비치고는 곧 개광하였다고 그는 말하였다. 다 이처럼 가소로운 정도에까지 도달하였다! 오늘 불교가 이 지경까지 발전되어 오게 되었는데 그것도 하나의 아주 보편적인 현상이다.

남경에서 동으로 된 하나의 대불상을 만들어 홍콩의 대서산(大嶼山)에 세우게 되었는데 아주 큰 불상이었다. 불상의 개광을 위하여 전 세계에서 많은 스님들이 왔는데, 그중 스님 하나가 한 면의 거울을 들어 태양을 마주하고 빛을 불상의 얼굴에 비추고는 개광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큰 성대한 모임과 그렇게 엄숙한 장소에서 이런 짓을 했다는 것은, 내가 생각할 바에 정말로 슬픈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법시기에 이르러 스님 자신도 제도하기 어려우므로 남을 제도하기란 더욱 어렵다고 석가모니가 말씀하셨다. 더구나 많은 스님은 자신의 관점에 입각하여 불경을 해석한다. 무슨 서왕모경(王母娘娘經)이 절에 들어왔는가 하면, 불교 경전 중의 것이 아닌 것들도 다 절에 들어와 난잡하기 짝이 없으며 현재 아주 혼란스럽다. 물론 진정하게 수련하는 스님은 아직도 있으며 아직도 아주 괜찮다. 개광이란 실제적으로는 각자의 법신을 불상에 청하여 이렇게 있게 하면 바로 개광이다.

그럼 이 하나의 불상이 만약 개광하지 않았다면 모실 수 없다. 모시게 되면 곧 아주 엄중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어떤 엄중한 결과인가? 지금 우리 인체과학을 연구는 사람들이 발견한데 의하면 우리 사람의 의념(意念), 사람의 대뇌 사유는 일종 물질을 생기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아주 높은 층차에서 그것이 확실히 일종 물질임을 보게 되지만 이 물질은 오히려 우리가 지금 연구하여 발견한 일종 뇌전자파의 형식과 같은 것이 아니라, 일종 완전한 대뇌형식이다. 평소에 속인이 문제를 생각할 때에 내보내는 대뇌형태의 것은 그것이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내보낸 시간이 길지 않아 곧 흩어지게 되나, 연공인의 에너지는 유지하는 시간이 퍽 길다. 이 하나의 불상이 공장에서 생산되어 나와서부터 그것이 곧 사상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없다. 어떤 것은 개광을 거치지 않았으며 그가 절에 가지고 와서도 개광의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만약 어느 가짜 기공사나 사문왜도(邪門歪道)의 사람이 개광한다면 그것은 더욱 위험한 것으로 여우, 족제비가 곧 올라가게 된다.

그럼 만약 개광을 하지 않은 불상에, 당신이 가서 절을 하게 되면 너무나도 위험하다. 어떤 정도로 위험한가? 내가 말했지만, 인류는 오늘까지 발전되어 옴에 있어서 일체가 다 부패해지고 있으며 전체 사회, 전체 우주 중의 일체 일도 이어서 부패가 발생하고 있는바, 우리 속인 중의 일체 일은 모두 자신이 조성한 것이다. 정법을 추구하려 생각하고 바른 길을 걷고자 하여도 몹시 어려운지라 여러 면에서 다 교란한다. 부처님께 청하려고 하지만 누가 부처님인가? 청하려고 하여도 모두 퍽 어렵다. 믿어지지 않으면 내가 말하겠다. 첫 번째 사람이 만약 아직 개광하지 않은 불상 앞에 가서 절을 하게 되면 잘못된다. 지금 부처님에게 절을 하는데 마음속으로부터 정과(正果)를 얻겠다는 생각을 갖고 부처님께 빌고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는가? 이러한 사람은 너무나도 적다. 대다수 사람이 부처님에게 비는 목적은 무엇인가? 재난을 없애고 난(難)을 풀며 횡재하는 이런 것을 빈다. 이것이 불교 경전의 것인가? 이 층의 것들이 전혀 없다.

부처님에게 비는 사람이 만약 돈을 구하고자 하면서 불상에 대고 절을 하거나 또는 관음보살상이거나 또는 여래 불상에 대고 말한다. 날 좀 도와 횡재하게 해주십시오. 참, 하나의 완전한 의념(意念)이 곧 형성되어 나오게 된다. 그가 불상에 대고 내보냈기 때문에 대번에 이 불상 위에 올라간다. 다른 공간의 이 몸체는 커질 수도 있고 축소될 수도 있는데, 이 몸에 오르게 되면 이 불상은 곧 하나의 대뇌가 있게 되며 사상이 있게 된다. 그러나 오히려 신체는 없다. 다른 사람도 가서 절을 하는데 절을 하고 절을 하게 되면 그에게 일정한 에너지를 줄 수 있다. 특히 연공하는 사람은 더욱 위험한즉, 절을 한 번 하기만 하면 점차적으로 그에게 에너지를 주어 그것이 곧 하나의 유형의 신체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이 유형적인 신체는 다른 공간에서 형성된다. 형성된 후 그가 다른 공간 속에서 우주 중의 조그마한 이치를 그는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이 사람을 위하여 일을 좀 할 수 있다. 이리하여 그것도 조그마한 공이 자랄 수 있지만 그것이 사람을 도움에 있어서는 조건이 있으며 대가가 있다. 그것이 다른 공간에서의 행동은 자유로우며 속인을 통제하기란 아주 자유롭다. 이 유형적인 신체는 불상의 형상과 똑같은바, 빌어서 나오게 된 것은 가짜 관음보살, 가짜 여래부처로서, 사람이 빌어 온 것이며 생김새가 불상과 같고 부처님의 형상이다. 가짜 부처, 가짜 보살의 사상은 오히려 극히 나쁜 것으로 돈을 추구하려는 것이다. 그것이 다른 공간에서 생기며 그것은 사상이 있다. 그것이 조그마한 이치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도 감히 큰 나쁜 짓을 하지는 못하지만, 자그마한 나쁜 짓은 그가 감히 한다. 어떤 때에는 사람을 돕고 있는데 만약 사람을 돕지 않는다면 완전히 사악한 것으로서 그것을 죽이려고 한다. 어떻게 돕는가? 그 사람이, 부처님께 빕니다. 우리 집 누가 앓고 있는데 날 좀 도와주십시오 라고 말한다. 좋다. 당신을 돕겠다. 그가 당신으로 하여금 공덕상자에 돈을 던지게 하는데 그의 사상은 돈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 공덕상자에 돈을 많이 던지면 당신의 병이 빨리 낫게 한다. 그에게 일정한 에너지가 있으므로 다른 공간에서 그가 한 속인을 조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功)이 있는 사람이 절을 하게 되면 더욱 위험하다. 연공인이 무엇을 추구하고자 하는가? 돈을 추구하려 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연공하는 사람이 무슨 재물을 추구하는가? 육친에게 재난을 없애고 병을 없애 달라고 비는 것도 다 육친의 정에 대한 집착이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우지 하려고 생각하는데, 사람은 운명이 각기 있는 것이다! 당신이 그것에게 절을 하며, 날 도와 돈을 좀 벌게 해주십시오 라고 주절댄다. 좋다. 그가 당신을 돕는다. 그는 당신이 돈을 많이 빌었으면 하는데, 많이 빌수록 그가 당신의 것을 더 많이 가져가기가 좋으므로 등가교환이다. 다른 사람이 그것에게 주는 돈이 공덕상자에 가득하므로 그는 당신더러 얻게끔 한다. 어떻게 얻는가? 문을 나서면 돈지갑을 줍게 되거나, 직장에서 장려금을 내주거나, 어쨌든 온갖 방법을 다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돈을 얻게 한다. 그것도 무조건으로 당신을 도울 수는 없잖은가?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것으로서 당신의 공을 좀 가져간다. 그가 공이 모자라 또는 당신이 연마해 낸 단(丹) 등의 것들을 가져가는데 그는 이것을 요구한다.

이런 가짜 부처가 어떤 때에는 대단히 위험하다. 우리 천목이 열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부처님을 보았다고 여긴다. 어떤 사람은 오늘 절에 한 패의 부처님들이 오셨는데 이 부처님의 이름은 무엇이며 한 패를 거느리고 오셨다고 말한다. 어제 온 그 한 패는 어떤 모양이며 오늘 온 한 패는 어떤 모양인데 한참 후에 또 가고 한패가 또 왔다고 말한다. 무엇인가? 바로 이 부류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것은 진짜 부처님이 아니며 그것은 가짜로서 이 부류의 것들이 무척 많다.

만약 절에 이런 상황이 나타나게 되면 더욱 위험하다. 스님이 그것을 모신다면 그것이 곧 스님을 단속한다. 당신이 나를 모시지 않는가? 당신은 명백하고도 명백하게 나를 모시고 있구나! 좋다. 당신이 수련하려고 하지 않는가? 내가 당신을 책임지고 내가 당신으로 하여금 어떻게 수련하게끔 하겠다. 그가 당신을 배치하는데 그럼 당신이 수련되었다 해도 수련되어 어디로 갈 것인가? 그가 배치하여 수련한 것이기 때문에 위의 어느 법문도 받아주지 않는다. 그가 배치한 것이므로 당신은 장래에 그것의 지배를 받게 된다. 당신 이것은 헛된 수련이 아닌가? 나는, 인류가 지금 수련하여 정과(正果)를 얻으려 하여도 대단히 어렵다고 말한다. 이런 현상은 무척 보편적이다. 우리 많은 사람들이 명산대천에서 본 불광(佛光)의 대다수는 모두 이 부류에 속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대각자는 쉽사리 나타내지 않는다.

과거에 지상불(地上佛), 지상도(地上道)라고 부른 것이 비교적 적었지만 지금은 특히 많다. 그것이 나쁜 짓을 할 때면 위에서는 그것을 죽여버리려고 한다. 죽이려고 하면 그는 도망하여 불상에 올라가 붙는다. 속인의 이 이치를 일반적으로 대각자는 경솔하게 움직이지 않는데, 더욱 높은 각자일수록 속인의 이치를 더욱 파괴하지 않으며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튼 갑자기 하나의 벼락으로 불상을 쳐부술 수 없는데 그는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이 불상에 도망쳐가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것을 죽여버리려고 하면 그것이 알고 그가 도망친다. 그러므로 당신이 본 관음보살은 관음보살인가? 당신이 본 부처는 부처님인가? 말하기가 아주 어렵다.

우리 많은 사람들은 하나의 문제를 연상하게 된다. 우리 집의 불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마 많은 사람은 나를 생각하였을 것이다. 수련생들의 수련을 도와주기 위하여 내가 알려줄 것은, 당신은 이렇게 할 수 있다. 당신은 나의 책(책에 나의 사진이 있기 때문에)이거나 또는 나의 사진을 가지고 당신의 손에 불상을 받쳐들고서 대연화수인(大蓮花手印)을 한 다음, 마치 나에게 비는 것처럼, 스승님, 개광하여 주십시오 라고 하면 된다. 30초면 곧 문제가 해결된다. 여러분에게 알려줄 것은, 우리 수련하는 사람에게만 국한되며 친척과 친우에게 개광하여 주어서는 소용없는 즉,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만 책임진다. 어떤 사람은 스승님의 사진을 친척과 친우 집에 갖다놓고 액땜(避邪)을 한다고 하는데, 나는 속인에게 액땜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스승님에 대한 최대의 불공경이다.

지상불(地上佛), 지상도(地上道)의 문제를 말하겠다. 또 하나의 경우가 있다. 중국 고대에는 많은 사람이 심산 밀림 속에서 수련하였다. 왜 지금은 없는가? 사실은 없는 것이 아니라 속인이 모르게 한 것으로서 조금도 적지 않으며 이러한 사람은 모두 공능이 있다. 이 몇 년래 이러한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사람이 다 있다. 지금 세계적으로 아직도 몇천 명이나 있으며 우리 나라에 비교적 더 많다. 특히 그런 명산대천(名山大川)에 다 있으며 어떤 고산(高山) 속에도 있다. 그는 공능으로 동굴을 다 막아 버렸기 때문에 당신은 그의 존재를 보아내지 못한다. 그의 수련은 비교적 느리고 그의 방법은 비교적 우둔하며 그는 수련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고(直指人心), 우리 우주의 최고특성에 따라 수련하며 우주의 그런 형식에 따라 수련함으로써, 물론 공이 늘어남이 아주 빠르다. 왜냐하면 수련의 법문은 금자탑형이기 때문에 오로지 중간만이 대도(大道)이다. 그런 주변 소도(小道)에서 수련하게 되면 심성이 높지 않을 수 있다. 가능하게 높지 않게 수련되었을 때 개공할 수도 있지만 진정하게 수련하는 그 대도(大道)와는 차이가 너무나도 멀다.

그 역시 물려받고 전하며 제자를 이끌고 있는데, 그의 이 한 문(門)은 곧 이만큼 높이 수련되며 그의 心性(심성) 역시 이만큼 높다. 그러므로 그가 전수하는 제자도 모두 이만큼 높이에로 수련한다. 주변의 세간소도(世間小道)일수록 설이 더욱 많은데 수지(修持)방법 또한 복잡하여 중심을 잡지 못하고 수련한다. 사람의 수련은 주로 心性(심성)의 수련이라는 이 점을 그는 아직도 모르고 있으며 그는 고생만 겪으면 수련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의 기나긴 시간을 거쳐 몇백 년, 천여 년을 수련하여서야 그는 요만큼한 공이 자라게 된다. 실제적으로 그는 고생을 겪어서 수련해 낸 것이 아니다. 어떻게 수련해 낸 것인가? 마치 사람과 마찬가지로, 젊었을 때 집착심이 아주 많았는데 늘그막에 세월이 유실됨에 따라 전도가 없게 되자 이 마음을 자연히 포기하였고 닳아 떨어진 것이었다. 이런 소도(小道)도 역시 이 방법이다. 그는 가부좌, 입정력(定力), 고통을 겪는데 의거하여 위로 수련할 때에 그는 공이 자랄 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의 속인의 집착심이 길고도 간고한 세월 속에서 천천히 닳아 없어지고 그 마음을 천천히 제거함으로 말미암아 자라 올라온 공(功)임을 모르고 있다.

우리는 겨누는 것이 있어서, 진정하게 그 마음을 가리켜 그 마음을 제거하는데, 그러면 수련됨이 몹시 빠르다. 나는 일부 지방에 갔었고 수련을 꽤 오래한 이런 사람들을 늘 만나게 되었다. 그 역시 말하였다.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고, 당신의 이 일을 우리는 관계하지 않으며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는 비교적 좋은 데 속한다.

좋지 않은 것도 있는데 좋지 않은 것을 우리는 역시 처리해야 한다. 예를 든다면 내가 처음 귀주(貴州)에 가서 공을 전수할 때에 한참 수련반을 열고 있는데, 한 사람이 나를 찾아와서 그의 사야(師爺)가 나를 만나겠다고 하며 그의 사야는 아무개인데 수련을 아주 오래오래 하였다고 말하였다. 내가 보니 이 사람은 음기(陰氣)를 갖고 있으며 아주 좋지 않았으며 얼굴이 누르끄름했다. 나는 그를 만나러 가지 않겠다고 말하고 시간이 없다면서 미루어 버렸다. 결국 그 영감은 좋지 않게 생각하여 나에게 소란을 피우기 시작하였으며 날마다 소란을 피워댔다. 나 이 사람은 다른 사람과 다투기를 싫어하고 나는 그와 다투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가 좋지 않은 것을 보내면 나는 곧 청리(淸理)해 버렸고 청리가 끝나면 나는 나의 법을 전수하였다.

과거 명나라에 수도(修道)하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수도할 때 곧 뱀 부체가 있었다. 후에 이 수도하던 사람이 수련되지 못하고 죽게 되자, 이 뱀은 수도인(修道人)의 신체를 점유하고 사람의 모양을 수련해 내게 되었다. 그 사람의 사야(師爺)가 바로 그 뱀이 수련해낸 인형(人形)이었다. 그가 본성을 고치지 않았기 때문에 또 하나의 큰 뱀으로 변하여 나에게 소란을 피워 댔다. 내가 보니 너무나도 말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그를 손에 잡고 아주 강대한 한가지 공, 화공(化功)이라는 것으로 그것의 하반신을 녹여버려 물로 되게 하자, 그것의 상반신은 도망쳐 버렸다.

어느 하루, 우리 귀주 보도소(輔導站) 소장이 그의 손제자(徒孫)에게 불려가게 되었는데, 그의 사야가 그를 만나려 한다고 말했다. 소장이 갔다. 동굴에 들어가 보니 캄캄한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며 오로지 하나의 그림자만 거기에 앉아 있었고 눈은 푸른빛을 뿜었는데 눈을 뜨면 동굴이 환히 밝았다가 눈을 감으면 굴 안이 캄캄해졌다. 그는 토박이말로, 李洪志가 또 오게 되는데 이번에 우리는 누구나 가서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 내가 잘못 했다. 李洪志는 사람을 제도하려 온 것이다 라고 말했다. 손제자가 그에게 스승님, 일어나시죠. 다리가 어찌된 영문입니까? 라고 묻자, 그는 나는 일어나지 못하겠다. 내 다리가 상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어떻게 상했는가 라고 묻자 그는, 곧 자기가 소란을 피워 댄 과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북경 93년 동방건강박람회에서 그는 또 나에게 소란을 피웠다. 그가 늘 나쁜 짓을 하고, 그는 내가 대법을 전하는 것을 파괴하기 때문에 나는 그를 철저히 없애버렸다. 없애버린 후, 그의 사저(師姐), 사매(師妹), 사형(師兄), 사제(師弟)들은 다 해보려고 생각했다. 그때에 내가 몇 마디 말을 하자 그들은 모두 몹시 놀라 무서워하며 누구도 감히 달려들지 못했고 또한 어찌된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완전한 속인으로서 아주 오랜 시간을 수련하였었다. 이는 개광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든 몇 가지 예이다.

축유과(祝由科)

무엇이 축유과(祝由科)인가? 수련계에서 많은 사람이 공을 전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수련범주의 것으로도 여기어 전하고 있는데 사실 그것은 수련범주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한가지 비결, 주결(?訣), 기술의 이어받고 전해 내려가는 것과도 같다. 그가 채용한 형식은 무슨 부적을 그리거나, 향을 피우거나, 종이를 태우거나, 주문을 외우는 등등으로서 그도 능히 병을 치료할 수 있는데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아주 독특하다. 예를 들어 말한다면, 누구의 얼굴에 부스럼이 자랐다면 그는 붓에 주사(朱砂)를 묻혀 땅 위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동그라미 안에 십자를 그려놓고는 이 사람으로 하여금 동그라미 중심에 서게 하고 그는 곧 주결(?訣)을 외우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붓에다 주사를 묻혀 그의 얼굴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한편, 한편으로는 주결을 외우며 이리 긋고 저리 긋고, 부스럼에 점을 찍고 주결도 다 읽고나서는 되었다고 한다. 당신이 만져보면 작아졌고 아프지도 않은데 그것이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그가 이 작은 병을 고칠 수는 있지만 큰 병은 그가 안 된다. 팔이 아프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는가? 입으로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며 그는 당신더러 팔을 내밀라고 하고 이 한쪽 손의 합곡혈(合谷穴)에 대고 입으로 훅 불어 그것으로 하여금 다른 한쪽 손의 합곡혈로 나가게 하는데 한 가닥 바람과 같은 감각이다. 다시 만져보면 그것이 그렇게 아프지 않다. 또 종이를 태우고 부적을 그리며 부적을 붙이는 등등을 채용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이것을 하는 것이다.

도가의 세간소도(世間小道)에서는 명을 닦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완전히 점치기, 풍수보기, 굿하기, 병치료를 한다. 이런 세간소도에서는 그것을 많이 채용하고 있다. 그가 병을 능히 치료할 수 있지만 그가 채용한 방법이 그리 좋지 않다. 우리는 그가 무엇을 이용하여 병을 치료한다고 말하지 않지만, 우리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은 그것을 채용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아주 낮고 아주 좋지 못한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고대에는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과목(科目)으로 나누었는데, 예컨대 접골(接骨)·침구·안마·추나(推拿)·점혈(点穴)·기공치료·초약치료 등등 여러 종으로 나누었다. 매 한가지 병치료 방법을 하나의 과(科)로 불렀는데 이 축유과(祝由科)는 제13과에 속하였으므로 그의 총칭을 축유13과라고 부른다. 축유과는 우리 수련범주 내의 것에 속하지 않으며 그는 수련하여 얻어 온 공이 아니고 일종 술류(術類)의 것일 따름이다.


제 6 강 의

주화입마(走火入魔)

수련계에는 이런 한가지 설이 있는데 주화입마(走火入魔)라고 부르며 대중 속에서의 영향도 몹시 크다. 특히 어떤 사람은 이 일을 아주 굉장히 소문내어 일부 사람으로 하여금 감히 연공하지 못하게끔 하였다. 남들은 연공을 하면 주화입마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곧 겁이 나서 감히 연마하지 못한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는데 주화입마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적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똑바르지 않기 때문에 일부 부체(附體)를 초래하게 된다. 자신의 主意識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면서도 이것이 공이라고 여기고 있다. 신체는 부체의 통제를 받아 정신이 흐리멍덩하여 마구 고함치기도 한다. 남들이 볼 때 연공(練功)한다는 것이 역시 이런 식이라, 겁이 나서 감히 연마(練)하지 못한다. 우리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공이라고 여기는데 이것이 어디 연공하는 것인가? 이는 다만 가장 낮고 가장 낮은, 그런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상태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도리어 아주 위험하다. 당신 자신이 이러함에 관습이 되어 당신의 主意識이 늘 당신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면 당신의 신체는 아마 副意識 또는 외래의 정보, 부체 유에 의해 통제당할 수 있어, 일부 위험한 거동이 나올 수 있으며 아울러 수련계에 대한 파괴력도 극히 크다. 이것은 인심이 똑바르지 못하여 조성된 것으로서 집착스레 자신을 과시한 것이지, 이것은 주화입마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그 이른바 기공사로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도 주화입마를 말한다. 사실 연공을 하여서는 주화입마가 될 수 없다. 다수 사람은 주로 예술작품에서 들은 것인데 무슨 무협소설 등등의 그 속에서 이 한 명사를 들었다. 믿어지지 않으면 당신이 고서(古書), 수련하는 책을 펼쳐 보라. 이런 일이 없다. 어디 무슨 주화입마가 있는가? 전혀 이런 일이 나타날 수 없다.

일반적인 사람이 여기는 주화입마는 몇 가지 형식이 있는데 내가 금방 말한 것 역시 일종 형식이다. 자신의 마음이 똑바르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부체를 초래하였다. 무슨 기공태(氣功態)를 추구하여 자신을 과시하는 등 각종 심태이다. 어떤 사람은 직접 공능을 추구하거나 또는 가짜 기공을 연마(練)한다. 연마만 하면 자신은 늘 자신의 主意識를 늦추는데 관습이 되어 아무것도 모르며 신체를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정신이 흐리멍덩하여 副意識, 또는 외래정보에 의해 신체를 주재(主宰)하게 되어 일부 특수한 거동이 나오게 된다. 그더러 층집에서 뛰어내리라고 알려주면 그는 곧 층집에서 뛰어내리고, 그더러 물에 뛰어들라고 알려주면 그는 곧 물에 뛰어든다. 그 자신마저도 살 생각을 하지 않고 신체를 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었다. 이는 주화입마에 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연공(練功)하여 기로(奴途)에 잘못 빠져든 것인지라 시작에 의식적으로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것이다. 많은 사람은 흔들흔들 거림이 곧 연공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사실 이런 상태에서 진정하게 연공한다면 엄중한 결과를 조성하게 된다. 이것은 연공하는 것이 아니며 속인의 집착과 추구로 조성된 것이다.

다른 한가지 경우는 연공할 때, 기가 어느 곳에 막혀 통하지 않게 되며 기가 머리꼭지로부터 내려오지 못하게 되면 그는 두려워한다. 사람의 신체는 바로 하나의 소우주로서, 특히 도가 공법에서 관문(關)을 넘길 때 이러한 번거로운 일에 부딪힐 수 있는데 돌파하지 못한다면 기가 곧 이곳에서 맴돌게 된다. 머리꼭지뿐만이 아니라 기타 부위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사람이 가장 민감한 것은 바로 머리꼭지이다. 기가 머리꼭지에 올라가서 아래로 내리 충격하여 관문(關)을 지나지 못할 때, 그는 곧 머리가 무겁고 머리가 띵해지며 아주 두툼한 기의 모자를 쓴 감을 느끼게 되는 등등 이런 현상이다. 그러나 기(氣)란, 그것은 어떠한 제약작용도 없으며 그것 역시 사람의 무슨 번거로움이 나타나게끔 할 수 없는 것으로, 또한 전혀 무슨 병이 생길 수 없다. 일부 사람은 기공의 진실한 상황을 이해(了解)하지 못하고 허황하고도 또 허황하게 의견을 마구 발표함으로써 결국 아주 혼란한 일종 현상을 조성하였다. 사람들은 곧 기가 머리꼭지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못함이 바로 주화입마, 편차(偏差) 등등이 생긴 것이라고 여긴다. 결국 많은 사람은 그 자신이 무서워한다.

기가 머리꼭지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못하게 되는 그것은 다만 한 시기의 상태로서 어떤 사람은 아주 오랜 시간, 반년이 되어도 내려오지 못한다. 내려오지 못하면 진정한 기공사를 찾아 좀 인도(引導)만 하면 내려올 수 있다. 그럼 우리가 무릇 연공할 때에 관문(關)을 지나지 못하고 기가 내려오지 못할 때, 우리들은 心性(심성)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 층차에서 잘못 머문 시간이 너무 오래지 않은가, 마땅히 心性(심성)을 높이고 또 높여야 한다! 당신이 진정하게 心性(심성)을 제고하였을 때에 당신은 그것이 내려올 수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당신이 줄곧 당신 자신의 공의 변화만 강조하고 도리어 당신 心性(심성)의 전변을 강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의 心性(심성)이 높아지기를 기다려 비로소 전체적인 변화를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정말로 기가 통하지 아니함은 무슨 문제가 되지 않는다. 흔히는 다 우리 자신들의 정신적 작용이고 또 기가 머리꼭지에 올라가게 되면 무슨 편차가 나타나게 된다는 가짜 기공사의 말들을 그대로 듣고 두려워한 것이다. 그가 이렇게 두려워하면 정말로 번거로움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당신이 이렇게 겁을 먹는다면 곧바로 공포심이기 때문에 그것은 집착심이 아닌가? 당신의 집착심이 나오게 되면 당신의 집착심을 제거해야 되지 않는가? 두려워할수록 더욱 병과 같으므로, 당신의 이 마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으로 하여금 이번 교훈을 받아들여 이로부터 공포심을 버리고 제고하여 올라오게 한다.

연공인의 장래의 수련 역시 편안할 수 없다. 신체에 많은 공이 나타나게 되며 모두 아주 강렬한 것들이 당신의 신체 내에서 오고 가며 움직이게 되어, 당신으로 하여금 이렇게 불편하고 저렇게 불편하게 한다. 당신이 불편하게 되는 원인은 주로 당신이 늘 자신의 신체가 무슨 병을 얻을까봐 두려워함이다. 사실 신체 내에서 모두 그처럼 강렬한 것들이 나왔으며, 나온 것은 다 공이고 다 공능이며 또한 많은 생명체들이다. 움직인다면 당신은 신체가 근지러워지고 아프며 견디기 어려운 등등을 감각할 수 있으며 말초신경 감각도 매우 예민하여 각종 상태가 다 나타나게 된다. 오로지 당신의 신체가 아직 고에너지물질로 전변되기 전이라면, 모두 이런 감각이 있을 수 있는데 본래는 좋은 일이다. 일개 수련인으로서 당신이 늘 자신을 일개 속인이라고 여기며 늘 병이 있다고 여긴다면 어떻게 연마하겠는가? 우리가 연공 중에서 겁난(劫難)이 왔을 때 당신은 아직도 자신을 속인이라고 여긴다면, 당신의 心性(심성)은 그때에 곧 속인의 그곳으로 떨어지게 된다고 나는 말한다. 바로 이 한 문제에서 당신은 최소한도로 속인의 그 층차에 떨어진 것이다.

우리는 일개 진정한 연공인으로서 마땅히 아주 높은 층차에서 문제를 보아야 하며 속인의 관점으로 문제를 볼 수 없다. 당신이 병이 있다고 여길 때 아마 병을 초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것에 병이 있다고 인정할 때면 당신의 心性(심성)은 속인과 마찬가지의 높이가 되기 때문이다. 연공과 진정한 수련, 특히 이런 상태에서는 그것이 병을 초래할 수 없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진정하게 병을 얻는 것은 7이 정신이고 3이 병이다. 흔히 사람의 정신이 먼저 무너져 버려서 먼저 안되고, 부담이 아주 중하여 병으로 하여금 급작스레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데, 흔히 모두 이러하다. 예를 든다면 예전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를 침대에 묶어놓고 그의 팔을 들고는 그의 피를 뽑겠다고 말하였다. 그런 다음 그의 눈을 가리우고 그의 손목을 한 번 긋고는(전혀 그의 피를 뽑지 않았음), 수돗물 꼭지를 열고 그로 하여금 똑똑똑 소리가 나는 것을 듣게 하였다. 그는 자기의 피가 떨어진줄로 알고 얼마 되지 않아 이 사람은 죽어버렸다. 사실 그의 피를 전혀 뽑지 않았으며 흐른 것은 수돗물로서 그의 정신이 그를 죽게 한 것이다. 당신이 늘 당신이 병이 있다고 여길 때면 당신 자신이 병을 초래할 수도 있을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당신의 心性(심성)이 이미 속인 그 기초에로 떨어져 내려갔기 때문이며, 그렇다면 속인은 물론 병을 얻기 마련이다.

연공인으로서 당신이 늘 그것이 병이라고 여긴다면 실제적으로 당신은 바로 구하고자한 것인데, 당신이 병을 얻음을 구하였기 때문에 그 병은 눌러 들어갈 수 있다. 일개 연공인으로서 心性(심성)은 마땅히 높아야 한다. 당신은 늘 병이라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병이라고 두려워하는 것 역시 집착심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당신에게 번거로움을 가져올 수 있다. 수련 중에서 소업(消業)을 해야 하는데 소업이 곧 고통이라, 어디 편안히 공이 자라는 것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집착심을 어떻게 제거하겠는가? 내가 여러분에게 불교에서의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과거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무척 애를 써서 나한으로 수련되었다. 그 사람이 정과를 얻게 되었는데 나한으로 수련되었으니 그가 기뻐하지 않을 수 있는가? 삼계(三界)를 벗어났다! 이 기뻐함이 바로 집착심이고 환희심이다. 나한은 마땅히 무위(無爲)이며 마음이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 것이므로 그는 그만 떨어졌으며 헛되게 수련했다. 헛되게 수련하였으니 또다시 수련해야지, 또다시 위로 수련하며 무척 애를 써서 또 수련해 올라가게 되었다. 이번에 그는 두려워했다. 그는 속으로 나는 기뻐하지 말자, 기뻐하면 또 떨어질 것이다 라고 외웠다. 그가 이렇게 두려워하자 또 떨어져 내려오게 되었다. 두려움 역시 일종 집착심이다.

또 한가지 경우가 있는데 바로 어떤 사람이 정신병에 걸리게 되면 그를 곧 주화입마 되었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내가 그에게 정신병을 고쳐줄 것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정신병은 병이 아니라고 말하며 나도 이런 일을 상관할 시간이 없다. 무엇 때문인가? 정신병자, 그는 병독이 없고 신체 내에 병리변화(病變)가 없으며 궤양이 없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는 병이 아니다. 정신병이란 바로 사람의 主意識이 너무 약하다. 어느 정도로 약한가? 마치 그 사람이 늘 자신이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이 정신병자의 主元神(주원신)은 바로 이러하다. 그는 이 신체를 상관하려고 하지 않고 그 자신이 늘 떨떨하며 늘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런 때에 副意識, 외래 정보가 곧 그를 교란하기 마련이다. 각개 공간 층차가 그렇게 많은데 각종 정보도 다 그를 교란하게 된다. 하물며 사람의 主元神(주원신)이 생전에 일부 좋지 못한 일을 했을 수 있고 또한 채권자(債主)가 그를 해치려고 할 것인즉, 여러 가지 일이 모두 나타날 수 있다. 우리가 말한다면 정신병은 곧 이러한 것이다. 나더러 당신을 어떻게 치료하라는 것인가? 내가 말한다면, 진정한 정신병은 바로 이렇게 얻은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를 교육하여 그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하지만 하기가 무척 어렵다. 당신이 보라. 정신병원의 그 의사가 손에 전기몽둥이를 쥐기만 하면 그는 즉시 겁이 나서 한 마디 허튼 소리도 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인가? 그때에 그의 主元神(주원신)이 정신을 차린 것이다. 그는 그를 감전시킬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흔히 사람은 수련의 문에 들어서면 연마하기를 즐기는데 불성은 사람마다 있으며 도를 닦으려는 마음도 사람마다 다 있기 때문에, 일단 공을 배우게 되면 많은 사람들은 그와 함께 한평생을 연마하기 마련이다. 그가 수련해 올라갈 수 있는가, 법을 얻을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막론하고, 어쨌든 그는 도를 구하려는 마음이 있기에 그는 늘 연마하려 한다. 남들은 이 사람이 연공하는 것을 다 알고 있고 사무실의 사람이 알고 있으며 주민 구에서도 알고 있고 이웃에서도 그가 연공하고 있음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라. 진정한 수련, 이 몇 년래에 누가 이런 일을 하였는가? 하는 사람이 없었다. 진정한 수련이야말로 그의 인생행로를 개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일개 속인으로서 다만 연공(練功)하여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했을 뿐, 누가 그의 인생행로를 개변시켜 주었는가? 속인이니까, 어느 날에 가서는 병을 얻게 되고, 어느 날에 가서는 무슨 번거로운 일에 부딪히게 되며, 어느 날에 가서는 정신병을 얻을지도 모르거나 또는 황천객이 될 것인즉, 속인의 일생은 바로 이러하다. 당신은 그가 공원에서 연공하는 것을 보게 되지만 사실 그가 진정하게 수련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고층차에로 수련하려고 생각하지만 또 정법(正法)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그 역시 수련하여 올라가지 못한다. 여전히 그는 다만 고층차에로 수련할 소원이 있을 뿐이지, 그는 여전히 낮은 층차 중에서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연공자(練功者)이다. 그의 인생행로를 그에게 개변시켜 줄 사람이 없는데, 그렇다면 그는 곧 병을 얻기 마련이다. 德(덕)을 중히 여기지 않으면 병도 나아질 수 없는 즉, 공을 연마한다고 하여 무슨 병이나 다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그가 진정하게 수련을 하며 心性(심성)을 중시하고 진정하게 수련해야만 비로소 병을 제거할 수 있다. 연공은 체조가 아니며 속인의 것을 벗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높은 이치와 표준으로 연공자를 요구해야 하는바, 반드시 하여야만 비로소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하지 못하였고 그는 여전히 속인이다. 그러므로 그는 때가 되면 여전히 병을 얻게 된다. 어느 날 그가 갑자기 뇌혈전(腦血栓)에 걸리거나 갑자기 이런 병, 저런 병에 걸리거나 혹은 어느 하루 정신병에 걸리게 된다. 그가 연공하고 있음을 누구도 다 아는지라, 일단 이 사람이 정신병에 걸리면 사람들은 곧 그가 연공하여 주화입마 되었다고 말하면서 큰 모자를 뒤집어씌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렇게 함이 합리한가? 문외한은 모르고 있고, 우리 전문가, 연공하는 많은 사람도 그 속의 진정한 이치를 잘 알기 어렵다. 만약 이 사람이 집에서 정신병에 걸렸다면 그래도 말하기가 괜찮아 남들도 그가 연공하여 연마해 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만약 그가 연공장에서 정신병에 걸렸다면 야단이다. 이 큰 모자를 뒤집어씌워 벗으려 해도 벗을 수 없다. 연공하여 주화입마 되었다고 신문에도 실려 나올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눈을 딱 감고 기공을 반대한다. 당신이 보라, 방금 까지도 거기서 아주 잘 연마하다가 지금은 이 꼴이 되었다고 한다. 일개 속인으로서 그가 마땅히 나타나야 할 어떤 일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는 또 기타 병이 나타날 수도 있으며 기타 번거로움이 나타날 수도 있는데, 다 연공을 하여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면 합리한가? 마치 우리 병원의 의사처럼 그가 의사가 되었다면 그의 이 한 평생은 마땅히 영원하게 병에 걸리지 말아야 하는 것과 같은데, 이렇게 인식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그가 기공의 진실한 상황을 이해(了解)하지 못하고 그 역시 그 속의 이치를 모르면서도 함부로 허튼 소리를 친다고 말한다. 일단 무슨 문제가 있게 되면 무슨 모자이든 모두 기공 여기에다 뒤집어씌운다. 기공이 사회에서 보급된 시간이 아주 짧아 많은 사람들은 일종 고집스런 관념을 품고서 늘 그것을 승인하지 않으며 그것을 비방하고 그것을 배척하는데, 그가 일종 어떤 심리상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이처럼 기공을 미워하며 마치 그와 무슨 관계라도 있는 듯이 기공을 제기하기만 하면 곧 유심(唯心)이라고 말한다. 기공은 과학이며 더욱 높은 과학이다. 다만 그러한 사람의 관념이 너무 고집스러우며 지식이 너무 편협함으로 말미암아 조성되었을 따름이다.

또 한가지 경우가 있는데 수련계에 일종 기공태(氣功態)라는 것이 있다. 이런 사람의 정신은 얼떨떨하지만 그도 주화입마가 아니며 그는 몹시 이지적이다. 나는 우선 기공태란 어찌된 일인가를 말하겠다. 여러분 알다시피 우리가 연공함에 근기(根基) 문제를 강구한다. 전 세계 모든 나라에 모두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이 있는데 중국에서는 수천년래 불교, 도교를 신앙하는 사람이 다 있었고, 착하면 착한 보답이 있고 악하면 악한 보답이 있음을 믿었다. 하지만 일부 사람은 믿지 않는다. 더욱이 '문화대혁명'시기에는 비판을 받았으며 미신이라고 말하였다. 일부 사람은 그가 이해할 수 없다고 여기며 책에서 배우지 못하였고 현대과학이 그 정도로 발전하지 못하였거나 혹은 인식하지 못한 사물을 그는 일률로 미신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람이 몇 년 전에는 아주 많았는데 지금은 비교적 적어졌다. 왜냐하면 일부 현상은 당신이 그것을 승인하지 않지만 그것이 이미 확실하게 우리 이 공간 중에 반영되어 왔기 때문이다. 당신이 감히 그것을 정시하지 못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그것을 모두 감히 말했으며 사람들도 귀로 듣고 눈으로 목격하였기 때문에 역시 연공에 관한 상황을 일부 알고 있다.

일부 사람은 이런 정도까지 고집스럽다. 당신이 기공을 말하기만 하면 그는 내심으로부터 당신을 비웃는데 그는 당신이 미신 노릇을 하며 너무나도 가소롭다고 여긴다. 당신이 기공 중의 현상을 말하기만 하면 그는 곧 당신 이 사람이 너무나도 우매하다고 여긴다. 이런 사람이 비록 고집스럽지만 근기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만약 이 사람이 근기가 좋다면, 그가 연공을 하면 천목이 아주 높은 층차에 열릴 수 있으며 또한 공능이 나올 수 있다. 그가 기공을 믿지 않지만 그가 자신이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보증할 수는 없다. 그가 병에 걸리면 병원에 가 보게 되는데 양의를 보여서 낫지 않으면 한의한테 가 보고, 한의를 보여도 낫지 않게 되고 무슨 민간처방을 써도 낫지 않게 되자, 이때에야 그는 기공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내가 대운이나 틔겠는지 한 번 해보자, 기공이 도대체 나의 이 병을 고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자고 생각한다. 그는 마지못해 왔다. 그가 연공을 하게 되자 근기가 아주 좋기 때문에 단번에 연마를 아주 괜찮게 할 수가 있었다. 가능하게 어느 사부가 마음에 들었을 수 있고 다른 공간의 그 고급생명이 그를 한 번 도와줄 수 있다. 그는 이렇게 천목이 열렸거나 혹은 반개오(半開悟)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천목은 아주 높은 층차에 열리어 단번에 우주 중의 일부 진실한 상황을 보았으며 아울러 또한 공능도 있다. 당신이 말해보라. 이런 사람이 이런 상황을 보게 되면 그의 대뇌가 견뎌낼 수 있겠는가? 당신 생각에는 그의 그 심태(心態)가 어떤 모양이겠는가? 줄곧 미신이며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긴 일, 다른 사람이 제기만 하여도 모두 비웃던 일이 아주 진실하게 그의 눈앞에 나타났으며 또한 확실히 접촉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의 대뇌는 감당해내지 못하며 그의 정신압력이 너무 커서, 하는 말을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사유 논리는 혼란하지 않은바 그는 좀처럼 양쪽의 관계를 바로잡지 못한다. 그는 인류가 한 일이 잘못 되었으며 흔히 저쪽이 옳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저쪽에 따라 하면 사람들은 그가 틀렸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사람이 연공하여 주화입마 되었다고 말한다.

사실 그는 주화입마가 된 것이 아니며 우리 대다수 사람의 연공은 전혀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 없다. 다만 그런 특별히 고집스러운 사람이 이런 기공태(氣功態)가 나타날 수 있다. 우리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천목이 열린 사람이 많은데 무척 많다. 그는 확실히 다른 공간의 것을 보았으며 그는 놀랍고도 이상하게 느끼지 않고 아주 좋다고 느끼기 때문에 대뇌는 아무런 자극을 받지 않으며 이런 기공태도 나타날 수 없다. 사람이 기공태가 나타난 후에 아주 이지적이며 하는 말도 아주 철리성(哲理性)이 있을 뿐만 아니라 논리성도 아주 좋다. 다만 그가 한 말을 속인은 믿지 않을 따름이다. 그는 잠깐 있다가 당신에게 그가 이미 사망된 아무개를 보았다고 알려 주고 그 사람이 그에게 뭘 하라는 것을 알려주었다고 말한다. 속인으로서 그가 믿을 수 있는가? 나중에 그는 이런 것을 마땅히 자기 마음속에 두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양쪽의 관계를 바로잡은 다음에는 좋게 되었다. 흔히 이런 사람은 모두 공능의 존재와 더불어 있는데 이 역시 주화입마가 아니다.

또 한가지 상황이 있는데 '진풍(眞?)'이라고 부른다. 이런 경우는 보기가 극히 드물다. 우리가 말하는 '진풍(眞?)'은 정말로 미친 것이 아니다. 이 뜻이 아니며 진(眞)을 수련한다는 뜻이다. 어떻게 정말 미치는가? 내가 말한다. 수련하는 사람가운데 10만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이 하나 있게 되는데 보기가 극히 드물다. 그러므로 그는 보편성을 띄지 않으며 사회영향도 조성되지 않는다.

'진풍(眞?)'은 흔히 하나의 선결조건이 있다. 바로 이 사람의 근기가 아주 좋아야 하고 또한 연령이 이미 아주 많아야 한다. 연령이 많게 되면 수련하자 해도 이미 늦었다. 근기가 아주 좋음은 흔히 사명을 갖고 온 것으로서 고층차에서부터 온 것이다. 속인 이 사회는 누가 오게 되면 누구도 무서워하는데 머리를 씻기만 하면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다. 속인 이 사회환경 중에 오게 되면, 사람들이 그에 대한 교란으로 말미암아 그로 하여금 명예를 중히 여기고 이익을 중히 여기게끔 하여 최후에는 떨어져 내려가게 되며 영원히 솟아날 날이 없게 한다. 그러므로 누구도 다 감히 오지 못하며 누구나 다 두려워한다. 이런 사람이 왔는데 온 후에는 그가 속인 중에서 정말로 잘못되어 정말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으며 일생에 적지 않은 나쁜 짓을 하였다. 사람이 살아서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쟁탈할 때면 곧 아주 많은 나쁜 짓을 할 수 있으며 매우 많은 것을 빚질 수 있다. 그의 사부가 보니 이 사람은 떨어져 내려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또 하나의 과위(果位)가 있는 사람인데 이처럼 그로 하여금 마음대로 떨어져 내려가게 할 수 없지 않는가! 어떻게 하겠는가? 역시 아주 조급하다. 그로 하여금 수련하게 하는 별다른 방법이 없는데 그때에 어디 가서 사부를 찾겠는가? 그는 다시 되돌아 와야 하며 되돌아 수련해야 하였다. 그러나 어찌 말처럼 쉽겠는가? 연령이 또한 많아 수련하자 해도 늦었으므로 어디에 가서 성명쌍수(性命雙修)의 공법을 찾겠는가?

근기(根基)가 반드시 몹시 좋은 사람이라야만 이런 극히 특수한 상황에서 비로소 그로 하여금 미치게 하는 방법을 취할 수 있다. 즉 절대적으로 희망이 없으며 스스로 되돌아 올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하나의 방법을 취할 수 있는데, 바로 그로 하여금 미치게 하여 그의 머리의 어느 한 부위를 그에게 막아버리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 사람은 추위를 두려워하고 더러운 것을 두려워하는데, 추위를 두려워하는 그의 이 부분의 대뇌를 막아버리고 더러운 것을 두려워하는 그의 이 부분을 막아버린다. 그에게 일부분을 막아버린 후에는 이 사람의 정신이 곧 문제가 나타나게 되어 정말로 정신이 나간 것 같다. 그러나 흔히 이런 사람은 나쁜 일을 하지 않으며 사람을 욕하지 않고 또한 사람을 때리지도 않으며 종종 또 좋은 일을 한다. 그러나 그가 자신에 대해서는 오히려 아주 잔혹하다. 그는 추위를 모르기 때문에 그는 겨울에 맨발로 눈 위에서 뛰어다닐 수 있으며 홑옷을 입고 발은 얼어서 쭉 갈라 터진 데로부터 피가 흘러나온다. 그는 더러움을 모르기 때문에 그는 대변도 감히 먹으며 그는 오줌도 감히 마신다. 예전에 나는 이런 한 사람을 알고 있었는데 그 말똥 덩이가 얼어서 딴딴한데도 그는 아주 맛있게 갉아먹으며 그는 속인이 명백한 상태에서 겪어내지 못할 고생을 겪을 수 있었다. 당신은 그가 미침으로 하여 얼마나 큰 고생을 겪는가를 생각해 보라. 물론 그는 흔히 공능의 존재가 동반하여 있는데 일반적으로 노친이 많다. 과거의 노친은 전족(纏足)이었으나 2미터 높이의 담도 달려가 훌쩍 뛰어넘을 수 있었다. 집사람들이 그가 미쳐서 늘 밖으로 도망치는 것을 보고 집안에 가두어 둔다. 집사람들이 다 간 후에 그 자물쇠를 가리키기만 하면 곧 열리어 나가버린다. 그럼 쇠사슬로 잠가 버린다. 집사람이 간 후에 흔들기만 하면 쇠사슬도 열리게 된다. 단속을 하여도 그를 단속할 수 없다. 이렇게 되어 그는 무척 많은 고생을 겪게 된다. 그가 고생을 너무나도 대단히 겪고 닥쳐오는 것도 너무 맹렬하여, 그는 빚을 진 좋지 못한 것들을 아주 빨리 갚아버리게 된다. 가장 많아서 3년을 초과하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1, 2년이면 지나가게 되는데 그 겪는 고생이야말로 엄청나게 크다. 지나간 후에 즉시 명백하여지는데, 그가 이렇게 함으로써 이미 수련이 끝난 것이다. 때문에 즉시 개공(開功)하게 되며 각종 신통(神通)이 다 나올 수 있다. 이것은 극히 보기 드물며 극히 보기 드문 것으로서, 역사적으로 이런 것이 있는데 또 일반적인 근기의 사람인 당신으로 하여금 이렇게 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미친 승려, 미친 도사가 있음을 알고 있을 터인데 역사적으로 확실히 있으며 기재되어 있다. 무슨 풍승소진(?僧掃秦)이요, 미친 도사요 하는 이런 전고(典故)가 아주 많다.

주화입마란 우리로 말하면 긍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어느 한 사람이 능히 주화(走火)할 수 있다고 말하며 정말로 이럴 수 있다면, 나는 이 사람은 그래도 대단하다고 말한다. 입을 벌리면 불을 토해낼 수 있고 손을 내밀면 불을 내보낼 수 있으며 담뱃불을 부침에 손가락을 내밀기만 하면 불이 오게 되는데, 내가 말한다면 그것은 공능이다!

연공초마(煉功招魔)

무엇이 연공초마인가? 바로 우리들이 연공할 때 흔히 쉽게 일부 교란을 받는다. 연공을 하는데 어찌하여 마를 초래할 수 있는가? 왜냐하면 일개 사람이 수련하려고 함이 실로 너무나도 어렵기 때문이다. 진짜 수련에 나의 법신의 보호가 없이는 당신이 전혀 수련성취 할 수 없으며 당신이 문만 나서면 곧 생명문제와 연관될 수 있다. 사람의 元神(원신)은 불멸(不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생전의 사회활동 중에서 누구에게 빚졌을 수도 있고 누구를 업신여겼을 수도 있으며 또는 무슨 좋지 못한 일을 했을 수도 있는데 그 채권자는 당신을 찾을 것이다. 불교에서 이야기하기를, 사람이 산다는 것이 바로 업력윤보(業力輪報)라고 한다. 당신이 그에게 빚을 졌다면 그는 당신을 찾아와서 빚을 받을 것인데 더 많이 받아 가게 되면 다음 번에 그가 다시금 당신에게 갚아 준다. 아들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다음 번에 거꾸로 되는데, 바로 이렇게 돌아오고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확실히 마(魔)가 교란하고 있음을 본다. 당신으로 하여금 연공을 못하게 하는데 이것은 다 인연관계가 있는 것으로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며 아무런 이유가 없다면, 또 그것이 이렇게 함을 허용하지도 않는다.

가장 보편적인 한가지 연공초마 형식은 당신이 연공하지 않을 때, 주위의 환경은 여전히 비교적 조용하다. 공을 배웠기 때문에 늘 연마하기를 즐긴다. 그러나 거기에서 가부좌할 때면 갑자기 바깥이 조용하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자동차 나팔소리도 울리고 아파트 현관의 발걸음 소리, 말하는 소리, 문을 쾅 닫는 소리, 밖의 라디오도 틀어놓아 즉시로 조용하지 않게 된다. 당신이 연공하지 않으면 환경은 여전히 좋은데 당신이 연공하기만 하면 곧 이러하다. 우리 많은 사람들은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다.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가를. 다만 이상하게 느껴지며 아주 기가 죽어서 공을 연마하지 못하고 만다. 하나의 '이상함'이 막아섰는데 이것이 바로 마(魔)가 당신을 교란하는 것이며 그가 사람을 시켜 당신을 교란하게 한 것이다. 이것은 일종 가장 간단한 교란형식으로서 당신이 연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목적에 도달한다. 당신이 연공하면 당신이 도를 얻게 되는데, 당신이 그렇게 많은 것을 빚지고도 당신은 갚지 않는단 말인가? 그는 가만있지 않으며 그는 당신이 연마하게끔 놔두지 않는다. 하지만 이 역시 한 개 층차 중의 반영으로서 일단락 시간이 지난 후에는 이런 현상이 다시 존재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이 한 몫의 빚을 갚아 없애버린 후에 그가 다시 와서 교란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 수련은 수련함이 비교적 빠르고 층차의 돌파 역시 비교적 빠르기 때문이다.

또 일종 마의 교란형식이 있다. 여러분 알다시피 우리는 연공하여 천목을 열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천목이 열린 후에 집에서 연공하다가 일부 무서운 광경, 무서운 얼굴을 볼 수 있게 된다. 어떤 것은 머리를 풀어헤쳤고 어떤 것은 목숨을 내걸고 당신과 싸우려 하며 심지어 여러 가지 거동이 있게 되는데, 아주 무섭다. 어떤 때에 연공을 하기만 하면 창문밖에 모두 이런 것들이 엎디어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몹시 무서운 것이다. 왜 이러한 경우가 나타나게 되는가? 이는 모두 마의 교란형식이다. 그러나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 이 한 문(門)에서는 이런 경우를 보기가 극히 적은 것으로 백분의 일이나 될까, 다수는 다 이런 경우에 부딪히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연공에 무슨 좋은 점이 없기 때문에 그가 이런 형식을 취하여 당신을 교란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일반 공법의 수련에는 이런 일이 하나의 보편현상이며 또한 아주 긴 시간을 지속하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바로 이것 때문에 공을 연마하지 못하는데 몹시 혼났다. 밤에 연공함에 있어서 다 아주 조용한 환경을 선택한다. 척 보니 앞에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한 사람이 서 있는데 무서워서 감히 연마하지 못한다.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 중에는 일반적으로 이 현상이 없지만 극히 개별적으로는 아직도 있으며 어떤 사람의 경우는 극히 특수하다.

또 한가지는 바로 내외겸수(內外兼修)공법을 연마하는 것이다. 그는 무술도 연마하고 또한 내수(內修)도 하는데 이러한 공법은 도가 중에서 비교적 많이 보게 된다. 사람이 일단 이런 공법을 배우게 되면 흔히 이런 일종의 마(魔)를 만날 수 있다. 일반 공법은 만나지 못하며 오로지 내외겸수(內外兼修)의 공법, 무술을 연마하는 공법만이 비로소 있을 수 있는데,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그를 찾아 무예를 비기고자 한다. 세계적으로 수도(修道)하는 사람이 아주 많기 때문인데 무술을 연마하고 내외겸수(內外兼修)를 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 내외겸수를 하는 사람, 무술을 연마하는 사람은, 그 역시 공이 자랄 수 있다. 무엇 때문인가? 그는 기타의 마음, 명(名), 리(利) 이런 마음을 제거해 버린 후 그 역시 공이 자란다. 그러나 그의 쟁투심은 늦도록 제거되지 않으며 제거됨이 비교적 늦다. 그러므로 그는 이런 일을 하기 쉬우며 일정한 층차에서 또 나타날 수 있다. 가부좌하여 흐리멍덩한 가운데 그는 누구누구가 연공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元神(원신)이 신체를 떠나서 다른 사람을 찾아가서는 누구의 재주(功夫)가 높은가를 겨루어 보자고 하므로 이 싸움이 나타나게 된다. 다른 공간에서도 이런 경우가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그를 찾아와 싸우고 때리는데 싸우지 않으면 정말로 그를 죽여버리려고 하기 때문에 곧 서로 싸우게 되며 오고 가며 싸운다. 잠만 자면 사람이 와서 그와 무술을 비기며 싸우고자 하는데 온밤 다 휴식할 수 없게 만든다. 사실 이런 때에 그의 쟁투하는 마음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의 이 쟁투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면 그는 늘 이럴 것이며 장기적으로 이렇게 내려가면 몇 년을 더 끈다 하여도 역시 이 층차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 사람 역시 공을 연마할 수 없게 되고 이 물질신체도 견뎌내지 못하며 정력소모도 너무나 커서 잘못하게 되면 끝장이다. 그러므로 내외겸수 공법 중에서 이런 상황을 만날 수 있으며 또한 아주 보편적이다. 우리 내수공법에서는 이런 상황이 없으며 그가 나타남을 허용하지 않는다. 내가 금방 이야기한 이 몇 가지 형식은 모두 비교적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또 한 가지 마의 교란형식이 있는데 역시 사람마다 다 만날 수 있게 되며 우리 이 법문도 사람마다 다 만날 수 있는 것으로, 일종 색마(色魔)를 만나게 된다. 이것은 대단히 엄중하다. 속인사회 속에는 이런 부부생활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인류사회로 하여금 후대가 번성하고 퍼져나갈 수 있다. 인류는 바로 이렇게 발전한 것으로서, 인류사회 속에는 바로 이 하나의 정(情)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은 속인으로 말하면 천경지의(天經地義)이다. 사람에게는 정이 있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도 정이요, 기뻐하는 것도 정이요, 사랑하는 것도 정이요, 증오하는 것 역시 정이요, 일하기 좋아하는 것도 정이요, 일하기 싫어하는 것도 역시 정이며 누가 좋고 누가 나쁘게 보이며, 뭘 하기 좋아하고 뭘 하기 싫어하는 일체가 다 정이라, 속인은 바로 정을 위해서 산다. 그렇다면 일개 연공인으로서, 일개 초상(超常)적인 사람으로서 곧 이런 이치로 가늠할 수 없으며 이것을 돌파해야 한다. 그러므로 정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많은 집착심이 있는데 우리는 곧 그것을 담담히 여겨야 하며 최후에는 완전히 내려놓아야 한다. 욕과 색, 이러한 것은 다 사람의 집착심에 속하며 이런 것은 마땅히 모두 제거해야 한다.

우리 이 한 법문, 속인 중에서 수련하는 이 부분은 당신으로 하여금 스님이 되고 비구니가 되라는 것이 아닌즉, 우리 젊은이들은 여전히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 그럼 어떻게 이 문제를 대할 것인가? 내가 말했다. 우리 이 법문은,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 것(直指人心)으로서, 물질이익에서 당신이 진정하게 무엇을 잃으라는 것이 아니다. 정반대로 속인의 이런 물질이익 중에서 당신의 心性(심성)을 단련(磨煉)하게 하여, 진정하게 제고되는 것이 바로 당신의 心性(심성)이다. 당신이 이 마음을 능히 내려놓을 수 있다면 당신은 곧 무엇이나 다 내려놓을 수 있다. 물질이익에서 당신이 내려놓으라고 하면 당신은 물론 내려놓을 수 있다. 당신의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면 당신은 무엇이든 다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에 진정하게 수련하는 목적은 그 하나의 마음을 수련하는 것이다. 절에서의 수련은 그가 강제적으로 당신이 이러한 것을 잃게 하는데 역시 당신으로 하여금 이 마음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그는 당신을 강제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완전히 그것을 끊어버리게 하며 당신이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데, 그는 이런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바로 물질이익 앞에서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담담히 볼 것인가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 이 한 문(門)이 수련해 내는 것은 가장 착실하다. 당신으로 하여금 모두 스님이 되고 비구니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속인 중에서 수련하기 때문에 장래에 우리의 공법이 더욱더 광범하게 전해질 것이다. 사람마다 모두 스님이 아닌 스님이 되고 法輪大法(법륜대법)을 연마하는 하나 하나가 모두 이런 식이 되었다고 한다면, 이건 안 된다. 우리는 연공 중에서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바, 당신이 연공하지만 당신의 남편이거나 아내가 연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연공으로 말미암아 부부가 이혼하게 되어서는 또 안 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이 일을 담담하게 여기며 당신은 속인처럼 그것을 그렇게 중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더욱이 지금 사회적으로 무슨 성해방이요, 이런 황색의 것들이 사람을 교란하고 있다. 일부 사람은 그것을 아주 중하게 여기는데 우리는 연공인으로서 반드시 그것을 아주 담담히 여겨야 한다.

고층차에서 보면 속인은 사회 중에서 그야말로 흙을 이기면서도 더러움을 모르고 땅에서 흙을 이기며 장난을 친다고 말한다. 우리는, 당신은 이런 일로 인하여 가정이 불화 하게끔 하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당신 현재의 이 단계에서는 당신이 그것을 담담히 여기고 하나의 정상적이며 조화로운 부부생활을 유지하면 된다. 장래에 일정한 층차에 도달하게 되면 그 층차의 상태가 있을 수 있는데, 현재는 이러하기 때문에 우리의 요구란 당신이 이렇게 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지금 사회상의 그런 상태와 같아서는 안 되는데 그래서야 되는가!

이중에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여러분 알다시피 우리 연공인의 신체는 에너지가 있는 것이다. 우리 현재 8, 90%의 사람들은 이 수련반이 끝난 후 병이 나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공도 나오게 되므로 당신의 신체는 아주 강대한 에너지를 갖게 된다. 당신이 갖고 있는 공과 당신 현재의 心性(심성)은 정비례가 되지 않는다. 당신은 현재 잠시 공이 높은데 당신을 단번에 올려놓았으며 현재는 당신의 心性(심성)을 제고시키고 있다. 당신은 천천히 따라올 것이며 보증하고 이 일단락 시간 내에 당신이 따라올 것이므로 우리는 앞서서 이러한 일을 하였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일정한 에너지가 있다. 정법수련을 하여 나온 에너지는 순정(純正)하고 자비롭기 때문에 여러분이 여기에 앉아 있으면 모두 일종 상서롭고 화애하며 자비로운 마당을 감각하게 된다. 나는 연공을 이렇게 수련하여 온 것이며 나는 이것을 갖고 있다. 여러분은 여기에 앉아서 모두 아주 조화로움을 느끼게 되며 사람의 사상 중에 사념(邪念)이 없고 심지어는 담배를 피울 생각도 하지 못한다. 장래에 당신 역시 우리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한다면 당신이 장래에 수련해 낸 공 역시 이러하다. 당신의 공력이 끊임없이 자라는 때를 따라 당신 신체가 갖고 있는 그 공이 내보내는 에너지 역시 대단히 강대할 수 있다. 설령 그렇게 강대하지 못하더라도 일반적인 사람이 당신의 이 마당범위 내에 있거나 혹은 당신이 집에 있다 하여도 당신은 역시 다른 사람을 제약할 수 있다. 가능하게 당신 집의 육친들도 모두 당신의 제약을 받을 수 있다. 무엇 때문인가? 당신이 의념(意念)을 움직이지 않아도 이 마당이 순수하고 바르며(純正) 상서롭고 화애로우며 자비로운 정념(正念)의 마당이기 때문에 사람이 나쁜 짓을 생각하기가 쉽지 않으며 나쁜 짓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런 한가지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그날 내가 불광이 널리 비추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도다 라는 말을 하였는데, 다시 말해서 우리 신체가 내보내는 에너지는 일체 부정확한 상태를 시정할 수 있다. 그럼 이 마당의 작용 하에서 당신이 이러한 일을 생각하지 않을 때, 무형 중에 당신의 집사람도 제약하게 된다. 당신이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당신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인데, 그럼 그도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절대적이 아니다. 현재 이런 환경에서 텔레비전을 틀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모두 있어 쉽사리 사람의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 당신은 이러한 일종 제약작용을 할 수 있다. 장래에 고층차에서 수련하게 되면 내가 당신에게 알려줄 필요도 없이 당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곧 알게 되며 그때에 가서는 다른 상태가 있게 되어 조화로운 생활을 유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들을 당신 역시 그것을 너무 중하게 여기지 말아야 하며 당신이 과분하게 걱정하는 것 역시 집착에 속한다. 부부사이에는 색의 문제가 없지만 욕망이 있으므로 당신이 그것을 담담하게 보아 심리평형을 이루면 된다.

그렇다면 어떤 색마(色魔)를 만나게 되는가? 만약 당신이 입정력(定力)이 모자란다면 당신은 꿈속에서 나타날 수 있다. 당신이 한창 잠을 자거나 또는 한창 가부좌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날 수 있다. 당신이 남자라면 미녀가 나타날 수 있으며, 당신이 여자라면 당신의 마음속에서 사모하는 그런 남자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실 한 오리 걸치지 않았다. 당신이 생각을 하기만 하면 배출할 수 있으며 곧 사실로 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우리가 연공함에 있어서 정혈지기(精血之氣)는 명을 닦는 데 쓴다. 당신은 늘 이렇게 배출할 수 없지 않는가. 동시에 당신의 색욕 이 한 고비를 넘지 못하였으니 그 어찌 될 말인가? 그러므로 이 문제를 나는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는 즉, 사람마다 모두 부딪힐 수 있으며 보증하고 부딪히게 된다. 내가 설법할 때에 나는 아주 강한 에너지를 갖고 당신의 머리 속에 쳐 넣고 있다. 당신이 아마 문을 나서면 내가 말한 구체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당신이 정말로 문제에 부딪혔을 경우에 당신은 내가 한 말이 생각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오로지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하기만 한다면 당신은 그 순간에 생각날 수 있으며 당신은 곧 자신을 단속할 수 있다. 그럼 당신은 이 한 고비를 지나갈 수 있다. 만약 첫 번째 고비를 지나가지 못한다면 두 번째 고비는 곧 지켜내기가 아주 어렵다. 하지만 또 이런 것도 있다. 첫 번째에 넘기지 못하고 깨어 난 후에 풀이 죽어서 대단히 낙심하게 된다면, 당신의 이런 심리, 이런 상태 역시 당신 사상 속의 인상을 깊게 할 수 있어, 다시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당신은 파악할 수 있으며 바로 넘어갈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넘어가지 못하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나중에는 지켜내기가 더욱 어려운 즉, 보증하고 이러하다.

이런 형식에는 마의 교란이 있다. 또한 사부가 지물화물(指物化物)하여 연화(演化)해서는 당신을 검증하고 있는데, 두 가지 형식이 모두 존재한다. 사람마다 모두 이 한 고비를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속인으로부터 수련을 시작하기 때문에 내디딘 첫 발자국이 바로 이 한 고비로서 사람마다 모두 부딪히게 된다. 내가 여러분에게 예를 하나 들겠다. 무한에서 수련반을 열 때 이런 한 수련생이 있었는데 30세의 젊은이였다. 내가 방금 이 한 과목을 강의한 후에 그는 집에 돌아가서 가부좌를 하고 즉시에 定(띵)하게 되었다. 定(띵)한 후에 갑자기 이쪽에는 아미타불이 나타나고 저쪽에는 노자가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것은 그가 심득소감에서 이야기한 것이다. 나타난 후에 그를 보고는 아무 말도 없었고 그런 후에는 사라져 버렸다. 또 관음보살이 나타났는데 손에는 하나의 꽃병을 들었고 이 꽃병으로부터 한 가닥의 흰 연기가 뿜어 나왔다. 그는 거기에서 가부좌하고 아주 똑똑히 보았다. 그는 대단히 기뻐했다. 단번에 몇몇 미녀가 나타났는데 미녀는 바로 그 천녀(飛天)인지라 그 얼마나 예쁜가. 그에게 춤을 추어 보였는데 춤 자태, 이것이 예쁘기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내가 여기서 연공하니 관음보살이 나를 장려(奬勵)하며 몇몇의 미녀로 변하여 나에게 보이고 천녀가 나에게 춤을 추게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한창 기쁘게 생각할 때, 이런 미녀들이 단번에 실 한 오리 걸치지 않고 여러 가지 동작을 하며 목에 매달리고 허리를 끌어안으며 매달렸다. 우리 수련생은 心性(심성)을 제고함이 아주 빨랐다. 그 때 이 젊은이는 경계심이 있었다. 그가 우선 생각한 것은, 나는 일반 사람이 아니며 나는 연공인이다. 당신들은 나를 이렇게 대하지 말아야 하는데 나는 法輪大法(법륜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다. 이 생각이 나오자마자 '휙'하고 단번에 아무것도 없게 되었는데 본래 변화(幻化)하여 나온 것이었다. 그 다음 아미타불과 노자가 또다시 나타났다. 노자는 손으로 젊은이를 가리키며 아미타불을 보고 웃으며 유자(孺子)는 가히 가르칠 수 있도다 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이 젊은이가 괜찮으며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또는 고층 공간에서 사람이 능히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봄에 있어서 사람의 욕망, 색, 이것을 아주 주요하게 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로 이러한 것을 담담히 보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속인 중에서 수련하므로 또 당신이 그것을 완전히 끊어버리라는 것이 아니며 최저한도로 현 단계에 있어서 당신은 그것을 담담하게 여겨야 하며 더는 예전과 같이 그래서는 안 된다. 일개 연공인으로서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 무릇 연공 중에서 이런 교란, 저런 교란이 나타나게 되면 당신 자신이 원인을 찾아야 한다. 당신이 무엇을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것이 있는가를.

자심생마(自心生魔)

무엇을 자심생마(自心生魔)라고 하는가? 사람의 신체는 각층 공간 속에 모두 하나의 물질마당이 존재하는데 특수한 마당 속에는 우주 중의 일체의 것이 모두 그림자와 같이 당신의 이 공간마당에 비춰 온다. 비록 그림자라 할지라도 역시 물질의 존재이다. 당신 공간마당에서의 일체는 모두 당신 대뇌의식의 지배를 받는다. 다시 말해서 당신의 천목으로 볼 때 생각이 없이 조용히 보면 진실한 것이지만 오로지 조금이라도 생각을 갖는다면 보게 되는 것이 모두 가짜이다. 이것이 바로 자심생마이며 또는 마음에 따라 변화되는(隨心而化) 것이라고 한다. 바로 어떤 연공인 자신은 자기를 일개 수련하는 사람으로 간주하지 못하고 자기가 자신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공능을 추구하고자 하며 소능소술(小能小術)에 집착한다. 심지어 다른 공간에서 들은 일부 것들에 집착하여 이러한 것을 추구함에 집착하는데 이 한 유형의 사람은 자심생마 하기가 가장 쉽고 떨어져 내려오기가 가장 쉽다. 얼마나 높이 수련하였던지 막론하고 이 문제가 나타나게 되면 곧 철저히 떨어지며 끝까지 망치게 될 수 있다. 이는 하나의 극히 엄중한 문제이다. 기타 면과 같지 않다. 心性(심성) 검증을 이번에 넘기지 못하였으면 곤두박질하였다가 다시 기어일어나 또 이어서 수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심생마 이 문제가 나타나게 되면 곧 안되며 그의 이 한평생은 곧 끝장이다. 특히 연공하여 일정한 층차에서 천목이 열린 사람은 이 문제가 나타나기 쉽다. 또 일부 사람은 자신의 의식에서 늘 외래정보의 교란을 받으며 외래정보가 그에게 무엇을 알려주면 그는 곧 무엇을 믿는데 역시 이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어떤 사람은 천목이 열린 후에 여러 면의 정보 교란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예를 들자. 낮은 층차에서의 수련에서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자면 하기가 아주 어렵다. 스승님이 어떤 모양인지 당신은 똑똑히 보아내지 못할 수 있다. 갑자기 그 어느 하루 당신은 하나의 높고도 큰 대신선이 온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대신선은 당신을 두어 마디 칭찬해준 다음 당신에게 뭘 좀 배워 줄 것인데, 당신도 받아들이면 당신의 공은 곧 난잡하게 된다. 당신은 속으로 기뻐서 그를 사부로 모시고 그를 따라 배울 것이지만 그 역시 정과(正果)를 얻지 못하였다. 그 공간에서는 크게 변할 수도 있고 축소될 수도 있다. 이것이 당신 앞에 펼쳐지어 당신이 이 대신선을 보게 되면 정말로 격동된다! 환희심이 일어나게 되자 당신은 그를 따라 배우지 않겠는가? 수련하는 사람이 자신을 파악하지 못하면 제도하기가 아주 어려우며 자신을 망치기 쉽다. 천인(天人)은 모두 神이지만 그 역시 정과(正果)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마찬가지로 육도(六道)에 들어가기 마련이다. 당신이 제멋대로 사부를 모시고 당신이 그를 따라 간다면 그가 당신을 어느 지경에까지 이끌어 가겠는가? 그도 정과를 얻지 못하였는데 당신의 수련은 헛된 것이 아닌가? 결국 당신 자신의 공은 이미 난잡하게 되었다. 사람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기가 아주 어렵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는데 이 문제는 아주 엄숙하다. 장래 우리 많은 사람이 이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나는 법을 당신에게 이야기하였다. 당신이 파악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전적으로 당신 자신에 달렸다. 내가 이야기한 이것은 한가지 경우이다. 어떤 다른 문파(門派)의 각자(覺者)를 보아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곧 한 문(門) 에서 수련해야 한다. 무슨 불(佛)이요, 무슨 도(道)요, 무슨 신(神)이요, 무슨 마(魔)요 하는 것들로 모두 나의 마음을 움직일 생각을 말라. 이렇게 하면 꼭 성공에 희망이 있을 것이다.

자심생마는 또 기타 경우가 있다. 세상을 떠난 육친이 교란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울며불며 당신더러 이 일, 저 일을 해 달라 하며 어떠한 일이든 다 나타나게 된다. 당신이 이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가? 당신은 당신의 이 애를 너무 사랑하고 당신은 당신의 부모를 사랑한다. 당신의 부모는 이미 세상을 떴는데 그는 당신더러 무엇을 하라고 알려준다 ?… 모두 그렇게 할 수 없는 일들인데 당신이 한다면 곧 잘못 된다. 연공인은 바로 이렇게 어렵다. 남들은 불교가 혼란하다고 말하는데, 유교의 것들도 불교에로 갔다. 무슨 부모 효도, 자식정 같은 것들이 모두 들어가게 되었는데 불교에는 이런 내포(內涵)가 없다. 무슨 뜻인가? 한 사람의 진정한 생명은 元神(원신)이기 때문에, 당신의 元神(원신)을 낳은 그 어머니만이 비로소 당신의 진정한 어머니이다. 당신이 육도윤회(六道輪回) 중에서 당신의 어머니는 인류도 있고 인류가 아닌 것도 있어 헤아릴 수 없다. 생생세세(生生世世)로 당신의 자녀가 얼마인지 헤아릴 수도 없다. 어느 것이 당신의 어머니이며 어느 것이 당신의 자녀인지, 두 눈을 감으면 누구도 누구를 알아보지 못하며 당신이 진 업만은 그대로 갚아야 한다. 사람은 미혹 속에 있기 때문에 이것을 내려놓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그의 자녀를 내려놓지 못하며 여하하게 좋은데 그가 죽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도 여하하게 좋은데 역시 죽었다며 비통하기 그지없어 하는데 그야말로 후반생에 그를 따라가려는 듯 하다. 당신은 생각해 보지 않는다. 이것이 그래 당신을 시달리게 하려고 온 것이 아닌가? 이런 형식으로써 당신으로 하여금 편안히 지내지 못하게 한다.

속인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지만 당신이 만약 이것을 집착한다면 당신은 아예 수련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불교에는 이 내포가 없다. 당신이 수련하려고 생각한다면 사람의 정(情)을 곧 내려놓아야 한다. 물론 우리는 속인 중에서 수련하기 때문에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을 단속하고 가르치는 것은 모두 마땅한 것이며 여러 가지 환경 속에서 모두 다른 사람에 대하여 좋게 대하며 사람과 착하게 지내야 하는데 하물며 당신의 육친이랴. 누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서, 부모에 대하여, 자녀에 대해서도 모두 잘 대하고, 곳곳마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게 되면 이 마음은 이기적이 아닌 것이며 다 자애롭고 선량한 마음이며 자비이다. 정(情)은 속인 중의 것으로서 속인은 곧 정을 위해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은 자신을 파악하지 못하여 수련의 곤란을 조성한다. 어떤 사람은, 부처님이 그와 무엇을 이야기했다고 말한다. 무릇 당신에게 오늘은 하나의 난(難)이 있어 무슨 일이 생길 것인 즉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피하라고 알려주거나 또는 누가 당신에게 오늘의 일등 복권은 몇 번인데 당신이 가서 당첨하라고 알려준다거나, 오로지 생명이 위험할 때에 당신더러 어떻게 제거하라는 것 외에 무릇 속인사회에서 당신더러 좋은 점을 얻게 하는 것은 모두가 마(魔)이다. 당신이 속인 중에서 좋은 것을 얻게 되어 이 하나의 난을 넘지 못하면 당신은 제고하여 올라올 수 없다. 당신이 속인 중에서 편안히 잘 지낸다면 당신이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당신의 업력을 어떻게 전화시킬 수 있는가? 당신의 心性(심성)을 높이고 당신의 업력을 전화할 환경이 어디에 있는가? 여러분은 절대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 마(魔)는 또 당신을 칭찬할 수도 있는데, 당신이 얼마나 높다고 말하며 당신은 얼마나 높은 대부처, 얼마나 높은 대도(大道)라고 말하며 당신을 대단하다고 여기는데 이것은 전부 가짜이다. 진정하게 고층차에로 수련하는 사람은 당신의 여러 가지 마음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는바, 이런 문제에 부딪혔을 때 여러분은 반드시 경각성을 높여야 한다! 우리는 연공할 때에 천목이 열린다. 천목이 열리면 천목이 열림으로 말미암아 수련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며 천목이 열리지 않으면 천목이 열리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수련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지라, 수련하기가 모두 쉽지 않다. 천목이 열린 후에 여러 가지 정보가 당신을 교란할 때 당신은 정말로 자신을 파악하기 아주 어렵다. 다른 공간에는 어디든 모두 아름답고 굉장히 예쁘며 대단히 좋아 무엇이든 모두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마음을 움직인다면 당신은 아마 교란을 받아 당신의 그 공이 난잡하게 될 것인데 흔히는 이러하다. 그러므로 자심생마한 사람은 자신을 파악하지 못할 때 또 이런 한가지 경우가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말하면, 이 사람이 바르지 않은 생각이 생기기만 하면 아주 위험하다. 어느 하루 그는 천목이 열렸으며 그가 본 것 또한 아주 똑똑하다. 그는, 이 연공장에서 나의 천목이 잘 열렸는데 나는 일반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이스승님의 法輪大法(법륜대법)을 배울 수 있고 내가 이처럼 잘 배울 수 있으며 내가 다른 사람보다 모두 나은데, 나도 아마 일반적인 사람이 아닐 수 있다 라고 생각한다. 이 사상은 이미 옳지 않다. 나 역시 부처일지도 모른다, 자, 나는 나 자신을 보아야겠다 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가 자신을 보니 정말로 부처였다. 무엇 때문인가? 그 자신의 신체 주위의 공간마당 범위 내의 일체 물질은 모두 그의 생각에 따라 연화(演化)되기 때문인데 또는 마음에 따라 변화(隨心而化)되는 것이라고도 한다.

우주 중으로부터 대응하여 온 것은 모두 그의 생각에 따라 변화된다. 왜냐하면 그의 공간마당 범위 내의 것은 모두 그에게 관할되며 그림자 역시 물질존재로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부처인데, 내가 입은 것도 역시 부처의 옷일 것이다 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가 입은 옷이 곧 부처의 옷임을 그는 보게 된다. 어이구, 나는 정말로 부처이구나. 이야말로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나는 작은 부처가 아닐 수도 있다. 척 보니 자신은 또 큰부처였다. 나는 李洪志보다 높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보자, 어이구, 나는 정말로 李洪志보다도 높구나. 또 어떤 사람은 귀로 듣는데, 그 마(魔)가 그를 교란하여 당신은 李洪志보다도 높으며 당신은 李洪志보다 얼마 얼마 높다고 말해 준다. 그 역시 믿는다. 당신은 앞으로 어떻게 수련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는가, 당신은 수련을 한 적이 있는가? 누가 당신을 수련하게끔 가르쳤는가? 진짜 부처가 내려와 일을 함에도 모두 다시 수련하여야 하며 원래의 공을 모두 주지 않는데, 다만 지금 수련함이 좀 빠를 따름이다. 이렇게 되자 이 사람은 일단 이런 문제가 나타난 후, 그럼 그는 스스로 헤어 나오기가 아주 어렵게 되어 즉시로 이 마음이 일어나게 된다. 일어난 후에 그는 곧 무엇이든 다 감히 말한다. 내가 바로 부처이다. 당신들은 다른 사람을 따라 배울 필요가 없다. 내가 바로 부처이다. 내가 당신들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겠다. 그는 이 수작을 한다.

우리 장춘에도 이런 사람이 있지 않는가? 처음에는 아주 괜찮은 한 사람이었는데 후에는 하고 하다가 곧 이 수작을 하게 되었다. 그는 부처이고 최후에 그는 누구보다도 다 높았다. 사람이 바로 자신을 파악할 수 없어 집착심이 일어나 조성된 것이다. 왜 이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가? 불교에서는, 당신이 어떤 것을 보았던지, 당신은 그것을 상관하지 말라고 말한다. 모두 환마(魔幻)인바, 당신은 다만 자신이 입정(入定)하여 위로 수련하는 것만 책임지라고 한다. 그는 왜 당신더러 보지 말라고 하며 당신더러 그것에 집착하지 말라고 하는가? 그는 바로 이 문제가 나타날가봐 두려워서였다. 불교 중의 수련은 그 어떤 강화수련방법이 없기 때문에 경서 중에도 당신더러 어떻게 이런 것을 벗어나라고 지도하는 것이 없다. 석가모니는 당시에 이 법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자심생마, 마음에 따라 변화(隨心而化)하는 문제를 피하기 위하여 그는 일체 수련 중에서 보게 되는 광경을 모두 환마(魔幻)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일단 집착심이 있게 되면 곧 이 환마가 생기게 되어 사람은 그것을 벗어나기가 아주 어렵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잘못하여 끝장 일수도 있는데 마가 든 것이었다. 그가 자신을 부처라고 말하였기 때문에 그는 이미 마에 들었으며 최후에는 또 부체(附體) 또는 기타 어떤 일을 초래할 수도 있는바 그는 곧 철저히 끝장이다. 그의 마음도 나쁘게 변하여 철저히 떨어져 내려가는데 이러한 사람이 대단히 많다. 이 수련반에서 지금 어떤 사람은 자신이 괜찮다고 느끼고 있으며 그 말하는 태도마저도 모두 다르다. 자신이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하는 것을 불교 중에서도 이것을 아주 꺼렸다. 내가 방금 이야기한 이것 또한 한가지 경우로서, 이것을 자심생마라고 하며 또는 마음에 따라 변화(隨心而化)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북경에 이러한 수련생이 있는가 하면 또 일부 지역에도 나타났다. 아울러 연공인에 대한 교란이 아주 크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묻기를, 스승님, 당신은 왜 이것을 청리(淸理)하지 않습니까? 라고 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만약 우리가 수련이란 이 길에서 당신에게 장애를 전부 다 청리해 준다면 당신은 어떻게 수련할 것인가? 바로 마의 교란이 있는 상황에서만 비로소 당신이 수련해 나갈 수 있는가 없는가, 당신이 진정하게 도를 깨달을 수 있는가 없는가, 당신이 교란을 받을 수 있는가 없는가, 이 한 법문에 확고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체현해 낼 수 있다. 거센 파도가 모래를 일듯이 수련이란 곧 이러한 일로서, 남은 것이야말로 진짜 금이다. 당신에게 이런 형식의 교란이 없다면, 나는 사람이 수련하기가 너무나도 쉬우며 내가 보기에 당신이 수련함은 다 너무나도 쉽다고 말한다. 그런 고층차에 있는 대각자들이 보게 되면 마음속으로부터 더욱 불공평하다고 한다. 당신 이건 뭘 하는 건가? 당신 이것은 사람을 제도하는 것인가? 이 길에 어떤 장애도 모두 없어, 수련만 하면 끝에 도달하는데 이것이 수련인가? 연마할수록 더욱 편안하고 어떤 교란도 모두 없다. 그렇다면 되는가? 바로 이러한 문제이며 나도 이 문제를 고려하고 있다. 초기에 나는 아주 많은 이러한 마를 처리하였다. 늘 이렇게 해내려 간다면 내 생각에도 맞지 않다. 남들도 나에게, 당신은 그들이 너무 쉽게 수련하도록 해주었다고 말한다. 사람은 자신의 고만한 난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고만한 일 뿐인데 또한 많은 마음을 아직도 제거할 수 없지 않는가! 미혹 속에서 당신이 대법 자체에 대하여 인식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 아직도 문제이다! 이러한 하나의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곧 교란이 있게 되며 검증이 있게 된다. 방금 이야기한 이것은 마의 일종 형식이다. 진정하게 한 사람을 제도하기란 아주 어렵지만 한 사람을 망치기는 극히 쉽다. 당신 자신의 마음이 똑바르지 않으면 곧 끝장이다.

主意識(주의식)이 강해야 한다

사람이 생생세세(生生世世)로 일부 좋지 못한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사람에게 재난을 조성하여 주고 수련자에게 업력의 장애를 조성하여 주었기 때문에,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업력이다. 또 한가지 강대한 업력이 있는데 연공자에 대한 영향이 아주 큰 것으로서 사상업(思想業)이라고 한다. 사람이 살아서는 사색하기 마련이다. 사람이 속인 속에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때때로 사상 중에 일종 명·리·색·기(氣) 등을 위하여 내보내는 의념(意念)이 생기게 되는데 오래오래 되면 곧 한가지 강대한 사상업력을 형성하게 된다. 다른 공간에서의 일체는 모두 생명이 있는 것으로, 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정법을 수련하고자 할 경우 곧 소업(消業)해야 한다. 소업이란 바로 업을 소멸하고 전화시킨다는 것이다. 물론 업력은 말을 듣지 않으며 사람은 곧 난이 있게 되고 장애가 있게 된다. 그러나 사상업력은 직접 사람의 대뇌를 교란할 수 있다. 따라서 사상 중에서 스승님을 욕하고 대법을 욕하는 것이 있으며 일부 사념(邪念)과 사람을 욕하는 말을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어떤 수련자는 어찌된 영문인지를 모르고 있으며 그냥 자신이 이렇게 생각한 것이라고 여긴다. 또 어떤 사람은 이것은 부체(附體)라고 여기지만 이것은 부체가 아니라 사상업이 사람의 대뇌에 반영하여 조성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主意識이 강하지 않아 사상업에 따라 나쁜 짓을 하는데, 이 사람은 곧 끝장이며 떨어져 내려가게 된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가히 아주 강한 주관사상[主意識이 강함]으로 그것을 제거할 수 있으며 그것을 반대할 수 있다. 이렇다면 이 사람을 제도할 수 있음을 설명하는바, 좋고 나쁨을 능히 가를 수 있다. 즉 오성(悟性)이 좋으므로 나의 법신이 도와서 대부분의 이런 사상업을 없애 버릴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비교적 많이 보게 된다. 일단 나타나게 되면 자신이 이 나쁜 사상을 전승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렸다. 확고할 수 있는 자는 가히 업을 없앨 수 있다.

마음은 반드시 똑바라야 한다

무엇이 마음이 똑바르지 않은 것인가? 바로 그가 늘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다. 연공인은 수련 중에서 난에 부딪히게 되는데 이 난이 올 때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찰로 표현되어 아귀다툼 등등의 이런 일들이 나타날 수 있으며 직접 당신 心性(심성)의 것에 영향주게 되는데, 이런 면이 비교적 많다. 또 어떤 것에 부딪히게 되는가? 우리 신체는 갑자기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업을 갚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여러 면으로 체현될 수 있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또 당신으로 하여금 진짜도 아니고 가짜도 아니게 만들어 놓아 당신으로 하여금 이 공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 도대체 수련하여 올라갈 수 있는지 없는지, 부처가 있는지 없는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느끼게 한다. 장래에 또 당신에게 이런 상황이 나타나게 할 수 있으며 당신에게 이런 착각을 조성시켜 주어 당신으로 하여금 그것이 마치도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 가짜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데, 당신이 확고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 당신은, 당신이 꼭 확고부동하다고 말한다면, 이러한 마음은 그때에 가서 당신으로 하여금 정말로 확고부동하게 할 수 있으며 당신은 자연히 잘 할 수 있다. 당신의 心性(심성)이 이미 제고되어 올라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당신이 그처럼 안정되지 않아 만약 지금 당신에게 이 시달림(磨難)이 나타나게 한다면 당신은 전혀 깨닫지를 못하며 아예 수련할 수 없다. 여러 면에 모두 시달림이 나타날 수 있다.

수련과정 중에 사람은 곧바로 이렇게 위로 수련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어떤 사람은 일단 그의 신체의 어디가 불편하게 되면 그는 곧 자신이 병이 있다고 여긴다. 그는 늘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하지 못하며 이 일에 부딪히면 그는 스스로도 병이라고 여기며 왜 그렇게 많은 번거로움이 나타나는가? 라고 한다. 당신에게 알려주겠는데, 이미 당신에게 아주 많이 없애주었으며 당신의 그 번거로움은 아주 적게 되었다. 만약 당신에게 없애주지 않았다면, 당신이 이 번거로움에 부딪히게 되면 황천객이 될 수도 있으며 또는 그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당신은 조그마한 번거로움에 부딪혔어도 당신은 견디기 어려워하는데, 어디 그렇게 편안한 일이 있는가? 예를 든다면 내가 장춘에서 수련반을 꾸릴 때,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근기가 아주 좋았고 정말로 괜찮은 편이어서, 나도 이 사람이 마음에 들었다. 그의 난을 좀 크게 가하여 그더러 빨리 갚아버리고 그로 하여금 개공(開功)하게 하고자 나는 이렇게 하려고 준비하였다. 그러나 어느 하루 그는 갑자기 뇌혈전에 걸린 증상과도 같이 단번에 거기에 넘어가서 움직일 수 없는 감을 느끼며 사지가 말을 잘 듣지 않은 것 같아 병원에 보내어 긴급치료를 하였다. 그런 후에 그는 걸을 수 있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뇌혈전에 걸려서 어찌 이처럼 빨리 걸음을 걸을 수 있으며 팔, 다리를 모두 움직일 수 있겠는가? 그는 되돌아서 도리어 法輪大法(법륜대법)을 배워 그로 하여금 편차(偏差)가 생기게 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는 뇌혈전이 이렇게도 빨리 나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오늘 그가 만약 法輪大法(법륜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단번에 넘어져 거기에서 죽어 버릴지도 모르며 아마 영원히 반신불수로 되어 정말로 뇌혈전에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말하여 사람은 제도하기가 그처럼 어렵다. 그를 위하여 그렇게 많이 하였건만 그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이렇게 말한다. 어떤 노수련생은, 스승님, 나는 어쩐지 어디나 다 불편하며 늘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도 쓸모가 없고 약을 먹어도 쓸모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뻔뻔스럽게 나한테 말한다! 그건 물론 쓸모가 없다. 그것은 병도 아닌데 쓸모가 있겠는가? 당신이 검사해 보라. 병은 없고 당신은 괴로울 따름이다. 우리 어떤 수련생은 병원에 가서 남의 주사 바늘을 몇 개나 후려 놓고 나중에는 그 한 대의 약을 모두 뿜어버렸어도 찌르지 못하였다. 그는 알게 되었다. 어이구, 나는 연공인이 아닌가, 나는 주사를 맞지 않겠다. 그는 이제야 생각나서 주사를 맞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달림(磨難)에 부딪혔을 경우에 이 문제를 절대 주의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내가 그로 하여금 병원에 가지 못하게 하는 가고만 여기어 생각을 한다. 당신이 날 병원에 가지 못하게 하면 나는 기공사를 찾아가 보겠다. 그는 여전히 그것을 병이라고 여기며 그는 기공사를 찾아가 본다. 어디에 가서 진짜 기공사를 찾겠는가? 만약 가짜이면 그 즉시로 당신을 망친다.

우리들이 말한다면, 그 기공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당신이 어디에 가서 똑똑히 가를 수 있는가? 많은 기공사는 모두 스스로 봉한 것이다. 나는 측정을 거쳤으며 나의 손에는 과학연구 부문에서 나에 대해 측정한 자료가 있다. 많은 기공사는 가짜이며 자기 절로 봉한 것으로 명색만 팔아먹으며 협잡하는 것이 수두룩하다. 이 가짜 기공사도 병을 볼 수 있다. 왜 병을 볼 수 있는가? 그는 부체(附體)가 있다. 부체가 없으면 그는 사람을 속이지도 못하게 된다! 그 부체, 그것도 공을 내보낼 수 있으며 또 병을 치료할 수 있는데 그도 일종 에너지의 존재로서 속인을 제약하기란 몹시 쉽다. 그러나 내가 말한바 있지만 그 부체가 병을 치료한다면 당신의 몸에 무엇을 내보내는가? 극히 미시적 아래에서는 모두 그 부체의 형상인데 당신의 몸에 내보내게 되면 당신이 말해보라. 당신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神을 청하기는 쉬워도 神을 보내기는 어렵다. 속인은 우리가 말하지 않겠다. 그는 속인이 되고자 하며 그는 잠시 편안하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은 일개 연공인으로서 당신은 끊임없이 신체를 정화(煖化)하려고 하지 않는가? 이것을 당신의 몸에 달라붙게 한다면 어느 때에야 당신이 그것을 배출해 버릴 수 있겠는가? 또한 그 역시 일정한 에너지가 있다. 어떤 사람은 그 法輪(법륜)이 어찌하여 그것이 들어오게 하는가? 스승님의 법신이 우리들을 보호하고 있지 않은가? 라고 생각한다. 우리 이 우주에는, 당신 자신이 추구한 것은 누구도 상관하지 않으며 당신 자신이 갖고자 하면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하나의 이치가 있다. 나의 법신이 당신을 제지할 것이며 당신을 점화(點化)해 줄 것인데 당신이 늘 이런 것을 보고는 당신을 더 상관하지 않는다. 어디 남을 강박으로 수련하게 하는 것이 있는가? 당신을 강박으로 수련하게 할 수 없으며 당신을 핍박하여 수련하게 할 수 없다. 당신 자신에 의거하여 진정하게 제고해야 하는 것이며 당신이 제고하려고 생각하지 않으면 누구도 방법이 없다. 이치도 당신에게 이야기해 주었고 법도 당신에게 이야기해 주었으므로 당신 자신이 아직도 제고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당신 자신이 가지려고 한 것이기 때문에 法輪(법륜)도 상관하지 않으며 나의 법신도 상관하지 않는다. 보증하고 이러하다. 또 어떤 사람은 다른 기공사 마당에 가서 보고를 듣고는 집에 돌아와 아주 괴로워하는데 그건 물론이다. 그 법신이 왜 당신을 놓아 주지 않는가? 당신은 뭘하러 간 것인가, 당신이 가서 듣는데 당신이 구하러 간 것이 아닌가? 당신이 귀에 부어넣지 않으면 그것이 들어올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은 자신의 法輪(법륜)마저 변형되게 만들었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그 法輪(법륜)은 심지어 당신의 생명보다도 값지다. 그는 일종 고급생명으로서 제멋대로 그를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지금 가짜 기공사가 아주 많으며 어떤 사람은 명망이 아주 높다. 나는 중국 기공과학연구회의 지도자와 이야기를 하였다. 고대에 달기(?己)가 조정에 화란(禍亂)을 입혔으며 그 여우가 아주 지독하였지만 그도 지금의 그 가짜 기공처럼 그렇게 사납지는 못하다. 그야말로 전국에 화란(禍亂)을 입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재난을 당하는가! 라고 나는 말하였다. 당신이 볼 때, 표면적으로는 마치 아주 좋은 것 같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몸에 그런 것을 갖고 있는가? 그가 내보내게 되면 당신이 갖게 되는데 그야말로 너무나도 창궐하다. 그러므로 속인은 외관적으로 보아내기가 아주 어렵다.

어떤 사람은 생각할 수 있다. 오늘 기공 보고회에 참가하여 李洪志의 이 강의를 듣고보니 원래 기공은 이처럼 박대정심(博大精深)하구나! 다음 번에 또 다른 기공보고가 있게 되면 나는 또 가서 들어야겠다. 내가 말하겠다. 당신은 절대 가지 말라. 듣게 되면 좋지 않은 것이 귀로부터 부어 들어가게 된다. 일개 사람을 제도하기란 아주 어렵고 당신의 사상을 개변시키기가 아주 어려우며 당신의 신체를 조절해 주는 것 역시 아주 어렵다. 가짜 기공사는 너무나도 많으며 설령 진정한 정전(正傳)기공사라 할지라도 그 기공사는 정말로 깨끗한가? 어떤 동물은 아주 흉악한 것으로서, 그런 것들이 그의 몸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그는 밀어내지도 못한다. 그는 대면적으로 이러한 것을 건드릴 능력이 없다. 더욱이 그의 견습생인 그가 거기에서 공을 내보내면 혼잡한 것이 무엇이든 다 있다. 그 자신은 오히려 아주 바르지만 그의 견습생은 똑바르지 못하며 각종 부체를 갖고 있어 무엇이든 다 있다.

당신이 진정하게 法輪大法(법륜대법)을 수련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가서 듣지 말라. 물론 당신이 法輪大法(법륜대법)을 수련하려 하지 않고 무엇이든 다 연마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가도록 하라. 나도 당신을 상관하지 않으며 당신은 法輪大法(법륜대법)의 제자도 아니므로 문제가 생기면 당신도 法輪大法(법륜대법)을 연마하여 이렇게 된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당신이 心性(심성)의 표준에 따라 하며 대법에 따라 수련을 하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法輪大法(법륜대법)의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다른 기공을 연마하는 사람을 접촉할 수 있는가 없는가 라고 묻는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그는 기공을 연마(練)하는 것이고 당신은 대법을 수련하는 것으로서, 이 수련반에서 돌아간 다음 떨어뜨린 층차가 얼마나 먼지 모른다. 이 法輪(법륜)은 수많은 세대의 사람이 수련하여 비로소 이것을 형성하였기 때문에 강대한 위력이 있다. 물론 당신이 접촉하려고 한다면, 그의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고 갖지도 않으며 다만 일반적인 친구로 사귀는 것을 유지할 수 있다면 별로 문제가 크지 않다. 하지만 그 사람의 몸에 만일 정말로 어떤 것이 있으면 곧 매우 나쁘므로 가장 좋기는 접촉하지 말아야 한다. 부부간에 기타 공을 연마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내 생각에 문제가 크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가 있다. 당신은 정법을 연마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연공하면 다른 사람도 이득을 보게 된다. 그가 왜문사도(歪門邪道)를 연마한다면 몸에 왜문사도의 것이 있을 수 있으므로, 당신의 안전을 위하여서도 그를 청리(淸理)하여 주게 된다. 다른 공간에서 당신에게 무엇이든 모두 하여 주며 당신 집의 환경 역시 청리하여 준다. 환경을 청리하지 않고 여러 가지들이 당신을 교란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연공하겠는가?

그러나 한가지 경우만은 나의 법신이 청리해 줄 수 없다. 나에게 한 수련생이 있었는데 어느 하루 나의 법신이 온 것을 보게 되어 그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스승님의 법신이 오셨기 때문에 스승님을 방으로 모셨다. 나의 법신은 말하기를, 당신의 이 방이 너무나도 난잡하고 물건이 너무 많다고 하였다. 그는 곧 가 버렸다. 일반적으로 말하여 다른 공간의 영체(靈體)가 너무나도 많은데 나의 법신이 청리해 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온 방에는 모두 난잡한 기공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알아차리고 수습하여 태울 것은 태우고 팔 것은 팔았다. 그런 후에 나의 법신이 또 왔다. 이것은 수련생이 나에게 말한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남에게 점을 쳐 달라고 요구한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스승님, 나는 法輪大法(법륜대법)을 연마합니다. 나는 『주역』혹은 운수를 보는 이런 것에 아주 흥취가 있는데 내가 써도 됩니까? 라고 묻는다. 이렇게 말하자. 당신이 만약 일정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면, 당신이 하는 말은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그런 일이 아닌데도 남에게 그런 일이라고 말해준다면 당신은 가능하게 나쁜 일을 한 것으로 된다. 일개 속인은 매우 나약한 것으로, 그에게 존재하는 정보는 모두 불안정하여 아주 가능하게 일부 개변을 발생할 수 있다. 당신이 입을 열어 남에게 말해준다면 그 하나의 난이 곧 존재할 수 있다. 가령 그의 업력이 아주 커서 그가 갚아야 했지만 당신이 늘 그에게 좋은 일이 있다고 하여 업력을 갚지 못하게 되는데 그러면 되는가? 당신이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닌가? 어떤 사람은 좀처럼 내려놓지 못하고 이런 것에 집착하는데 마치도 그가 재간이나 있는 듯 하다. 이것은 집착이 아닌가? 또한 당신이 정말로 알았다면 일개 연공인으로서 心性(심성)을 지켜야 하므로 역시 함부로 천기(天機)를 한 속인에게 누설할 수 없는데 바로 이 이치이다. 『주역』으로 어떻게 추산하던 지간에, 어쨌든 일부 것은 이미 진실하지 않다. 추산하고 추산하며 진짜든 가짜든 간에 속인사회는 점을 치는 이런 것이 존재하는 것을 허용한다. 그럼 당신은 진정하게 공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진정한 연공인은 마땅히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찾아서 그에게 점을 쳐주도록 하며 당신은 나에게 점을 좀 쳐서 내가 어떠한가, 이 공을 연마한 것이 어떠한가? 를 좀 봐 달라고 하며 또는 내가 무슨 난이 있는가 없는가 라고 말한다. 그는 사람을 찾아서 이것을 점쳐 본다. 만일 그 난을 당신에게 점쳐 준다면 당신은 어떻게 제고할 것인가? 연공인인 그의 일생은 개변을 거친 것인데, 손금, 관상, 생진팔자(生辰八字)와 몸에 갖고 있는 정보의 것들은 이미 같지 않으며 개변을 거친 것이다. 당신이 그를 찾아서 점을 칠 때에 당신은 그를 믿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또 무슨 점을 치겠는가? 그가 말한 것은 표면적인 것으로, 말한 것은 당신 과거의 것이다. 그러나 실질로는 도리어 변화를 발생하였다. 그렇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이 그를 찾아 점을 치었는데 당신은 듣고 믿은 것이 아닌가? 그럼 당신은 정신적으로 부담이 조성된 것이 아닌가? 부담이 조성되었다면 당신은 마음속으로 그것을 생각하게 되므로 집착심이 아닌가? 그럼 이런 집착심을 어떻게 제거하는가? 이것은 인위적으로 하나의 난을 증가한 것이 아닌가? 생겨난 이 집착심은 더 많은 고생을 겪어서야만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매 하나의 고비, 매 하나의 난은 모두 수련하여 올라가는가 아니면 떨어져 내려가는가 하는 문제가 존재한다. 본래 어려운데 또 인위적으로 이 난을 증가하다니, 어떻게 넘길 것인가? 당신은 이 때문에 난과 번거로움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당신이 개변된 후의 이 한 갈래의 길은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본 후에 당신에게 당신이 어느 한 단계에 난이 있다고 다 말해준다면 당신은 또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그러므로 아예 보지 못하게끔 한다. 기타 법문은 누구도 보지 못하게끔 하는데 같은 문(門) 중의 제자도 모두 보지 못하게 하며 누구도 맞춰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일생은 고쳐진 것이며 수련의 일생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기타 종교의 책이며 또한 기공책을 볼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 우리가 말한다면 종교 중의 책, 더욱이 불교 중의 책은 모두 사람으로 하여금 心性(심성)을 어떻게 수련하라고 한 것이다. 우리 역시 불가이므로 마땅히 문제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가 있다. 많은 경서 중의 어떤 것은 번역과정 중에 이미 오차가 있고, 게다가 아주 많은 경서의 해석은 역시 부동한 층차에 서서 해석하였으며 제멋대로 정의를 내린 것으로, 이것이 바로 난법(亂法)이다. 일부 경서를 함부로 해석한 사람은 부처님의 경지와 거리가 너무나도 멀기 때문에 그 진정한 함의를 전혀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인식문제 역시 같지 않은 것이다. 당신이 만약 완전히 그것을 알아볼 수 있다면 역시 그리 쉽지 않은 것으로, 당신 자신이 깨달아 낼 수가 없다. 그러나 당신이 우리는 꼭 경서에 대하여 흥취를 가진다 라고 말한다. 당신이 늘 경서를 둘러싸고 학습한다면, 그것은 바로 그 한 법문 중에서의 수련이다. 왜냐하면 경서도 그 한 문(門)의 공과 법을 한데로 합치었기 때문에 배우기만 하면 곧 그 한 문의 것을 배운 것으로 되는데 이러한 문제가 있다. 만약 당신이 파고 들어갔으며 그에 따라 수련한다면 그 한 법문으로 갈 수 있으며 곧 우리 이 법문의 것이 아니다. 수련은 역대로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주장하는데, 당신이 만일 이 한 문을 진정하게 수련하려고 한다면 곧 이 한 문의 경을 보아야 한다.

기공책에 대하여 말을 한다면, 당신이 수련을하려면 보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지금 나오는 이러한 책들을 보지 말라. 그 무슨 『황제내경(黃帝內經)』,『성명규지(性命圭旨)』또는『도장(道藏)』 이런 유의 것들에 대하여 말한다면 역시 마찬가지로서, 비록 그런 것처럼 좋지 못한 것은 없지만 그 속에도 각종 층차의 정보가 존재한다. 그 자체가 바로 수련방법이기 때문에, 보기만 하면 당신에게 끼워 넣게 되며 당신을 교란하게 된다. 당신이 이 한마디의 말이 맞는다고 여기면 좋다, 이렇게 되어 곧 오게 된다. 당신의 공(功)에 넣어지는데 비록 좋지 못한 것이 아니지만 갑자기 당신에게 다른 것이 조금 넣어짐으로써 당신이 말해보라. 당신이 어떻게 연마하겠는가를? 역시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닌가? 우리 텔레비전의 이 전자 부속에 만일 당신이 기타 부속을 하나 더 끼워 넣는다면, 당신이 말해보라. 이 텔레비전이 어떤 모양이겠는가를? 즉시로 못쓰게 될 것인즉, 바로 이 이치이다. 또한 지금의 일부 기공책은 많은 것이 모두 가짜이며 각종 정보를 갖고 있다. 우리의 한 수련생이 기공책을 펼쳤는데 그 속에서 한 마리의 큰 뱀이 뛰쳐나오게 되었다. 물론 상세한 것을 나는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금방 말한 것은 바로 우리 연공인 자신이 자신을 정확히 대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일부 번거로움을 조성한 것이다. 말하자면 마음이 똑바르지 않아 초래된 번거로움이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해 줌으로써 좋은 점이 있으며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그들을 감별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여 장래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게끔 함이다. 당신은 내가 금방 이야기한 이 단락의 말이 그리 중하지 않다고 여기지 말라. 여러분이 절대 주의할 것은, 흔히 문제는 곧 이 점에서 생기게 되며 흔히 문제는 곧 여기에서 생기게 된다. 수련이란 극히 간고하며 매우 엄숙한 것으로서, 당신이 조금이라도 주의하지 않으면 아마 곧 떨어질 것이며 하루아침에 망치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은 반드시 똑발라야 한다.

무술기공

내수공법(內修功法)을 제한 외에 또 무술기공이 있다. 내가 무술기공을 이야기할 때에 나는 또 하나의 문제를 강조하겠는데 지금 수련계에는 아주 많은 기공설(氣功之說)이 있다.

지금 무슨 미술기공, 음악기공, 서예기공, 무용기공이 또 나왔으며 무엇이든 다 나왔는데 모두 기공이라니? 나는 이상하다고 여긴다. 내가 말한다면 이것은 기공을 화란(禍亂)시키는 것이며 다만 기공을 화란시키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야말로 기공을 망치는 것이다. 이론 근거는 무엇인가?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글자를 쓰며, 그런 흐리멍덩한 상태로 들어간다고 말하는데, 이른바 기공태(氣功態)가 바로 기공인가? 이렇게 문제를 인식할 수 없다. 내가 말한다면 그것은 기공을 망치는 것이 아닌가? 기공은 인체수련의 일종 박대정심한 학문이다. 오, 흐리멍덩한 것이 바로 기공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흐리멍덩하게 화장실로 가면 무엇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기공을 망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말한다면 곧바로 기공을 망치는 짓이다. 재작년 동방건강 박람회에서 그 무슨 서예기공이라는 것이 있었다. 무엇을 서예기공이라고 하는가? 내가 서예기공 거기에 가보니 이 사람은 붓을 들고 거기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글을 쓴 다음에 손으로 하나 하나의 글자에 기를 내보냈는데, 내보내는 것은 모두 검은 기였다. 온 머리에는 돈이고 명예였는데 당신이 말해보라. 공이 있을 수 있겠는가? 기라 하더라도 좋은 기일 수 없다. 거기에 척 걸고는 또 아주 비싸게 파는데 모두 서양사람이 그의 것을 사 갔다. 누가 집으로 사 가게 되면 누가 곧 재수 사납다고 나는 말한다. 그 검은 기가 좋을 수 있는가? 그 사람의 얼굴을 보아도 온통 검었다. 그는 돈구멍에 파고 들어가 돈만 생각하는데 공이 있을 수 있는가? 이 사람의 명함에는 많은 이름을 걸었는데 무슨 국제서예기공 등등이다. 내가 말한다면, 이 따위 것들을 기공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나의 이 수련반에서 나간 사람들, 우리 오늘 8, 90퍼센트의 사람들이 나가면 당신은 병이 나았을 뿐만 아니라 당신은 또 공이 나오게 되는데 진정한 공이다. 당신의 신체가 갖고 있는 것은 이미 무척 초상(超常)적인 것으로 당신 자신이 연마한다면 한 평생이더라도 당신은 다 연마해내지 못한다. 젊은 사람이 지금부터 연마하기 시작하여 한 평생이더라도 내가 넣어 준 이러한 것을 다 연마해내지 못하는바, 또한 진정한 명사(明師)가 당신을 가르쳐야만 한다. 우린 수많은 세대의 사람이 비로소 이 法輪(법륜)과 이러한 기제(機製)를 형성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것을 단번에 당신에게 넣어주었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줄 것은, 쉽게 얻음으로 하여 쉽사리 잃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지극히 진귀한 것으로서 가치로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 수련반에서 나간 후 당신이 갖고 있는 것은 진정한 공이며, 고에너지물질이다. 당신이 집에 돌아가서도 두어 글자 쓰겠는데 글씨가 좋고 나쁨에 관계가 없지만 공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 이 수련반에서 나가서는 매 사람마다 모두 '사(師)'자를 붙이면 모두 서예기공사인가? 나는 이렇게 인식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진정하게 공이 있는 사람, 에너지가 있는 사람은 당신이 일부러 내보낼 필요가 없이 당신이 만졌던 것은 모두 에너지를 남겨놓을 수 있어 모두 반짝반짝 빛난다.

나는 또 잡지 한 권을 보았는데 이런 하나의 소식을 실었다. 서예기공 강습반을 연다는 것이다. 나는 그가 어떻게 가르치는가를 보고자 펼쳐보았다. 그 속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즉 먼저 숨과 호흡을 조절하고 그 다음 가부좌하여 의념으로 단전의 기를 생각하며, 15분 내지 반시간 가부좌하여 의념으로 단전의 기를 이끌어 올려 작은 팔에 가게 하고, 붓을 들어 먹을 무치고는 다시 기를 운행하여 붓끝으로 보낸다. 의념(意念)이 도달하면 글자를 쓰기 시작한다. 그것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오, 기를 어디에로 끌어올리면 곧 무슨 기공인가? 그렇다면 우리들이 밥을 먹을 때에 가부좌를 좀 하고 젓가락을 들어서, 기를 운행하여 젓가락 끝에 보낸 다음 밥을 먹는다면 그것을 곧 식사기공이라고 부를 것이 아닌가? 먹는 것은 그래도 모두 에너지이다. 이 일을 말할 뿐이다. 내가 말한다면 곧바로 기공을 망치는 것이다. 그는 기공을 이처럼 천박하게 보고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인식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무술기공은 이미 한 문(門)의 독립적인 기공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 때문인가? 그는 몇천 년의 물려받고 전수하는 과정이 있으며 그는 완전(完整)한 일련의 수련 이론과 전체적인 일련의 수련방법이므로, 그를 완전한 한 세트의 것으로 여길 수 있다. 비록 이렇다 할지언정 무술기공 역시 우리 내수공법에서 가장 낮은 층차의 것이다. 경기공(硬氣功)은 바로 일종의 물질에너지 덩이로서 단일하게 격타(擊打)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예를 하나 든다면, 북경에 한 수련생이 있었는데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 수련반에서 나간 후 손은 물건을 내리누를 수 없었다. 상점에 가서 아동용 차를 사는데 이 차가 단단한지 안 한지를 손으로 시험해 보느라고 이렇게 한 번 누르니 '팍' 하고 각이 물러나게 되어 그는 아주 이상하게 느꼈다. 집에 돌아와서 걸상에 앉아도 그는 손으로 누를 수 없었다. 손으로 그 걸상을 한 번 누르기만 하면 '팍' 하고 부서졌다. 그는 나에게 어찌된 영문인가 라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말해 주지 않았는데 나는 그가 집착심이 생길까봐 염려되어서였다. 이는 모두 자연상태일 것이며 자연스럽게 되어 감에 따르고 그것을 상관하지 말며, 다 좋은 일이라고 나는 말하였다. 그 공능을 잘 운용한다면 돌도 손으로 쥐기만 하면 모두 부서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경기공(硬氣功)이 아니고 뭔가? 그러나 그는 경기공을 연마한 적도 없다. 내수공법에서 이런 공능은 일반적으로 모두 나오지만 사람의 心性(심성)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흔히 공능이 나와도 당신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다. 더욱이 낮은 층차에서 수련할 때 사람의 心性(심성)이 아직 제고되어 올라오지 못하였기 때문에 낮은 층차에서 나온 이 공능을 아예 내놓아 주지를 않는다. 오래오래 되어 당신의 층차가 높아짐에 따라 그때에는 이런 것들이 아무 쓸모도 없으므로 곧 내어놓지 않는다.

무술기공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마한 것인가? 무술기공을 연마함에 있어서 그는 기를 모으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시작에는 이 기 역시 모으기가 힘들어 당신이 기를 모으겠다고 하면 기가 모아지는가, 그는 아직 모아 오지도 못하고 있지 않는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반드시 그의 손을 연마해야 하며 그 신체의 두 옆구리 또는 발, 다리, 크고 작은 팔, 머리를 모두 연마해야 한다. 어떻게 연마하는가? 어떤 사람은 손으로 나무를 치고 손바닥으로 나무를 친다. 어떤 사람은 손을 돌 판에 대고 메치는데 탁탁 이렇게 메친다. 당신이 말해보라, 이 뼈가 부딪히면 얼마나 아프겠는가, 이건 조금만 힘을 써도 피가 난다. 이 기는 여전히 모아지지 못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팔을 휘두르기 시작하는데 피를 모두 거꾸로 흐르게 하여 팔이며 손이 부풀어 나게 된다. 실제로는 곧 부어 난 것이다. 그런 다음 그는 돌에 대고 치는데 뼈가 받쳐졌기 때문에 직접 돌에 부딪힐 수 없으므로 그렇게 아프지 않다. 그가 연공함에 따라 사부가 그를 가르쳐 줄 수 있으며 오래오래 되면 그는 기를 모을 줄 알게 된다. 그러나 다만 기를 모아서는 아직 안되며 정말로 격타할 때에는 그가 당신을 기다리지 않는다. 물론 사람이 기를 모을 수 있을 때에는 이미 격타를 당해 낼 수 있으므로 아주 굵은 몽둥이를 들고 때린다 하여도 아프지 않을 수 있는데, 그는 기를 모은 후에 부풀어 날 수 있다. 그러나 기는 초기 가장 원시적인 것으로서 그가 끊임없이 연마함에 따라서 이 기는 고에너지물질로 전화될 수 있다. 그가 고에너지물질로 전화되었을 경우에 점차적으로 일종 밀집도가 아주 큰 에너지덩이를 형성하게 된다. 이런 에너지덩이는 영성(靈性)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또한 하나의 공능 덩이이며 바로 일종 공능이다. 그러나 이런 공능은 전문적으로 격타하고 격타를 막는 데 쓰는 것으로서, 그것으로 병을 치료하게 되면 소용이 없다. 그 고에너지물질인 그것은 다른 공간에 있으며 그것이 우리 이 공간으로 가는 것이 아니므로 그의 시간은 우리보다 빠르다. 당신이 만일 다른 사람을 격타할 때에 다시 기를 모으거나 다시 생각할 필요가 없이 그 공은 이미 거기에 가 있게 된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치게 되어 당신이 막을 때면 그 공 역시 이미 거기에 가 있다. 당신이 손을 얼마나 빨리 쓰든지 막론하고 그것은 당신보다 더욱 빠른바, 양쪽의 시간개념이 다르다. 무술기공을 연마하면 무슨 철사장(鐵沙掌), 주사장(朱砂掌), 금강퇴(金剛腿), 나한각(羅漢脚)을 연마해 낼 수 있다. 이것은 속인 중의 재간이다. 속인은 단련을 거친 후 이 정도에 도달할 수 있다.

무술기공과 내수(內修)공법의 최대의 구별점이라면, 무술기공은 운동 중에서 연마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기가 피하(皮下)로 간다. 운동 중에서 연마하므로 입정(入靜)할 수 없으며 기는 단전에 들어가지 않고 기가 피하(皮下)로 가며 기는 근육을 꿰뚫는다. 그러므로 명을 닦을 수 없으며 또 높고 깊은 재주(功夫)를 수련해 낼 수도 없다. 우리 내수공법은 조용한 가운데서 연마할 것을 요구한다. 일반 공법은 기가 단전에 들어가고 기가 아랫배에로 들어가는 것을 이야기하며 조용한 가운데서 수련하는 것을 강구하고 本體(본체)의 전화를 강구하기 때문에 명을 닦을 수 있으며 더욱 높은 층차에로 수련할 수 있다.

여러분은 이런 재주(功夫)가 있다는 말은 들었을 수 있다. 소설에 쓴 무슨 금종조(金鍾爬), 철포삼(鐵布衫), 백보천양(百步穿楊)이다. 경공(輕功)이라면 어떤 사람은 가히 높은데서 오고 가며, 어떤 사람은 다른 공간에 둔갑해 들어갈 수 있다. 이런 재주(功夫)가 있는가 없는가? 있다. 이 한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속인 중에는 없다. 진정하게 이러한 높은 재주를 연마해낸 사람은 그 역시 내놓고 과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단일하게 무술을 연마하여 연마된 것이 아니며 완전히 속인 층차를 벗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반드시 내수공법에 따라 수련해야 한다. 그는 곧 心性(심성)을 중히 여겨야 하며 그의 心性(심성)을 제고하고 그는 물질이익, 이런 것들을 모두 담담하게 여겨야 한다. 그는 비록 이런 재주(功夫)를 수련해낼 수는 있지만 그는 이로부터 오히려 속인 중에서 함부로 더 사용할 수 없다. 보는 사람이 없을 때에 자기 혼자 한 번 해보는 것쯤은 괜찮다. 당신은 그 소설에서 쓴 것을 보라. 이 사람이 무슨 검술도(劍圖)를 위하거나, 보물을 탈취하기 위하거나, 여인을 위하여 죽이고 싸우고 하는데, 하나하나 재간이 아주 커서 신기하게 왔다갔다한다. 여러분 생각하여 보라. 정말로 이런 재주(功夫)가 있는 사람은 그가 내수(內修)로 수련해 낸 것이 아닌가? 그는 心性(심성)을 중히 여기어 비로소 수련해낸 것이며 명리(名利)와 각종 욕망에 대하여 이미 담담하게 여겼는데 그가 가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 그가 그 돈과 재물을 그처럼 중하게 여길 수 있단 말인가? 전혀 불가능한 것이다. 그는 다만 예술 중의 과장일 따름이다. 사람은 정신자극을 추구하므로 어떻게 해서 갈증을 풀 수 있다면 어떻게 한다. 그 작자 역시 이 특징을 파악하였다. 어쨌든 당신이 어떻게 해서든 갈증을 풀고 어떻게 해서든지 기뻐한다면 그는 당신에게 실컷 써 준다. 더욱 허황하게 쓸수록 당신은 보기를 더욱 즐기는데 그것은 다만 예술 중의 과장일 뿐이다. 진정하게 이런 재주(功夫)가 있는 사람은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며, 특히 내놓고 시범할 수는 더욱 없다.

과시심리

우리 많은 수련생들은 속인 중에서 수련하기 때문에 허다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데 허다한 마음은 이미 자연적인 것으로 형성되었으며 그 자신도 느끼지 못한다. 이런 과시심리는 곳곳마다 모두 체현될 수 있는지라, 좋은 일을 함에 있어서도 과시심리를 체현할 수 있다. 평상시에 자신이 명(名)을 위하고 리(利)를 위하여 좋은 점을 좀 얻게 되어도 널리 자랑하고 자랑하며 과시하고 과시하는데, 즉 나는 재간이 있고 강자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경우도 있다. 연마를 좀 잘하였으며 천목이 좀 똑똑히 보이고 동작을 좀 보기 좋게 하여도 과시하는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이스승님이 어떤 것을 이야기함을 들었다고 말한다. 여러 사람들은 에워싸고 듣고 그는 거기에서 말을 하면서 자신의 이해로 보태면서 주워들은 소식을 전한다. 무슨 목적인가? 여전히 자기를 과시함이다. 또 어떤 사람은 주워들은 소식을 전하는데 그가 그에게 전하고 그녀가 그녀에게 전하며 흥미진진하게 거기에서 말하고 있는데 마치도 그의 소식이 빠른 듯 하다. 우리 이렇게 많은 수련생이 다 그보다 알지 못하며 다른 사람은 그보다 아는 것이 많지 못하다. 그는 이미 자연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아마 자각적이 아닐 수도 있다. 그는 잠재의식 속에 곧 이런 일종의 과시심리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주워들은 소식을 전해서는 뭘 하는가? 또 어떤 사람은 스승님이 어느 어느 때에 산으로 돌아간다고 전하고 있다. 나는 산으로부터 온 것도 아닌데 내가 무슨 산으로 돌아가겠는가? 또 어떤 사람은, 스승님이 어느 어느 날 누구에게 어떤 것을 말했으며 누구에게 특별대우를 주었다고 말한다. 이런 것을 전하여 무슨 좋은 점이 있는가? 조그마한 좋은 점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그의 집착심이며 일종 과시심리임을 보게 된다.

또 어떤 사람은 날 찾아 서명을 해 달라고 하는데 무슨 목적인가? 아직도 속인의 그런 것이겠지. 서명을 하여 기념을 남긴다. 당신이 수련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에게 서명을 해주어도 소용없다. 나의 책은 글자마다 모두 나의 형상과 法輪(법륜)이며 매 한 마디의 말은 모두 내가 이야기한 것인데, 당신은 또 무슨 서명을 요구하는가? 어떤 사람은 서명을 하면 스승님의 정보가 나를 보호할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정보 따위의 그런 것을 말하는데 우리는 정보를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이 책은 이미 가치로 가늠할 수 없다. 당신은 또 무엇을 추구하려고 하는가? 이것은 모두 그러한 마음이 반영하여 낸 일부 것들이다. 또 어떤 사람은 나의 신변에 데리고 있는 이 수련생들의 언론거동을 본 다음 곧바로 따라 배우면서 좋고 나쁨도 모르고 있다. 사실 우리는 누가 어떠하든지 막론하고 오로지 하나의 법이 있으며 오로지 이 대법에 따라 하는 것만이 비로소 진정한 표준이다. 내가 신변에 데리고 있는 사람은 무슨 특별대우가 없으며 모두 여러분과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다만 연구회의 사업일군일 뿐인데 이러한 마음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흔히 이러한 마음이 일단 일어나게 되면 당신은 무의식중에 대법을 파괴하는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당신은 이 사람을 놀래게 하는 것을 만들어 내어 심지어 모순이 나타날 수 있으며 수련생들의 집착심을 끄집어내면서 또 다투어 스승님 앞에 와서 그 무엇을 좀 더 많이 들으려고 하는 등등 이런 일들은 모두 이 문제가 아닌가?

이 과시심리는 또 무엇을 쉽사리 불러일으키는가? 내가 공을 전한 시간은 이미 2년이 되었다.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을 수련하는 노수련생 중 한 패의 사람은 가능하게 곧 아주 빨리 개공(開功)하게 되었고, 한 패의 사람은 점오(漸悟)상태에 들어가게 되며 갑자기 점오(漸悟)로 들어가게 된다. 왜 당시에 이런 공능이 나오지 않는가? 내가 단번에 그렇게 높이 밀어준다면 당신 속인의 마음이 모두 제거되지 못하여 안되기 때문이다. 물론 당신의 心性(심성)이 이미 아주 높이 제고되었지만 아직도 허다한 집착심이 제거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당신으로 하여금 이런 공능이 나오게 할 수 없었다. 당신이 이 한 단계를 지나간 후 안정된 다음, 대번에 당신을 점오(漸悟)상태에로 밀어준다. 이 점오(漸悟)상태 중에서 당신의 천목은 아주 높게 열릴 수 있으며 당신은 아주 많은 공능이 나올 수 있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진정하게 수련할 때에 금방 들어서기만 하면 곧 아주 많은 공능이 나타날 수 있으며 당신은 이미 그렇게 높은 층차에 들어갔기 때문에 공능이 무척 많다. 최근 우리의 많은 사람은 이런 상태가 나타날 수 있다. 또 일부 사람, 그는 높게 수련하지 못하는데 그 자신이 갖고 있는 것과 그 자신의 인내력이 한데로 결합되어 고정된 것이므로, 일부 사람은 아주 낮은 층차에서 개공개오(開功開悟)하게 되며 철저히 개오(開悟)하게 되는데, 이러한 사람이 나타날 수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 문제를 이야기함은 바로 여러분에게 알리려는 것이다. 일단 이러한 사람이 나타나면 당신은 절대로 그를 무슨 대단한 각자로 여기지 말라. 이는 수련에서 하나의 아주 엄숙한 문제로서 오로지 이 대법에 따라 해야만 맞는 것이다. 남의 공능이요, 신통이요를 보지 말아야 하는데 일부의 것을 보게 되면 당신은 그를 따라 갈 것이며 곧 이렇게 가서 들을 것이다. 당신도 그를 해칠 수 있다. 그는 환희심(歡喜心)이 생겨날 수 있어 최후에는 자신이 아무것도 다 잃어버리게 되며 닫혀버리게 되어 최후에는 떨어져 내려가게 된다. 개공되었어도 떨어져 내려갈 수 있으며 파악하지 못하면 개오하여도 떨어져 내려갈 수 있다. 그 부처님도 잘 파악하지 못하면 역시 아래로 떨어지게 되는데 하물며 당신은 속인 중에서 수련하는 사람인지라 더 말할 나위가 있는가! 그러므로 얼마나 많은 공능, 얼마나 큰 공능이 나왔고 신통이 얼마나 크게 나타났든지를 막론하고 당신은 꼭 파악해야 한다. 최근 우리의 어떤 사람은 여기에 앉았다가 없어지며 없어졌다가는 잠시 후에 그는 또 나타나게 되는데 곧 이러하며 더 큰 신통도 다 나타날 수 있다. 당신은 장래에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의 수련생, 제자로서 장래에 이런 일들이 당신 자신에게 나타나도 좋고 다른 사람에게 나타나도 좋다. 당신은 그를 숭배하지 말아야 하며 이것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의 마음이 변하기만 하면 즉시로 끝장이며 당신은 떨어지게 된다. 아마 당신은 그보다 더 높을 수도 있는데 다만 신통이 나오지 않았을 따름이다. 최저한도로 당신은 이 문제에서 떨어져 내려간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문제를 절대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이 일을 이미 아주 중요한 위치에로 올려놓았다. 왜냐하면 이런 일이 아주 빨리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나타나게 되어 당신이 파악하지 못한다면 안 된다.

수련하는 사람이 공이 나왔고 공이 열렸거나 혹은 진정하게 개오(開悟)하게 되어도 그 자신을 여차여차하게 볼 수 없다. 그가 보게 되는 것은 그의 이 한 층차에서 본 것이다. 수련이 이 정도에 이르게 되면, 즉 그의 오성(悟性)이 이 정도에 도달하였고 그의 心性(심성)표준이 이 정도에 도달하였으며 그의 지혜도 이 정도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 높은 층차의 것을 그는 가능하게 믿지 않을 수 있다. 바로 그가 믿지 않기 때문에 그가 자신이 본 것만이 절대적이라고 여기며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을 조성할 수 있다. 그것은 아직 차이가 먼 것으로서 그의 층차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일부분 사람은 이 층차 중에서 개공하여 더 높이 수련하자 해도 그는 수련하여 올라갈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층차에서 개공개오(開功開悟)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앞으로 수련된 사람들은 세간소도(世間小道)에서 개오한 것이 있고 부동한 층차에서 개오한 것이 있으며 정과를 얻어 개오한 것도 있다. 정과를 얻어 개오한 것만이 최고이며 부동한 층차에서 모두 가히 볼 수 있고 또한 나타낼 수 있다. 세간소도의 최저 층차에서 개공개오하였다 하여도 일부 공간, 일부 각자를 볼 수 있으며 그들과 통할 수 있다. 그때에 가서 당신은 득의양양해 하지 말아야 한다. 세간소도에서와 낮은 층차에서의 개공은 정과를 얻을 수 없는데 이것은 긍정적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다만 이 층차에 유지되어야 하며 나중에 더욱 높은 층차에로 수련하는 그것은 나중의 일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높이로 수련하고도 개공하지 않고 뭘 하겠는가? 당신은 이렇게 위로 수련하며 수련한다 하여도 수련하여 올라갈 수가 없기 때문에 곧 개공하게 되는데 이미 수련이 끝에 도달한 것이므로 이러한 사람이 많이 나타날 수 있다. 어떤 경우가 나타나던지 막론하고 꼭 心性(심성)을 파악해야 하며 오로지 대법에 따라 해야만 비로소 진정하게 정확한 것이다. 당신의 공능도 좋고 당신의 개공도 좋은데, 당신은 대법수련 중에서 얻은 것이다. 만약 당신이 대법을 부차적인 위치에 놓고 당신의 신통을 중요한 위치에 놓거나 또는 개오한 사람이 당신 자신의 이런 인식, 저런 인식이 옳다고 여기며 심지어는 당신 자신이 대단하여 대법을 능가한다고 여긴다면, 당신은 이미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아주 위험하며 갈수록 더 잘못된다고 나는 말한다. 그때에 당신은 정말로 번거로운 일이 있게 되는데 헛되게 수련했고 잘못하면 떨어져 내려가게 되며 수련이 헛되게 된다.

내가 또 당신에게 알려줄 것은, 나의 이 책의 내용은 몇 개 수련반에서 이야기한 법을 한데로 합친 것이다. 모두 내가 이야기한 것이며 구절마다 모두 내가 이야기한 것이고, 모두 녹음테이프에서 한 글자 한 글자씩 뽑아낸 것이며 한 글자 한 글자씩 베껴 쓴 것으로, 모두 나의 제자, 수련생이 나를 도와 녹음에서 기록하여 베낀 다음, 내가 다시 한 차례, 한 차례씩 수정하였다. 모두 나의 법으로서, 내가 이야기한 것은 곧바로 이 하나의 법이다.

 

제 7 강 의


살생문제

살생 이 문제는 아주 민감한바 연공인에 대해서 말한다면 우리의 요구도 비교적 엄격하다. 연공인은 살생을 하지 못한다. 불가, 도가, 기문공법을 막론하고 또 어느 한 문(門), 어느 한 파(派)를 막론하고 오로지 정법수련이라면, 모두 그것을 아주 절대적으로 보며 모두 살생을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서, 이 점은 긍정적이다. 살생 후에 나타나는 문제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분에게 자세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살생은 원시불교 중에서 주로 살인을 가리켰는데 이것은 가장 엄중한 것이었다. 후에 와서 큰 생명, 큰 가축 또는 조금 큰 생명을 모두 아주 중하게 보았다. 왜 수련계에서 살생문제를 줄곧 그처럼 엄중하게 보는가? 과거에 불교에서 말하기를, 죽지 말아야 할 것을 죽이게 되면 고혼야귀(孤魂野鬼)가 된다고 한다. 과거에 초도(超度)를 함에 있어서 가리킨 것이 바로 이 부분 사람이다. 초도해 주지 않을 경우에 이런 생명은 곧 먹을 것, 마실 것이 없게 되어 매우 고생스러운 경지에 처하게 된다. 이것은 과거 불교에서 한 말이다.

우리가 말한다면,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 대하여 좋지 않은 일을 하게 되면 그는 곧 다른 사람에게 무척 큰 德(덕)을 주어 보상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의 물건을 점유한 것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단번에 하나의 생명을 종결시킨다면 동물도 좋고 기타 생물도 좋고, 그렇게 되면 곧 하나의 무척 큰 업력을 빚어내게 된다. 살생을 과거에는 주로 살인을 가리켰는데 업을 빚어냄이 비교적 크다. 그러나 일반적인 생명체를 죽여버리는 것 역시 가볍지 않은 것으로서 직접 아주 큰 업력을 생기게 한다. 특히 연공인은 수련과정 중과 부동한 층차에서 당신에게 조그마한 난(難)을 배치하게 되는데 그것은 모두 당신 자신의 업력으로서 당신 자신의 난을 당신의 부동한 층차에 배열해 주어 당신으로 하여금 제고하게끔 한다. 오로지 당신이 心性(심성)을 높이기만 하면 넘길 수 있다. 그러나 단번에 이렇게 큰 업력이 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넘기겠는가? 당신의 心性(심성)에 의거해서는 당신은 넘길 방법이 전혀 없으며 아마 당신으로 하여금 수련을 아예 할 수 없게 할 것이다.

우리가 발견하건대, 한 사람이 태어날 때에 이 우주공간 중의 일정한 범위 내에는 많고 많은 그가 동시에 태어나게 되며 생김새가 그와 같고 꼭 같은 하나의 이름을 부르며 하는 일 또한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그러므로 그것을 그의 전체적인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이러한 하나의 문제가 연관된다. 만약 한 생명체(기타 큰 동물의 생명체 역시 마찬가지임)가 갑자기 죽어 버렸다면 기타 각개 공간의 그는 원래 특정된 생명노정을 다 걷지 못하였으며 아직 아주 오랜 세월을 살아가야 한다. 그럼 죽어버린 이 사람은 곧 일종 귀착할 곳이 없는 경지에 떨어지게 되어 우주공간 중에서 정처없이 떠돌아다닌다. 과거에 고혼야귀(孤魂野鬼)는 먹을 것이 없고 마실 것이 없어 아주 고생스럽다고 한 것이 아마 이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확실히 그가 아주 무서운 경지에 처한 것을 보았다. 그는 줄곧 기다리게 되며 각개 공간의 그가 생명의 노정을 다 걷기를 기다려서야만 비로소 함께 그의 귀결을 찾을 수 있다. 시간이 더욱 길수록 그가 겪는 고생도 더욱 크다. 그가 겪는 고생이 더욱 클수록 그의 고통을 조성한 업력은 끊임없이 살생자의 몸에 가해지는데 당신이 생각해 보라. 당신이 얼마나 큰 업력을 증가하게 되는가를? 이것은 우리가 공능을 통하여 본 것이다.

우리는 또 이런 한가지 경우를 보았다. 즉 한 사람이 태생할 때, 하나의 특정한 공간 중에 그 일생의 존재형식이 모두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그의 생명이 어느 한 부분에 와서는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모두 그 속에 있다. 누가 그의 일생을 배치한 것인가? 아주 뚜렷한바, 바로 더욱 고급적인 생명이 이런 일을 한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한다면, 우리가 속인사회에서 그가 출생한 후, 이 집에 그가 있고 학교에 그가 있으며 또는 성장되어 직장에 그가 있는데, 그의 사업을 통하여 사회와 여러 면으로 되는 연계를 취득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전체 사회의 구성은 모두 이렇게 배치가 잘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생명체의 돌연적인 죽음으로 말미암아 원래 특정된 배치에 따른 것이 아니고 변화가 발생하였다. 그럼 누가 이 일을 혼란시켰다면 그 고급생명마저 그를 용서하지 않는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고층차에로 수련하여야 하는데 그 고층차 중의 생명마저도 당신을 용서하지 않는다. 당신이 말해보라. 그가 또 수련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사부는 이런 일을 배치한 고급생명보다 층차가 높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사부까지도 따라서 재난을 당하게 되며 그 모두를 떨궈 버려야 하는 것이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이것이 일반적인 문제인가? 그러므로 일단 이런 일을 하였다면 수련하기가 아주 어렵다.

法輪大法(f아 룬따 f아)를 수련하는 수련생 중에 아마 전쟁 연대에 싸움을 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전쟁은 전체 큰 천상(天象)변화가 가져온 일종 상태로서, 당신은 그런 상태 중의 하나의 분자에 불과할 따름이다. 천상변화는 아래에서 만일 움직이는 사람이 없다면, 아직 속인사회에 일종 상태를 가져다 줄 수 없으며 또한 천상변화라고도 일컬을 수 없다. 그러한 일은 큰 변화에 따라 변화되는 것으로 그 일을 완전히 당신의 몸에 안길 수 없다. 우리가 여기서 이야기한 것은 개인적인 것을 도모하기 위해서이거나 혹은 개인의 이익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이거나 또는 자신의 어떤 것이 영향을 받으므로 자신이 꼭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 안되어 가져오게 되는 업력이다. 무릇 전체 큰공간의 변화와 사회적인 큰 형세의 변화에 연관되는 이것은 모두 당신의 문제에 속하지 않는다.

살생은 아주 큰 업력을 조성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생각한다. 살생을 해서 안 된다면 나는 집에서 밥을 짓는데 내가 만일 죽이지 않으면 우리 집사람들은 뭘 먹겠는가? 이 구체적인 문제를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연공인에게 설법하는 것이지, 속인에게 어떻게 생활하라고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문제를 어떻게 가서 해야 하는가. 그럼 대법으로 가늠하여 당신 생각에 당신이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면 당신은 어떻게 하도록 하라. 속인은 그가 무엇을 하려면 곧 무엇을 하는데 그것은 속인 중의 일로서, 사람마다 모두 진짜 수련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연공인으로서는 마땅히 높은 표준으로 요구해야 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연공인에게 제출한 조건이다.

사람, 동물뿐만 아니라 또한 식물에도 모두 생명이 있는데 다른 공간에서 어떤 물질이든 모두 생명을 체현해 낼 수 있다. 당신의 천목이 법안통(法眼通) 층차에로 열렸을 때에 당신은 돌, 벽, 어떤 것이든지 모두 당신과 말을 하며 인사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 어떤 사람은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먹는 양식, 채소는 모두 생명이 있는 것이고 또한 집에 파리, 모기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름철에 물게 되면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데, 거기에 물고 있으며 옴짝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있고, 파리가 음식물에 내려앉아 아주 더러운 것을 보면서도 때려잡을 수 없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준다. 우리는 함부로 무고하게 생령(生靈)을 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역시 너무 조심스러운 군자가 되어 늘 이러한 작은 일에 착안하며 길을 걸어도 개미를 짓밟아 죽일까봐 뛰어넘어 다닐 수는 없다. 내가 말한다면 당신은 살기가 얼마나 힘든가. 그것 역시 집착이 아닌가? 당신이 뛰어다닌다면 개미를 짓밟아 죽이지는 않았지만 허다한 미생물이 있는 것을 당신이 짓밟아 죽인 것이다. 미시적인 아래에 또 더욱 작은 생명체가 많이 있으며 또한 진균(眞菌)과 세균이 있지 않은가. 당신은 아마 모두 적지 않게 짓밟아 죽였을 것인즉,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살지를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닌데 이렇게 되면 수련할 방법이 없다. 큰 점에 착안하고 정정당당하게 수련해야 한다.

우리 사람은 살아서 삶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생활환경 역시 사람의 생활요구에 적응되어야 한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생령(生靈)을 해칠 수 없지만 우리는 또 너무나 이러한 작은 일에 얽매여서도 안 된다. 예를 들어 채소와 심은 양식은 모두 생명이 있다. 우리는 또 그가 생명이 있다고 하여 먹지 말거나 마시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그럼 또 무슨 공을 연마하겠는가? 마땅히 대범해야 한다. 예컨대 당신이 길을 걷는 과정 중에 개미, 벌레가 당신의 발 밑에 들어가게 되어 짓밟혀 죽었다면 그것은 아마 마땅히 죽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의식적으로 그것을 해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물계 또는 기타 미생물 중에서도 생태평형 문제를 말하고 있는데 많아지면 역시 범람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정정당당하게 수련할 것을 말한다. 집에 파리, 모기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쫓아버리고 모기장을 쳐서 그것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때는 쫓아버려도 나가지 않는데, 그럼 때려죽였다면 때려죽인 것이다.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에서 그것이 사람을 물려 하고 사람을 해치려 하기에 당연히 그것을 내쫓아야 하는데, 내쫓지 못하게 되면 그것이 거기에서 사람을 무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당신은 연공인이기 때문에 두렵지 않고 저항력이 있지만 당신의 집사람은 연공하지 않고 속인이기 때문에 또 하나의 전염병 문제가 있으며 또 어린애의 얼굴을 물고 있는 것을 보고도 상관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분에게 예를 하나 들겠다. 석가모니는 일찍 이런 한 단락의 이야기가 있었다. 어느 하루 석가모니는 목욕을 하고자 삼림 속에서 그의 제자를 불러 그에게 목욕통을 청소하라고 하였다. 그의 제자가 거기에 가 보았는데, 목욕통 안에는 벌레가 가득 기고 있어서 목욕통을 청소하려면 벌레를 죽여야 하였다. 제자는 돌아와서 석가모니에게 목욕통 안에 온통 벌레가 차 있습니다 라고 알렸다. 석가모니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네는 가서 목욕통을 깨끗이 청소하게 라고 한마디 말하였다. 이 제자가 목욕통에 가서 보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손을 댄다면 벌레는 곧 죽여야 했기 때문에 그는 한 바퀴 빙 돌고는 또 다시 돌아와서 석가모니에게 물었다. 사부님, 목욕통 안에 온통 벌레여서 만약 손을 댄다면 벌레들을 죽여버리게 됩니다. 석가모니는 그를 보며 말씀하셨다. 내가 자네더러 청소하라는 건 목욕통이요. 제자는 문뜩 깨닫고 즉시 목욕통을 깨끗이 청소하였다. 이는 하나의 문제를 설명하는데 벌레가 있다고 하여 우리는 목욕도 하지 않을 수 없으며 또 모기가 있다고 하여 우리는 모두 밖에 나가 자리를 찾아 거주할 수도 없으며 또한 양식도 생명이 있고 채소 역시 생명이 있다고 하여 우리는 목을 졸라매고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을 수 없다. 이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마땅히 이 관계를 똑바르게 놓고 정정당당하게 수련해야 하며 우리는 의식적으로 생령을 해치지 않으면 된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과 생존의 조건이 있어야 하며 역시 수호해야 하는데 사람은 또 생명과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

과거에 일부 가짜 기공사는 초하루, 보름에는 살생을 하여도 된다고 말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두 다리 가진 것을 죽일 수 있다고 말했다. 마치 이 두 다리 가진 것은 생령이 아닌 듯 하다. 초하루, 보름에 살생을 하여도 그것을 살생으로 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흙을 파는 것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떤 사람은 가짜 기공사로서 그의 언행으로부터 완전히 분별해 낼 수 있다. 그가 이야기한 것이 무엇이며 그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무릇 이런 언론이 있는 기공사는 흔히 다 부체(附體)이다. 당신은 그 여우 부체의 기공사가 닭고기를 먹는 그 모양을 보라. 그야말로 게걸스럽게 먹는데 뼈다귀마저도 뱉기 싫어한다.

살생은 다만 중대한 업력을 생기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자비심 문제가 연관된다. 우리 수련하는 사람은 자비심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우리의 자비심이 나올 때에 아마 중생이 모두 고생스러우며 누구를 보아도 모두 고생스러운 것을 보게 되는데, 이 문제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육식문제

육식 역시 아주 민감한 문제이지만 고기를 먹는 것은 살생이 아니다. 당신들이 법을 배운지가 이렇게 오래되지만 우리는 여러분이 고기를 먹지 말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많은 기공사들은 당신이 학습반에 들어서기만 하면 곧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지금으로부터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당신은 아마 갑자기 고기를 먹지 못한다면 아직 사상준비가 없지 않는가 라고 생각할 것이다. 오늘 집에서 가능하게 닭을 삶고 물고기를 지질 것인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도 먹을 수가 없다. 종교 중에서의 수련 역시 이러한데 강제로 먹지 못하게 한다. 일반적인 불가공과 어떤 도가공 역시 이렇게 이야기하며 먹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 여기서는 당신더러 이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우리 역시 이것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우리 이 공법은 법이 사람을 연마하는(法煉人) 공법이기 때문이다. 법이 사람을 연마하는 공법이란 바로 일부 상태가 다 공(功) 중에서, 법(法)에서 체현되어 나오게 된다. 연공과정 중에 부동한 층차에서 부동한 상태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럼 어느 하루, 또는 오늘 내가 강의를 끝마친 후에 어떤 사람은 이 상태에 들어가게 되어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되며 냄새만 맡아도 아주 비린내가 나서 먹기만 하면 곧 토하게 된다. 인위적으로 당신을 통제하여 당신더러 먹지 못하게 하거나 또는 당신 자신이 먹지 않으려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내심으로부터 우러나오게 된다. 이 층차에 이르게 되면 공으로부터 반영되어 나와 먹을 수 없는데 심지어는 당신이 정말 삼켰다면 정말로 토해 내게 된다.

우리 노수련생들은 모두 알고 있다. 法輪大法(법륜대법)을 수련하면 이런 상태가 나타날 수 있으며 부동한 층차에서 부동한 상태를 반영하여 낼 수 있다. 또 어떤 수련생은 욕망이 비교적 크고 고기를 먹고 싶어하는 마음이 아주 강하며 평소에 고기를 아주 잘 먹는다. 남들이 고기에 대하여 아주 비린내가 난다고 여길 때에도 그는 비린내남을 느끼지 못하며 여전히 먹을 수 있다. 그로 하여금 이 마음을 버리게 하기 위하여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가 고기를 먹게 되면 배가 아프게 되며 먹지 않으면 아프지 않은데 이런 상태가 나타날 수 있다. 뜻인즉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이 한 문이 앞으로 고기와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닌가. 이런 것이 아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먹을 수 없는 것이란, 진정하게 내심으로부터 우러나와 먹지 못하는 것이다. 목적은 무엇인가? 절에서 수련함에 있어서 당신을 강제로 먹지 못하게 함과 우리처럼 반영되어 나와서 먹지 못하는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이 고기에 대한 이런 욕망과 집착심을 제거하려는 데 있다.

어떤 사람은 밥공기를 들고 만약 고기가 없다면 그야말로 밥이 넘어가지 않는데 그것은 바로 속인의 욕망이다. 하루 아침, 내가 장춘 승리공원 뒷문을 지나게 되었다. 세 사람이 큰 소리로 떠들며 뒷문으로부터 나오고 있었는데 그중 한사람은, 무슨 공을 연마하기에 고기도 먹을 수 없는가, 십년을 적게 산다 해도 나는 먹어야 되겠다! 라고 말하였다. 그처럼 강렬한 일종 욕망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런 욕망을 제거함이 마땅한가 마땅하지 않는가? 제거하는 것이 긍정적으로 마땅하다. 사람은 수련과정 중에서 바로 사람의 각종 욕망, 집착심을 제거해야 한다. 명백하게 말하면 고기를 먹는 마음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집착심이 제거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원만하게 수련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집착심이기만 하면 그것은 곧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또 앞으로부터 영원히 먹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며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는 자체가 목적인 것이 아니라, 목적은 당신으로 하여금 이런 집착심이 있지 말게 하는 것이다. 만약 고기를 먹지 못하는 이 기간에 당신이 이 집착심을 제거해 버린다면 이후부터 또 고기를 먹을 수 있는데 냄새를 맡아도 비린내가 나지 않고 먹어도 역시 그리 먹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때에 가서 당신은 먹어도 별 문제가 없다.

당신이 먹을 수 있을 때에 당신의 집착심은 이미 없어졌으며 고기에 대한 욕망의 마음이 이미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일종 큰 변화가 발생할 수 있는데 나중에 고기를 다시 먹어도 맛나지 않고 집에서 해 놓으면 같이 먹고 집에서 하지 않아도 생각나지 않으며 먹어도 향기로운 맛이 없게 되는 이 상태가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속인 중에서의 수련은 매우 복잡한 것으로 집에서는 늘 고기를 하는데, 시간이 길게 되면 당신은 또 먹어서 맛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중에 반복이 나타날 수도 있으며 전반 수련과정 중에 여러 차례 반복이 나타날 수 있다. 갑자기 당신은 또 먹지 못하게 되는데, 먹지 못하게 되면 먹지말고 정말로 먹을 수 없을 때 먹으면 곧 토하게 된다. 당신이 먹을 수 있을 때를 기다려 먹으면 되는 것이라, 자연스럽게 되어 감에 따르도록 해야 한다. 고기를 먹는가 먹지 않는가 하는 자체가 목적인 것이 아니라 그 집착심을 제거해 버리는 것이 비로소 관건이다.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 이 한 문(門)이 걷는 것이 비교적 빠르므로 오로지 당신이 心性(심성)을 높이기만 하면 개개 층차를 돌파함이 모두 대단히 빠르다. 어떤 사람은 본래 고기에 대하여 그다지 집착하지 않으므로 있든 없든 다 관계가 없다. 이런 사람은 한 두 주일을 지속하면 곧 지나가 버리게 되며 이 마음은 닳아서 없어지게(磨掉) 된다. 어떤 사람은 1개월·2개월·3개월, 반년까지 지속할 수 있으며 극히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는 1년이 지나지 않아 또 먹을 수 있다. 왜냐하면 고기는 이미 사람의 식물 중의 하나의 주요부분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에서의 전문적인 수련은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불교에서 육식에 대한 인식을 말하고자 한다. 최초의 원시불교는 고기를 가리지 않았다. 당시 석가모니가 제자를 거느리고 삼림 속에서 고생스럽게 수련을 할 때에 고기를 가리는 이 한 조목의 계율(戒律)이 전혀 없었다. 왜 없는가? 왜냐하면 당시 석가모니가 2,500여년 전 법을 전할 때, 인류사회는 아주 낙후하여 많은 지역에 농업이 있었지만 많은 지역에는 아직 농업이 없어 경작 면적이 아주 적었고 곳곳에 삼림이었다. 곡식이 매우 긴장하였고 또한 매우 희소하였다. 금방 원시사회로부터 탈퇴하여 나온 사람들은 주로 사냥을 생계로 하였으며 많은 지역에서는 육식을 위주로 하였다. 석가모니는 사람의 집착심을 최대한도로 버리게 하기 위하여, 어떠한 재·물 등을 접촉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제자를 거느리고 밥을 빌거나 동냥을 하였다. 남들이 무엇을 주면 무엇을 먹었는데, 일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식물을 가릴 수 없는 것으로, 주는 식물 중에는 고기가 있을 수 있었다.

원시불교 중에는 오히려 훈(?)을 계(戒)한다는 말이 있다. 훈을 계한다는 것은 바로 원시불교 중에서부터 온 것이었지만 지금은 육식을 훈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당시의 훈은 고기를 가리킨 것이 아니고 파·생강·마늘 등등을 가리켰다. 왜 그것을 훈이라고 여기었는가? 지금의 많은 승려는 똑똑히 말하지 못한다. 그들의 허다한 사람은 착실한 수련을 하지 않고 많은 것 역시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가 전한 것은 '계·정·혜'라고 부른다. 계(戒)란, 속인 중의 일체 욕망을 끊어버리는 것이고, 정(定)이란, 수련하는 사람이 완전히 선정(禪定) 중에서와 가부좌 중에서 수련하는 것을 가리키며 완전히 입정(入定)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체 입정할 수 없고 수련할 수 없음을 교란하는 것들을 전부 엄중한 교란으로 여기었기 때문에, 누가 만약 파·생강·마늘을 먹었다면 냄새가 몹시 컸다. 그때의 승려들은 삼림 속과 동굴 속에서 7, 8 명의 사람이 한 바퀴 빙 둘러앉아, 한 바퀴 한 바퀴씩 둘러앉아 가부좌했다. 누가 만일 이런 것을 먹었다면 강렬하고도 아주 자극적인 냄새가 나서 가부좌에 영향주고 사람의 입정(入定)에 영향주어 사람의 연공을 엄중히 교란하게 된다. 때문에 곧 이 한 조목의 계율(戒律)이 있게 되었고 그것을 훈이라고 여기어 이런 것을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인체에서 수련해 낸 많은 생명체는 모두 이 혼탁한 냄새를 아주 꺼리고 있다. 파·생강·마늘도 능히 사람을 자극하여 욕망을 생기게 할 수 있으므로 많이 먹게 되면 역시 인이 배기기 때문에 그것을 훈이라고 여겼다.

과거에 많은 승려들은 아주 높은 층차에로 수련된 후에 개공(開功) 또는 반개공(半開功)상태에 처하게 되어, 수련과정 중의 그런 계율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 능히 그 마음을 내려놓은 후라면 그 물질자체가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며 진정하게 사람을 교란하는 것은 바로 그 마음이다. 그러므로 역대의 고승(高僧)도 사람들이 육식하는 이 문제는 무슨 관건문제가 아니며 관건문제는 그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렸으며 집착심 없이 무엇을 먹든지 배부르면 다 된다는 것을 보아냈다. 왜냐하면 절에서는 바로 이렇게 수련하여 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미 이렇게 하는 데 관습이 되었다. 게다가 이미 단지 하나의 계율적인 문제만이 아니며 이미 절에서의 규장제도로 되어 아예 먹을 수 없으며 역시 이렇게 수련하는 데 관습이 되었다. 우리는 제공(濟公)이란 스님을 말하겠는데 예술작품 중에서 그를 부각하여 냈다. 스님은 마땅히 고기를 금해야 하는데 그가 고기를 먹는 것으로 그를 아주 뚜렷하게 드러냈다. 사실 제공은 영은사(靈隱寺)에서 쫓겨 나왔기 때문에 식물은 물론 그의 하나의 아주 주요한 문제로 되었으며 생활마저도 위기에 처했다. 배불리기 위하여 그는 무엇을 쥐면 무엇을 먹었는데 오직 배를 불릴 뿐 어떤 한가지 식물에 대한 집착도 없었으므로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는 거기에까지 수련되어 이 이치를 알고 있는데 사실은 제공도 우연히 그렇게 한 두 차례 고기를 먹었음에 불과할 따름이다. 스님이 고기를 먹었다고 하자 책을 쓰는 사람은 흥취가 났다. 제목이 사람을 놀래 울수록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보고 싶게끔 한다. 문예작품은 생활 속에서 오며 생활보다 높지 않은가, 그래서 그를 소문냈다. 사실 진정하게 그 집착심을 제거해 버린다면, 배불리기 위해 무엇을 먹던 지간에 모두 상관이 없다.

동남아 또한 우리나라 남방과 양광(兩廣)일대에 어떤 거사는 말만 하게 되면 그는 부처수련이라고 말하지 않는데, 마치 부처수련이란 이 명사가 너무 때 지난 듯하다. 그는 그가 결재(吃齋)하며 소식(吃素)한다고 하는데, 그 뜻인즉 소식하여 부처수련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부처수련을 이처럼 간단한 것으로 본다. 소식하면 부처수련을 할 수 있는가? 여러분 알다시피 그것은 다만 사람의 일종 집착, 욕망이며 곧 이런 하나의 마음이기 때문에, 단지 이 하나의 마음을 제거했을 뿐이다. 또한 질투심·쟁투심·환희심·과시심·각종 마음, 사람의 마음은 많은데, 모든 마음과 각종 욕망을 다 제거해야만 비로소 수련하여 원만에 도달할 수 있다. 다만 이 고기를 먹는 마음을 제거하였다 하여 부처수련을 할 수 있는가? 그 말은 맞지 않다.

사람은 먹는 문제에서, 다만 고기를 먹는 것뿐만이 아니라 어떠한 식물에 대하여 집착하여도 다 안되며 기타의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은, 나는 이것을 먹기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이 역시 욕망으로서 수련하는 사람이 일정한 정도에 도달한 후에 이 마음이 없게 된다. 물론 우리의 법을 이야기함은 아주 높다. 부동한 층차에 근거하고 결부하여 이야기하므로 단번에 이 한 점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신이 곧 그것을 먹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진정하게 수련하여 그 마음을 마땅히 제거해야 할 때에는 당신이 먹을 수 없게 되고 당신이 먹어도 맛이 없고 무슨 맛인지도 모른다. 내가 직장에 출근할 때에 직장의 식당은 늘 밑지게 되어 나중에는 문을 닫게 되었다. 문을 닫게 되자 여러 사람들은 밥을 싸가지고 다녔다. 아침에 요리를 좀 해서 바삐바삐 출근하자니 매우 힘들었다. 어떤 때는 빵 두개를 사고 두부 한 모를 사서 간장을 쳤다. 이치대로 말한다면 그렇게 간소하므로 괜찮지 않겠는가. 늘 먹어도 안 되는지라 이 마음 역시 제거해 버려야 한다. 당신이 금방 두부를 보려고 하여도 당신으로 하여금 신물이 돌게 하고 다시 먹고자 해도 먹지 못하는데 역시 당신의 집착심이 생길까봐 두려워서이다. 물론 이것은 일정한 정도로 수련된 후에 야만 있을 수 있으며 금방 시작할 때에는 이럴 수 없다.

불가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당신은 어느 부처님이 술단지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는가? 없다. 내가 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말했지만 속인 속에서의 수련에서 집착심을 제거한 후에 장래에 다시 먹어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술은 끊어버린 후에 다시 마실 수 없다. 연공인의 몸에는 모두 공이 있는 것이 아닌가? 각종 형태의 공이라, 어떤 공능은 당신 신체의 표면에서 나타나게 되며 모두 순수하고 깨끗한 것이다. 당신이 술을 마시기만 하면 '훅'하고 전부 다 신체를 떠나게 되므로 이 일순간에 당신의 몸에는 아무것도 없게 되며 누구도 그 냄새를 다 두려워한다. 당신이 이 관습에 물 젖는다면 아주 성가시며 술을 마시면 성(性)을 문란하게 할 수 있다. 왜 어떤 대도(大道)수련은 술을 마셔야 하는가? 그는 그의 主元神(주원신)을 수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主元神(주원신)을 마취시키기 위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술을 즐기기를 목숨과 같이 여기고 어떤 사람은 술에 게걸이 들었으며, 어떤 사람은 마셔서 이미 알콜중독에 걸렸다. 마시지 않으면 밥공기마저도 들지 못하는데 마시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연공인은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술을 마시면 긍정적으로 인이 배긴다. 그것은 욕망이니까 사람의 인호신경(隱好神經)을 자극하기 때문에 마실수록 인이 더욱 크다. 일개 연공인으로서 우리는 생각해 보자. 이런 집착심을 버림이 마땅한가 마땅하지 않는가? 이런 마음 역시 버려야 한다. 어떤 사람은 생각한다. 안 된다, 나는 손님을 접대한다, 또는 나는 전문적으로 업무 연락을 위해 밖에서 사업하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으면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한다. 나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업상담을 함에 있어서, 특히 외국인과 사업상담을 하고 교제를 함에 있어서, 당신은 음료를 요구하고 그는 광천수를 요구하며 그는 맥주 한 컵을 요구한다. 당신을 억지로 마시게 할 사람이 없다. 당신 자신이 자신의 것을 마시고 얼마나 마실 수 있는 만큼 당신은 마시라. 특히 지식분자 중에서 이런 일이 나타남이 더욱 없는데 흔히 이러하다.

담배를 피우는 것 역시 집착이다. 어떤 사람은 담배를 피우면 정신이 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것은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사업을 하여 지쳤거나 또는 한 편의 글을 써서 지쳤을 적에 좀 휴식하려고 생각하면 곧 담배를 피우는데, 그는 담배를 피우고 나면 정신이 난다고 느낀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그가 그렇게 한참 휴식한 까닭이다. 사람의 사상은 일종 착각을 조성할 수 있으며 또 그러한 일종 환각을 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면 나중에 정말로 일종 관념이 형성되고 일종 착각이 형성되는데 마치 당신이 담배를 피움으로써 당신에게 정신이 들게 한 것처럼 느끼지만 전혀 그럴 수 없으며 그것은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사람의 신체에 좋은 점이 하나도 없다. 이 사람이 담배를 피운 시간이 길게 되면 의사가 인체를 해부할 때에 기관이 모두 검고 폐속까지 모두 검은 것을 보게 된다.

우리 연공인은 신체 정화(煖化)를 강조하지 않는가? 끊임없이 신체를 정화하고 끊임없이 고층차를 향하여 발전한다. 그렇지만 당신은 아직도 신체 속으로 걷어 넣는데 당신은 그래 우리와 정반대로 되는 것이 아닌가? 그 외에 그 역시 일종 강렬한 욕망이다. 어떤 사람은 좋지 못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끊어버리지 못한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그는 하나의 정확한 사상으로 지도하지 못하기 때문에 곧 그렇게 끊어버리자 하여도 그리 쉽지 않다. 일개 수련인으로서 당신이 오늘 그것을 하나의 집착심으로 삼고 제거한다면, 당신이 보라, 당신이 끊어버릴 수 있는가 없는가를. 나는 여러분에게 권하는데 정말로 수련하려고 생각한다면 지금부터 시작하여 당신은 담배를 끊도록 하라. 당신은 보증하고 끊을 수 있다. 이 수련반의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당신이 끊으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보증하고 끊을 수 있으며 당신이 또다시 담배를 피운다 해도 제 맛이 아니다. 당신이 책을 보다가 이 한 강의를 보게 되면 역시 이런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물론 당신이 수련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상관하지 않는다. 일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내 생각에 당신은 그것을 마땅히 끊어버려야 한다. 나는 일찍 이러한 하나의 예를 들었던 적이 있다. 당신은 어느 부처님, 도사가 거기에 앉아 담배를 꼬나 물고 있는 것을 보았는가? 어디 그런 것이 있는가? 일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당신의 목표는 무엇인가? 당신은 그것을 마땅히 끊어버려야 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나는 당신이 수련하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끊어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당신의 신체를 해치며 또한 일종 욕망으로서 우리 수련하는 사람의 요구와 마침 상반된다.

질투심

나는 설법할 때에 늘 질투심 문제를 이야기하였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질투심은 중국에서 표현이 극히 강렬하며, 강렬함이 이미 자연스럽게 되어 자기마저도 느끼지 못한다. 중국 사람은 왜 질투심이 그렇게 강렬할 수 있는가? 그 역시 근원이 있다. 중국 사람은 유교 영향을 비교적 깊이 받아 성격이 모두 비교적 내향적이어서 화가 나도 표현하지 않으며 기뻐도 역시 표현하지 않는데, 함양을 강구하고 참는 것을 강구하였다. 이미 이렇게 관습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 전체 민족은 아주 내향적인 성격을 형성하였다. 물론 그는 그의 좋은 점이 있는바 똑똑(內秀)함을 나타내지 않는다. 하지만 폐단도 존재하며 가능하게 좋지 못한 상태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말법시기에 이르러 이 좋지 못한 부분이 더욱 뚜렷이 나타나게 되어 사람으로 하여금 질투심을 커지게 할 수 있다. 누가 좋은 일이 있어 나타낸다면 다른 사람은 즉시로 질투하는데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느 직장에서나 직장 이외에서 상을 받았거나 또는 조그마한 좋은 점이 있어도 돌아와서 감히 이야기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마음속으로 평형을 잡지 못한다. 서양 사람은 이것을 가리켜 동양질투 또한 아세아 질투라고도 한다. 온 아세아 지역은 모두 중국 유교의 영향을 비교적 깊게 받아, 모두 곁따라 조금씩 갖고 있지만 유독 우리 중국에서 표현됨이 비교적 강렬하다.

이는 우리가 예전에 실시했던 절대 평균주의와 일부 관계가 있다. 여하튼 하늘이 무너져도 여러 사람이 같이 죽어야 하는가 하면, 어떤 좋은 점이 있으면 여러 사람이 나누어야 하며, 노임이 올라도 무슨 몇 퍼센트로 한 사람이 한 몫이어야 한다. 이런 사상은 보기에는 마치 아주 맞는 것 같다. 여러 사람이 다 마찬가지이다. 사실 어찌 마찬가지일 수 있는가? 하는 사업이 같지 않고 성심껏 책임지는 정도 역시 같지 않다. 우리 이 우주에는 또 하나의 이치가 있는데,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고 얻게 되면 곧 잃어야 된다고 한다. 속인 중에서는 일하지 않으면 얻지 못하고 많이 일하면 많이 얻으며 적게 일하면 적게 얻는 것으로, 대가를 많이 치르면 마땅히 많이 얻어야 한다고 한다. 예전에 절대 평균주의를 실시할 적에 그 사람을 말한다면, 태어나서는 모두 같으며 후천적으로 사람을 개조하였다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이 너무나도 절대적이며 어떤 것이든 너무나 절대적이면 옳지 않다고 말한다. 왜 사람이 태어남에 또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는가? 생김새도 또한 다르지 않는가? 어떤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병이 있으며 기형이므로,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고층차에서 보면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의 일생은 거기에 놓여있는데 같을 수 있는가? 모두 평균하려고 생각하지만 그의 그 인생에는 없는데 어떻게 평균하겠는가? 같지 않다.

서양나라 사람의 성격은 비교적 외향적이어서, 기뻐해도 보아낼 수 있고 화가 나도 역시 보아낼 수 있다. 그는 그의 좋은 점이 있지만 역시 그의 좋지 못한 점도 있는데 참지 못한다. 두 가지 성격이 관념적으로 부동함으로 말미암아 일을 함에 있어서 생기는 효과가 부동하다. 중국 사람은 만약 상사가 칭찬했거나 또는 당신에게 무슨 좋은 점을 주었다면 다른 사람은 마음속으로 평형을 잡지 못한다. 만일 장려금을 좀 더 타게 되면 자신은 남몰래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다른 사람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노동모범 노릇하기도 힘들다. 당신은 노동모범이니까 당신은 잘하지 않는가. 당신은 일찍 오고 늦게 가면서 이 일을 모두 당신이 하라. 당신은 잘하고 우리는 안 된다. 조소와 풍자로, 좋은 사람노릇 하기도 힘들다.

만약 외국에서라면 뚜렷이 다르다. 사장이 오늘 그가 일을 잘한 것을 보고 장려금을 좀 더 준다. 그는 기뻐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한 장 한 장 세고 있다. 야, 오늘 사장이 나에게 이렇게 많은 돈을 주었다 라고 웃으면서 한 장 한 장씩 여러 사람에게 알리지만 그는 무슨 좋지 못한 결과가 없다. 만약 중국에서 어떤 사람이 장려금을 좀 더 받았다고 말한다면, 상사가 당신더러 빨리 거두라고 하며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끔 하라고 한다. 외국에서는 어린애가 학교에서 100점을 맞게 되면 그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며 달음박질하는 한편, 한편으로 외친다. 나는 오늘 100점을 맞았어요, 나는 100점을 맞았어요! 하면서 줄곧 학교에서부터 집까지 뛰어간다. 이웃들은 문을 열고 외친다. 야, 톰 훌륭하구나, 이 녀석. 저기서는 창문을 열고 야, 제커, 잘했구나, 라고 한다. 이 일이 만약 우리 중국에서 벌어졌다면 잘못된다. 나는 100점을 맞았어요, 나는 100점을 맞았어요! 이 어린이가 학교에서부터 집까지 뛰어가는데 그 문을 열기도 전에 저쪽 집에서는 벌써 욕부터 나온다. 뭐 대단할 게 있니, 그저 100점을 맞은 거 아니냐? 뭘 까불어대냐! 누가 100점을 못 맞아 본 것처럼! 이 두 가지 부동한 관념은 부동한 효과를 생기게 한다. 그것은 사람의 질투심을 생기게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만약 잘되게 되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평형을 잡지 못한다. 그는 이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몇 년 전에 절대 평균주의를 실행하게 되어 사람의 사상관념을 그야말로 혼란하게 만들었다. 구체적인 예를 들겠다. 이 사람은 직장에서 다른 사람이 모두 그보다 못하고 그는 무엇을 하면 무엇이 되는데 확실히 대단하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는 자기 마음속으로 나에게 공장장, 경리를 시켜도 나는 다 할 수 있으며 나에게 더욱 큰 벼슬을 주어도 나는 역시 할 수 있으며 총리가 된다 해도 내가 보기에는 다 된다고 생각한다. 상사도 아마 이 사람은 정말 괜찮고 무엇을 하든 다 된다고 말할 것이다. 동료들까지도 아마 모두 이 사람은 정말로 괜찮고 대단한 솜씨가 있으며 재능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팀, 또는 그들 사무실의 한 사람은 무엇을 해도 안되고 아무것도 잘 하지 못한다. 어느 하루 잘하지 못하는 이 사람이 도리어 승진하여 간부로 되고 그를 등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또한 그의 상사가 되었다. 그의 그 마음속은 평형을 잡지 못하여 아래위로 활동하고 불평을 부리며 질투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러한 이치를 이야기해 주겠는데 속인이 인식할 수 없는 이치이다. 즉 당신이 보기에는 당신이 무엇을 해도 다 되지만 당신의 명(命)에는 없으며 그는 아무것도 안되지만 그의 명(命)에 있기 때문에 그는 간부가 되었다. 속인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막론하고 그것은 속인의 생각이다. 더욱 고급적인 생명이 볼 때, 인류사회의 발전은 특정한 발전법칙에 따라 발전함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사람의 일생 중에서 무엇을 하는가 하는 것을, 그는 당신의 재간에 따라 당신에게 배치해주는 것이 아니다. 불교에서는 업력윤보(業力輪報)를 이야기하는데, 그는 당신의 업력에 따라 당신에게 배치해주는 것으로, 당신의 재간이 아무리 크다 하여도 당신이 德(덕)이 없으면 당신은 아마 이 일생에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당신이 보기에 그는 아무것도 안되지만 그는 德(덕)이 크므로 큰 벼슬을 하고 큰 부자가 된다. 속인은 이 한 점을 보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늘 자신이 마땅히 정도에 맞게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일생은 다투고 싸워서 이 마음은 아주 큰 해를 입게 되며 아주 고달프고 아주 힘듬을 느끼며 마음속은 늘 평형되지 않는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며 실망하고 소침하여져 늘그막에 가서 자신의 온몸을 형편없이 만들어 무슨 병이든 다 생기게 된다.

그럼 우리 수련하는 사람은 더욱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수련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름을 이야기한다.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 역시 다투어 얻어 오지 못할 것이다. 물론 역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만일 다 그렇게 절대적이라면 사람이 나쁜 일을 하는 문제도 존재하지 않게 되며 다시 말해서 그도 아마 일부 불안정한 요소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연공인으로서 이치적으로는 스승님의 법신이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당신의 것을 가져가려고 생각하여도 가져갈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름을 말하고 있다. 어떤 경우 당신이 보기에 그 물건이 당신의 것이며 남도 당신에게 이 물건은 당신의 것이라고 알려주지만 사실 그것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당신은 아마 당신의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지만, 나중에 가서는 그것이 당신의 것이 아니다. 그 가운데서 당신이 이 일에 대하여 내려놓을 수 있는가를 본다. 내려놓지 못한다면 바로 집착심으로서 곧 이런 방법으로 당신에게 이 이익적인 마음을 제거해주는데 바로 이 문제이다. 속인은 이 이치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이익 앞에서 모두 다투고 싸운다.

질투심은 속인 속에서 반영되어 나오는 것이 그야말로 너무나도 대단하며 수련계에도 역대로 반영됨이 비교적 뚜렷하다. 공파(功派) 사이에 서로 불복하고 당신의 공이 좋다, 그의 공이 좋다, 이러쿵저러쿵 흉보는 것도 다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모두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그 한 층차의 것이다. 서로 다투는 대다수는 모두 부체(附體)가 가져온 난잡한 공으로서 心性(심성)을 말하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은 연공을 20여 년간 연마하였지만 공능이 나오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이 금방 연마하여 공능이 나오게 되자 그의 마음은 평형되지 않았다. 내가 20여 년간 연공하였어도 나는 아직 공능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가 공능이 나오다니, 그는 무슨 공능이 나왔단 말인가? 그는 속으로 화가 나서 못 견딜 정도라, 그의 그것은 부체이고 주화입마(走火入魔)이다! 라고 한다. 기공사가 학습반을 열면 어떤 사람은 거기에 앉아서도 불복한다. 아, 무슨 기공사인가, 그가 말하는 그런 따위들을 나는 다 듣기가 싫다. 아마 기공사는 정말로 그가 말하는 것보다도 못하다. 그러나 그 기공사는 그 자신의 그 한 문(門)의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사람 그는 무엇이나 다 배워 그 수료증만 하여도 한 무더기나 된다. 어느 기공사가 학습반을 열든지 그는 다 참가하므로 그가 아는 것이 확실히 많으며 그 기공사보다도 아는 것이 더 많다. 그러나 무슨 쓸모가 있는가? 모두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것이라, 그가 더욱 많이 담을수록 정보는 더욱 난잡해지며 더욱 복잡해져 더욱 수련하기가 어려워지며 모두 혼란해졌다. 진정한 수련은 전일(專一)해야 함을 강구하며 어떠한 편차(偏差)도 나타나지 않는다. 진정하게 도를 닦는 사람 중에도 역시 이 반영이 있다. 서로간에 불복하며 쟁투심을 버리지 않아 역시 질투심이 생기기 쉽다.

우린 이야기를 하나 하자.『봉신연의(封神演義)』중의 신공표(申公豹)가 강자아(姜子牙)를 볼 때 늙고도 재간이 없었다. 그러나 원시천존(原始天尊)은 강자아더러 봉신(封神)하게 하였다. 신공표의 마음속은 곧 평형되지 않아, 어찌 그더러 가서 봉신하게 하는가? 당신이 보라. 이 신공표가 얼마나 대단한가. 나의 골을 베어버려도 다시 돌아와 붙는데 어찌하여 날보고 봉신하게 하지 않는가? 하면서 그는 몹시 질투하여 늘 강자아를 교란하였다.

석가모니 그 시대에 원시불교는 공능을 이야기했는데 지금 불교에는 감히 공능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 당신이 만일 공능을 이야기한다면 그는 당신이 주화입마 되었다고 한다. 무슨 공능인가? 그는 아예 승인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인가? 현재의 스님은 어찌된 영문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 석가모니는 10대제자가 있었는데 그는 목건련(目?連)을 신통 제일이라고 하였다. 석가모니는 또 여제자가 있었다. 그 중에 연화색(蓮花色)이라고 부르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역시 신통 제일이었다. 불교가 중국에 전해 들어온 것 역시 마찬가지로서 역대로 많은 고승이 나타났으며 달마(達摩)는 중국에 올 때 갈대 하나로 강을 건넜다. 그러나 신통은 역사발전 중에서 더욱더 배척을 당하게 되었다. 주요 원인은 절에서의 큰스님, 주지인 스님, 방장(方丈)등 이런 사람들이 꼭 대근기의 사람인 것이 아니다. 그가 방장이 되었고 큰 승려가 되었지만 그것은 속인 중의 한 직위에 불과하며 그 역시 수련 중의 사람이며 그는 다만 전업 적일 따름이다. 당신이 집에서 수련함은 과외적이다. 수련되든 안되든 간에 다 그 마음에 의하여 수련하는 것으로 모두 같으며 조금 차이가 나도 안 된다. 그러나 그 불을 때고 밥을 짓는 작은 스님은 그가 꼭 소근기(小根基)의 사람인 것이 아니다. 작은 스님은 고생을 겪을수록 더욱 쉽게 개공하며 그 큰스님은 더욱 향수할수록 개공하기가 더욱 쉽지 않다. 여기에는 업력의 전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작은 스님은 늘 고달프고도 힘들어 업을 갚음이 빠르며 개오함도 빨라, 어느 하루 그가 단번에 개공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개공, 개오 또는 반개오하게 되면 신통이 나오게 되는데, 온 절의 스님들이 모두 와서 그에게 물으며 여러 사람은 모두 그를 탄복한다. 그러나 이 주지는 참지 못하고, 내 이 주지노릇을 어떻게 하겠는가, 뭐 개오했다구? 그는 주화입마 되었는데 그를 쫓아내라고 한다. 절에서 쫓아냈다. 오래오래 되어 우리 한인(漢人) 지역의 불교에는 공능을 감히 담론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당신이 보라. 제공(濟公)이 얼마나 큰 재간이 있는가. 아미산(峨嵋山)으로부터 나무를 운반해 오는데 우물에서 한 대 한 대씩 위로 던져 올렸건만 마지막에는 역시 영은사(靈隱寺)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질투심 이 문제는 아주 엄중하다. 왜냐하면 그가 직접 우리가 능히 수련하여 원만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질투심을 버리지 못한다면 사람이 수련한 일체 마음이 모두 아주 취약하게 변해버린다. 여기에 하나의 규정이 있다. 사람이 수련 중에서 질투심을 제거하지 못하면 정과를 얻지 못하며 절대로 정과를 얻지 못한다. 예전에 여러분은 아마 들었을 수도 있는데 아미타불은 대업왕생(帶業往生)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질투심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안 된다고 하였다. 기타 면에 좀 차이가 있어도 자그마한 대업왕생(帶業往生)은 다시 수련하면 그것은 될 수 있지만 질투심을 제거하지 않고는 절대 안 된다. 오늘 내가 연공인과 이야기한다. 당신은 이처럼 잘못을 고집하고 깨닫지를 못하지 말라. 당신이 도달하려고 하는 목적은 더욱 높은 층차에로의 수련이기 때문에 질투심을 반드시 제거해 버려야 한다.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단독으로 내놓고 이야기한다.

병치료 문제

병을 치료함을 말하게 됨은 당신에게 병을 치료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法輪大法(법륜대법)의 진짜 수련제자는 누구도 남에게 병을 치료해 줄 수 없다. 당신이 병을 치료하기만 한다면 나의 법신이 당신 몸에 갖고 있는 모든 法輪大法(법륜대법)의 것들을 전부 회수하게 된다. 왜 이 문제를 이처럼 엄중하게 보는가? 왜냐하면 그것은 대법을 파괴하는 일종 현상이기 때문이다. 당신 자신의 신체가 손해보는 것을 말하지 않더라도, 어떤 사람은 일단 병을 보게 되면 손이 근질근질해 나며 누구를 보아도 잡아끌어다 사람의 병을 봐주며 자기를 과시하는데, 이것은 집착심이 아닌가? 사람의 수련을 엄중하게 영향준다.

많은 가짜 기공사는 속인의 심리를 파악하고 기공을 배운 후에 사람에게 병을 봐주려고 생각하며 당신에게 이것을 가르쳐 준다. 기를 내보내면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이 그래 웃음거리가 아닌가? 당신도 기(氣)이고 그 역시 기인지라, 당신이 기를 내보냈다고 남의 병을 치료해 준 것인가? 남의 그 기가 당신을 다스릴지도 모른다! 기와 기 사이에는 제약 작용이 없다. 사람이 고층차에서 수련할 때에 공이 나오게 되는데 내보내는 것은 고에너지물질로서, 이는 확실히 병을 치료할 수 있으며 병을 제약할 수 있는가 하면 억제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도리어 뿌리를 제거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진정하게 병을 치료할 수 있음은 공능이 있은 다음에야만 비로소 철저히 병을 치료할 수 있다. 매 한가지 병은 모두 매 한가지 병에 대한 치료공능이 있는데, 병을 치료하는 공능만 하여도 내가 말한다면 천여 종이나 있으며, 얼마나 되는 종류의 병이 있으면 얼마나 되는 종류의 공능이 대처하여 치료한다. 이 공능이 없다면 당신의 손은 어떤 재간을 피운다 해도 그것 역시 소용이 없다.

어떤 사람은 이 몇 년간 수련계를 아주 혼란하게 만들었다. 진정하게 나와서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그런 기공사들, 처음에 나와서 이 길을 닦은 기공사들이 어디 사람들에게 병치료하라고 가르쳤는가? 모두 그가 당신에게 병을 제거해주거나 또는 당신더러 여차여차하게 수련하며 여차여차하게 신체를 단련하라고 가르쳤으며 당신에게 한 세트의 공법을 가르친 다음, 당신 자신이 단련을 통하여 병을 제거하게끔 하였다. 후에 가짜 기공사가 나와 온통 난장판을 만들었으며 누가 병을 고치려고 생각한다면 부체(附體)를 초래하게 된다. 꼭 이러한 것이다. 당시 환경에서 일부 기공사가 병을 보는 것도 있었지만 그것은 당시의 그런 천상(天象)에 배합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속인 중의 기능이 아니므로 영원히 유지하여 내려갈 수 없으며 그때의 천상(天象)변화가 조성한 것으로, 바로 그 한 시기의 산물이다. 후에 무슨 전문적으로 사람을 가르치어 병치료를 하게 하였는데 닥치는 대로 해 버렸다. 일개 속인이 사흘, 닷새면 병치료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사람은 나는 이 병, 저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무릇 이런 것은 모두 부체를 갖고 있는 것이라, 당신은 당신 몸 뒤에 무엇이 엎드려 있는 지 아는가? 당신은 부체가 있으면서 당신 자신이 느끼지 못하고 당신은 모르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아주 좋다고 여기며 자신이 재간이 있다고 여긴다.

진정한 기공사는 매우 긴 시간의 간고한 수련을 거쳐서야만 비로소 이런 하나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당신이 사람에게 병을 치료해 줄 때에 당신은 생각해 보라. 당신은 사람에게 이 업력을 없애 버릴 수 있는 이런 강대한 공능이 있는가 없는가? 당신은 진정한 전수를 받은 적이 있는가? 당신이 사흘, 이틀에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당신은 일개 속인의 손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는가? 하지만 이런 가짜 기공사인 그는 당신의 약점을 잡아쥐었으며 사람의 집착심을 잡아쥐었다. 당신은 병을 치료함을 추구하지 않는가? 좋다. 그는 병을 치료하는 학습반을 열어 전문적으로 당신에게 치료수법을 가르친다. 무슨 기침(氣針)이요, 무슨 광조법(光照法)이요, 배출이요, 보충이요, 무슨 점혈(点穴)이요, 무슨 일파조(一把?)요, 하는 이름들이 대단히 많은데, 목적은 당신의 돈을 빨아내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일파조를 말해보기로 하자. 우리가 본 상황은 이러하다. 왜 사람은 병이 있는가? 그가 병이 있는 것과 모든 불행의 근본원인은 업력이 조성한 것으로서 그 흑색물질의 업력마당이다. 그는 음성(陰性)에 속하고 좋지 못한 것에 속한다. 그런 좋지 못한 영체 역시 음성(陰性)의 것이라 모두 검은 것에 속한다. 그러므로 그것이 능히 올라올 수 있는데 이 환경이 그것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의 병이 있음을 초래하는 근본원인이며 이것은 가장 주요한 한가지 병의 내원(來源)이다. 물론 또 두 가지 형식이 있다. 일종은 아주 작고 아주 작으며 밀집도가 아주 큰 그 작은 영체(靈體)인데 업력 덩어리와 같은 것이고 또 어떤 것은 마치 일종의 도관처럼 수송을 한다. 이것은 비교적 보기가 드물며 모두 조상으로부터 내리 누적한 것으로서 이런 경우도 있다.

우리는 가장 보편적인 것을 이야기하자. 사람이 어디에 종양이 자랐거나, 어디에 염증이 생겼거나, 어디에 골질증식(骨質增生)이 생겼다는 등등이다. 다른 공간에는 바로 그곳에 하나의 영체가 엎드려 있는 것이라, 하나의 아주 깊은 공간 중에 하나의 영체가 있다. 일반적인 기공사는 보아내지 못하고 일반적인 특이공능도 보아내지 못하며 다만 사람의 신체에 검은 기가 있는 것을 보아낼 따름이다. 어느 곳에 검은 기가 있으면 어느 곳에 곧 병이 있다는 이것은 맞게 말했다. 그러나 검은 기는 병을 조성하는 근본원인이 아니며 더욱 깊은 하나의 공간 속에 그런 하나의 영체가 있는데 그것이 내보낸 이 마당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배출이요, 배설을 말한다. 당신이 배출해 보라! 잠시 후이면 그것이 또 생기게 된다. 어떤 것은 힘이 커서 금방 배출되었어도 또 잡아 당겨오게 되는데 스스로 능히 걷어들일 수 있으므로 아무리 치료하여도 잘 낫지 않는다.

특이공능에 근거하여 볼 때 그곳에 검은 기가 있으면 병기라고 인정하며 한의가 보게 되면 바로 그곳에 맥이 통하지 않고 기혈이 통하지 않으며 맥이 막혀 있고, 양의가 보게 되면 바로 그곳에 궤양, 종양이 자라며, 골질증식 또는 염증이 생겼다는 등 일부 현상이다. 그것이 이 공간에로 반영되는 것은 바로 이런 형식이다. 당신은 그의 그런 것을 떼어버린 후에 당신은 곧 이쪽의 신체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무슨 요추간반(腰椎盤) 돌출, 골질증식, 당신이 그것을 떼어버린 후, 그 마당을 쳐내보낸 후에 당신은 즉시 나아지는 것을 발견한다. 당신이 다시 엑스선 사진을 찍게 되면 무슨 골질증식도 없게 되는데 근본원인은 바로 그것이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어떤 사람은, 사흘이면 병을 치료할 수 있다, 닷새면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하며 당신에게 일파조를 가르친다. 당신이 날 잡아보라! 사람은 가장 약하며 그 영체는 대단히 사나운 것이다. 그것이 당신의 대뇌를 통제하여 당신을 맴돌이 치도록 놀려주며 아주 쉽사리 당신의 명(命)을 빼앗아 갈 수 있다. 당신은 그것을 잡겠다고 말하는데 어떻게 잡을 것인가? 당신 이 속인의 손은 그것을 건드리지 못하며 당신이 거기에서 헛손질을 하면 그것은 당신을 상관하지도 않으며 그것은 뒤에서 당신을 웃고 있다. 마구 잡아쥐고 있음이 매우 가소롭다고. 당신이 만약 정말로 그를 건드린다면 그는 즉시 당신의 손을 상하게 하는데 그건 정말로 상하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일부 사람을 보았다. 두 손이 못쓰게 된 것도 아니지만 그 어떠한 검사를 해도 몸에는 병이 없으며 두 손은 병이 없다. 그러나 손만은 쳐들지 못하여 곧 이렇게 드리우고 있었는데 이 환자를 나도 만났었다. 그의 다른 공간의 그 몸이 상했는데 그것은 정말로 불구자가 되었다. 당신의 그 몸까지도 상하였는데 그래 불구자가 된 것이 아닌가? 어떤 사람은 나에게 묻기를 스승님, 나는 연공을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나는 절육을 하였고 또는 무엇을 떼어버렸다고 한다. 나는 이 모두가 다 영향없다고 말한다. 다른 공간의 당신의 그 몸은 수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공은 그 몸이 작용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내가 방금 말했지만 당신이 그것을 잡을 때 당신이 그것을 다치지 못하면 그것도 당신을 상관하지 않으며, 당신이 그것을 다친다면 그는 아마 곧 당신의 손을 상하게 할 것이다.

나라의 대형적인 기공활동을 지지하기 위하여, 나는 북경에서 일부 제자를 거느리고 동방건강박람회에 참가하였다. 두 차례의 박람회에서 우리들은 모두 가장 뛰어났다. 제1차 박람회에서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은인기공파(明星功派)라는 영예를 지니었고 제2차 박람회에서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야말로 어쩔 방법이 없었다. 다른 전시대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지만 우리의 전시대 주위에는 빼곡이 차 있었다. 세 줄로 섰는데 첫 줄은 아침이 되자 오전의 번호를 다 내보냈고, 두 번째 줄은 오후의 번호를 쥐려고 기다리는 것이었으며, 다른 한 줄은 내가 서명하기를 기다렸다. 우리는 병을 치료하지 않는데 왜 이것을 하였겠는가? 이것은 나라의 대형적인 기공활동을 지지하는 것으로서 이 사업에 공헌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참가하였다.

나는 나의 공을 내가 거느리는 제자에게 매 사람 한 몫씩 모두 백여 종 공능을 합성한 에너지덩이를 나누어주었다. 그들의 손을 모두 봉해버렸다. 바로 이러하였지만 어떤 손은 그래도 물리어 터지고 물리어 물집이 생겼거나 물리어 피가 났다. 그것 역시 늘 나타났다. 그 놈은 다 그렇게 사납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당신의 속인 손으로 당신은 그것을 감히 건드릴 수 있는가? 다시 말해서 당신도 그것을 잡지 못하고 그런 공능이 없으면 되지도 않는다. 다른 공간에서 당신이 뭘 하려고 생각하여 당신의 머리가 생각만 하여도 그것은 알고, 당신이 그것을 잡으려고 한다면 그것이 일찍이 도망쳐 버리고 만다. 환자가 문을 나설 때를 기다려서 그것은 즉시 또 올라가는데 병은 다시 재발하게 된다. 만일 손을 대어 그것을 다스리려면 이러한 일종 공능이 있어야 한다. 손을 내밀어 '탁' 하면 거기에 고정해 진다. 고정해진 후에 우리는 또 일종의 공능이 있는데 과거에는 섭혼대법(攝魂大法)이라고 불렀다. 그런 공능은 더욱 대단한바 사람의 온 元神(원신)까지도 잡아 끌어낼 수 있어 그 사람은 즉시로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이 공능은 겨누는 것이 있는데 우리는 바로 이놈을 겨냥하여 잡는 것이다. 여러분 알다시피 여래부처 손의 그 사발이 이렇게 한 번 비추기만 하면, 당신이 볼 때 손오공이 그렇게 크지만 단번에 조그마한 한 점으로 변해버린다. 이 공능은 이런 하나의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영체(靈體)가 얼마나 크든지 막론하고, 영체가 얼마나 작든지 막론하고 단번에 쳐서 손에 잡아쥐면 아주 작게 변하게 된다.

그 외에 손을 환자의 육체 속으로 밀어 넣었다가 다시 움켜쥐어 내온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안 된다. 그것은 속인사회의 사람의 사유를 다 혼란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을 전혀 허락하지 않으며, 할 수 있어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가 밀어넣은 것은 다른 공간의 그 손이다. 그가 심장에 병이 있다고 말하면, 이 손이 심장부위에 대고 움켜쥘 때 다른 공간의 그 손이 들어가게 된다. 순간적으로 아주 빨리 잡아쥔 다음, 당신의 바깥의 손이 잡기만 하면 두 손은 한데 합치어 손안에 잡게 된다.

그놈은 매우 사나워 어떤 때는 손에 잡아 쥐어도 움직이며 안으로 파고드는가 하면, 어떤 때는 물기도 하고 어떤 때는 또 소리를 지른다. 당신이 보기에 손에 잡은 것이 그렇게 작지만 손을 놓은 후에는 아주 크게 변할 수 있다. 이것은 누구나 다 건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런 공능이 없으면 아예 건드리지 못하는데,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전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물론 장래에 기공으로 병을 치료하는 이런 형식은 그것으로 하여금 존재하게끔 할 수도 있으며 과거에도 줄곧 존재하였었다. 그러나 반드시 조건이 있는 것으로, 이 사람은 반드시 수련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수련과정 중에 그가 자비심이 우러나와 그가 소수의 좋은 사람에게 이러한 일을 해주는 것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에게 이 업(業)을 철저히 없애버릴 수 없고 그의 위덕이 모자라기 때문에 난(難)은 아직도 있게 되며 다만 구체적인 병이 나았을 따름이다. 일반적인 소기공사는 그가 수련하여 도를 얻은 하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다만 다른 사람에게 뒤로 미루어 놓거나 또 전화시켜 주거나, 가능하게 기타의 재난으로 전화해 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루어 놓는 과정을 그 본인은 모를 수 있다. 만약 공법을 수련한 것이 副意識라면 그의 副意識이 한 것이다. 어떤 공법의 연공인은 아주 이름있는 것 같지만 많은 명성이 자자한 대기공사 그는 공이 없으며 공은 모두 副元神(부원신) 몸에 있다. 다시 말해서 수련과정 중에 이렇게 함을 허용한다. 어떤 사람은 이 층차에 지속되기 때문에 십몇 년, 몇십 년을 연마하여도 이 층차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는 한 평생 늘 사람에게 병을 봐 주고 병을 봐주느라고 한다. 그가 이 층차 중에 있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 함을 허용한다. 法輪大法(법륜대법)을 수련하는 제자는 절대로 병을 볼 수 없다. 환자에게 이 책을 읽어 주어, 만일 환자가 받아들일 수 있다면 병을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업력 대소가 부동한 사람에 대하여서는 효과 역시 같지 않다.

병원치료와 기공치료

우리는 병원치료와 기공치료의 관계 문제를 말해 보고자 한다. 어떤 양의사는 기공을 승인하지 않는데 이러는 것이 다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기공이 병을 볼 수 있다면 또 우리 병원을 해서 뭘하겠는가? 고 말한다. 당신들이 우리 병원을 대체하라! 당신들 기공은 손만 대면 이 병을 낫게 치료할 수 있으며 또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며 입원할 필요도 없어 우리 병원을 대체한다면 얼마나 좋은가? 이 말을 함은 아주 도리가 없으며 참으로 억지를 쓰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기공을 이해(了解)하지 못한다. 실질적으로 기공으로 병을 봄은 속인 중에서의 치료방법과 같을 수 없다. 그것은 속인 중의 기능이 아니며 그것은 하나의 초상(超常)적인 것이다. 그럼 초상적인 것이 대면적으로 속인사회를 교란한다면 그것을 허용할 수 있는가? 부처님은 얼마나 큰 재간이 있는가. 한 부처님이 손을 한 번 휘 저으면 온 인류의 병이 모두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는 왜 하지 않는가? 하물며 그렇게 많은 부처님들, 그가 왜 자비심을 베풀어 당신더러 병이 낫게끔 하지 않는가? 왜냐하면 속인사회는 바로 이러하며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이런 상태로서 모두 인연관계가 있는 것이고 모두 업력윤보(業力輪報)이기 때문에 당신이 진 빚은 꼭 갚아야 한다.

만약 당신이 그를 치료해 주었다면 곧 그 이치를 파괴하고, 모두 나쁜 일을 하고도 갚을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데 그것이 될 말인가? 수련 중의 사람이 자비심에서 우러나왔고, 당신이 그렇게 큰 힘이 없어 철저하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경우, 당신이 병을 보는 것을 허용한다. 당신은 자비심에서 우러나왔기 때문에 이렇게 함을 허용한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진정하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대면적으로 해결한다면 그것은 안 된다. 그러면 당신은 속인사회의 상태를 엄중히 파괴하는 것으로서 허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공이 속인의 병원을 대체하는 것은 전혀 안 된다. 그것은 초상(超常) 중의 법이다.

만약 중국 이 지방에서 기공병원을 꾸리고, 만약 이렇게 하는 것을 허용하고 대기공사들이 모두 나와 한다면, 당신이 보라. 무슨 모양이겠는가를? 이렇게 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속인사회 이 상태를 모두 수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기공병원을 꾸리고 기공진료소·건강회복센타·요양명승지를 꾸린다면, 일단 꾸린 후에 그 기공사의 병치료는 곧 일락천장이 되며 치료 효과가 즉시로 안 된다. 무엇 때문인가? 그가 속인 중의 이것을 꾸렸기 때문에 반드시 속인의 법과 같이 높아야 하며, 속인의 상태와 하나의 층차 중에 있어야 하고, 그의 치료효과는 병원과 같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병 치료가 곧 안 된다. 그 역시 병 치료에 무슨 몇 개 치료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데 흔히 모두 이러하다.

기공은 그가 병원을 설립하든지 설립하지 않든 지를 막론하고 기공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이 한 점을 누구도 말살할 수 없다. 기공이 사회에서 이토록 오랜 시간 보급되었으며 수많은 사람이 확실히 연공을 통하여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목적에 도달하였다. 그가 기공사에 의하여 병이 미루어졌다 해도 좋고 어떻게 되었다 해도 좋은데, 어쨌든 그 병이 지금은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기공이 병을 치료할 수 있음은 누구도 말살할 수 없는 것이다. 기공사를 찾아 병을 보는 다수는 다 치료하기 어려운 병에 속하는데, 병원에 가 보아도 낫지 않아 기공사 거기에 가서 대운이나 만나자고 한 것이 결국은 치료되었다.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으면 기공사를 찾지 않는다. 더욱이 시작할 적에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인식하였다. 그러므로 기공은 병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다만 속인사회 중의 기타 일처럼 그렇게 가서 할 수 없을 뿐이다. 대면적으로 간섭함은 절대 허용하지 않으며 소면적이거나 또는 무슨 그리 큰 영향이 없으면서 소문 없이 하는 것은 허용할 수 있다. 그러나 병이 철저하게 낫게끔 할 수 없는데 역시 긍정적이다. 스스로 기공단련을 하여 병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좋다.

또 어떤 기공사는, 병원에서는 병을 치료하지 못하는데 병원의 현재 치료효과가 여하 여하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떻게 말하는가? 물론 그것은 여러 면으로 되는 원인이 있다. 내가 볼 때 가장 주요하게는 아직도 인류의 도덕수준이 저하됨으로 하여 조성된 각종 괴상하고도 괴상한 병은 병원에서 치료하지 못하고 약을 먹어도 낫지 않으며, 가짜 약도 많은데 모두 인위적인 사회의 부패가 이 정도에까지 도달하였기 때문이다. 매 사람마다 다른 사람을 나무라지 말라. 사람마다 다 파란을 일으키는 작용을 하였다. 그러므로 사람마다의 수련은 모두 고난에 부딪힐 수 있다.

병원에서는 어떤 병을 검사해 내지 못하지만 확실히 병이 있다. 어떤 사람은 병을 검사해 냈으나 역시 무슨 이름인지를 모르며 모두 보지 못했던 병이므로 병원에서는 통털어 '현대병'이라고 한다. 병원에서 병을 치료할 수 있는가 없는가? 물론 할 수 있다. 병원에서 병을 치료하지 못하면 사람들이 어찌 믿을 수 있으며 어찌 병원에 가서 병치료를 하겠는가. 병원은 그래도 병을 치료할 수 있다. 다만 그의 치료수단은 속인 그 층차의 것에 불과하지만 그 병은 오히려 초상(超常)적인 것으로서 어떤 병은 무척 크다. 그러므로 병원에서는 병이 있게 되면 일찍이 치료하라고 말하지 않는가. 크게 되면 그가 치료해 내지 못하며 약의 양이 크게 되면 사람은 또 중독에 걸리게 된다. 현재의 의료수준은 우리의 과학기술 수준과 마찬가지로 모두 속인 이 한 층차 중에 처해 있다. 그러므로 그는 이런 하나의 치료효과이다. 하나의 문제를 똑똑히 말해야 하겠다. 일반적인 기공 병치료와 병원 병치료는 병이 있게 되는 근본원인을 조성한 난(難)을 뒤로 미루었으며 후반생 또는 이후로 미루었지, 업력을 전혀 다치지 못했다.

우리는 또 한의를 말해 보기로 하자. 한의가 병을 치료함은 기공 병치료와 아주 비슷하다. 중국 고대의 한의는 기본적으로 다 특이공능이 있었다. 손사막(孫思邈)·화타(華陀)·이시진(李時珍)·편작(扁鵲) 등등과 같은 이런 대의학자들은 다 특이공능이 있는 것으로 의학서적에 모두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흔히 이런 정화(精華)적인 것이 현재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한의가 계승한 것은 다만 그런 약처방 또는 경험의 모색에 불과할 따름이다. 중국 고대의 한의는 무척 발달한 것으로, 발달한 정도는 지금의 의학을 능가하였다. 어떤 사람은 생각할 것이다. 지금의 의학이 얼마나 발달하였는가. CT를 하면 사람의 신체 내부를 보아낼 수 있는데 B형 초음파를 하고 사진을 찍고 엑스선 사진을 찍는다. 현대 설비는 대단히 선진적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역시 중국 고대의 의학만 못하다.

화타는 조조의 골속에 종양이 있는 것을 보고 골을 가르고 종양을 떼어내는 수술을 하려고 하였다. 조조는 듣자마자 화타가 그의 머리를 떼려 한다고 인정하여 화타를 가두었으며 화타는 결국 감옥 안에서 죽었다. 조조가 병이 발작하였을 때 화타가 생각나서 화타를 찾았으나 화타는 이미 죽었다. 후에 조조는 정말로 이 병에 걸려 죽었다. 왜 화타는 아는가? 그는 보아냈던 것이다. 이는 우리 사람의 특이공능 즉, 과거의 대의학자는 다 이런 재간을 갖추고 있었다. 천목이 열린 후에 한 면에서 동시에 사람 신체의 네 면을 볼 수 있는데, 앞면으로부터 뒷면, 왼쪽 면, 오른쪽 면을 볼 수 있으며 또 한층 한층 절편(切片)하여 볼 수 있는가 하면 또 이 공간을 꿰뚫고 병이 있는 근본원인이 무엇인가를 보아낼 수 있다. 지금 의료수단이 도달할 수 있는가? 차이가 너무나도 먼데, 1천여 년은 더 걸려야 할 것이다! CT·B형 초음파·엑스선 사진도 인체 내부를 볼 수 있지만 기계는 너무나도 커서 그리 큰 것을 수시로 몸에 휴대할 수 없으며 전기가 없어도 안 된다. 그러나 이 천목은 어디 가면 어디까지 갖고 가며 아울러 에너지 원천도 필요 없는데 어찌 비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지금의 약이 여하 여하하다고 말한다. 나는 그런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중국 고대의 그런 초약은, 정말로 약을 먹게 되면 병이 제거될 수 있다. 아주 많은 것이 실전(失傳)되었는가 하면, 아주 많은 것이 실전되지 않은 것도 있으며 민간에서 유전되고 있다. 내가 치치할에서 수련반을 열 때, 거리에 노점을 차려 놓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를 뽑아주는 것을 보았다. 보니 이 사람은 남방에서 왔는데 동북사람과 같은 옷차림이 아니었다. 거절함이 없이 오는 사람마다 누가 와도 그는 다 뽑아 주었는데 이를 뽑은 것이 한 무더기가 되었다. 그는 사람에게 이를 뽑아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의 약물을 파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 약물은 매우 짙은 누른 기를 내보냈다. 이를 뽑을 때 약물 병의 마개를 열고 밖으로부터 뺨을 사이 두고 아픈 이에 대게 하고는 사람더러 누른 약물의 기체를 몇 모금 빨아들이게 한다. 약물마저 그리 소모가 되지 않았는데 마개를 닫고는 거기에 놓았다. 주머니에서 성냥개비 한 대를 더듬어 내어 그의 약을 이야기하는 한편, 한편으로는 성냥개비 한 대를 이에 대고 척 헤집으니, 이는 뽑아지는데, 아프지도 않고 피가 좀 묻었을 뿐 출혈하지도 않았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성냥개비는 만일 힘을 크게 주면 곧 꺾어지는데 그는 오히려 성냥개비로 이를 척 헤집어 뽑아냈다.

중국의 어떤 것은 민간에서 유전되고 있는데 양의의 정밀한 계기는 그것만 못하다고 나는 말한다. 누구의 효과가 좋은가 보자. 그는 성냥개비로 들추기만 하면 빠져나오게 된다. 양의는 이를 뽑을 경우에 먼저 마취약을 놓으며 이쪽에 찌르고 저쪽에 찔러 주사를 맞는 것도 대단히 아프다. 마취약이 효과를 낼 때를 기다린 다음 집게로 뽑는다. 반나절이나 뽑다가 잘못하면 뿌리가 또 안에서 부러진다. 큰 망치를 들고 끌을 가지고는 내리 후빈다. 내리치는 것이 혼비백산할 지경인데 당신에게 또 정밀한 계기로 뚫는다. 어떤 사람은 뚫을 때 너무 아파 펄쩍 뛰면서 출혈도 적지 않아 한참 뱉어야 한다. 당신이 말해보라. 누구의 것이 좋은가? 당신이 말해보라. 누구의 것이 선진적인가? 우리는 표면적인 도구만 볼 수 없으며 그의 실제적인 효과를 보아야 한다. 중국 고대의 한의는 꽤 발달한 것으로 지금의 양의는 수많은 해를 더 지나도 따라가지 못한다.

중국 고대의 과학은 우리의 현대 서양으로부터 배운 과학과는 같지 않으며 그가 걷는 것은 다른 한 갈래의 길로서 다른 일종의 상태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현재의 이런 인식방법으로 중국 고대의 과학기술을 인식하여서는 안 된다. 중국 고대의 과학은 인체, 생명, 우주를 견주고 직접 이것을 향해 연구하였기 때문에 걷는 것은 다른 한 갈래의 길이었다. 그때에 공부하는 사람은 모두 가부좌를 강구하였다. 앉음에 자세를 강조하였고 필을 드는데는 기를 운행하여 호흡함을 강조하였고 각 사업부문은 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호흡을 조절함을 강조하였는데 온 사회는 모두 이러한 일종의 상태에 처해 있었다.

어떤 사람은 말하였다. 중국의 고대 과학을 따라 간다면 오늘날의 자동차, 기차가 있을 수 있는가? 오늘의 현대화가 있을 수 있는가? 나는 당신이 이런 환경에 입각하여 다른 상태를 인식할 수 없으며 당신의 사상관념은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텔레비전이 없다면 사람의 머리 앞면에 스스로 갖고 다니어 무엇을 보려면 무엇을 보는데 또한 공능도 존재한다. 기차, 자동차가 없다면 사람은 거기에 앉아서 뜰 수 있는데 엘리베이터도 쓸모가 없다. 그는 부동한 사회발전 상태를 가져올 수 있으며 하나의 틀 속에 국한되는 것만이 아니다. 외계인(外星人)의 비행접시는 오고 감이 신속하며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다. 그들이 걷는 것은 더욱 같지 않은 발전노선으로서, 또 다른 일종의 과학방법이다.

제 8 강 의


벽곡(抗谷)

어떤 사람은 벽곡(抗谷)의 문제를 담론하였다. 벽곡, 이런 현상은 존재하는 것으로 수련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온 인류사회 속에서 적지 않은 사람은 이런 경우가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몇 년, 또는 십몇 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지만 오히려 생활함이 아주 좋다. 어떤 사람은 벽곡을 어떤 한 층차 중의 체현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벽곡을 신체를 정화(煖化)시키는 표현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그것을 고층차 중의 수련과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모두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찌된 일인가? 벽곡은 실제상 바로 우리가 특정된 환경에서 취한 하나의 특수한 수련방법이다. 어떤 특정된 환경에서 그것을 취하였는가? 중국 고대, 특히 종교가 아직 건립되기 전에 수련하는 많은 사람은 모두 일종 비밀리에 수련하고 단독으로 수련하는 이런 일종의 방식을 취하여, 심산 속에 들어가거나 동굴에 들어가 수련하여 사람들을 멀리하였다. 일단 이렇게 하였다면 그는 곧 식물 내원(來源)의 문제가 연관된다. 만약 그가 벽곡의 방법을 취하지 않는다면 아예 수련할 수 없으며 곧 그 안에서 굶어 죽거나 목말라 죽게 된다. 내가 중경으로부터 무한에 가서 설법하려고 배를 타고 장강을 따라 동으로 갈 때, 삼협(三峽) 양쪽에 일부 산굴들이 산허리에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많은 명산에 다 이것이 있다. 과거에 그 수련하는 사람은 밧줄을 타고 기어들어간 후, 밧줄을 끊어버리고 동굴 속에서 수련하였으며 수련해내지 못하면 그 안에서 죽게 되었다. 물도 없고 식물도 없다. 그는 바로 이런 하나의 극히 특수한 환경에서 취한 하나의 특수한 수련방법이었다.

많은 공법은 이런 하나의 이어받고 전해가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므로 그것은 벽곡을 갖고 있는가 하면, 많은 공법은 벽곡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가 오늘날 사회에서 전하는 공법 중의 대다수는 이것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연공은 전일(專一)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당신이 인위적으로 어떻게 하려고 생각한다 하여 어떻게 할 수는 없다. 당신은 그것이 대단히 좋다고 여기어 당신도 벽곡을 하려고 하지만 당신은 벽곡을 하여서 뭘하겠는가? 어떤 사람은 아주 좋다고, 신기하다고 여기거나 또는 자신의 재주(功夫)가 높아서 과시할 수 있다고 여기는데, 각종 심태의 사람이 다 있다. 설령 이런 방법을 취하여 수련한다 하더라도 역시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하여 신체를 보충해야 한다. 때문에 역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여러분 알다시피 특히 종교가 건립된 후에 당신이 절에서 좌선, 폐관(閉關)을 하더라도 당신에게 차와 밥을 공급하는 사람이 다 있기 때문에 이 문제가 연관되지 않는다. 특히 우리는 속인사회에서 수련하므로 당신은 이런 방법을 취할 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으며 또한 당신의 그 한 법문 속에 없기 때문에 당신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정말로 벽곡을 하려 한다면, 그럼 당신 마음대로 해보라. 내가 알기로는 흔히 사부가 고층차에서 공을 전수하여 진정하게 사람을 이끈다고 한다면 그의 이 법문에는 벽곡이 있게 되며 이 현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그는 보급을 할 수 없으며 흔히 제자를 데리고 비밀리에 수련하거나 단독으로 수련할 뿐이다.

지금도 어떤 기공사는 사람들에게 벽곡을 가르친다. 벽곡하였는가, 하지 못하였는가? 마지막에는 벽곡을 하지 못하였는데 누가 벽곡을 하였는가? 내가 볼 때 입원한 사람이 적지 않으며 생명위험이 나타난 것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왜 이 상황이 나타날 수 있는가? 벽곡의 현상은 있는 것이 아닌가? 있다. 하지만 한가지가 있는데, 우리 속인사회 이 상태를 누가 경솔하게 그것을 파괴함을 허용하지 않으며 파괴하지 못하도록 한다. 전국에 얼마나 되는 사람이 연공하여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는 것을 말하지 않더라도, 설령 장춘 이 지방에서만 누구나 다 먹지 않고 마시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편리하게 되었는가! 조급하게 밥을 지을 필요도 없게 되었다. 농민은 농사를 짓느라 고생스러운데 모두 먹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편리하게 되었다. 일만 하고 밥을 먹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야 되는가? 그것은 인류사회인가? 긍정적으로 안 된다. 이러한 일이 대면적으로 속인사회를 교란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어떤 기공사가 벽곡을 전할 때 아주 많은 위험이 나타났다. 일부 사람은 벽곡을 집착스레 추구하지만 그의 그 마음을 제거하지 않았고, 많고 많은 속인의 마음을 없애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맛있는 것을 보고 먹지 않으면 먹고 싶어하는데, 그의 마음이 되살아나기만 한다면 안 된다. 그는 조급하여 음식을 먹으려 하고 욕망이 올라오면 곧 먹게 되는데 먹지 않으면 배고픔을 느낀다. 그러나 먹게 되면 토하고 먹을 수 없게 된다. 이는 곧 정신적 긴장을 조성하여 겁이 나서 야단이다. 많은 사람은 입원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은 확실히 생명위험이 나타났다. 일부 사람은 나를 찾아서 나더러 이런 난잡한 일을 처리해 달라고 한다. 나 역시 이러한 일을 상관하기가 싫다. 어떤 기공사는 엉터리이다. 누가 그에게 이런 지저분한 일을 수습해 주기를 원하겠는가.

게다가 당신이 벽곡하여 문제가 생겼다면 그것은 당신 자신이 추구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이런 현상이 존재한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그건 무슨 고층차 중에서 나타나는 상태가 아니고 또 무슨 특수한 반영도 아니며 그것은 다만 특수한 상황에서 취한 일종 연공방식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역시 보급할 수 없다. 적지 않은 사람은 벽곡을 추구하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무슨 벽곡, 반벽곡(半抗谷)이라고 말하며 또 등급까지 나누어 놓았다. 어떤 사람은 그는 물을 마신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과일을 먹는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다 가짜 벽곡으로서 시간이 길어지면 보증하고 모두 안 된다.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은 산굴 속에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데, 그것을 진짜 벽곡이라고 한다.

기를 훔치다

기(氣)를 훔침을 말하기만 하면 어떤 사람은 호랑이 이야기만 해도 얼굴빛이 변하듯이 겁이 나서 감히 연공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은 수련계의 어떤 사람이 주화입마(走火入魔), 기를 훔치는 등등의 현상을 전함으로 하여 그들로 하여금 감히 연공하지 못하고 감히 기공을 접촉하지 못하게 하였다. 만약 이러한 말이 없다면 더욱 많은 사람이 연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떤 心性(심성)이 좋지 못한 기공사는 전문적으로 이런 것을 가르쳐 수련계를 혼란하게 만들었는데 사실은 그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두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는 곧 기라고 말한다. 비록 당신이 그것을 혼원기(混元氣), 이런 기, 저런 기라고 말하더라도 말이다. 인체에 오로지 기가 있다면 이 사람은 바로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이 한 층차 중에 있기 때문에 아직 연공인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람에게 기가 있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아직 신체가 고도로 되는 정화(煖化)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설명하며 병기가 있는 것으로, 이것은 긍정적이다. 기를 훔치는 사람 역시 기의 층차 중에 있는 것으로, 우리 연공하는 사람은 누가 그 매우 혼탁한 기를 가지겠는가? 연공하지 않는 사람의 신체는 기가 아주 혼탁한데 연공한 후에는 맑고도 밝아질 수 있다. 병이 있는 곳은 밀집도가 아주 큰 한 덩어리의 흑색물질로 드러날 수 있다. 연마하여 진정하게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할 때에 가서는 기가 점차적으로 약간 누렇게 변한다. 더 계속 연마하여 정말로 병을 제거하게 되면 기가 없어져 유백체(?白體)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그럼 다시 말해서 기가 있다면 곧 병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연공인으로서 연공을 함에 누가 기를 가져서는 뭘하겠는가? 자신의 신체는 정화가 필요한 것인데 어찌 또 혼탁한 기를 가지겠는가! 긍정적으로 가질 수 없다. 기를 가지려는 사람은 역시 기의 층차 중에 있다. 기의 층차 중에서 그가 어느 것이 좋은 기이고 어느 것이 나쁜 기인지를 분별해 내지 못하며 그는 이런 재간이 없다. 그러나 그는 당신 신체의 단전(丹田) 속의 그 진짜 기를 건드릴 수 없다. 그 원기(元氣)는 높은 재주(功夫)를 가진 사람만이 비로소 건드릴 수 있는 것이다. 신체의 그 혼탁한 기를 그더러 훔쳐 가게 하라. 뭐 그리 대단한가. 나는 연공할 때에 기를 부어넣고자 하여 오로지 생각만 하면 잠시 후에 배가 다 부풀어오른다.

도가는 천자장(天字?) 서는 것을 이야기하고 불가는 봉기관정(捧氣灌頂)을 이야기한다. 우주 중에는 기가 얼마든지 있으므로 당신이 하루종일 안으로 부어넣어도 된다. 노궁혈(勞宮穴)이 열리고 백회혈(百會穴)이 열리면 당신은 안으로 부어넣을 수 있는데, 의념(意念)으로 단전을 지키고 손을 안으로 받쳐들어 한참이면 곧 가득 차게 된다. 당신이 더 가득 부어넣는다 하여 무슨 소용이 있는가? 어떤 사람은 기를 연마(練)하여 아주 많이 연마하였을 때에 손가락 장딴지가 부풀어 올라오고 신체가 부풀어 남을 느끼게 된다. 다른 사람이 곁에 가게 되면 주위에 하나의 마당이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이구, 당신이 연공(練功)을 정말로 잘 하였구만 라고 한다. 내가 말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어디 공이 있는가? 여전히 기를 연마(練)한 것으로서 기가 아무리 많다 해도 공을 대체할 수 없다. 기를 연마하는 목적은 바깥의 좋은 기로써 신체 속의 기를 바꾸는 것으로 신체를 정화하기 위한 것인데 기를 남겨 두어서는 뭘하는가? 당신이 이 층차 속에서 본질적인 변화를 발생하지 못하였을 때에 그것 역시 공이 아니다. 당신이 훔친 것이 아무리 많다 하여도 당신은 대기포(大氣包)에 불과한 것으로 그것은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것 역시 고에너지물질로 전화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당신은 두려워할 것이 무엇인가? 그가 정말로 훔치려 한다면 훔치게 하라.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의 신체에 기가 있다면 곧 병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훔칠 적에 당신의 병기도 함께 훔쳐 간 것이 아닌가? 그는 이것을 아예 분별해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기를 갖고자 하는 사람 역시 기의 이 층차 중에 있기 때문에 그는 아무런 재간도 없다. 공이 있는 사람은 기를 가지지 않는데 이것은 긍정적이다. 믿지 않으면 우리는 시험을 해보자. 정말로 기를 훔치려 한다면 당신은 거기에 서서 그더러 훔치게 하라. 당신은 이쪽에서 우주로부터 안으로 부어넣는다고 생각을 갖고 있는데 그는 뒤에서 훔치고 있다. 당신이 보라. 이것이 얼마나 좋은가. 당신을 대신하여 신체의 정화를 가속화하여 당신이 沖灌(충?) 沖灌(충?)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가 내보낸 마음이 나쁜 것이고 다른 사람의 것을 훔쳤기 때문이다. 비록 좋지 못한 것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 역시 德(덕)을 손상시키는 일을 한 것이기 때문에 그는 당신에게 德(덕)을 주게 된다. 그것은 하나의 대류(對流)를 형성하는데, 이쪽에서 당신의 기를 가져가고 저쪽에서는 당신에게 德(덕)을 준다. 그 기를 훔치는 사람은 모르고 있다. 그가 만일 안다면 그야말로 감히 하지 못할 것이다!

무릇 기를 훔치는 사람은 얼굴빛이 모두 검으며 다 이러하다. 공원에 가서 연공(練功)하는 많은 사람은 병을 제거하기 위함인데 어떤 병이든지 그에게 다 있다. 남은 병을 치료할 때에 또 밖으로 배출하게 되지만, 기를 훔치는 사람은 배출하는 것마저 그는 배출하지 않고 온 몸에 갖고 있어 어떤 병기(病氣)든 다 있으며 신체 속까지도 모두 꺼멓다. 그는 늘 德(덕)을 손상시켰기 때문에 그의 밖은 모두 꺼멓고 업력마당이 크며 德(덕)을 많이 손상시켜 안팎이 모두 검다. 만일 기를 훔친 사람, 그가 자신이 이런 일종의 변화를 발생하였고 남에게 德(덕)을 주고 있는 이런 일종의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음을 알았을 경우, 그는 정말로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기를 너무나도 허황하게 말한다. 당신이 미국에 있다 하여도, 내가 기를 내보내면 당신이 받을 수 있으며 당신이 담밖에 있어도 내가 내보내는 기를 당신이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아주 민감하여 기를 내보내기만 하면 받게 된다. 그러나 그 기, 그것이 이 공간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다른 공간으로 가는데 다른 공간의 여기에 담장이 없다. 그럼 왜 어떤 기공사가 평지에서 기를 내보내도 당신은 감각이 없는가? 다른 공간 여기에는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기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얼마나 큰 꿰뚫는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하게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여전히 공(功)이다. 연공인이 공을 내보낼 수 있을 때에 그는 이미 기가 없으며 내보내는 것은 일종 고에너지물질로서, 천목으로 보게 되면 일종의 빛이다. 다른 사람의 몸에 내보내게 되면 일종 몹시 뜨거운 감각이 있으며 직접 속인을 제약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완전히 병을 치료하는 목적에는 도달할 수 없으며 다만 억제 작용을 일으킬 뿐이다. 정말로 병을 잘 치료하려고 생각한다면 또 공능이 존재하고 있어야 하며 각종 병은 각종 공능이 대처하고 있다. 극히 미시적인 아래에서 공의 개개 미립자에는 모두 당신 개인의 형상과 똑 같은 것이다. 그는 사람을 알아볼 수 있으며 모두 영성(靈性)이 있는 것으로서 고에너지물질이다. 다른 사람이 훔쳐간다면 그것이 거기에 있을 수 있는가? 그것도 거기에 있지 않으며 놓아도 놓여지지 않음은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릇 진정하게 연공하는 사람, 공이 나온 후의 사람은 모두 사부가 단속하고 있다. 그 사부는 당신이 거기에서 뭘하고 있는가를 지켜보고 있는데, 남의 것을 가져간다면 그의 사부도 가만있지 않는다.

기를 채집

기를 훔치는 것과 기를 채집하는 것은 모두 우리가 고층차에서 공을 전수함에 여러분에게 해결해 주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또 이런 하나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수련에 이름을 바로잡아 주며 좋은 일을 좀 하련다. 이런 좋지 못한 현상을 말하려는데 예전에는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것을 알게끔 하며 일부 사람들이 늘 나쁜 일을 하던 것을 하지 못하게 하고, 기공의 진상을 똑똑히 모르는 일부 사람들에 대하여 늘 말만 들어도 얼굴빛이 변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우주의 기는 얼마든지 있다. 어떤 사람은 천양지기(天陽之氣), 지음지기(地陰之氣)라고 말한다. 당신도 우주 중의 한 분자로써 당신이 마음껏 채집해도 좋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우주 중의 기를 채집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전문적으로 식물의 기를 채집하라고 사람을 가르치며 경험까지도 총괄해냈다. 즉 백양나무의 기는 흰 것이고 소나무의 기는 누런 것이며 또한 어떻게 어떻게 채집하며 어느 어느 시간에 채집해야 한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내집 문 앞에 나무가 있었는데 내가 기를 채집하여 그것을 죽여버렸다고 한다. 그것이 무슨 재간인가? 그것은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여러분 알다시피 우리 진정한 수련은 양성(良性)적인 정보를 강조하며 우주특성에 동화됨을 강구하는 것으로서 당신은 착해야 하는 문제를 강조해야 되지 않는가? 眞ㆍ善ㆍ忍 우주특성에 동화되므로 이 착한 것을 강조해야 한다. 당신이 내내 나쁜 짓만 기껏 하여 공이 자랄 수 있는가? 병을 제거할 수 있는가? 그건 우리 수련인과 마침 상반되는 것이 아닌가? 그 역시 살생이며 나쁜 짓을 하는 것이다! 아마 어떤 사람은 말할 것이다. 당신은 이야기할수록 더욱 허황하구만. 동물을 죽여도 살생이고 식물을 죽이는 것 또한 살생이라고 하다니. 사실 이러하다. 불교에서는 육도윤회를 이야기하는데 당신은 가능하게 육도윤회 중에서 식물로 변할 수 있는바, 불교에서는 바로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우리 여기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나무도 생명이 있는 것이며 생명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아주 높은 사유활동을 구비하고 있다.

예를 하나 들겠다. 미국에 전문적으로 전자연구를 하는 한 사람이 사람들에게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하도록 가르쳤다. 어느 하루 그는 어떤 생각이 문뜩 떠올라 거짓말탐지기의 양극을 한 그루의 우설란(牛舌蘭) 꽃에 이어 놓았다. 그런 후에 꽃의 뿌리 부분에 물을 주었다. 그 다음 그는 거짓말탐지기의 전자필이 급속히 일종 곡선을 그려내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런 곡선은 바로 사람의 대뇌가 극히 짧은 시간 내에 생기는 일종의 흥분하고도 기쁠 때의 곡선과 같았다. 그는 당시에 깜짝 놀랐다. 식물이 어떻게 감정이 있단 말인가! 그는, 식물은 감정이 있는 것이다 라고 하마터면 거리에 나가 외칠 번하였다. 이 일의 계발을 받아 그는 잇따라 이 면의 연구를 벌리게 되었으며 많고 많은 실험을 하였다.

한번은 그가 두 그루의 식물을 함께 나란히 놓고 그의 학생더러 그중 다른 한 그루의 식물 앞에서 이 한 그루의 식물을 마구 짓밟아 죽여버리게 했다. 그런 후 다른 한 그루의 식물을 방안에 옮겨놓고는 거짓말탐지기에 이어 놓은 다음, 그의 5명 학생을 밖에서부터 윤번으로 걸어 들어오게 하였다. 앞의 네 명의 학생이 들어왔으나 반응이 없었다. 다섯 번째 학생, 식물을 짓밟은 학생이 들어오자 아직 앞에까지 걸어오지 않았는데도 전자필은 즉시 급속하게 일종의 곡선을 그려냈는데 사람이 겁날 때야만 그려낼 수 있는 이런 곡선이었다. 그는 깜짝 놀랐다! 이 일은 아주 큰 하나의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여태까지 사람은 고급생명이며 사람은 감각기관 공능이 있고 능히 식별하며 대뇌가 있으므로 분석할 수 있다고 인정하였다. 식물이 어찌 식별할 수 있는가, 이렇다면 감각기관이 있는 것이 아닌가? 예전에 누가 만일 식물에 감각기관이 있고 사유가 있으며 감정이 있어 사람을 알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면, 남들은 곧 미신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여기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어떤 면에는 마치 우리 오늘의 사람을 초월한 듯 싶다.

어느 날 그는 거짓말탐지기를 한 그루의 식물에 이어 놓은 다음, 그는 생각하였다. 어떤 시험을 할까? 나는 불로 그의 잎사귀를 태워서 어떤 반응이 있는가를 보자. 그가 이렇게 생각하고 아직 불을 붙이기도 전에 그 전자필은 급속히 하나의 곡선을 그려냈는데 바로 사람이 목숨을 살려달라고 외칠 때야만 비로소 그려낼 수 있는 일종 곡선이었다. 이런 초감각 공능을 과거에 타심통(他心通)이라고 불렀는데 사람의 잠재적인 능력, 본능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인류는 모두 퇴화되고 있어 당신 역시 다시금 수련해서 반본귀진하여 당신의 선천적 본성에로 되돌아가야만 당신은 비로소 구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구비하고 있으며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그는 알고 있는데 듣기에는 아주 허황하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확실하고도 확실한 과학실험이었다. 그는 여러 가지 실험을 하였는데 또 먼 거리 원격조종 공능도 있었다. 그의 논문이 발표된 후, 전 세계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각 나라의 식물학자들은 모두 이 면의 연구를 벌리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하고 있으며 이는 이미 무슨 미신적인 것이 아니다. 나는 그 날 이런 한 마디 말을 하였다. 우리 인류가 오늘날 발생되었고 발명하였으며 발견한 그러한 것은 우리의 오늘날 교과서를 넉넉히 고칠 수 있다. 그러나 도리어 전통관념의 영향을 받아 사람들은 그것을 승인하기를 원치 않으며 또 이런 것을 계통적으로 정리하는 사람이 없다.

내가 동북의 어느 공원에서 한 소나무 숲이 죽어버린 것을 보았다. 일부 사람은 무엇을 연마(練)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땅에서 뒹굴고 뒹군 다음에는 발로 이렇게 채집하고 손으로 그렇게 채집하여, 그 소나무 숲은 오래지 않아 누렇게 되었고 다 죽어버렸다. 그럼 당신은 좋은 일을 한 것인가 아니면 나쁜 일을 한 것인가? 우리 연공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은 바로 살생이다. 당신이 연공인이라면 당신은 하나의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점차적으로 우주특성에 동화하여 당신의 그런 좋지 않은 것을 끊어버려야 한다. 그것을 만일 속인의 입장에서 본다 하여도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닌바, 공공재물을 파괴하고 녹화(綠化)를 파괴하며 생태평형을 파괴하는 것으로, 어느 입장에 서서 이야기하던 지간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 중에는 기가 얼마든지 있으므로 당신이 마음껏 채집해도 좋다. 어떤 사람은 에너지가 아주 커서 일정한 층차에로 연마된 후에 그는 정말로 손을 한번 휘젓기만 하면 아주 큰 한 일대의 식물의 기를 단번에 채집하여 온다. 그것 역시 기에 불과하므로 더 많이 채집한다 한들 어떻단 말인가? 어떤 사람은 공원에 가서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연공(練功)할 필요가 없이 이렇게 걸어가면서 마구 거둬들이기만 하면 연마가 끝난다고 한다. 기를 얻으면 된다고 하는데 그는 기가 바로 공이라고 여기고 있다. 남이 그의 곁에 가면 그의 신체가 차가운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식물의 기는 음성(陰性)의 것이 아닌가? 연공인(煉功人)은 또 음양평형을 이야기하는데 그의 몸에는 온통 송진 냄새이지만 그래도 자신이 연마(練)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누가 연공하면 누가 공을 얻는다

누가 연공하면 누가 공을 얻는 문제는 하나의 극히 관건적인 문제이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法輪大法(법륜대법)은무슨 좋은 점이 있는가 라고 물으면, 나는 法輪大法(법륜대법)은공이 사람을 연마시킴에 도달할 수 있으며 연공시간을 단축하고 시간이 없어 연공하지 못하지만 장기적으로 공에 의하여 연마되는, 이러한 하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동시에 우리는 또 진정한 성명쌍수의 공법으로서, 우리 이 물질적 신체의 변화는 아주 클 수 있다. 法輪大法(법륜대법)은또 하나 최대의 좋은 점이 있다. 예전에 나는 줄곧 이야기한 적이 없으며 오늘날에 와서야 우리가 비로소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의 아주 큰 역사연원(歷史淵源)의 문제에 연관되며 수련계에 대하여 영향 주는 면도 역시 무척 크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여태껏 감히 게시해 내는 사람이 없었고 그들이 게시함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야기하지 않으면 또 안 된다.

어떤 제자는, 李洪志대사님이 하신 이야기의 한마디 한마디가 천기(天機)이며, 천기를 누설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하게 고층차에로 사람을 이끌며 곧바로 사람을 제도하고 있다. 여러분에 대하여 책임을 지며 능히 이 책임을 감당하여 낼 수 있다. 천기를 누설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책임지지 않고 함부로 말함은 천기를 누설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 문제를 말하는데, 바로 누가 공을 연마하면 누가 공을 얻는 문제이다. 내가 본데 의하면 현재의 모든 공법, 역대의 불도(佛道) 양가(兩家)와 기문공법(奇門功法)을 포함하여 모두 사람의 副元神(부원신)[f우 왠선(副意識(f우 이스}를 수련시켰으며 모두 副元神(부원신)이 공을 얻었다. 우리가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主元神(주원신)은 바로 자신의 사유를 가리키는 즉, 자신이 자기가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똑똑히 알아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당신의 진정한 자신이다. 副元神(부원신)이 무엇을 하든지 당신은 아예 모른다. 비록 그와 당신이 동시에 태어났고 하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의 신체를 주재(主宰)하며 생김새도 같지만 엄격하게 말하여 그는 아직 당신이 아니다.

이 우주 중에는 누가 잃으면 누가 얻고 누가 수련하면 누가 공을 얻는다는 하나의 이치가 있다. 역대의 공법은 모두 사람이 연공할 때에 흐리멍덩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며 그런 다음 깊이 입정(入定)하여 마지막에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를 때까지 定(띵)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어떤 사람은 가부좌를 3시간 하는데 마치 한 순간과도 같아 남들은 또 그의 입정력(定力)을 탄복하고 있다. 사실 그가 연마하였는가 하지 않았는가? 자신은 전혀 모르고 있다. 특히 도가공법 중에서는 식신(識神)은 죽고 元神(원신)이 산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식신(識神)을 우리는 主元神(주원신)이라고 하며 그가 말하는 元神(원신)을 우리는 副元神(부원신)이라고 한다. 당신이 정말로 식신(識神)이 죽었다면 그럼 당신은 정말로 죽어버린 것이고 主元神(주원신)이 정말로 없어진 것이다. 기타 공법을 연마했던 사람이 스승님, 저가 연공할 때에 나는 저의 집사람들을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겠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나에게 나는 다른 사람처럼 그렇게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연공하지 않는다. 내가 집에 돌아가 소파에 눕기만 하면 나 자신은 나가서 연공을 하는데 나는 누워서 그가 연공하는 것을 보기만 한다고 알려주었다. 내 생각에는 아주 슬프다. 하지만 또 슬프지도 않다!

남들은 왜 副元神(부원신)을 제도하는가? 여동빈(呂洞賓)은, 동물을 제도할지언정 사람을 제도하지 않는다는 한 마디 말이 있다. 사람은 참말로 깨닫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속인은 속인사회에 미혹되어 현실이익 앞에서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어떤 사람은 강의를 다 듣고 예당(禮堂)을 나오게 되면 바로 속인으로 변하며 누가 만약 그를 건드리거나 그를 다치게 되면 그는 가만있지 않는다. 일단락 시간이 지난 후에는 아예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도를 닦는 많은 사람들은 이 한 점을 보아냈다. 사람을 제도하기란 아주 어렵다. 바로 사람의 主元神(주원신)이 너무나도 미혹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오성(悟性)이 좋아 한 번 귀띔만 하면 깨닫는다. 일부 사람은 어떻게 이야기해 주어도 그는 다 믿지 않으며 그는 당신이 큰소리만 친다고 여기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그더러 心性(심성)을 수련하라고 하지만 그는 속인 중에 가기만 하면 여전히 제멋대로 이다. 그는 속인 중의 그 확실하고도 확실하며, 만질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요만한 이익이 아직도 실용적이므로, 아직도 이것을 가져야 하겠다고 여긴다. 스승님이 강의하신 법은 들으면 역시 이치가 있다. 하지만 해낼 수 없다고 한다. 사람의 主元神(주원신)은 제도하기가 가장 어렵지만 副元神(부원신)인 그는 다른 공간의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남들은, 내가 하필 당신의 主元神(주원신)을 제도할 필요가 뭔가, 그 역시 당신인데 내가 그를 제도해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모두 당신이므로 누가 얻어도 얻는 것이 아닌가. 모두 당신이 얻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의 구체적인 수련방법을 이야기하겠다. 사람이 만약 요시공능(遙視功能)이 있다면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 당신이 가부좌하여 당신이 定(띵)해지는 이 순간에 '훅'하고 당신의 신체 속으로부터 당신과 생김새가 똑같은 하나의 당신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당신은 한 번 분별해 보라. 당신의 자아가 어디에 있는가를? 여기에 앉아 있다. 당신은 그가 나간 후에 사부가 그를 데리고 사부가 연화(演化)해 낸 하나의 공간 속에서 수련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아마 과거의 사회형식일 수도 있으며, 아마 현재의 사회형식일 수도 있는가 하면, 아마 다른 공간의 사회형식일수도 있다. 그에게 연공을 가르치어 그는 고생을 적지 않게 겪는데 매일 한, 두시간 씩이다. 남이 연공이 끝나서 돌아오게 되면 당신도 출정(出定)되는데 이것은 능히 보아낼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볼 수 없다면 더욱 슬픈 것으로서 아무것도 모르며 얼떨떨하게 두 시간 定(띵)하였다가 출정한다. 어떤 사람은 자는데 한 번 잠이 들면 두, 세 시간이라, 그도 공의 연마를 끝냈다고 인정하지만 완전히 남에게 맡겼다. 이것은 간접적으로 완성한 셈인데 매일 가부좌를 이렇게 긴 시간 한다. 또 일차적으로 완성하는 것이 있다. 여러분은 아마 달마(達摩)가 벽을 마주하고 9년이나 있은 것을 들었을 것이다. 과거에 많은 승려는 한 번 앉으면 몇십 년이라 역사적인 기재에서 가장 긴 것은 90여 년이나 된다. 아직 더 긴 경우도 있어 눈까풀 위의 먼지도 아주 두툼하고 몸에 풀까지 자라났어도 여전히 거기에 앉아 있었다. 도가 역시 이것을 이야기하는데 특히 일부 기문(奇門)공법에서는 잠자는 것을 이야기하며 한 번 잠들면 몇십 년 동안 출정(出定)하지 않고 깨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누가 연마하였는가? 그의 副元神(부원신)이 가서 연마하였다. 만약 그가 능히 볼 수 있다면 사부가 副元神(부원신)을 데리고 연마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副元神(부원신) 역시 아주 큰 업력을 빚질 수 있으며 사부는 업력을 전부 없애 버릴 재간이 없다. 그러므로 그에게 알려주기를, 자네는 여기에서 연공을 잘하도록 하라. 내가 한 번 나갔다가 한참 후에 올 테니까, 자네는 날 기다리도록 하라고 한다.

사부는 어떠한 일이 나타날지를 똑똑히 알고 있으나 역시 이렇게 해야만 된다. 결국 마(魔)가 와서 그를 위협하고 미녀로 변하여 그를 유인하며 어떠한 일이든 다 있다. 보니 그가 정말로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副元神(부원신)은 수련하기가 비교적 쉬우며 그가 능히 이 진상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마(魔)는 화가 나면 그를 죽이려 한다. 한을 풀고 복수를 하기 위하여 정말로 그를 죽여버리는데 이렇게 되어 빚을 전부 갚아버리게 된다. 살해된 후, 副元神(부원신)은 가물가물하게 마치 한 가닥의 연기처럼 나왔다. 또 전생(轉生)하게 되었으며 매우 가난한 한 집에 탁생(托生)하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고생을 겪으며 자라서 철이 들 때 사부가 왔으나 그는 알아보지 못한다. 사부는 공능으로 그가 저장하여 두었던 사유를 열어놓아 단번에 생각났다. 이는 사부님이 아닌가? 사부는 그에게 알려준다. 지금은 됐다. 수련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여러 해를 거쳐서 사부는 그것을 그에게 전수해 주었다.

전수가 끝난 다음 사부는 또 그에게, 자네는 많은 집착심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자네는 나가서 행각을 하게나 라고 알려준다. 행각은 무척 고생스러운 것으로, 사회에서 다녀야 하기 때문에 동냥을 해야 하며 각종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를 비웃고 그를 모욕하며 그를 업신여기므로 어떠한 일이든 다 부딪힐 수 있다. 그는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하여 사람과의 관계를 바로잡으며 心性(심성)을 지키고 끊임없이 心性(심성)을 높이어 속인의 각종 이익의 유혹에서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여러 해를 거쳐 그는 행각하고 돌아왔다. 사부가, 자네는 이미 도를 얻었고 원만(圓滿)하였다, 다른 일이 없으니 자네는 돌아가 갈 준비나 하도록 하라. 만일 어떤 일이 있다면 자네는 속인 중에서의 일을 끝마치도록 하라고 말하였다. 이렇게 여러 해 후에 副意識이 돌아왔다. 그가 돌아오자 이쪽의 그의 主元神(주원신) 역시 定(띵)에서 나오게 되어 主意識이 잠을 깨게 된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수련하지 않았으며 타인인 副元神(부원신)이 수련하였으므로 副元神(부원신)이 공을 얻었다. 하지만 主元神(주원신)인 그도 고달픈 것으로 필경 그는 온 청춘을 다 거기에 앉아 있었으며 속인의 세월이 전부 지나가 버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그가 출정(出定)하여서는 자신이 공을 연마해냈으며 공능이 있다고 여긴다. 그가 병치료를 하려 하며 무엇을 하려고 생각하게 되면 능히 할 수 있는데 副元神(부원신)이 그를 만족시킨다. 왜냐하면 그가 필경은 主元神(주원신)이며 主元神(주원신)이 신체를 주재(主宰)하고 마음대로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여러 해 동안 그가 여기에 앉아서 일생이 다 지나가게 되었다. 백년이 된 후에 副元神(부원신)은 가게 되며 각기 제 갈 길을 간다. 불교의 말에 따르면 그는 여전히 육도(六道)에 들어가야 한다. 그의 몸에서 하나의 대각자를 수련해내었으므로 그 역시 큰 德(덕)을 쌓은 셈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마 내세(來世)에서 큰 벼슬을 하거나 큰 부자가 된다. 다만 이럴 뿐인데 그렇다면 헛되게 수련한 것이 아닌가?

이런 일을 우리가 내놓고 이야기하게 된 것도 역시 아주 많은 곡절을 거쳐서야 이야기함에 동의하였다. 나는 하나의 천고의 수수께끼를 게시하였는데 절대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비밀 중의 비밀로서, 역대로 수련하는 각종 수련방법의 밑뿌리마저 게시해 냈다. 내가 역사적인 연원(淵源)이 아주 깊게 연관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바로 이러한 원인이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어느 가(家), 어느 문(門)이든 이렇게 수련하지 않는가? 당신 자신이 수련하고 수련하여 당신이 공이 없다면 당신은 슬프지 않은가! 그것을 또 누굴 원망할 수 있는가? 사람은 바로 그렇게 미혹되고 좀처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어떻게 일깨워 주어도 다 안 된다. 높이 말하면 듣기에 허황하고 낮게 말하면 깨닫지를 못한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여도 어떤 사람은 아직도 나보고 그에게 병을 치료해 달라고 하는데, 나는 정말로 그에게 무엇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우리는 수련을 이야기하고 고층차에서의 수련만을 책임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이 한 법문은 主意識이 공을 얻는다. 그럼 당신이 主意識이 공을 얻는다고 말하면 主意識이 공을 얻는가? 누가 허용하는가? 이렇지 않다. 그것은 반드시 선결조건이 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우리 이 한 법문은 속인사회를 피하여 수련하지 않으며 모순을 피하지 않고 벗어나지도 않는가 하면, 속인의 이 복잡한 환경 속에서 당신은 또렷한 정신으로 이익문제에서 명백하고도 명백하게 손해를 보며,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절취 당할 때에 당신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다투고 싸우지 않는가 하면, 각종 心性(심성)의 교란 속에서 당신이 손해를 본다. 당신이 이런 간고한 환경 속에서 당신의 의지를 단련(磨煉)하고 당신의 心性(심성)을 높이어 당신은 속인의 각종 좋지 않은 사상 영향에서 능히 초탈하여 나올 수 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명백하고도 명백하게 고생을 겪는 것은 당신이 아닌가.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당신의 主元神(주원신)이 아닌가. 속인 중에서 당신이 잃는 것은 당신이 명백하고도 명백하게 잃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공은 곧 마땅히 당신이 얻어야 하며 누가 잃으면 누가 얻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왜 우리 이 한 법문이 속인의 이 복잡한 환경을 이탈하지 않고 수련을 진행하는가 하는 원인이다. 왜 우리는 속인의 모순 속에서 수련하는가? 바로 우리가 자신이 공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장래에 전업으로 수련하는 제자가 절에서 수련하자면 속인 중에 가서 행각해야 한다.

일부 사람은, 현재 다른 공법도 속인 중에서 연마하고 있지 않는가? 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모두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함을 보급하는 것으로서 진정하게 고층차에로의 수련은 단독전수 외에 공개적으로 전하는 사람이 없다. 진정하게 제자를 이끄는 건 이미 제자를 모두 데리고 갔고 암암리에 전하고 있다. 이 여러 해에 어디 대중이 모인 공개장소에서 이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있는가?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 우리 이 한 법문은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일종의 수련방법이며 바로 이렇게 공을 얻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 이 한 문(門)이 넣어 준, 수천 수만도 넘는 것을 전부 당신의 主元神(주원신)에게 넣어주었는데, 진정하게 당신 자신으로 하여금 공을 얻게 한다. 내가 말한다면, 나는 전인들이 여태껏 하지 못하였던 한가지 일을 하였으며 가장 큰문을 열어놓았다. 나의 이 말을 어떤 사람은 알아듣는데 나는 정말로 허황한 말을 하지 않았다. 나 이 사람은 하나의 관습이 있는바, 나에게 한 장(一丈)이 있다면 나는 한 자라고 말하는데, 당신이 나를 불어 댄다고 말해도 다 좋다. 사실 이것은 다만 조금 말했을 뿐이며, 더욱 높고 깊은 대법은 층차가 너무나도 엄청나게 차이가 있으므로, 나는 전혀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이야기해 줄 수 없다.

우리 이 한 법문은 바로 이렇게 수련하는 것으로, 당신 자신으로 하여금 진정하게 공을 얻게끔 하는데, 이는 천지개벽이래 처음인바, 당신은 역사를 찾아볼 수 있다. 다행히도 좋은 것은 당신 자신이 공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 아주 어렵다. 속인의 복잡한 환경 속에서, 사람과 사람의 心性(심성)마찰 속에서 당신이 능히 남달리 뛰어날 수 있다면, 이는 가장 어려운 것이다. 어렵고도 어려운 것은 바로 당신이 속인의 이익 속에서 명백하고도 명백하게 손해를 보며 절실한 이익 앞에서 당신이 마음을 움직이는가 움직이지 않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귀다툼 속에서 당신이 마음을 움직이는가 움직이지 않는가, 친척과 친우가 고통을 겪을 때에 당신이 마음을 움직이는가 움직이지 않는가, 당신은 어떻게 가늠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일개 연공인으로서 바로 이처럼 어렵다! 한 사람이 나에게, 스승님, 속인 속에서 좋은 사람이 되면 되는 것이지요, 누가 능히 수련하여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하였다. 나는 듣고 정말로 상심했다! 그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떠한 心性(심성)이든 다 있는데 그가 능히 얼마나 높이 깨달으면 곧 얼마나 높이 깨닫고 누가 깨달으면 누가 얻기 마련이다.

노자는 말하기를, 도(道)를 도(道)라고 할 수 있되, 비상도(非常道)로다 라고 하였다. 그것이 만약 온 땅바닥에 다 가득하여 줍기만 하여 수련된다면 그 역시 진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이 법문은 모순 속에서 당신 자신이 공을 얻게 하기 때문에, 우리는 최대 한도로 속인에 부합되어야 하며 물질적으로부터 또 당신더러 진정하게 무엇을 잃으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물질환경 속에서 당신은 오히려 당신의 心性(심성)을 높여야 한다. 편리하다면 바로 이곳에 편리하며 우리 이 한 법문이 가장 편리한 것으로, 속인 속에서 수련할 수 있으며 출가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가장 어려운 것 역시 이곳에 어려운 것으로, 속인이란 이 가장 복잡한 환경 속에서 수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 역시 이곳에 좋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당신 자신더러 공을 얻게 하는바 이것이 바로 우리 이 한 문의 가장 관건인 것으로, 오늘 내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하였다. 물론 主元神(주원신)이 공을 얻게 되면 副元神(부원신)도 공을 얻게 된다. 무엇 때문인가? 당신 신체의 일체 정보, 일체 영체(靈體)와 당신의 세포는 모두 공이 자라고 있는데 물론 그 역시 공이 자라게 된다. 그러나 어느 때 가서든지 그는 다 당신보다 높지 못하며 당신이 주인이고 그는 호법(護法)이다.

여기까지 말한 김에 나는 또 한마디 말하겠다. 우리 수련계에는 이러한 사람이 적지 않은데 줄곧 고층차에로 수련하려고 생각한다. 곳곳에 다니며 법을 구하고자 돈도 적지 않게 썼으며 동남서북으로 한 바퀴 돌아 유명한 사부를 찾았지만 찾지 못하였다. 유명하다는 명(名)은 진정하게 명백하다는 명(明)이 아닐 수도 있다. 결국은 헛수고로 왕복하며 돈을 팔고 사람이 고달팠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 우리는 오늘 당신에게 내놓았고 나는 이미 당신에게 받쳐 주었고 당신의 집문 앞까지 가져다주었다. 이제 곧 당신이 능히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가, 능히 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렸다. 당신이 만약 능히 된다면 당신은 수련하고 당신이 만약 안되어 당신이 수련하지 못하겠으면 이후부터 당신은 수련할 생각을 다시 하지도 말라. 마(魔)가 당신을 속이는 외에 당신을 가르칠 사람이 없는바, 이후에 당신은 수련하지 말라. 내가 만일 당신을 제도하지 못한다면 누구도 당신을 제도하지 못한다. 사실 현재 진정한 정법사부를 찾아 당신이 가르침을 받으려면 하늘에 오르기만도 더욱 어려운데 상관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 말법시기라, 아주 높은 층차마저도 말겁 중에 있는데 속인은 더욱 상관할 수 없다. 이는 가장 편리한 하나의 법문이다. 아울러 우주특성에 따라 직접 연마하고 있으며 수련함이 가장 빠르고 가장 빠른 방도이며,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 것(直指人心) 이다.

주천(周天)

도가에서 대소주천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는 무엇이 주천인가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주천은 임독(任督) 두 맥을 이어 놓는 것이다. 이 주천은 피모주천(皮毛周天)으로 아무것으로도 칠 수 없으며 다만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할 따름이다. 이것을 소주천(小周天)이라고 한다. 또 일종 주천이 있다. 그것을 소주천이라고도 하지 않고 또 대주천(大周天)이라고도 하지 않는데, 선정(禪定) 중에서 수련하는 일종 주천(周天)형식이다. 그는 신체 안으로부터, 니환(泥丸)으로부터 한 바퀴 돌고는 내려와서 신체 안으로부터 단전(丹田)에 이르러 한 바퀴 돌고는 올라와 내재적으로 순환하는데, 그것이 진정한 선정 중에서 수련하는 주천이다. 이런 주천이 형성된 다음에 또 하나의 아주 강한 에너지흐름을 형성할 수도 있다. 그런 다음, 일맥이 백맥을 이끌어 다른 맥을 다 이끌어 내게 된다. 도가는 주천을 이야기하지만 불가는 주천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불교는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석가모니는 그의 법을 전할 때에 공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공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의 공법도 그의 수련연화(修煉演化)형식이 있었다. 불교의 맥은 어떻게 가고 있는가? 백회혈로부터 시작하여 이 한 점에서 완전히 열린 다음에 나선식으로 머리꼭지로부터 몸 아래로 향하여 발전하며 최후에는 이런 형식으로 백맥을 이끌어 연다.

밀종(密宗)의 중맥(中脈) 역시 이 목적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중맥이 없다고 한다. 그럼 왜 밀종은 중맥을 수련해 낼 수 있는가? 사실 사람 신체의 모든 맥을 다 합치면 만여 갈래도 더 넘는다. 마치 혈관처럼 가로 세로 교차되었으며 혈관보다도 더 많다. 내장의 틈새부분에는 혈관이 없지만 오히려 맥이 있다. 머리꼭지로부터 신체의 각개 부위 역시 가로 세로 교차된 맥락이다. 그것들을 연결시켜 놓자면 시작할 때에는 아마 곧지 않을 것이며 이어 놓아 통하게 한다. 그런 다음 점차적으로 넓히어 차츰 한 갈래의 곧은 맥을 형성하게 된다. 이 맥을 축으로 하여 자전(自轉)하며 그의 수평으로 도는 의념 중의 몇 개 바퀴를 이끄는데, 목적은 역시 신체의 모든 맥을 전부 이끌어 열려는 것이다.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의 수련은 일맥이 백맥을 이끄는 이런 형식을 피하고 시작부터 백맥을 이끌어 동시에 열며 백맥을 동시에 운행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단번에 아주 높은 층차에서 연마하며 아주 낮은 것을 피한다. 일맥이 백맥을 이끔을, 당신이 그것을 전부 이끌어 열려고 한다면 어떤 사람은 일생토록 연마하여도 여전히 힘겨우며 어떤 사람은 몇십 년을 수련해야 하는바 아주 어렵다. 아주 많은 공법에서는 일세(一世)에 수련될 수 없다고 하며, 허다한 높고 깊은 대법 중에서 수련하는 사람은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는 명(命)을 닦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가? 수명을 연장하여 수련하므로 수련을 하면 아주 오랜 시간을 수련할 수 있다.

소주천은 기본적으로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것이지만 대주천은 연공으로서 바로 사람의 진정한 수련이다. 도가에서 가리키는 대주천은 우리처럼 이렇게 맹렬하여 백맥을 전부 열어 놓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 몇 갈래 맥의 운행으로서, 손의 3음3양(三陰三陽)과 발바닥, 두 다리에서 줄곧 머리카락과 신체를 다 한 번 도는바, 이것을 바로 대주천순환이라고 한다. 대주천이 시작되면 곧 진정한 연공이기 때문에 어떤 기공사는 대주천에 대하여 전하지 않으며 그가 전하는 것은 바로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것들이다. 일부 사람도 대주천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는 당신에게 그런 것을 넣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 스스로도 열지 못한다. 그런 것들을 넣어 주지 않았고 자신의 의념에 의하여 열려고 생각하지만 어찌 말처럼 쉽겠는가! 마치 체조를 하는 것과 같은데 그것을 열리게 할 수 있는가?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님에게 달렸기 때문에, 내재적인 이 '기제(機製)'를 당신에게 전부 넣어주어야만 이러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도가는 역대로 인체를 하나의 소우주로 여기고 있다. 그는 우주의 바깥이 얼마나 크면 안이 얼마나 크고, 밖이 무슨 모양이면 안도 무슨 모양이라고 인정한다. 이것을 이야기하게 되면 마치 불가사의한 것과도 같아 그리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 우주가 이렇게 큰데 어찌 사람의 신체와 비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런 하나의 이치를 이야기하겠다. 우리 현재의 물리학에서 물질성분을 연구함에 있어서 분자·원자·전자·질자·쿼크로부터 줄곧 중성미자에 이르기까지 더 아래로 내려가면 얼마나 큰가? 그 지경에 도달하면 현미경도 이미 보아내지 못하며 더 아래로 내려가 극히 작은 미립자는 무엇인가? 모른다. 사실 우리 현재의 물리학에서 인식된 이 한 점은 이 우주 중의 가장 미소한 미립자와 비교할 경우, 차이가 너무나도 멀다. 사람이 육신이 없을 때에는 사람의 눈이 물건을 볼 경우에 일종 확대하는 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며 미시적인 것을 보아낼 수 있다. 층차가 더욱 높을수록 미시적인 아래에서 보게 되는 것이 더욱 크다.

석가모니는 그런 하나의 층차에서 그는 3천 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학설을 이야기하였다. 즉 말하여 이 은하계 중에 또 우리 인류처럼 이러한 색신(色身)이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 한 알의 모래알에 3천 대천세계를 포함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우리 현대 물리학의 인식과 서로 맞물리고 있다. 전자가 원자핵을 에워싸고 돌아가는 형식과 지구가 태양을 에워싸고 돌아감이 뭐가 다른가? 그러므로 석가모니는 미시적인 아래에서 한 알의 모래알에 3천 대천세계가 있는데 그것은 마치 하나의 우주와도 같이 안에는 생명이 있고 물질이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만약 정말이라고 한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그 모래 안의 세계 속에 또 모래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럼 그 모래 속의 모래 속에는 또 3천 대천세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모래 속의 모래 속에서의 3천 대천세계에 또 모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아래로 캐어 내려가면 무궁무진하다. 그러므로 석가모니는 여래의 이러한 하나의 층차에 도달하였지만 그는 오히려 이런 한 마디의 이야기를 하였다. "크기로는 밖이 없고 작기로는 안이 없다." 크다면 우주의 변두리를 보아내지 못하며 작다면 그의 본원 물질의 가장 미소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아내지 못한다.

어떤 기공사는 땀구멍 속에 도시가 있는데 그 속에서 기차가 달리고 자동차가 달린다고 말한다. 듣기에는 아주 허황하지만, 우리가 과학의 각도에 입각하여 진정하게 이해하며 연구를 하게 되면 이런 이야기가 그리 허황하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날 내가 천목 열기를 이야기할 때에 많은 사람은 천목이 열리면 이러한 광경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그는 그의 앞이마 이 한 통로를 따라 밖으로 내달리는데 영원히 끝까지 뛰어갈 수 없는 것 같다. 매일 연공할 때 모두 이 한 갈래 큰길로부터 밖으로 내달리는데 양쪽에는 산이 있고 물이 있으며 뛸 때에 또 도시를 지나게 되며 또한 많고 많은 사람을 보게 된다. 그는 이것을 환각이라고 여긴다. 어찌된 영문인가? 아주 똑똑히 보게 된 것이지 환각이 아니다. 내가 이야기한다면 만약 사람의 신체가 정말로 미시적인 아래에서 그렇게 웅대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환각이 아니다. 도가의 연공에서는 역대로 인체를 하나의 우주로 여기기 때문에 만약 정말로 하나의 우주라면 앞이마로부터 송과체에 이르기까지 10만 8천리도 넘을 것인 즉, 당신이 밖으로 돌진하여 보라. 아주 멀다.

만약 수련 과정 중에서 대주천(大周天)을 전부 열리게 한 후라면, 수련자에게 일종 공능을 가져다줄 수 있다. 무슨 공능인가? 여러분 알다시피 대주천을 자오주천(子午周天)이라고도 부르며 또 건곤운행(乾坤運轉)이라고도 부르는가 하면, 하차운행(河車運轉)이라고도 부른다. 매우 옅은 층차 중에서 대주천의 운행은 하나의 에너지의 흐름을 형성하는데 그것이 점차적으로 밀도를 가하여 더욱 높은 층차에로 전화할 수 있으며 밀도가 아주 큰 하나의 에너지띠(能量帶)로 변할 수 있다. 이 에너지띠는 그것이 운행하고 있으며 운행하는 과정에 우리가 아주 옅은 층차에서 천목으로 보게 되면, 그것이 신체 속의 기(氣)로 하여금 위치를 바꾸게 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심장의 기가 창자에로 가는가 하면, 간의 기가 위로 간다 ?… 만약 미시적인 아래에서 그가 운반하는 것이 아주 큰 것임을 보아 낼 수 있다. 만약 이 에너지띠를 체외로 내보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운반공(搬運功)이다. 공이 아주 강한 사람은 아주 큰 물건을 운반할 수 있는데 바로 대운반이다. 공이 아주 약한 사람은 아주 작은 물건을 운반할 수 있는데 바로 소운반이다. 이것이 바로 운반공의 형식과 그것의 생성(生成)이다.

대주천은 곧 직접 연공하는 것으로 부동한 상태와 공의 형식을 가져올 수 있으며 그 역시 우리에게 하나의 매우 특수한 상태를 가져올 수 있다. 무슨 상태인가? 여러분은 아마 고서에서, 예컨대 『신선전』또는『단경(丹經)』,『도장(道藏)』,『성명규지(性命圭旨)』중에 모두 이런 한 마디 말이 씌어져 있음을 보았을 것인데 '백일비승(白日飛升)'이라고 한다. 바로 대낮에 이 사람이 날아올랐다는 것이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대주천이 통하면 이 사람은 곧 공중으로 뜰 수 있는데 바로 이렇게 간단하다. 어떤 사람은, 이처럼 여러 해 연공하였으므로 대주천이 통한 사람 역시 소수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말한다면 몇 만이나 되는 사람이 이런 정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여도 다 허황하지 않다. 왜냐하면 대주천 그것은 필경 이제 막 연공의 발걸음을 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이런 사람들이 뜨는 것을 보지 못하는가? 그가 공중으로 솟아오름이 보이지 않는가? 속인사회의 상태는 파괴할 수 없는 것이며 속인사회의 사회형식을 함부로 파괴하거나 개변할 수 없는 것으로 사람이 모두 하늘에서 난다면 그래서야 되는가? 그건 속인사회인가? 이는 주요로 되는 한 면이다. 다른 한 면으로는 속인 중의 사람은 인간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며 반본귀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또 하나의 오성(悟性)문제가 있다. 그가 많은 사람이 확실히 모두 날 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그도 가서 수련하게 되는데 곧 오성(悟性) 문제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당신이 수련되어도 함부로 남에게 보여줄 수 없고 사람에게 나타낼 수 없다. 다른 사람은 여전히 수련해야 한다. 그러므로 대주천이 통한 이후에 오로지 당신의 손가락 끝, 발가락 끝 또는 어떤 부위를 잠가놓기만 하면 당신은 떠오르지 못한다.

우리는 흔히 대주천이 곧 통하게 될 경우에 하나의 상태가 나타날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은 가부좌할 때 신체가 늘 앞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뒤잔등이 통함이 비교적 좋아, 뒤잔등이 비교적 가벼우므로 앞이 무거운 것을 느끼게 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뒤로 젖히게 되는데 바로 뒤잔등이 무겁고 앞이 가벼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전부 다 아주 잘 통하였다면 당신은 위로 들썩거릴 수 있고 자신이 위로 솟구치며 지면을 떠나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일단 정말로 뜰 수 있을 때에 당신으로 하여금 뜨지 못하게 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공능이 나옴은 양쪽이다. 어린이는 집착심이 없으며 노인, 특히 노년 부녀는 집착심이 없기 때문에 공능이 나오기 쉬우며 유지하기가 쉽다. 남자 특히 젊은 사람은 일단 공능이 있게 되면 그가 과시하려는 심리를 피하지 못하게 되며 동시에 그는 그것을 속인 중의 일종 경쟁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 이러므로 곧 그것이 존재함을 허용하지 않으며 연마해 냈어도 그것을 잠가버린다. 한 곳만 잠가버리면 이 사람은 뜨지 못한다. 절대적으로 당신으로 하여금 이 상태가 다 나타나지 못하게 한다는 말이 아니며 아마 당신더러 시험해 볼 수 있게 하는데 어떤 사람은 유지하여 내려갈 수 있다.

각지에서 수련반을 열 때 모두 이런 상황이 있었다. 내가 산동에서 수련반을 열 때에 제남의 수련생, 북경의 수련생이 다 있었다. 어떤 사람은, 스승님, 나는 어찌된 일입니까. 길을 걸으면 늘 땅을 떠나려 하며 집에서 누워 잠을 자도 뜨게 되어 이불을 덮으면 이불마저도 뜨게 되는데 늘 고무풍선처럼 뜨게 됩니다 라고 말하였다. 내가 귀양에서 수련반을 열 때, 귀주의 한 노수련생은 한 할머니였는데 그의 집안에는 침대가 두 개 있어 벽에 잇대어 한 쪽에 하나씩 놓여졌다. 그는 침대 위에 앉아 가부좌를 하였는데 그는 자신이 뜨게 된 것을 느껴 눈을 뜨고 보니 저쪽 침대 위에 가 있게 되었다. 그가 나는 돌아가야 되겠다고 생각하자 또 떠서 되돌아오게 되었다.

청도의 한 수련생은 점심휴식 시간에 실내에 사람이 없으므로 그는 침대 위에서 가부좌를 하였다. 그는 가부좌를 하자마자 뜨게 되었고 올리 들썩거림이 아주 대단하여 1미터 높이나 되었다. 뜬 다음에는 또 떨어져 내려와 쿵쿵 오르고 내리며 들썩거렸는데 이불마저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약간 흥분도 되며 또 겁이 좀 났는데 들썩들썩 거리면서 온 점심을 들썩거렸다. 마지막에 출근 종소리가 울리게 되어 속으로 생각하였다. 다른 사람이 보게 할 수 없다. 이건 뭘하는건가. 빨리 멈추자. 그래서 멈추었다. 이것이 바로 왜 노인들이 파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젊은이라면 출근종이 울려도, 다들 와서 보라, 나는 날고 있다고 할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과시심을 그리 쉽게 파악할 수 없음이 바로 여기에 있다. 보라, 내가 이 공을 연마함이 얼마나 좋은가. 나는 날 수 있다. 그가 과시만 하면 없어지며 이렇게 존재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런 일이 아주 많으며 각지 수련생에게 다 있다.

우리는 시작하자마자 백맥을 전부 열리게 한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8, 90 퍼센트의 사람들은 지금 모두 온몸이 가벼운 상태에 도달하였으며 병이 없게 되었다. 동시에 우리는 이야기하였다. 이 수련반에서 당신에게 이런 일종의 상태에로 밀어 줄뿐만 아니라, 당신더러 신체가 완전히 정화(煖化)되게 하고 또 당신의 몸에 많은 것을 넣어주며 당신더러 수련반에서 공이 나오게 하는데, 내가 당신을 잡아끌어 더 앞으로 내보낸 것과도 같다. 나는 수련반에서 줄곧 여러분에게 설법하여 여러분의 心性(심성)도 줄곧 변화가 발생하게 되었다. 우리 많은 사람은 이 강당에서 나간 다음, 당신은 마치 다른 하나의 사람인 것처럼 느낄 수 있다. 보증하고 당신의 세계관마저 모두 전변이 생겼으며 당신은 당신이 장래에 어떻게 인간이 되며 그냥 그렇게 얼떨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바, 보증하고 이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心性(심성)은 이미 따라 올라온 것이다.

대주천을 담론하게 되면서, 비록 당신으로 하여금 뜨지 못하게 하였지만 당신은 온몸이 가볍고 길을 걸어도 바람이 이는 듯한 감이 있게 된다. 예전에는 몇 발자국만 걸어도 힘겨웠는데 지금은 얼마나 멀리 걷는다 해도 매우 거뜬함을 느끼며, 자전거를 타도 마치 누가 당신을 밀어주는 듯 한가 하면, 층집을 오름에 얼마나 높이 올라도 힘들지 않는데, 보증하고 이러하다. 이 책을 보고 스스로 수련하여도 마찬가지로서, 마땅히 있어야 할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나란 이 사람은, 내가 말하기 원치 않는 말을 나는 말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가 말한 것은 꼭 참말이어야 한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 내가 설법할 때에 내가 만일 참말을 하지 않고 여기에서 허황한 말을 하며 과녁을 보고 활을 쏘듯이 하지 못하고 함부로 이야기한다면, 내가 바로 사법을 전수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런 일을 하는 것 역시 쉬운 것이 아니고, 우주에서 모두 보고 있는 것으로 당신이 편차(偏差)가 생기면 안 된다.

일반 사람은 이러한 하나의 주천이 있다는 것을 알면 끝이지만 사실 이것으로도 아직 안 된다. 만약 신체가 완전히 고에너지물질로 재빨리 대체, 전화됨에 도달하자면 또 일종 주천형식의 방향(走向)이 있어야 하는데 당신 신체의 모든 맥을 이끄는 방향, 그것을 묘유주천(卯酉周天)이라고 한다. 아마 아는 사람이 아주 적을 것이다. 책에서 어떤 때는 이러한 명사가 제기되기도 하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으며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모두 이론을 에워싸고 빙빙 돌기만 하는데, 비밀 중의 비밀이 아닌가. 우리는 여기에서 당신에게 모두 이야기하여 준다. 즉 가히 백회혈로부터 시작하여(또 회음혈로부터 나올 수도 있음) 나와서는 음양 양면의 경계처로 가며, 귀 옆으로부터 내려온 다음 어깨를 지나 내려온다. 손가락 사이를 하나 하나씩 지난다. 그런 다음 신체의 측면으로부터 발 밑을 지나서 사타구니 한 측면으로 올라온다. 그런 다음 다시 다른 한 측면으로 내려가서는 다시 발 밑을 거쳐 신체의 측면으로 올라온다. 손가락 사이를 하나 하나씩 지나 한 바퀴 돌아서 머리꼭지에 이르는데, 이것이 바로 묘유주천이다. 남들이 책 한 권을 쓸 수 있는 것을, 나는 몇 마디 말로 말했다. 내 생각에는 이것을 무슨 천기(天機)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이런 것이 다 아주 진귀한 것이라고 여겨 전혀 이야기하지 않으며 진짜로 제자에게 전수할 때만이 묘유주천을 이야기한다. 내가 비록 이야기는 하였지만 누구도 의념으로 인도하고 통제하여 연마하지 말라. 당신이 연마한다면 곧 우리의 法輪大法(법륜대법)가 아니다. 진정한 고층차에로의 수련은 무위(無爲)적이므로 어떤 의념활동도 없으며 당신에게 전부 다 만들어진 것을 넣어준다. 이러한 것은 모두 자동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이런 내재적인 기(機)가 당신을 연련(演煉)하여 주고 있으며 때가 되면 그가 스스로 돌 수 있다. 어느 하루 당신이 연공할 때에 머리를 젓게 되는데, 머리를 이쪽으로 저으면 그것이 바로 이렇게 돌고 머리가 저쪽으로 젓게 되면 바로 저렇게 돌아, 양쪽이 다 돌게 된다.

대, 소주천이 통한 후에 가부좌하면 머리를 끄떡일 수 있는데 이것은 에너지가 통과하는 현상이다. 우리가 연마하는 法輪周天法(f아 룬 쩌우 탠 f아) 역시 마찬가지로서 우리는 이렇게 연마한다. 사실 당신이 연마하지 않을 때에 그는 스스로 돌고 있다. 평소에 영원히 돌아가고 있으며 당신이 연마할 때는 이 기(機)를 강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법이 사람을 연마함을 이야기하지 않는가? 평상시에 당신은 당신의 그 주천이 늘 순환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당신이 연마하지 않아도 밖에다 넣어준 이 한 층의 氣機(치지)는 바로 한 층의 외재적인 큰 맥으로서, 당신의 신체를 이끌어 연마하는데 모두 자동적이다. 그것은 또 반대로 돌 수 있고 정반(正反) 양면으로 모두 돌 수 있으며 시시각각으로 다 당신의 맥을 모두 통하고 있다.

그럼 주천을 통하게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주천을 통하게 하는 자체는 연공의 목적이 아니다. 당신이 주천이 통하였다 하여도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더 수련해 나가면 목적은 주천의 이런 형식을 거쳐서 일맥이 백맥을 이끌게 하며 신체의 맥, 모든 맥을 전부 이끌어 여는 데 있다. 우리는 이미 이런 일을 하였다. 계속 연마하여 내려가면 어떤 사람은 대주천을 통할 때 맥이 연마됨이 아주 넓어 마치 손가락과 같으며 안이 아주 넓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에너지도 아주 강하기 때문에 에너지 흐름이 형성된 후에 그것은 아주 넓어질 수 있으며 또한 아주 밝아질 수 있다. 이건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그럼 어느 정도로 연마하여야 하는가? 사람의 신체로 하여금 백맥이 모두 점차적으로 넓어져 에너지가 더욱더 강하며 더욱더 밝게 변해야 한다. 최후에는 만여 갈래가 한데로 이어져, 일종 맥이 없고 혈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여 온몸이 하나로 이어지는데, 이는 통맥이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적이다. 그의 목적은 사람의 신체를 전부 다 고에너지물질로 전화하려는 데 있다.

이 지경에까지 연마되었을 때에 사람의 신체는 기본적으로 고에너지물질로 전화된 셈이다. 다시 말해서 이미 世間法(세간법) 수련의 최고 층차에로 연마되었으며 인체의 육신은 이미 최정점에로 수련되었다. 이 지경에까지 왔을 경우에 그에게 또 일종 상태를 가져다 줄 수 있다. 무슨 상태인가? 그의 공은 몹시 풍부하게 나왔다. 속인 신체의 수련, 즉 世間法(세간법) 수련과정에서 사람의 모든 특이공능(잠재적 능력)의 일체 것들이 전부 다 나오게 된다. 하지만 속인 중에서 수련하므로 대부분은 잠겨져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공기둥도 이미 무척 높게 자랐으며 일체 공의 형식은 모두 강대한 공에 가지(加持)되여 무척 강하다. 그러나 그는 다만 우리 이 현존의 공간에서 작용을 일으킬 뿐 다른 공간을 제약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만 우리 속인의 육체로 수련하여 나온 공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무척 풍부해졌으며 각개 공간 속에서와 부동한 공간 속의 신체의 각종 존재형식에서 모두 무척 큰 변화를 발생하였다. 그 신체가 갖고 있는 것과 매 한 층 공간의 신체가 갖고 있는 것들은 모두 무척 풍부한 것으로 보기만 하여도 매우 사람을 놀랠 지경이다. 어떤 사람은 신체의 곳곳에 눈이며 온몸의 땀구멍마저도 모두 눈이고, 그의 전체 공간마당 범위 내에 모두 눈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불가공이기 때문이지 않는가. 어떤 신체는 온몸이 다 보살, 부처님의 형상이다. 각종 공의 형태는 이미 극히 풍부한 정도에 도달하였으며 아울러 또한 많고 많은 생명체가 나타난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는 또 한가지 상태가 나타나게 되는데 '삼화취정(三花聚頂)'이라고 한다. 그것은 몹시 뚜렷한 하나의 상태이며 역시 몹시 눈에 띄우는 것으로, 천목 층차가 높지 않은 사람도 보아낼 수 있다. 머리 위에는 세 송이의 꽃이 있는데 한 송이는 연꽃(蓮花)이지만 우리 물질공간 중의 연꽃(荷花)이 아니며, 그리고 두 송이 역시 다른 공간의 꽃으로서 몹시 미묘하다. 세 송이의 꽃은 윤번으로 머리꼭지에서 도는데, 바른쪽으로 돌고 반대쪽으로 돌며 세 송이 꽃은 또 자전(自轉)할 줄 안다. 매 한 송이의 꽃은 한 가닥의 큰 기둥이 있으며 꽃의 직경과 마찬가지로 굵다. 세 가닥의 큰 기둥이 하늘 꼭대기로 직통하는데 그건 공기둥이 아니며, 그는 바로 이러한 일종의 형식으로서, 몹시 현묘(玄妙)하여 당신 자신이 보아도 깜짝 놀랄 수 있다. 여기까지 수련되었을 때 신체는 희고도 깨끗하며 피부 역시 부드러워진다. 이 지경에까지 도달하였을 때, 즉 世間法(세간법) 수련의 최고형식에 이른 셈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도 정점이 아닌지라 여전히 계속 수련하여야 하며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더 앞으로 나아가게 되면 곧 世間法(세간법)와 出世間法(출세간법) 사이의 과도 층차에 들어가게 되는데 정백체 [(煖白體) 또한 정백체(晶白體)라고도 부름]상태라고 한다. 왜냐하면 신체가 世間法(세간법) 최고형식에 수련되었어도 사람의 육신의 전화가 최고 형식에 도달했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정하게 그 형식에 들어갈 때에 온 신체는 완전히 고에너지물질로 구성된 것이다. 왜 정백체라고 하는가? 그가 이미 절대적인 고도로 순수하고 깨끗함에 도달하였기 때문이다. 천목으로 본다면 전반 신체가 투명한 것이며 마치 투명한 유리와도 같아 보게 되면 아무것도 다 없는데 이런 일종 상태가 나타날 수 있다. 명백하게 말하면 그는 이미 하나의 불체(佛體)이다. 왜냐하면 고에너지물질로 구성된 신체와 우리 자체의 신체는 이미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경에까지 도달하였을 때에 신체에서 나타나는 일체 공능과 술류(術類)의 것들을 단번에 전부 던져버리게 되며, 그것을 하나의 아주 깊은 공간 중에 부리어 넣게 되는바, 쓸모가 없으며 앞으로 더는 쓸모가 없다. 다만 당신이 장래에 수련되어 도를 얻는 그 날에, 당신은 당신의 수련과정을 한 번 돌이켜보며 그것을 꺼내어 볼뿐이다. 이때에 오로지 두 가지만 존재한다. 공기둥이 아직 있고 수련된 원영(元?)이 이미 아주 크게 자랐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모두 하나의 매우 깊은 공간에 있으며 일반 사람이 천목 층차가 높지 못하면 보이지 않으며 그는 다만 이 사람의 신체가 하나의 투명체임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정백체(煖白體)상태는 하나의 과도층차로서, 더 수련하여 내려갈 때면 진정하게 出世間法(출세간법) 수련에 들어가는데 또한 불체(佛體)수련이라고도 한다. 온 신체는 공으로 구성되었으며 이때 사람의 心性(심성)은 이미 안정되었다. 다시 새롭게 연마를 시작하여 새롭게 공능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것을 공능이라고 부르지 않으며 '불법신통(佛法神通)'이라고 한다. 그것은 모든 각개 공간을 제약하며 위력이 무궁하다. 장래에 당신 자신이 끊임없이 수련함에 따라 더욱 높은 층차의 것을 자신이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가 하는 것과 수련의 존재형식을 알게 될 것이다.

환희심

이런 하나의 문제를 말하는데 이 역시 환희심에 속한다. 많은 사람은 긴 시간의 연공을 거쳤고 또 어떤 사람은 공을 연마한 적이 없지만 그의 일생 중에서 진리와 인생의 참뜻에 대한 추구가 있기에 사색하고 있다. 그가 일단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을 배운 후, 그는 그가 인생에서 알려고 했지만 또 해석되지 못했던 많고 많은 문제를 단번에 똑똑히 알게 되었다. 아마 그의 사상에 동반하여 승화될 수 있으며 그의 심정은 몹시 격동될 것인 즉, 이 한 점은 긍정적이다. 나는 알고 있다.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은 그의 무게를 알고 있으며 그는 소중히 해야 함을 알 것이다. 하지만 흔히 또 이러한 문제가 나타난다. 사람이 기뻐함으로 말미암아 불필요한 환희심이 생기게 된다. 곧 그의 형식에서 속인사회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제 중에서와 속인사회 환경 속에서 비정상적으로 표현됨을 야기하는데, 이러면 안 된다고 나는 말한다.

우리 이 한 세트 공법의 대부분은 속인 중에서 수련하기 때문에, 당신은 자신으로 하여금 속인사회를 이탈하게끔 할 수 없으며 당신은 명백하고도 명백하게 수련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여전히 하나의 정상적인 관계로서, 물론 心性(심성)이 아주 높고 심태(心態)가 매우 똑발라야 하며 자신의 心性(심성)을 높이고 자신의 층차를 높이며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좋은 일을 하며, 다만 이러한 하나의 표현이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표현됨이 마치 정신마저도 비정상적인 것 같고 마치 속세를 꿰뚫어 본 것처럼 하며 말을 하여도 사람들에게 이해되지 않는다. 남들은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法輪大法(법륜대법)을 배우더니 어찌 이 모양으로 변하였는가? 마치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사실 이런 것이 아니다. 그는 너무나도 격동되었고 이지적이 아니며 정상적인 이치에 부합되지 않았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이 이렇게 함도 맞지 않으며 당신은 또 다른 하나의 극단에로 들어갔고 역시 집착심이다. 당신은 마땅히 그것을 포기해야 하며 여러 사람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으로 속인 중에서 생활하고 수련해야 한다. 속인 중에서 남들이 모두 당신을 제 정신이 아닌 것으로 보며 남들은 모두 당신과 식견을 같이 하지 않으며 또 당신을 멀리하는가 하면, 누구도 당신에게 心性(심성)을 제고할 기회를 주지 않고 누구도 당신을 정상적인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데, 내가 말하건대 그러면 안 된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절대 이 문제를 주의해야 하며 반드시 자신을 잘 파악해야 한다.

우리의 공법은 일반적인 공법과 같지 않아 흔들거리거나 흐리멍덩하며 제정신이 나간 것처럼 하지 않는다. 우리 공법은 모두 당신으로 하여금 명백하고도 명백하게 당신 자신을 수련하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늘 말하기를, 스승님, 나는 눈을 감기만 하면 흔들거립니다 라고 한다. 나는 꼭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당신은 이미 자신의 主意識를 포기하는 관습을 양성하였기 때문에 당신이 눈만 감으면 자신의 主意識를 느슨히 하여 없게 하는데 당신은 이미 이런 관습을 양성하였다. 여기에 앉아서 당신은 왜 흔들거리지 않는가? 당신이 눈을 뜬 상태를 유지하고 이렇게 살며시 눈을 감으면 당신은 흔들거리게 되는가? 절대 그럴 수 없다. 당신은 이 기공은 이렇게 연마해야 된다는 일종 개념이 당신에게 형성되었기 때문에 눈만 감으면 당신이 없고 어디에 갔는지도 모르고 있다. 우리는 당신의 主意識이 반드시 똑똑해야 된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이 한 세트의 공법은 당신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은 명백하고도 명백하게 제고해야 한다. 우리도 정공(靜功)이 있는데 우리 이 한 장의 정공을 어떻게 연마하는가? 우리가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것은 당신이 定(띵)함이 아무리 깊더라도 자신이 여기에서 연공하고 있음을 알아야 하며 아무것도 다 모르는 그런 상태에 들어가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가 나타나는가? 거기에 앉아있을 때에 마치 자신이 달걀 껍질 속에 앉아 있는 것처럼 미묘하고 몹시 편안한 감각을 느끼게 되며 자신이 연공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온몸이 움직이지 못함을 느낀다. 이것은 우리의 공법에 반드시 다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또 일종 상태가 있는데 앉아 있노라면 다리도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되며 다리가 어디로 갔는지 똑똑히 생각나지 않으며 신체도 없고 팔도 없으며 손도 없어져 머리만 남아 있다. 더 연마하게 되면 머리도 없으며 오로지 자신의 사유만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약간의 의념(意念)으로 자신이 여기에서 연공함을 알고 있다. 우리가 이런 정도에 도달하면 족한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사람이 이런 하나의 상태 속에서 연공하면 신체는 가장 충분한 연변(演變)상태, 가장 좋은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이 이러한 하나의 상태에로 입정(入定)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당신은 잠을 자 버리고 혼미해지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면 좋은 것을 아마 다른 사람이 연마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든 연공인은 속인 중에서 아주 비정상적으로 표현하지 말아야 함을 절대 주의해야 한다. 속인 중에서 당신이 좋은 작용을 하지 못하면, 남들은 法輪大法(법륜대법)을 배웠다는 것이 왜 모두 이러한가 라고 말할 것인 즉, 이는 바로 法輪大法(법륜대법)의 명예를 파괴하는 것과 같으므로, 이 일에 절대 주의해야 한다. 수련의 기타 면과 과정 중에서도 환희심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데, 이런 마음은 마(魔)에게 이용당하기가 아주 쉽다.

수구(修口)

수구(修口)란 과거의 종교에서도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그가 가리키는 이 수구의 중점은 그들의 일부 전업 수련자 --- 승려, 도사로서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전업 수련자이기 때문에 목적은 더 큰 한도로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기 위함인데, 그는 사람이 의념을 움직이기만 하면 곧 업이라고 인정하였다. 종교에서는 업을 선업(善業)과 악업(惡業) 두 가지로 나누었다. 선업이라도 좋고 악업이라도 좋고, 불가의 공(空), 도가의 무(無)로 말한다면 모두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는, 나는 아무것도 다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물의 인연관계, 바로 이 일이 도대체 좋은 일인지 아니면 나쁜 일인지, 어떠한 인연관계가 존재하는지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수련자는 그렇게 높은 층차가 없으므로 이런 것들을 보아내지 못한다.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좋은 일이지만 하기만 하면 나쁜 일일지도 모르므로 두려워한다. 때문에 그는 될 수 있는 한 무위(無爲)를 이야기하며 그는 아무것도 다 하지 않은데 이렇게 되면 그가 업을 더 빚어내는 것을 피면하게 된다. 왜냐하면 업을 빚었으면 소업(消業)을 해야 하며 고생을 겪어야 한다. 우리 수련자를 예를 들어 말한다면 이미 그가 어느 지경에 와서 개공하는가를 정해 놓았다. 당신이 중도에서 어떤 불필요한 것들을 끼워 넣는다면 이는 모두 전반 수련에 모두 곤란을 조성하게 되므로, 그는 곧 무위(無爲)를 이야기한다.

불가에서 말하는 수구란, 즉 말하여 사람이 말을 함은 모두 사람의 사상의식으로부터 지배를 받는 것으로서, 그렇다면 이 사상 의식은 바로 유위적인 것이다. 사람의 사상의식 자체가 생각을 굴리려 하고 무엇을 좀 말하려 하며 무엇을 좀 하면 사람의 감관(感官), 사지를 지배하게 되는데 속인 중에서는 아마 일종의 집착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모순이 있으며 당신은 좋소, 그는 나쁘오, 당신은 수련을 잘하였소, 그는 수련을 잘 못하오 하는 이런 자체가 바로 모순이다. 우린 일반적인 것을 말하자. 내가 무엇을 하려면 무엇을 하고, 현재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면 어떻게 하는데, 아마 무의식중에 누구를 해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은 모두 매우 복잡한 것으로서 아마 무의식중에 업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어 그는 절대적으로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과거의 종교에서 수구를 줄곧 아주 중하게 여겼는데 이것은 종교에서 이렇게 이야기한 것이다.

우리 法輪大法(법륜대법) 수련자의 절대다수는 모두가 속인 중에서 수련(전업수련 제자를 제외하고)하는데, 그렇다면 속인사회에서 속인의 정상적 생활을 하며 사회와 교제를 하는 것을 피면 할 수 없다. 사람마다 모두 한 몫의 사업이 있으며 또한 사업을 잘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말로 사업을 해야 하는데 그럼 이것은 모순되지 않는가? 모순되지 않는다. 모순되지 않음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주장하는 수구는 그들과 전혀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수련하는 법문이 부동하므로 요구도 다르다. 우리는 입을 벌려 이야기를 하는데 모두 연공인의 心性(심성)에 따라 이야기하고 시비를 일으키는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며 좋지 않은 말을 하지 않는다. 수련하는 사람이라, 법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가늠하여 이 말을 마땅히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가늠해야 한다. 마땅히 말해야 되는 것은 법으로 가늠하여 연공인의 心性(심성)표준에 부합되면 문제가 없다. 또한 우리는 법을 이야기하고 법을 선전해야 하므로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수구를 이야기함은, 속인 중에서의 그런 내려놓지 못하는 명리와 수련자가 사회의 실제 사업과 관계가 없는 것이거나 또는 동문제자(同門弟子) 중에서 서로간에 일부 쓸모 없는 것을 이야기하거나 또는 집착심으로 인하여 자신을 과시하게끔 한 것이나 또는 주어들은 풍문으로 일부 골목소식을 전하거나 또는 사회적인 기타 일부 일을 말하기 시작하면 아주 흥분하고, 말하기를 아주 원하는 것들, 내 생각에 이런 것들은 모두 속인의 집착심이다. 이러한 면에 나는 우리가 마땅히 입을 수련해야 한다고 여기는데 이것이 우리가 주장하는 수구(修口)이다. 과거의 승려는 이런 것을 아주 중하게 보았다. 왜냐하면 그가 생각을 움직이기만 하면 곧 업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신(身)·구(口)·의(意)'를 이야기하였다. 그가 이야기하는 수신(修身)이란 그것은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것이며, 수구(修口)란 그것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수의(修意)란 그것은 생각마저 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 절에서의 전업수련은 이런 요구에 대하여 아주 엄하였다. 우리는 연공인의 心性(심성)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며 무엇을 말해야 하고 무엇을 말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잘 파악하기만 하면 된다.

제 9 강 의

기공과 체육

일반적인 층차에서 사람들은 기공과 체육단련이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인정하기 쉽다. 물론 낮은 층차에서 이야기한다면 하나의 건강한 신체를 얻게 되는 이 한 면으로부터 볼 때, 기공과 체육단련은 일치한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그의 단련방법, 채용한 수단은 체육단련과 차이가 아주 크다. 체육단련은 사람의 신체건강에 도달하려고 생각하므로 사람의 운동량을 강화하며 사람의 신체훈련을 강화해야 하지만 기공수련은 상반되는 것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움직이지 않게 하며 움직인다 하여도 천천히, 느리게, 둥글게 하는데 심지어는 움직이지 않거나 정지한다. 이는 곧 체육단련의 형식과 차이가 아주 크다. 그럼 만일 고층차에서 말한다면 기공은 다만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은 더욱 높은 층차의 것이 있으며 더욱 깊은 내포(內涵)가 있다. 기공은 단지 속인 이 층차 중의 고만한 것만이 아니라, 그것은 초상(超常)적인 것이며 또한 부동한 층차에서 모두 그것의 부동한 나타남이 있다. 그것은 속인을 훨씬 벗어난 이러한 하나의 것이다.

단련의 본질로부터 본다면 그것들의 차이 역시 아주 크다. 운동선수는 운동량을 가할 것을 요구한다. 특히 현재의 운동선수는 자신의 신체로 하여금 현대의 이런 경기수준에 적응시키고 그러한 일종 표준에 도달하기 위해서이다. 때문에 그는 신체로 하여금 줄곧 가장 좋은 상태에 처하게끔 한다.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하여 운동량을 가하여 사람의 신체로 하여금 능히 충분하게 혈액순환이 되도록 한다. 이럼으로써 그의 대사능력(代謝能力)을 증강시켜 신체로 하여금 줄곧 향상의 상태를 유지하게끔 한다. 왜 대사능력을 증강해야 하는가? 왜냐하면 운동선수의 신체는 영원히 향상하는 가장 좋은 경기상태가 나타나야 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신체는 무수한 세포로 구성(組成)된 것이며 이런 세포는 모두 이런 하나의 과정이 있다. 즉 새로 분열되어 나온 세포의 생명력은 아주 강하여 위로 발전함이 나타난다. 극한에 도달했을 때에 그것은 더 발전할 수 없으며 다만 아래로 내려가게 되는데 줄곧 극점에까지 내려왔을 때 또 새로운 세포가 그것을 대체하게 된다. 예를 들어 말하여 하루 12시간으로 비유한다면, 아침 6시부터 세포가 분열되어 줄곧 향상하고 향상함이 나타나는데 8, 9시, 10시쯤 되였을 때 모두 아주 좋은 시기이다. 12시가 되면 그것은 더 올라가지 못하며 다만 아래로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 이 시간 내에 세포는 아직 절반 생명력이 있는데 이 절반 생명력은 운동선수의 경기상태에 적합하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곧 훈련을 강화하며 그의 혈액순환을 강화한다. 그런 다음 새로운 세포가 생기어 이런 낡은 세포를 대체해 버린다. 그는 이런 길을 걸었다. 다시 말해서 세포의 전 과정을 다 걷기도 전에, 금방 생명의 노정을 절반 걸었을 때 그것을 배설해 버린다. 때문에 신체는 늘 건장과 위로 향함을 유지한다. 그러나 인류세포는 무한정으로 이렇게 분열할 수 없으며 세포의 분열 차수는 한도가 있는 것이다. 가령 사람의 일생 중에 세포가 백 차례 분열할 수 있다면, 실제적으로는 백만 차례도 넘는다. 가령 정상적인 사람의 세포가 백 차례 분열하여 백년을 살 수 있다고 말하자. 그러나 지금 세포는 생명의 절반밖에 살지 못하였으므로 그렇다면 그는 다만 50년밖에 살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운동선수가 그리 큰 문제가 나타남을 보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현재의 운동선수는 30세가 되기 전에 도태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재의 경기수준도 높으며 운동선수의 도태되는 양도 크기 때문에 그는 또 정상적인 생활을 회복하게 되어 보기에는 그리 큰 영향이 없는 것 같다. 이론적으로부터 볼 때 실질적으로는 이러한바, 그의 신체로 하여금 하나의 건강한 유기체를 유지하게 할 수 있지만 도리어 그의 생명을 단축시킨다. 외관으로 볼 때, 열 몇 살 되는 운동선수를 보면 마치 스물 몇 살 되는 것 같고, 스물 몇 살 되는 사람은 마치 서른 몇 살 되는 사람과도 같다. 흔히 운동선수는 사람에게 조숙하거나 노쇠된 감각을 주는데, 유리한 것도 있고 폐단도 있는 것으로서, 변증으로 보아야 하지 않는가. 사실은 바로 이러한 길을 걸었다.

기공수련은 체육단련과 꼭 상반된다. 동작에서 맹렬히 운동함을 요구하지 않으며 동작이 있다 하여도 천천히, 느리게, 둥글게 하며 몹시 느리게 하며 심지어는 움직이지 않고 정지한다. 여러분은 선정(禪定)이란 이런 수련방법을 알고 있는데 거기에 정지되어 심장이 뛰는 속도마저도 다 늦추며 혈액순환 등 일체가 모두 늦추게 된다. 인도에는 많은 유가사(瑜?師)가 있다. 며칠이나 물 속에 앉아 있을 수 있으며 며칠 동안 땅 속에 묻혀 있을 수도 있는데 자신으로 하여금 완전히 정지되게 하며 심지어는 심장의 박동마저 통제할 수 있다. 가령 사람의 세포가 하루에 한번 분열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수련자는 인체의 세포로 하여금 이틀에 한 차례 분열하게 하고, 일주일에 한 차례 분열하며 반달에 한 차례 분열하게 할 수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더욱 긴 시간에 한 차례 분열하게 한다. 그렇다면 그는 이미 그의 생명을 연장시킨 셈이다. 이것은 아직 그런 단지 성(性)만 닦고 명(命)을 닦지 않는 공법인데, 그 역시 이 점에 도달할 수 있으며 또한 자신으로 하여금 생명을 연장하게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생각할 것이다. 사람의 생명, 사람의 일생은 정해진 것이 아닌가? 명을 닦지 않고 어찌 더 오래 살 수 있는가? 맞다. 왜냐하면 수련하는 사람의 층차가 삼계(三界)를 돌파하면 가히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볼 때는 오히려 아주 늙어 보인다.

진정하게 명을 닦는 공법은 채집하여 온 고에너지물질을 인체의 세포에 끊임없이 축적하여 그의 밀도를 끊임없이 크게 할 때에 점차적으로 속인의 세포를 억제할 수 있으며 천천히 속인의 세포를 대체하게 된다. 그때에 가서는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데 이 사람은 곧 청춘이 상주(常駐)하게 된다. 물론 수련과정 중에서는 아주 느린 과정으로서 무척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신체적으로는 고통을 받고 마음으로는 시달림을 받음이 매우 쉽지 않은 것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心性(심성)의 마찰 중에서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가? 개인의 절실한 이익 앞에서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가? 이런 일들은 하기에는 모두 매우 어렵기 때문에 이 목적에 도달하려고 생각하기만 하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心性(심성)과 사람의 德(덕)이 다 수련되어야만 비로소 이러한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역대로 많은 사람은 모두 기공을 일반적인 체육단련과 혼동하였지만, 사실은 차이가 너무나도 크며 전혀 같은 일이 아니다. 근근히 가장 낮은 층차에서 기를 연마(練)할 때에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여 하나의 건강한 신체에로 도달함을 강구하기에, 가장 낮은 층차의 목적과 체육단련은 공성이 있다. 하지만 고층차에 이르러서는 전혀 그러한 일이 아니다. 기공의 신체적 정화(煖化)는 역시 목적이 있는 것이며 또한 초상(超常)적인 이치로 연공인을 요구하며 속인의 이치로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체육단련은 다만 속인 중의 일일 따름이다.

의념(意念)

의념(意念)을 놓고 말하면 바로 우리 사람의 사유활동이다. 사람의 생각이 대뇌에서의 사유활동을 수련계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 사람의 사유(의념)의 부동한 형식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어떻게 체현되어 나온 것인가? 현대 의학은 사람의 대뇌를 연구함에 있어서 아직도 매우 많은 문제를 해석해 내기 무척 어려워한다. 왜냐하면 우리 신체표면적인 것과 같이 이렇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깊은 층차에서 부동한 공간은 다 부동한 형식이 있다. 하지만 일부 기공사가 이야기한 것과 같지 않다. 일부 기공사들은 그 자신이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르며 그는 똑똑히 말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대뇌가 움직여 의념이 생기기만 하면 일부 일을 할 수 있다고 여기며 그는 그의 사상이 한 것이고 그의 의념이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의 의념이 한 것이 전혀 아니다.

우리는 먼저 사람 사유의 내원(來源)을 말하겠다. 중국 고대에는 한가지 설이 있다. 즉 '마음으로 생각한다'이다. 왜 마음으로 생각함을 이야기하는가? 중국 고대의 과학은 아주 발달하였다. 그가 직접 인체, 생명, 우주 이런 것들을 대하여 연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마음이 문제를 생각하는 것을 느끼게 되며 어떤 사람은 대뇌가 문제를 생각함을 느끼게 된다. 왜 이런 경우가 나타날 수 있는가? 그가 이야기한 마음으로 생각한다는 것 역시 일리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볼 때 속인의 元神(원신)은 매우 작으며 사람의 대뇌가 내보내는 진정한 정보는 사람 대뇌 자체가 작용을 일으킨 것이 아니고 대뇌 자체가 내보낸 것이 아니며 사람의 元神(원신)이 내보낸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元神(원신)은 다만 니환궁(泥丸宮)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도가에서 말하는 니환궁(泥丸宮)이란, 바로 우리 현대의학에서 인식된 송과체(松果體)이다. 만약 元神(원신)이 니환궁에 있다면 우리는 확실하게 대뇌가 문제를 사고하고 정보를 내보냄을 느끼게 되며 만약 마음에 있다면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마음이 문제를 사고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인체는 하나의 소우주로서, 연공인의 많고 많은 생명체는 다 일종의 자리를 바꾸는 작용이 생길 수 있다. 만약 元神(원신)이 자리를 바꿈이 발생하게 될 경우, 그가 배로 간다면 확실히 배가 문제를 생각함을 느끼게 되며, 만약 元神(원신)이 장딴지, 발뒤축으로 갔다면 곧 장딴지, 발뒤축이 문제를 사고함을 느끼게 되는데, 보증하고 이러하며 듣기에는 아주 허황하다. 당신의 수련층차가 그리 높지 못할 때에 당신은 이런 현상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사람의 신체에 만일 그의 元神(원신)이 없고 그의 성질·천성, 특성이 없으며 이런 것이 없다면 한 덩이의 고기로서, 그는 하나의 완전하고도 독립적인 자아개성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람의 대뇌는 무슨 작용을 하고 있는가? 나보고 이야기하라면 사람의 대뇌는 우리 이 물질공간 형식 중에서 그는 다만 하나의 가공공장에 불과할 뿐이다. 진정한 정보는 元神(원신)이 내보낸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내보낸 것은 언어가 아니며 그가 내보낸 것은 일종 우주의 정보로서 모종의 뜻을 대표한다. 우리 대뇌는 이런 지령을 받아들인 후, 그것을 우리 현재의 언어로 가공하는데 이런 표현형식이다. 우리는 손동작, 눈길, 전체 동작으로 그것을 표현하여 내는데, 대뇌는 바로 이러한 작용을 일으킨다. 진정한 지령, 진정한 사유는 사람의 元神(원신)이 내보낸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대뇌의 직접적인 독립작용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어떤 때에는 元神(원신)이 마음에 가 있으므로 어떤 사람은 마음이 생각하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된다.

현재 인체를 연구하는 사람은 사람의 대뇌가 내보내는 것은 일종의 마치 전파와도 같은 이런 형식의 것이라고 인정한다. 실질적으로 내보내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먼저 이야기하지 않지만 그들은 그것이 일종 물질존재라는 것을 승인한다. 그렇다면 미신이 아니다. 내보낸 이런 것은 무슨 작용을 일으키는가? 어떤 기공사는, 나는 의념으로 운반하고 의념으로 당신에게 천목을 열어 주며 의념으로 당신에게 병을 치료해 준다는 등등을 말하고 있다. 사실 일부 기공사는 그 자신이 어떤 공능이 있는지를 그는 다 모르고 있으며 또 똑똑히 알지도 못하고 있다. 그는 다만 그가 무슨 일을 하고자 생각하기만 하면 곧 그대로 잘 되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사실은 바로 그의 의념이 활동하고 있으며 공능이 대뇌 의념의 통제를 받아들여 의념의 지휘하에서 구체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지만, 그의 의념자체는 아무런 일도 해낼 수가 없다. 일개 연공인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할 때면 그의 공능이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공능은 인체의 잠재적 능력으로서, 우리 인류사회의 발전에 따라 사람의 대뇌사유는 더욱 더 복잡하게 변하였으며 더욱더 현실을 중시하는가 하면, 더욱더 이른바 현대화한 공구에 의뢰한다. 이리하여 사람의 본능은 더욱더 퇴화되었다. 도가는 반본귀진을 이야기하는데, 수련 과정에서 당신은 진(眞)을 추구하여서 최후에 반본귀진하여 당신의 원시적인 본성에로 되돌아감으로써, 당신은 비로소 당신의 이런 본능을 나타낼 수 있다. 우리는 현재 특이공능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다 사람의 본능이다. 인류사회는 마치 진보한 것 같지만 사실은 뒤로 후퇴하였으며 우리 우주의 특성과 더욱더 멀게 되었다. 그 날 내가 장과로(張果老)가 당나귀를 돌아앉아 탄 이야기를 하였는데 아마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는 앞으로 나아감이 곧바로 후퇴이며 사람이 우주의 특성과 더욱더 멀게 됨을 발견하였다. 우주의 연화(演化)과정에서 특히 현재 상품경제 큰 물결에로 들어간 후, 많은 사람의 도덕은 무척 부패하여 우주의 眞ㆍ善ㆍ忍 특성과 더욱 더 멀어진다. 속인 중에서 조류(潮流)에 따라 걸어온 사람들은 인류도덕의 부패정도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아직도 좋은 일이라고 여긴다. 오로지 心性(심성)을 수련하여 올라온 사람만이 돌이켜 보기만 하면 인류도덕이 이처럼 두려운 지경에까지 부패되어 왔음을 인식하게 된다.

어떤 기공사는 내가 당신에게 공능을 개발하여 주겠다고 말한다. 무슨 공능을 개발한단 말인가? 그의 공능은 에너지가 없으면 쓸모가 없으며 나오지 않았는데 당신이 개발해 낼 수 있는가? 그의 공능이 그의 에너지로 가지(加持)하여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에 당신이 그것을 개발해 낼 수 있단 말인가? 전혀 안 된다. 그가 말하는 공능개발은 다만 그의 이미 형성된 공능과 당신의 대뇌를 연결시킴에 불과한 것으로서, 당신 대뇌의념의 지휘를 받아 작용을 일으킨다. 이것을 그가 공능을 개발했다고 하는데 사실 그는 당신에게 아무 공능도 개발해 주지 못하였으며 다만 이런 조그마한 일을 했을 뿐이다.

연공인에 대하여 말한다면 사람의 의념은 사람의 공능을 지휘하여 일을 한다. 일개 속인을 놓고 말하면 의념은 사람의 사지, 감각기관을 지휘하여 일을 한다. 마치 한 공장의 생산사무실, 공장장 사무실에서 지령을 발포하고 구체적인 각개 직능부문마다 각기 제가 할 일을 하는 것과도 같다. 마치 부대의 지휘부문과도 같이 사령부에서 명령을 발포하고 전체 부대를 지휘하여 임무를 완성하도록 하는 것과 같다. 내가 외지에서 수련반을 열 때에 현지의 기공연구회의 지도자와 늘 이 문제를 논의하였다. 그들은 매우 놀랍게 여겼다. 우리는 줄곧 사람의 사유가 얼마나 큰 잠재능력, 잠재의식이 있는가를 연구하였다고 하였다. 사실 이렇지 않으며 그는 시작부터 잘못 걸었다. 나는 인체과학을 연구함에 있어서 사람의 사유는 반드시 일종의 변혁을 발생해야 하며 속인의 그런 추리방법, 문제를 인식하는 방법으로, 그러한 초상(超常)적인 것을 인식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의념을 놓고 말하면 또 몇 가지 의념의 형식이 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어떤 사람이 말하는 잠재의식, 하의식, 영감(靈感), 꿈을 꾸는 등등이다. 꿈을 꾸는 것을 이야기하게 되면 어느 기공사도 그것을 해석하기 싫어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태어날 때에 우주의 많은 공간 중에 동시에 다 하나의 당신이 태어나게 되는데 당신과 하나의 완전한 한 몸으로서 모두 서로의 연계를 발생하며 사유적으로 모두 연대적 관계가 있다. 당신 자신은 또 主元神(주원신), 副元神(부원신)이 있으며 또한 기타 각종 생명체의 그런 형상이 체내에 존재하는가 하면, 매개 세포, 오장육부는 모두 당신의 형상적 정보로서, 다른 공간 속의 그런 존재형식이다. 그러므로 아주 복잡한 것이다. 당신이 꿈을 꿀 때, 좀 있다는 이렇고 좀 있다는 저런데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가? 의학에서는 우리의 대뇌 피질이 변화를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이 물질 형식적으로 표현되는 반응이지만 사실 그것은 다른 공간의 그런 정보의 작용을 받았다. 때문에 당신이 꿈을 꿀 때에 당신은 흐리멍덩한 감이 있게 되는데 이것은 모두 당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당신은 그것을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 한가지 꿈은 당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데 이런 꿈을 우리는 그것을 꿈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당신의 主意識 즉 主元神(주원신)이 꿈속에서 육친이 앞에 다가온 것을 꿈꾸게 되거나 또는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한가지 일을 감수하게 되거나 무엇을 보게 되거나 또는 무슨 일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바로 당신의 主元神(주원신)이 정말로 다른 공간에서 무슨 일을 하였고 어떤 일을 보았고 또 하였는데 의식이 똑똑하며 진실하다. 이러한 일은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으로서, 다만 다른 물질공간 중에서와 다른 시공(時空) 중에서 한 것에 불과하다. 당신은 그것을 꿈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 당신 이쪽의 물질신체는 확실히 잠을 자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꿈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오로지 이런 꿈만이 당신에게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사람의 영감(靈感), 하의식, 잠재의식을 놓고 말하면, 이러한 명사는 과학자들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문인(文人)들이 속인 중의 관습적인 일종 상태에 근거하여 지어낸 명사로서 그것은 과학성이 없다고 나는 말한다. 사람들이 가리키는 잠재의식은 도대체 무엇인가? 똑똑히 말하기 아주 어려우며 아주 막연하다. 왜냐하면 사람의 여러 가지 정보가 너무나도 복잡하여 마치도 일종 어슴푸레한, 약간의 기억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하의식에 대하여 우리는 그래도 해석하기가 쉽다. 하의식이란 이런 상태에 내린 정의에 근거하며 일반적으로는 사람이 흐리멍덩하였을 때에 한가지 일을 함을 가리키는데, 흔히 사람들은 곧 그의 하의식이 한 것이며 의식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런 하의식은 마침 우리가 말하는 副意識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主意識이 느슨한 후, 대뇌를 통제하지 않을 때에 흐리멍덩함이 마치 잠든 것 같고 또는 꿈속에서, 무의식적인 상태 하에서 쉽게 副意識, 즉 副元神(부원신)에게 주재(主宰)된다. 그때에 副意識은 일부 일을 해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당신 자신이 흐리멍덩한 상태에서 해낸 것이다. 하지만 흔히 이런 일을 다 그릇되게 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副意識은 다른 공간에서 사물의 본질을 볼 수 있으며 우리 속인사회의 미혹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한 일을 명백해진 후에 보고는, 이 일을 어찌 이렇게 잘못하였는가, 내가 똑똑할 때에는 이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한다. 그러나 당신이 지금은 그것이 좋지 않다고 하지만 열흘이나 반달이 지난 후 다시 돌이켜보면 어이구, 이 일을 이처럼 잘하였구나! 그 때 나는 어떻게 이 일을 하였는가? 라고 할 것인 즉 흔히 이런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왜냐하면 副意識은 그 때에 이런 일이 무슨 작용을 일으키는 지를 상관하지 않지만 장래에는 하나의 좋은 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어떤 일은 무슨 결과가 없으며 당시에 작용을 일으킨다. 그렇다면 副意識이 가서 하는데, 아마 당시 이 일을 아주 잘 하였을 것이다.

또 한가지 형식이 있다. 바로 우리 근기가 아주 좋은 사람이 흔히 고급생명의 통제를 쉽게 받아서 해낸 일부 일들이다. 물론 그것은 다른 하나의 일로서, 여기에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주로 우리 사람의 자신으로부터 오는 일종 의식을 이야기하겠다.

영감(靈感)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 역시 문인들이 지어낸 명사이다. 일반적인 사람은, 영감은 바로 사람이 일생 중에서 누적된 지식이 그 일순간에 불꽃처럼 튀어나온 것이라고 여긴다. 내가 말한다면 유물주의 관점에 따라 볼 때, 인류의 일생 중의 지식 누적은, 누적된 지식이 많을수록, 사람의 대뇌가 쓰면 쓸수록 더욱 영활하다. 쓸 때에 와서는 마땅히 끊임없이 나와야 하므로 무슨 영감문제도 이야기할 바가 못된다. 무릇 영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나 또는 영감이 왔을 경우, 그것은 이런 상태가 아니다. 흔히 사람이 머리를 쓸 때에 쓰고 써서 마지막에는 지식이 고갈됨을 느끼게 되어 마치 더 쓸 수 없는 것만 같다. 즉 한 편의 문장을 써도 거기에 가서 더 써 내려갈 수 없고 한 수의 가곡을 창작하여도 구상이 없게 되며 하나의 과학연구 항목을 연구함에 있어서 연구해 나가지 못한다. 흔히 이런 때에 지쳐서 핏대가 서고 담배꽁초를 땅바닥에 수두룩히 던졌으며 머리가 되게 아팠지만 역시 생각해 내지 못한다. 마지막에는 모두 어떠한 상태에서 영감이 온 것인가? 예컨대 지쳤을 때에, "됐다, 좀 휴식이나 하자" 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主意識이 대뇌를 더욱 심하게 통제할수록 기타 생명도 끼어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휴식하고 그의 사상이 느슨해져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데, 이 무심결에 대번 생각나서 머리 속으로부터 내보내게 된다. 영감은 대부분이 다 이렇게 온다.

그러면 왜 이런 때에 영감이 오는가? 왜냐하면 사람의 대뇌가 主意識의 통제하에서 머리를 더욱 쓸 때일수록, 그가 더욱 통제할수록 副意識은 더욱 끼어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을 하여 머리가 아플 때, 생각이 나지 않아 꽤나 참기 어려워 할 때, 그 副意識도 그 신체의 일부분이고 역시 어머니의 배속에서 동시에 태생한 것으로 그 역시 신체를 주재(主宰)하는 일부분이기 때문에 그도 따라서 참기 어려우며 그 역시 따라서 머리가 아프고 아파서 야단이다. 그러나 主意識이 느슨했을 때에 副意識은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대뇌에 반영한다. 그가 다른 공간에 있을 때 사물의 본질을 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어 해내고, 써내고, 창작해 내게 된다.

어떤 사람은, 그럼 우리는 副意識을 운용하자고 말한다. 마치 방금 어느 사람이 쪽지를 써서 어떻게 副意識과 연계를 취할 수 있겠는가? 라고 말한 것과 같다. 당신은 연계할 수 없다. 당신은 연공을 방금 시작한 것으로 아무 재간도 다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은 연계하지 말라. 목적은 꼭 집착이다. 어떤 사람은 아마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副意識을 운용하여 우리를 위하여 일부 가치를 더 창조하여 인류사회 발전을 추진하면 안 되는가? 안 된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당신의 副意識이 알고 있는 일 역시 아주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간의 복잡함과 층차의 많음으로 말미암아 이 우주의 구조는 무척 복잡하므로, 그는 다만 그가 있는 공간의 것을 알뿐이고 그가 있는 공간의 것을 벗어나면 그는 모른다. 뿐만 아니라 또 많고 많은 종향(縱向) 층차가 부동한 공간이 있는데, 인류의 발전은 고급생명이 아주 높은 층차 중에서만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며 발전법칙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

우리 속인사회는 역사법칙에 따라 발전하고 있는데 당신이 어떻게 발전하려고 하며 어떤 목표에 도달하려고 하지만 그 고급생명은 이렇게 고려하는 것이 아니다. 고대의 사람이라고 그들이 오늘의 비행기, 기차, 자전거를 생각하지 못하였겠는가? 내가 말한다면 꼭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 것도 아닐 것이다. 역사가 그 한 과정에로 발전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도 창조해 낼 수가 없었다. 표면적으로 우리 이 속인의 관습적인 이론 인식, 현존의 인류지식 이 각도로부터 본다면, 인류의 과학이 그 하나의 정도에까지 도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창조해 내지 못하였던 것이다. 사실 인류과학이 어떻게 발전한 것인가 하는 것도 역시 역사의 배치에 따라 발전한 것으로서, 당신이 인위적으로 어느 하나의 목적에 도달하려고 하여도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또 어떤 사람은 副意識이 쉽게 작용한다. 어느 작가가 나는 책을 쓰는데 하루에 몇 만 자를 쓸 수 있으며 조금도 힘들지 않고 쓰려고 하면 아주 빨리 써낼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보아도 여전히 꽤 좋다고 한다 라고 말하였다. 왜 이럴 수 있는가? 이것은 그의 主意識, 副意識이 절반씩 작용한 결과이며 그의 副意識도 절반 작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 이러한 것이 아니며 절대다수의 副意識은 아예 상관하지 않는 즉, 당신이 그더러 일을 하게끔 하면 도리어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과는 바라는 바와 정반대가 된다.

청정심(淸淨心)

많은 사람은 연공을 함에 입정(入靜)을 하지 못하여 곳곳에서 기공사를 찾아 묻는다. 선생님, 나는 어쩐지 연공할 때 입정이 안되며 입정만 하면 무엇이나 다 생각나고 허튼 생각만 하게 됩니다 라고 한다. 그것은 정말로 대단히 혼란스러워 무엇이든 다 떠오르는데 당신은 도무지 조용할 수가 없다. 왜 조용하지 못하는가? 어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고 무슨 비결이나 있는 것으로 여기면서 그는 이름난 스승을 찾아, 나에게 무슨 상책을 좀 가르치면 조용해질 수 있는가 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역시 밖을 향하여 추구한 것이다. 당신이 만일 당신 자신을 제고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안을 향하여 찾아야 하며 당신의 이 마음에 노력을 들여야 한다. 당신은 그래야만이 진정하게 제고할 수 있으며 가부좌 중에서 당신은 비로소 조용해질 수 있다. 조용해질 수 있음이 바로 공이며, 입정력(定力)이 얼마나 깊은가는 층차의 체현이다.

속인이 마음대로 조용해질 수 있는가? 근기가 아주 좋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예 조용해질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조용해질 수 없는 근본원인은 무슨 수법에서의 문제가 아니며 무슨 절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사상, 당신의 마음이 깨끗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속인사회 중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에서, 개인의 이익, 칠정육욕, 각종 욕망의 집착을 위하여 당신이 다른 사람과 다투고 싸우며 이러한 것을 당신이 다 내려놓지 못하고 그것을 담담히 여기지 못하면서 당신이 조용해지려고 생각하는데, 어찌 말처럼 쉽겠는가? 어떤 사람은 거기에서 연공하면서 말하기를, 나는 믿지 않는다. 나는 조용해져야 하기 때문에 함부로 허튼 생각을 해서는 안되겠다고 한다. 금방 말을 했는데 또 뒤집혀 나왔다. 당신의 그 마음이 깨끗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은 조용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아마 나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즉 어떤 기공사는 남에게 무슨 수법을 취함을 가르치고 있지 않는가? 수일(守一)·관상(觀想)·의수단전(意守丹田)·내시단전(內視丹田) 또는 염불을 외우는 등등을 할 수 있지 않은가. 이는 일종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일종 방법뿐인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일종 재주(功夫)의 체현이다. 그렇다면 재주는 우리가 수련하는 心性(심성)과 우리가 제고하는 층차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그 역시 전일하게 이 방법을 취하여 조용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믿어지지 않으면 당신은 시험하여 보라. 당신의 각종 욕망, 집착심이 너무도 강성하여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하는데 당신이 조용해질 수 있는가를 보라. 어떤 사람은 염불을 외우면 잘 된다고 말하는데 염불을 외운다고 당신이 입정(入定)에 도달할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아미타불의 법문은 연마하기가 쉬우며 염불만 외우면 된다고 한다. 당신이 외워 보겠는가? 내가 말한다면 그것은 재주이다. 당신은 쉽다고 하지만 쉽지 않고 어느 한 법문도 쉽지 않다고 나는 말한다.

여러분은 석가모니가 이야기한 '정(定)'을 알고 있겠지만 '정(定)' 전에 그가 무엇을 이야기하였는가? 그는 '계(戒)'를 이야기하였다. 일체 욕망과 인을 전부 끊어버려 아무것도 다 없애버려야 만이 정해질 수 있다고 하였다. 이 이치가 아닌가? '정' 역시 재주라, 당신은 단번에 완전히 끊어버리는 정도에 도달하지 못하며 천천히 일체 좋지 못한 것을 끊어버림에 따라 입정력(定力) 역시 옅은 데서부터 점차 깊어진다. 사람이 염불을 외움에 있어서 일심불란(一心不亂)하게 외워야 하는데 마음속으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대뇌의 기타 부분이 외워서 마비되어 아무것도 다 모르며 일념(一念)이 만념(萬念)을 대체함이라, '아미타불'의 매 하나의 글자가 눈앞에 모두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재주가 아닌가? 시작하자마자 능히 이 한 점에 도달할 수 있는가? 도달하지 못한다. 도달하지 못하면 긍정적으로 입정할 수 없다. 믿어지지 않으면 한 번 시험해 보라. 입으로는 거기에서 한 번 또 한 번 이어서 외우지만 마음속으로는 무엇이든 다 생각한다. 우리 직장의 상사는 왜 날 이처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며, 나에게 이번 달 장려금을 이렇게 적게 주는가.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나서 야단인데 입으로는 아직도 염불을 외우고 있으니 당신이 말해보라. 연공할 수 있는가? 이것이 재주 문제가 아닌가? 이것이 당신 자신의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문제가 아닌가? 어떤 사람은 천목이 열려 단전(丹田)을 내시(內視)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의 아랫배 부위에 집결한 단(丹), 그 에너지물질은 순수할수록 더욱 밝으며 순수하지 않을수록 어둡고 검기 때문이다. 단전을 내시(內視)하여 그 단(丹)을 보게 되면 입정할 수 있는가? 입정할 수 없다. 방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건은 사람의 사상, 의념이 깨끗하지 못한 데 있다. 당신이 단전을 내시(內視)하여 그 단(丹)이 반짝반짝하는 것이 대단히 좋게 보이지만 한참이면 이 단(丹)이 곧 변하여 집으로 변해 버린다. "이 방은 내 아들의 결혼에 쓰고, 이 방은 내 딸이 있고, 우리 늙은 부부는 이 방에 있자. 중간은 거실인데 참 좋구나! 이 집을 나에게 줄 수 있는가 없는가? 나는 방법을 대어 그것을 가져야 되겠다.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은 이러한 것에 집착하는데 당신이 말해보라. 당신이 조용해질 수 있는가? 남은 말하기를, 내가 이 속인사회 여기에 옴은 마치 여관에 투숙하는 것과 같이 며칠 좀 묵었다가 총총히 간다고 한다. 일부 사람은 이 곳에 미련을 두고 자신의 집을 잊어 버렸다.

진정한 수련은 곧 마음을 향하여 수련해야 하고 안을 향하여 수련해야 하며, 안을 향하여 찾아야 하는바, 밖에서 찾는 것이 없다. 어떤 법문은 부처님은 마음속에 있다고 말하는데 역시 이치가 있다. 어떤 사람은 이 한 마디 말을 잘못 이해하였다. 부처님이 마음속에 있다고 말하니까, 마치 그 자신이 바로 부처이며 마치 마음속에 부처님이 있는 듯 한다. 그는 이렇게 이해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어찌 그렇게 이해할 수 있는가. 뜻은 바로 당신이 마음을 향하여 수련해야 만이 당신은 수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이치이다. 당신의 몸에 어디 부처님이 있는가? 당신은 수련해야 만이 수련될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이 조용해지지 못하는 원인은 당신의 사상이 비워지지 못하였고 당신이 그렇게 높은 층차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옅은 데서부터 깊은 데로 들어가는 것이며 층차의 제고와 서로 보완되고 완성되는 것이다. 당신이 집착심을 내려놓았다면 당신의 층차도 올라오며 당신의 입정력(定力)도 깊어지기 마련이다. 당신이 무슨 수법, 방법을 통하여 조용해지려고 한다면, 그것은 모두 밖을 향하여 추구하는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래서 연공은 꼭 잘못 나가고 그릇된 길로 나갔는데 곧 사람이 밖을 향하여 추구함을 가리킨다. 특히 불교에서는 당신이 만일 밖을 향하여 추구한다면 그는 당신이 마도(魔道)를 걷는다고 말한다. 진정한 수련은 그 마음을 수련해야 한다. 당신이 오로지 心性(심성)을 높였을 때에야 만이 당신의 마음은 비로소 깨끗하고 무위(無爲)에 도달할 수 있으며 당신이 오로지 心性(심성)을 높였을 때에야 만이 비로소 우리 우주의 특성에 동화하게 되며 사람의 각종 욕망, 집착심, 좋지 않은 것을 제거해 버리게 되며, 당신은 비로소 자신의 좋지 않은 것을 쏟아버릴 수 있어, 당신은 비로소 떠올라 오게 된다. 우주특성의 제약을 받지 않으므로 당신의 德(덕)이란 이런 물질이 비로소 공(功)으로 전화될 수 있는데 그것은 서로 보완되고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런 이치이다!

이는 주관적으로는 자신으로 하여금 연공인 표준의 요구에 도달할 수 없게 되어 조성된 조용해지지 못하는 원인이다. 지금 객관적으로도 이런 일종 상황이 존재하여 당신이 고층차에로 수련할 수 없게끔 엄중히 교란하며 연공인을 엄중하게 영향 주고 있다. 여러분 알다시피 개혁개방에 따라 경제가 활성화되고 정책도 넓게 썼다. 새로운 과학기술이 많이 도입되어 들어왔고 사람의 생활수준도 높아가고 있는데 속인 중에서 누구나 다 좋은 일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하나가 둘로 나누어지는 것으로 보고 변증으로 보면, 좋지 않은 것도 개혁개방을 따라 들어왔으며 형형색색이다. 문예작품 속에 만일 황색의 것을 써넣지 않으면 이 책을 팔 수 없는 것 같은데 판매량의 문제를 강조하기 때문이며, 영화와 텔레비전에 만일 침대 위에서의 화면이 좀 없으면 영화, 텔레비전도 볼 사람이 없는 것 같은데 입장률과 시청률 문제를 강조하기 때문이며, 미술작품 속에 진짜 예술인지 아니면 무엇을 하는 것인지 누가 알겠는가만, 우리 중국의 오랜 민족예술 중에는 이런 것이 없다. 우리 중화민족의 이 전통은 누가 발명하고 누가 창조한 것이 아니다. 내가 사전문화를 이야기할 때에 말했지만 일체 것들은 모두 그의 근원이 있다. 인류의 도덕표준마저 비틀어지고 변화가 발생하였으며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마저도 변화가 발생하였는데 그것은 속인 중의 일이다. 이 우주의 특성인 眞ㆍ善ㆍ忍의 표준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으로서, 그는 변하지 않는다. 일개 연공인으로 당신이 뛰쳐나오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곧 이 표준으로 가늠해야 하며 당신은 속인의 표준으로 가늠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객관적으로도 이런 일종의 교란이 존재한다. 또한 이런 것뿐만이 아니라, 무슨 동성연애, 성해방, 독물을 피우는 난잡한 것들이 모두 나오게 되었다.

인류사회가 오늘날 이 지경에 발전되어 온 것을 여러분 생각해 보라. 더 발전하여 내려가면 어떤 모양이겠는가? 그로 하여금 영원히 이렇게 존재하여 내려가게 할 수 있는가? 사람이 다스리지 않으면 하늘이 다스린다. 인류가 겁난(劫難)이 발생할 때에는 모두 이런 일종의 상태에 처하게 된다. 이렇게 많은 강의 중에서 나는 인류의 대겁난(大劫難)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다. 종교에서도 이야기하고 많은 사람이 모두 이 인기있는 화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런 하나의 문제를 이야기하겠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우리 속인사회에서 사람의 도덕수준이 이러한 변화가 발생하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 긴장한 정도가 이런 정도에까지 도달하였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그것이 그래 하나의 극히 위험한 경지에로 다가온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현재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이 환경 역시 우리 연공인이 고층차에로의 수련을 엄중히 교란하고 있다. 나체 그림을 거기에 놓았거나 큰 거리에 걸어 놓아 머리만 들면 보인다.

노자는 이런 한 마디 말을 하였다. 상사(上士)가 도(道)를 들으면 근면히 행한다고. 상사(上士)는 도를 듣게 되어, 겨우 정법을 얻게 되었는데 오늘 수련하지 않고 어느 때를 기다리겠는가? 라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복잡한 환경은 오히려 좋은 일로서, 복잡할수록 고인(高人)이 나올 수 있지 않은가. 여기에서 두각을 나타내야만 그것은 비로소 수련한 것이 가장 착실하다.

진정하게 결심을 내리고 수련하는 한 사람이라면 나는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모순의 생김이 없으며 당신에게 心性(심성)을 높일 기회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올라갈 수도 없지 않는가. 당신도 좋고 나도 좋다면 어떻게 수련을 하겠는가? 일반적으로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중사(中士)가 도를 들음"에 속하므로 연마해도 되고 연마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러한 사람은 아마 힘들다. 어떤 사람은 여기에서 스승님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이치가 있다고 여기지만 속인사회로 돌아가서는 아직도 이런 현실 이익이 실속적이라고 한다. 맞다. 실속적이고도 실속적이다. 당신뿐이 아니라 서양에 많은 대부자, 대부호(大富豪)도 백년 후에 그는 아무것도 다 없으며 물질재부란 태어날 때 가지고 오지 못하며 죽어서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것으로 아주 공허함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왜 공은 이처럼 진귀한가? 왜냐하면 직접 당신의 元神(원신) 몸에 갖고 있어, 태어날 때 갖고 올 수 있고 죽어서 갖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元神(원신)불멸을 이야기하는 데 이것 역시 무슨 미신이 아니다. 우리 이 물질신체의 세포가 벗겨진 후 다른 물질공간 속에 존재하는 더욱 작은 분자성분은 오히려 사멸되지 않았는데 그것은 다만 한 층의 껍질을 벗겨버림에 불과하다.

내가 방금 이야기한 것은 모두 사람의 心性(심성)에 속하는 문제이다. 석가모니는 이러한 말씀을 한 적이 있으며 달마도 말한 적이 있다. 즉 중국 동토 이 곳은 대덕지사(大德之士)가 나타나는 곳이라고. 우리 중국은 역대로 많은 승려들이 있었는데 많은 중국인은 스스로 긍지를 느끼고 있다. 그 뜻인 즉 높은 공을 수련해 낼 수 있다고 여겼다. 때문에 많은 사람은 기뻐하며 득의양양해 하였다. 그래도 우리 중국 사람이라고. 중국 이 곳에 대근기의 사람이 나타나고 대덕지사(大德之士)가 나타난다고 한다. 사실 많은 사람은 그 중의 뜻을 알지 못하고 있다. 왜 중국 이 곳에 대덕지사가 나올 수 있으며 왜 높은 공이 나올 수 있는가? 많은 사람은 고층차 중의 사람이 이야기한 말의 진정한 함의를 모르고 있으며 또한 고층차, 높은 경지 중의 사람이 있는 경지, 그의 사상상태를 모르고 있다. 물론 우리가 이야기하였지만, 그것이 무슨 뜻인가를 말하지 않더라도 여러분 생각해 보라. 오로지 가장 복잡한 사람들의 무리와 가장 복잡한 환경에서야 만이 높은 공을 수련해 낼 수 있다는 이 뜻이다.

근기(根基)

근기는 사람이 다른 공간의 신체가 갖고 있는 이런 德(덕)의 물질의 많음과 적음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德(덕)이 적으면 흑색물질이 많으며 업력마당이 크게 되는데 그럼 이는 근기가 좋지 못함에 속하며, 德(덕)이 많으면 백색물질이 많고 업력마당이 작은즉 그럼 이는 근기가 좋음에 속한다. 사람의 백색물질과 흑색물질 이 두 가지 물질은 서로 전화될 수 있다. 어떻게 전화되는가? 좋은 일을 하면 백색물질이 생긴다. 백색물질은 바로 고생을 겪고 고통을 겪으며 좋은 일을 하여 얻어 온 것이다. 그러나 흑색물질은 바로 나쁜 일을 하고 좋지 않은 일을 하여 생기게 되는데 그것은 업력이다. 그것은 이런 하나의 전화과정이 있으며 동시에 그것은 또 하나의 휴대(携帶) 관계가 있다. 그가 직접적으로 元神(원신)을 따라 다니기 때문에 일생일세(一生一世)의 것이 아니며 하나의 오랜 연대에 누적되어 내려온 것이다. 그러므로 업력을 쌓고 德(덕)을 쌓음을 이야기를 하며 또한 조상 역시 아래로 쌓을 수 있다. 나는 어떤 때에 중국의 옛사람 또는 노인의 말이 생각난다. 즉 조상에서 德(덕)을 쌓았다거나 또는 德(덕)을 쌓아라, 德(덕)이 모자라다고 하는데 그 말은 어찌 그렇게도 맞는지, 참말로 대단히 맞다.

근기가 좋고 나쁨은 한 사람의 오성(悟性)이 좋고 나쁨을 결정할 수 있다. 근기가 좋지 않은 사람은 사람의 오성으로 하여금 매우 부족하게 변하도록 할 수 있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근기가 좋은 사람은 백색물질이 많은데 이런 백색물질과 우리 우주는 융합된 것으로, 眞ㆍ善ㆍ忍의 특성과 한데로 융합될 수 있으며 간극이 없기 때문이다. 우주의 특성이 직접 당신의 신체에서 반응되는데 직접 당신 신체와 서로 통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흑색물질은 꼭 상반대로 좋지 못한 일을 하여 얻은 것으로서, 우리 우주특성과는 서로 어긋나기 때문에 이런 흑색물질과 우리 우주특성은 곧 일종의 격리가 생긴다. 만약 이런 흑색물질이 많게 될 때면 그가 인체주위에서 하나의 마당을 형성하여 사람을 포위한다. 이 마당이 클수록 그것의 밀도가 더욱 크고 더욱 두꺼워 곧 이 사람으로 하여금 오성이 더욱 좋지 못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는 우주의 眞ㆍ善ㆍ忍 이런 특성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며 역시 그가 좋지 않은 일을 하여 생긴 흑색물질이기 때문이다. 흔히 이러한 사람일수록 수련을 더욱 믿지 않고 오성이 더욱 좋지 못하며 업력의 장애를 더욱 받게 되는바 고생을 겪음이 클수록 더욱 믿지 않으며 수련을 한다 해도 어렵다.

백색물질이 많은 사람은 수련하기가 쉽다. 왜냐하면 그의 수련과정에서 그가 오로지 우주의 특성에 동화하기만 하면 그의 心性(심성)이 제고될 수 있으며 그의 이런 德(덕)이 직접 공으로 전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흑색물질이 많은 사람은 마치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것과도 같이 절차가 하나 더 많아지게 된다. 다른 사람의 것은 모두 이미 만들어진 재료이나 그의 것은 반제품으로 다시 한 번 가공해야 되는데 이런 하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므로 그는 우선 고생을 겪어 그의 업력을 없애버려 백색물질로 전화시켜야 하며 德(덕)이란 이런 물질이 형성된 후에야 그는 비로소 높은 공이 자랄 수 있다. 하지만 흔히 이런 사람 자체가 오성이 좋지 않아 당신이 그더러 다시 고생을 더 겪으라면 그는 더욱 믿지 않으며 더 견디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흑색물질이 많은 사람은 수련하기가 힘들다. 예전에 도가 또는 단독전수하는 법문에서는 사부가 제자를 찾지, 제자가 사부를 찾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데 역시 그의 신체가 휴대하고 있는 이런 것이 얼마나 되는가를 보고 결정하기 때문이다.

근기는 사람의 오성을 결정하지만 또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근기가 아주 좋지 못하지만 가정환경이 아주 좋고 많은 사람이 다 연공하며 또 일부 사람은 종교의 거사이라 수련의 일을 되게 믿는다. 이런 환경 중에 그로 하여금 믿게끔 변하고 오성이 좋게 끔 변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역시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근기가 아주 좋지만 흔히 우리 현실사회 현존의 고만한 지식의 교육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특히 몇 년 전의 절대화한 사상교육 방법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사상으로 하여금 매우 협소하게 변하게끔 함으로써, 그의 지식면을 벗어난 일체 것을 그는 전부 다 믿지 않으며 역시 그의 오성으로 하여금 심한 교란을 받게 하였다.

예를 하나 든다면 내가 수련반을 열 때, 두 번째 날에 천목 열기를 이야기하였다. 어느 한 사람의 근기가 좋아 그의 천목을 단번에 아주 높은 층차로 열어 주어 그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많고 많은 광경을 보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였다. 야, 나는 법을 전수하는 온 마당에 法輪(법륜)이 눈꽃처럼 사람들의 몸에 내려앉는 것을 보았고 나는 이스승님의 眞體(쩐티)가 어떤 모양인가를 보았는가 하면, 이스승님의 광환을 보았고 法輪(법륜)이 어떤 모양이며 법신이 얼마나 있는가를 보았다. 부동한 층차에 모두 이스승님이 설법하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法輪(법륜)이 어떻게 수련생의 신체를 조절해 주는가를 보았다. 또 스승님이 강의하실 때 한 층 한 층, 부동한 층차에 모두 스승님의 功身(꿍썬)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또한 선녀가 꽃을 뿌리는 등등을 보았다고 하였다. 이처럼 미묘한 것을 그가 다 보게 됨은, 이 사람의 근기가 무척 괜찮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는 말하고 말하다가 마지막에, 나는 이런 것을 믿지 않는다고 한 마디 말하였다. 어떤 것은 이미 현존의 과학에 의하여 실증되었고 많은 것도 현존 과학에서 해석을 얻을 수 있으며 일부 것들을 우리도 다 논술하였다. 왜냐하면 기공이 인식하는 것은 확실히 현대 과학의 인식을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며 이는 긍정적이다. 이로 볼 때 근기도 오성을 완전히 제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悟)

무엇이 '깨달음'인가? '깨달음'이란 종교에서 온 명사이다. 불교에서는 수련하는 사람이 불법에 대한 이해를 가리키는데, 인식에서의 깨달음과 최종의 깨달음은 혜오(慧悟)를 가리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속인 중에 응용되어 왔다. 이 사람을 아주 총명하다고 말한다면 상사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즉시 파악할 수 있으며 상사 앞에서 잘 보이느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오성이 좋다고 이야기하는데 흔히 다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당신이 속인의 층차를 뛰쳐나와 약간 높은 층차 중에 있다면, 당신은 속인이 인식하는 이 층의 이치란 흔히 다 틀린 것임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말하는 깨달음이란 이 깨달음이 전혀 아니다. 한 교활한 사람의 오성은 도리어 좋지 못하다. 왜냐하면 과분하게 총명한 사람은 그가 표면적인 일을 하여 상사, 상급의 중시를 받기 때문이다. 그 진정한 일은 다른 사람이 가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 그는 곧 다른 사람의 것을 빚지기 마련이다. 그가 잘 보이느라고 하기에 그는 이로운 점을 많이 얻을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은 해로운 점을 많이 얻게 되기 때문이며 그가 약기에 그 역시 손해를 볼 수 없으며 그 역시 쉽사리 손해를 보지 않는데 그러면 다른 사람이 곧 손해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가 현실의 요만한 이익을 더욱 더 중시할수록 그의 흉금도 갈수록 더 좁아지게 되고 그는 갈수록 속인의 물질이익만이 손을 뗄 수 없는 것이라고 느끼며 그 역시 그 자신이 현실을 중히 여긴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그는 손해를 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또 부러워하고 있다! 내가 당신한테 알려주겠다. 그를 부러워하지 말라. 당신은 그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고 있다. 그는 잘 먹지도 못하고 잘 자지도 못하며 꿈을 꾸어도 그의 이익이 손해볼까봐 두려워한다. 개인 이익에서 그는 쇠뿔 속으로 파고드는데 당신이 말해보라. 그가 산다는 것이 힘든가 힘들지 않은가를. 그의 일생은 바로 이것을 위하여 살고 있다. 우리는 모순 앞에서 한 발자국만 물러서면 가없이 넓은 세상이라고 말하는데 보증하고 다른 한가지 광경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이런 사람은 물러서지 않으며 그가 산다는 것이 가장 힘든 것으로서 당신은 그를 따라 배우지 말라. 수련계에서 말하기를, 이 사람은 미혹됨이 가장 깊으며 물질이익을 위하여 완전히 속인 중에서 방향을 잃었다고 한다. 그더러 德(덕)을 지키라고 한다면 어찌 말처럼 쉽겠는가! 당신이 그더러 연공하라고 하면 그는 믿지 않는다. 연공이라고? 당신들은 연공함에 있어서 때려도 맞받아 치지 않고 욕을 하여도 대꾸하지 않는다. 남이 당신을 형편없게 만들어 놓았지만 당신은 마음속으로부터 남과 같이 대해서는 안되며 도리어 남에게 감사를 드려야 한다니. 당신들은 다 아Q이다! 하나 하나가 정신병이다! 이러한 사람은 그가 수련에 대해서는 이해할 방법이 없다. 그는 당신이야말로 불가사의하다고 말하며 그는 당신을 어리석다고 말한다. 당신이 말해보라. 그를 제도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닌가?

우리가 말하는 깨달음은 이 깨달음이 아니다. 바로 그가 말한 우리가 개인이익에서 좀 어리석다는 것인데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이 깨달음이다. 물론 정말로 어리석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다만 절실한 이익, 이런 문제에서 담담하게 볼뿐이며 기타 면에서 우리는 모두 아주 총명하다. 우리는 과학연구 항목을 연구함에 있어서 상사가 무슨 임무를 맡겨 주면 무슨 사업을 완성하는데 우리는 모두 아주 똑똑하고 명백하게 잘 한다. 그러나 바로 우리 자신의 고만한 개인 이익에서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충돌에서 우리는 담담하게 본다. 누가 당신을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는가? 누구도 당신을 어리석다고 말할 수 없는데 보증하고 이러하다.

우린 정말로 어리석은 이 바보를 말해 보자. 이 이치는 고층차에서 모두 다 반대로 된다. 바보는 속인 중에서 큰 나쁜 일을 하기 불가능하며,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다투고 싸우는 것이 불가능하며, 명예를 추구하지 않으므로 그는 德(덕)을 손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오히려 그에게 德(덕)을 줄 수 있다. 그를 때리고 그를 욕하면 모두 그에게 德(덕)을 주게 되기 마련인데 이런 물질은 극히 진귀하다. 우리 이 우주 중에는 곧 이런 이치가 있다. 즉 잃지 않는 자는 얻지 못하며 얻으면 곧 잃어야 한다. 남들은 그 바보를 보고 모두 그를 욕할 수 있다. 너 이 바보야. 입을 벌려 욕함에 따라 한 덩이의 德(덕)을 던져 주었다. 당신은 이득을 보았기에 얻은 한쪽에 속하는데 그렇다면 당신은 곧 잃어야 한다. 다가가서 그를 발로 한번 찬다. 너 이 바보야. 좋다. 또 묵직한 한 덩이의 德(덕)을 또 던져 주었다. 누가 그를 업신여기고 누가 그를 발로 한 번 차도 그는 허허 웃는다. 당신이 오라. 어쨌든 德(덕)을 나에게 주었으니 나는 조금도 밖으로 밀어내지 않을 것이다! 그럼 고층차의 이 이치에 따라 여러분 생각해 보라. 누가 약은가? 그가 약은 것이 아닌가? 그가 가장 약다. 그는 德(덕)을 조금도 잃지 않는다. 당신은 德(덕)을 그에게 던져 주는데 그는 조금도 되돌려 보내지 않고 전부 다 가지며 싱글벙글 모두 다 가진다. 금생에는 바보이지만 내생에는 바보가 아니며 元神(원신)은 어리석지 않다. 종교에서는 이야기하기를 사람의 德(덕)이 많게 되면 내생에 큰 벼슬을 하거나 큰 부자가 된다고 하며 모두 사람의 德(덕)으로 교환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德(덕)이 직접 공으로 연화(演化)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당신이 얼마 높게 수련되었다면 당신의 이 德(덕)이 연화된 것이 아닌가? 그것은 직접 공으로 연화될 수 있다. 사람의 층차의 고저와 공력의 대소를 결정하는 공은 이런 물질이 연화되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당신이 말해보라. 그것이 진귀한가 진귀하지 않은가를? 그것은 태어날 때 갖고 올 수 있으며 죽어서 갖고 갈 수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당신이 얼마 높게 수련되었으면 그것은 당신의 과위라고 말한다. 당신이 얼마나 대가를 치르면 얼마나 얻게 되는데 바로 이 이치이다. 종교에서는 德(덕)이 있게 되면 내세에 큰 벼슬을 하고 큰 부자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德(덕)이 적게 되면 밥도 빌어먹지 못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교환할 德(덕)이 없기 때문이다.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함이니까! 德(덕)이 조금이라도 없다면 그것은 곧 형신전멸(形神全滅)로서 정말로 죽는다.

예전에 한 기공사가 있었는데 금방 출산(出山)할 때에는 층차가 무척 높았으나 이 기공사는 후에 명리 속에 떨어졌다. 그의 사부는 곧 그의 副元神(부원신)을 데리고 갔다. 왜냐하면 그는 모두 副元神(부원신)이 수련함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副元神(부원신)이 있을 때에는 副元神(부원신)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 예를 하나 든다면 어느 하루 직장에서 집을 분배하였다. 상사는 집이 없는 사람은 모두 와서 조건을 내놓도록 하고 개인적으로 어떻게 집이 필요 되는지 이야기하라고 말하였다. 제각기 제 말을 하는데 그 사람은 말하지 않았다. 나중에 상사가 보니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도 곤란하여 집을 마땅히 그에게 주어야 하겠다고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안 된다, 집을 그에게 줄 수 없으며 나에게 주어야 하는데 나는 어떻게 집이 없다고들 말하였다. 그는, 그럼 당신이 가지도록 하라고 말하였다. 만약 속인이 본다면 이 사람은 바보이다. 어떤 사람은 그가 연공인임을 알고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연공하는 사람이라,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데 당신은 무엇을 가지려고 하는가? 그는 말하기를,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가지지 않으면 나는 무엇을 가지겠다고 하였다. 사실 그는 조금도 어리석지 않으며 무척 총명하다. 바로 개인의 절실한 이익에서 곧 이렇게 대하며 그는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는 것을 주장한다. 다른 사람은 또 묻기를, 지금의 사람은 무엇을 가지지 않는가? 그는 땅 위의 돌은 차 던지면서 가지려는 사람이 없는데, 그럼 나는 그 돌이나 줍겠다고 말했다. 속인은 불가사의하다고 여긴다. 속인은 연공인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방법이 없는데 사상경지의 차이가 너무나도 멀고, 떨구어 놓은 층차가 너무나도 크다. 물론 그는 가서 그 돌을 줍지 않을 것이며 그는 속인이 깨닫지 못하는 하나의 이치를 말하였다. 즉 나는 속인 중의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돌을 말하자. 여러분 알다시피 불경(佛經) 중에는, 극락세계의 나무는 금이며 땅은 금이며 새는 금이며 꽃은 금이며 집도 역시 금으로, 불체(佛體)마저도 다 금빛이 번쩍이는 것이라고 씌어 있다. 거기에 가서 돌 하나 찾지 못하는데, 듣는 말에 의하면 돈을 쓰게 되는 것이 돌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돌을 거기로 운반하여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이런 하나의 이치를 말한 것으로, 속인은 이해할 수 없다. 연공인은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말한다. 속인에게는 속인이 추구하는 것이 있지만 우리는 추구하지 않으며, 속인에게 있는 것을 우리는 희한해 하지 않는가 하면, 우리에게 있는 것을 속인이 가지려 하여도 가질 수 없다.

사실 우리가 금방 이야기한 깨달음, 이것은 아직도 수련과정 중의 이런 깨달음에 속하며 이는 속인 중의 깨달음과 꼭 서로 반대가 된다. 우리가 진정하게 가리키는 깨달음은 바로 우리가 연공과정 중에 사부가 이야기한 법(法)이고 도가의 사부가 이야기한 도(道)인즉 수련 과정에서 자신이 시달림(磨難)에 부딪히게 되어 자신을 수련인이라고 깨달을 수 있는가 없는가, 이해할 수 있는가 없는가,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없는가, 수련과정 중에서 이 법에 따라 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이야기하여도 그는 전혀 믿지 않는데 아직도 속인 중의 것이 실용익적이라고 한다. 그는 고유의 관념을 품고 놓지 않기 때문에 그의 믿을 수 없음을 조성하였다. 어떤 사람은 병을 치료하려고 생각하여 내가 여기에서 기공이란 병치료를 함에 쓰는 것이 전혀 아니라고 말하자 그의 사상은 곧 반감이 생겨 이로부터 이야기하는 것을 더는 믿지 않는다.

어떤 사람의 오성은 좀처럼 올라오지 못하며 어떤 사람은 나의 이 책을 들고 제멋대로 금을 긋는다. 우리 천목이 열린 사람은 모두 보게 되는데, 이 책을 보기만 하면 오색영롱하고 금빛찬란하므로 매 하나의 글자가 모두 나의 법신의 형상이다. 내가 만일 거짓말을 한다면 곧바로 여러분을 속이는 것이다. 당신이 한 번 긋기만 하면 시꺼멓게 되는데 당신은 감히 함부로 그 위에 긋겠는가? 우리는 여기에서 뭘하고 있는가? 당신을 위로 이끌어 수련시키고 있지 않는가? 어떤 일은 당신도 마땅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책은 당신의 수련을 지도할 수 있는데 당신이 생각해 보라. 그가 진귀한가 진귀하지 않은가? 당신이 부처님에게 절을 한다 해서 당신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수련하게 할 수 있는가 없는가? 당신이 아주 경건하므로 그 불상을 조금이라도 감히 다치지 못하고 날마다 그에게 향불을 피우지만, 진정하게 당신의 수련을 지도할 수 있는 대법을 당신은 오히려 감히 해친다.

사람의 오성 문제를 이야기한다면 이것은 수련과정에서 나타나는 각종 층차 또는 사부가 이야기한 어떤 일종의 것과 어떤 일종의 법, 그에 대한 당신의 이해정도를 가리킨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말하는 근본적인 깨달음이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근본적인 깨달음은 바로 그의 유생지년(有生之年)에 수련의 첫 시작으로부터 끊임없이 위로 승화되며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 각종 욕망을 제거해 버리고, 공 역시 끊임없이 위로 자라서 최후에 그의 수련의 최후 일보에까지 줄곧 가는 것을 말한다. 德(덕)란 이런 물질이 전부 연화(演化)되어 공으로 되고 사부가 배치해 준 수련의 길을 끝까지 가게 된 이 일순간에 자물쇠가 '팍'하고 단번에 전부 터져 열리게 된다. 천목은 그가 있는 층차 중의 최고점에 도달하게 되며 그가 있는 층차 중의 각개 공간의 진상, 각개 시공(時空)의 각종 생명체의 존재 형식, 각개 시공 중의 물질존재 형식을 보게 되며 우리 우주 중의 진리를 보게 된다. 신통이 크게 나타나 각종 생명체와 모두 통할 수 있다. 이 경지에 이르렀을 때, 그래 하나의 대각자가 아니란 말인가? 수련하여 깨달은 사람이 아닌가? 고인도 말로 번역하면 바로 부처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 깨달음, 이런 근본적인 깨달음은 여전히 돈오(頓悟)형식에 속한다. 돈오는 그의 유생지년(有生之年)에 잠가져 수련하는 것으로, 자신은 얼마나 높은 공이 있는지를 모르며 자신이 연마해 낸 공이 어떤 형태인지를 모르는가 하면 어떠한 반응도 전혀 없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신체의 세포마저도 모두 잠가져 있고 공이 연마되어 나와도 모두 잠가져 있으며 수련의 최후 일보에까지 줄곧 수련되어야만 비로소 열리게 된다. 이것은 대근기의 사람만이 비로소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수련을 하려면 무척 고생스럽다. 좋은 사람이 됨으로부터 시작하여 줄곧 자신의 心性(심성)을 높이고 줄곧 고생을 겪으며 줄곧 위로 수련하면서 줄곧 心性(심성)의 제고를 요구하지만, 도리어 자신의 공을 볼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수련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으로, 이는 반드시 대근기 사람이어야 하는데 수많은 해를 수련하여도 아무것도 모른다.

또 일종의 깨달음을 점오(漸悟)라고 한다. 시작부터 많은 사람은 法輪(법륜)이 회전함을 다 감수하게 되며 동시에 나는 또 여러분에게 천목을 열어준다.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하여 보이지 않는 데로부터 장래에 보게 될 것이며, 똑똑히 보이지 않는 데로부터 똑똑히 보게 되는가 하면, 쓸 줄 모르던 데로부터 쓸 줄 아는 데로 이르게 되어 층차가 끊임없이 높아진다. 당신의 心性(심성)의 제고와 여러 가지 집착심의 포기에 따라 각종 공능도 모두 밖으로 나오게 된다. 전반 수련과정의 연변(演變)과 신체의 전화과정은 모두 당신 자신이 볼 수 있거나 또는 감수하게 되는 상황에서 변화를 발생한다. 이렇게 최후의 일보에까지 가게 되면 우주의 진리를 완전히 인식하고 층차는 당신이 마땅히 수련되어야할 정점에 도달하게 된다. 本體(본체)의 변화, 공능의 가지(加持)도 모두 일정한 정도에 도달하며 점차적으로 이 목적에 도달한다. 이는 점오에 속한다. 점오란 이런 수련방법 역시 쉬운 것이 아니다. 공능이 있게 되면 어떤 사람은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쉽사리 과시하며 좋지 않은 일을 하기 쉽다. 이렇게 되면 당신은 공이 떨어지게 되며 당신은 헛되게 수련하여 마지막에는 망치게 된다. 어떤 사람은 볼 수 있어서 부동한 층차의 각종 생명체의 나타남을 볼 수 있는데, 그는 아마 당신을 끌고 가서 이것저것을 하게끔 하며 그는 아마 당신을 끌고 가서 그의 것을 수련하게끔 하며 당신을 제자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도리어 당신으로 하여금 정과를 얻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역시 정과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 외, 고층 공간의 사람은 모두 神으로서 아주 크게 변하며 신통(神通)이 크게 나타나는데 마음이 똑바르지 못하면 당신은 그를 따라 갈 것이 아닌가? 당신이 그를 따라 가기만 하면 단번에 수련이 헛되게 된다. 그가 바로 진짜 부처, 진짜 도사라 해도 당신은 역시 처음부터 다시 수련해야 한다. 수많은 층 하늘의 사람, 그것은 모두 신선이 아닌가? 오로지 극히 높은 층차에로 수련되고 목적에 도달했을 때에야만이 비로소 완전히 뛰쳐나가게 된다.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의 눈앞에 그 신선은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높고 크게 나타나고 재간도 아주 크다. 그러나 그가 꼭 정과를 얻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정보의 교란에서, 여러 가지 광경의 유혹에서 당신은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가 없는가? 때문에 천목이 열려서도 수련하기가 어렵다고 말하며 心性(심성)을 파악하기가 더욱 어렵다. 하지만 우리 일부 사람은 다행히 중도에서 다시금 당신에게 공능을 열어주어 점오의 상태에 들어가게 한 것이다. 천목을 사람마다 열어주며 많은 사람의 공능은 당신으로 하여금 나오지 못하게 하는데, 당신의 心性(심성)이 점차적이고도 점차적으로 하나의 층차에로 제고된 후 심태가 안정되고 자신을 파악할 수 있을 때, 그런 다음에야 단번에 당신에게 터져 열리게 한다. 한 층차에 이르러 당신으로 하여금 점오상태가 나타나게 한다. 그때에 가서는 비교적 파악하기가 쉬워 각종 공능이 다 나타나게 되며 스스로 위로 수련하여 최후에 가서는 완전히 열리게 된다. 수련하는 도중에 당신으로 하여금 나타나게 하는데 우리 많은 사람은 이 한 부류에 속한다. 그러므로 급히 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은 아마 선종에서도 돈(頓), 점(漸) 구분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선종의 육조(六祖) 혜능은 돈오(頓悟)를 주장하고 북파(北派)의 신수(神秀)는 점오(漸悟)를 주장하였다. 역사적으로 그들 둘은 불학(佛學)에서 아주 오랜 시간 논쟁이 생겼는데, 논쟁하고 논쟁하였다. 나는 의의가 없다고 말한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그들이 가리킨 것은 단지 수련 과정에서 하나의 이치에 대한 인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하나의 이치를 어떤 사람은 단번에 인식하였으며 어떤 사람은 천천히 깨닫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깨달았던 지간에 안될 것이 있는가? 단번에 인식하면 더욱 좋고 천천히 깨달으면 그것도 되는데 모두 깨달은 것이 아닌가? 모두 깨달았다. 그러므로 어느 것도 틀리지 않다.

대근기지인(大根器之人)

무엇이 대근기지인인가? 대근기지인과 근기가 좋고 나쁨은 여전히 구별이 있는 것이다. 이런 대근기지인은 찾기가 너무나도 어려우며 모두 무척 긴 역사시기를 거쳐서야만 비로소 한사람이 출생하게 된다. 물론 대근기지인은 우선적으로 반드시 아주 큰 德(덕)을 구비해야 하며 이런 백색물질의 마당이 대단히 커야 하는 즉, 이 점은 긍정적이다. 동시에 그는 고생 중의 고생을 겪을 수 있고 대인지심(大忍之心)이 있어야 하며 능히 버릴 수 있어야 하고 德(덕)을 지킬 수 있어야 하는가 하면 또 오성(悟性)이 좋아야 하는 등등이다.

무엇이 고생 중의 고생인가? 불교에서는 인간으로 됨이 고생이기 때문에 오로지 당신이 인간으로 되었다면 곧 고생을 겪어야 한다고 인정한다. 그는, 모든 공간의 생명체는 모두 우리 속인의 이런 신체가 없기 때문에 병에 걸릴 수 없으므로 생로병사의 문제가 존재하지 않으며 이런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다른 공간의 사람은 뜰 수도 있고 가볍고 무거움이 없이 몹시 미묘하다. 속인은 바로 이 신체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문제가 나타난다. 즉 추워도 안되며 더워도 안되고 갈해도 안되며 배고파도 안되고 지쳐도 안 된다. 또 생로병사가 있는데 어쨌든 당신은 편안하지 못하다.

나는 한 신문에서 당산(唐山) 지진 때에 많은 사람들이 지진에서 죽었지만 일부 사람이 구급치료를 받아 살아나게 되었다는 것이 실린 것을 보았다. 이 부분의 사람에 대하여 한 차례 특수한 사회조사를 하였다. 즉 사망상태에서 모두 어떤 감각이 있었는가? 라고 그들에게 물어 보았다. 그러나 의외로 이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특수한 상황을 이야기하게 되었으며 또한 일치하였다. 바로 사람이 죽는 그 일순간에 두려운 감각이 없으며 그와 반대로 도리어 갑자기 일종 해탈감이 있으며 일종 잠재적인 흥분감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단번에 신체의 속박이 없어 가볍고도 아주 미묘하게 떠오름을 느끼며 또 자신의 신체를 보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또 다른 공간의 생명체를 보았고, 어떤 사람은 또 어떠 어떠한 곳에 갔었다고 하였다. 모든 사람은 다 그 일순간에 일종 해탈되고 잠재적으로 일종 흥분된 감각을 느끼게 되었으며 고통이 없음을 감각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였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사람의 육신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고생스럽다. 그러나 여러분은 모두 이렇게 어머니 배속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고생임을 모르고 있다.

나는 사람은 고생 중의 고생을 겪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그 날 이야기하였다. 인류의 이 시공(時空)과 다른 더욱 큰 시공의 공간 개념은 또 같지 않으며 우리 이쪽의 한 시진(時辰)은 두 시간인데 바로 그의 그 공간의 1년이다. 그래서 이 사람이 이렇게 고생스러운 환경 하에서 연공함이 정말로 대단하다고 말하며 이 사람은 도를 얻으려는 마음이 있고 수련하려고 하는데 이 사람은 그야말로 대단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고생스러운데도 그는 아직 그의 본성이 없어지지 않고 그는 여전히 수련하여 되돌아가려고 한다. 왜 무조건으로 수련하는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가? 바로 이러하다. 이 사람이 속인의 공간에서 하룻밤 가부좌를 하였다고 말한다면 그들이 볼 때, 이 사람은 정말로 대단하다. 그가 여기에 이미 6년이나 앉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한 시진(時辰)이 그쪽의 1년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류는 하나의 극히 특수한 공간이다.

어떻게 고생 중의 고생을 겪는가? 예를 들어 말한다면 이 사람이 어느 하루 출근하였다. 직장이 불경기 상태여서 일자리보다 사람이 더 많은 이런 상태는 안되기 때문에 직장에서는 개혁을 하고 도급제를 하여 나머지 인원은 해고당해야 하였다. 그도 그 중의 하나로서 단번에 밥그릇을 잃었다. 이는 어떠한 심정이겠는가? 노임을 주는 곳이 없으니 어떻게 생활하겠는가? 다른 것을 좀 하자니 할 줄을 모르고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막 도착하자 노인이 병에 걸려 심하게 앓고 있었다. 조급하고 안달아 났다. 빨리 병원으로 모시고 가야지. 그래서 겨우 돈을 꿔 가지고 병원에 입원시켰다. 집에 돌아가 노인에게 물건을 좀 준비하려고 금방 집에 들어서자마자 학교의 선생이 집에 찾아와서 당신의 아들이 남을 때려서 상하게 했으니 당신은 빨리 가보라고 말하였다. 이 일을 막 처리하고 집에 돌아와 앉자마자 당신의 아내(또는 남편)가 외도했다는 전화가 왔다. 물론 여러분이 이러한 일에 부딪힐 수는 없다. 일반 사람은 이런 고생을 겪을 수 없어, 이렇게 살아서는 뭘하겠는가, 밧줄이나 찾아 걸자, 살지 않겠다! 죽으면 백사(百事)가 끝이다! 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이 고생 중의 고생을 겪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물론 꼭 이런 형식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귀다툼, 心性(심성)의 마찰, 개인이익의 쟁탈은 이와 못지 않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체면을 위해 살고 있으며 견디지 못하면 목을 매고 죽어 버리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일종의 복잡한 환경 속에서 수련해야 하며 고생 중의 고생을 겪을 수 있어야 하는 동시에 또 대인지심(大忍之心)이 있어야 한다.

무엇이 대인지심(大忍之心)인가? 일개 연공인으로서 우선 마땅히 해야 할 것은 때려도 맞받아 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으며 참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을 어찌 연공인이라 할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은, 이 참음은 너무나도 어렵고 나는 성격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 성격이 좋지 않으면 고쳐야 하지 않는가. 연공인은 반드시 참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식을 단속하는데도 화를 내며 그야말로 떠들썩한다. 당신이 자식을 단속한다 해도 그럴 필요가 없으며 당신 자신은 정말로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좀 이지적으로 자식을 교육해야만 비로소 자식을 정말로 잘 교육할 수 있다. 작은 일마저도 넘기지 못하고 화를 내면서 그래가지고도 공이 자라고자 하는가. 어떤 사람은 큰길을 걸을 때 누가 나를 발로 한 번 차도 아는 사람이 없으므로 이런 것은 내가 참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건 아직 부족하다고 말한다. 장래에 당신이 가장 체면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귀낱을 둬 번 치어 당신으로 하여금 망신을 당하게 할지도 모르는데 당신은 이 문제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당신이 참아낼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 당신이 참아낼 수 있지만 마음속으로 내려놓지 못한다면 이 역시 안 된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나한 그 층차에 도달하면 어떤 일에 부딪혀도 마음에 두지 않고 속인 중의 일체 일을 마음에 아예 두지 않으며 언제나 싱글벙글하면서 얼마나 큰 손해를 보아도 싱글벙글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정말로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나한의 초급과위에 도달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 참음을 이런 정도에까지 한다면 속인도 우리를 너무나도 나약하며 너무나 업신여기기 좋다고 말할 것이다 라고 말한다. 내가 말한다면 그것은 나약이 아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속인 속에서 연세가 많은 사람, 문화차원이 높은 사람은 또 수양을 강구하며 남과 견식을 같이 하지 않는다. 하물며 우리 연공인이랴? 그것이 어찌 나약이겠는가? 나는, 그것은 대인지심(大忍之心)의 체현이고 그것은 의지가 견강한 체현이며 오로지 연공인만이 이런 대인지심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한마디 말이 있다. 필부는 모욕을 당하면 검을 뽑아 들고 싸운다. 속인이라 그건 물론이다. 당신이 날 욕하면 나도 당신을 욕하고 당신이 날 때리면 나도 당신을 때린다. 그럼 곧 속인이며 그를 연공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일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당신이 만약 견강한 의지가 없으며 당신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이 한 점을 하지 못한다.

여러분 알다시피 고대에 한신(韓信)이 있었다. 이 한신을 말한다면 재간이 있어 유방(劉邦)의 대장군이었고 국가의 기둥이었다. 왜 그렇게 큰 일을 할 수 있었는가? 즉 이 한신을 말하면 어려서부터 일반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옛 이야기가 있다. 한신이 사타구니 밑을 기어나가는 능욕을 당했다고 한다. 한신은 소년시대에 무예를 연마하였는데 무예를 연마하는 사람은 늘 보검을 차고 다녔다. 어느 하루, 거리를 갔는데 한 무뢰한이 손을 허리에 지르고 그가 가는 길을 막았다. 네가 보검을 차고 뭘하는가? 네가 감히 사람을 죽일 수 있느냐? 네가 감히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너는 내 머리를 잘라내라고 하면서 머리를 들이밀었다. 한신은 내가 너의 머리를 잘라서는 뭘하겠는가? 라고 생각하였다. 그때에도 사람의 머리를 자르면 역시 관청에 보고를 올리고 목숨을 바쳐야 하는데 함부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 그놈은 한신이 감히 죽이지 못하는 것을 보자 곧 말하였다. 네가 나를 감히 죽이지 못한다면 너는 내 사타구니 밑으로 기어나가야 한다. 한신은 정말로 그의 사타구니 밑으로 기어나갔다. 이는 한신이 대단한 대인지심이 있어 그가 일반적인 속인과는 다르기 때문에 그는 비로소 이렇게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사람은 체면을 위해서라는 그것은 속인의 말이다. 이 체면을 위해서 산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사는 게 힘들지 않은가? 고생스럽지 않은가? 가치가 있는가? 한신은 필경 여전히 속인이고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이라,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이 나아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속인의 층차를 벗어남에 도달하는 것이며 더욱 높은 층차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이 일을 우리는 부딪힐 수 없지만 수련하는 사람은 속인 중에서 굴욕을 당하고 수치를 당할 때, 이보다 못하지는 않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心性(심성)에서의 마찰은, 내가 말한다면 이것만 못하지 않으며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으므로 역시 무척 어려운 것이다.

동시에, 수련하는 사람은 또 버릴 수 있어야 하며 속인 중의 각종 집착, 각종 욕망을 포기하여야 한다. 단번에는 할 수 없지만 우리는 천천히 할 수 있다. 오늘 당신이 단번에 할 수 있다면 오늘 당신은 곧 부처이다. 수련이란 천천히 해야 하는 것이지만 당신은 늦추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스승님이 이야기하셨다, 수련은 천천히 해야 한다고. 그럼 우리는 천천히 하자고 말할 것이다. 그건 안 된다! 당신은 자신에 대하여 엄격히 요구하여야 하며 당신은 불법(佛法)수련에서 용맹정진(勇猛精進)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德(덕)을 지킬 수 있으며 心性(심성)을 지켜야 하는데 제멋대로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제멋대로 무엇을 하려고 하여 무엇을 할 수 없으며 당신은 당신의 心性(심성)을 지켜 낼 수 있어야 한다. 속인 중에서 여러분은, 덕을 쌓아 좋은 일을 한다고 하는 이런 한마디 말을 늘 듣게 된다. 연공인은 덕을 쌓음을 이야기하지 않으며 우리는 德(덕)을 지킴을 이야기한다. 왜 德(덕)을 지킴을 이야기하는가? 왜냐하면 우리는 이런 상황을 보았기 때문이다. 즉 덕을 쌓는다는 것은 속인 중의 이야기로써, 그는 덕을 쌓고 선(善)을 베풀어 내세에 잘 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여기는 이러한 문제가 없다. 당신이 수련되었다면 도를 얻은 것으로서, 그 일생의 일이 없게 된다. 우리가 여기서 德(덕)을 지킨다고 말하는 것은 또 한 층의 뜻이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신체가 갖고 있는 두 가지 물질은 일생일세(一生一世)에 누적되어 내려온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의 아주 오래고 먼 연대를 거쳐서 남아 내려온 것이다. 당신이 자전거를 타고 온 도시를 다 달려도 좋은 일을 만나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날마다 이렇게 하여 꼭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 한 층의 뜻이 있다. 당신으로 하여금 德(덕)을 쌓게 하자. 당신이 보기에 그 일이 좋은 일이지만 당신이 하게 되면 곧 나쁜 일일지도 모르며, 당신이 보기에 그 일이 나쁜 일일 때에 당신이 만약 상관하였다면 또한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당신은 그 중에 있는 그것의 인연관계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률은 속인 중의 일을 책임지는데 이는 문제가 없다. 일개 연공인으로서는 곧 초상(超常)적이다. 그럼 당신은 한 초상적인 사람이라, 초상적인 이치로써 당신을 요구해야 하며 속인 중의 이치로 가늠할 수 없다. 당신은 한가지 일의 인연관계를 모르기 때문에 당신은 이 일을 잘못하기가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위(無爲)를 말하는데 당신이 무엇을 하고 싶다고 해서 무엇을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나는 나쁜 사람을 단속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럼 당신은 가서 경찰이나 되고 말라고 나는 말한다. 하지만 우리 역시 당신보고 살인방화하는 것을 보고도 상관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모순이 생겨 그가 사람을 발로 한 번 차고 그가 사람을 주먹으로 한 방 치는데, 아마 잘못하면 그 사람이 예전에 그에게 빚을 졌을 수도 있는 것으로, 그 둘은 결산을 한 셈이다. 당신이 상관한다면 그들 사이에 결산이 끝나지 않아 다음 번을 기다려 또 다시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인연관계를 보지 못하여 나쁜 일을 하기 쉽고, 이러므로 하여 德(덕)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속인이 속인의 일을 상관함은 관계가 없는 것으로 그는 속인의 이치로 가늠한다. 당신은 초상(超常)적인 이치로 가늠해야 한다. 당신이 살인방화하는 것을 보고도 상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心性(심성)문제인즉,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좋은 사람을 체현해 낼 수 있는가? 당신이 살인방화하는 것도 다 상관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무엇을 상관할 것인가? 그러나 한가지가 있는데, 이런 것은 우리 수련하는 사람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당신에게 배치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당신으로 하여금 부딪히지 않게 할 수도 있다. 우리가 德(덕)을 지킴을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당신이 나쁜 일을 함을 피면하게 하려는 것이다. 당신이 그 일을 조금만 하여도 아마 나쁜 일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德(덕)을 잃기 마련이다. 당신이 德(덕)을 잃기만 하면 당신의 층차를 어떻게 위로 제고하겠는가? 어떻게 당신의 최종적 목표에 도달하겠는가? 여기에는 이러한 문제가 있다. 이를 제외하고 또한 오성이 좋아야 하는데 근기가 좋다면 아마 오성도 좋을 것이고 환경의 영향도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우리는 또 이야기하였다. 우리 사람마다가 모두 안을 향하여 수련한다면, 사람마다가 모두 자신의 心性(심성)에서 찾으며, 잘하지 못하였으면 자신이 원인을 찾아 다음 번에 잘하도록 하며, 일을 함에 우선 다른 사람을 고려하게 된다. 그렇다면 인류사회도 좋게 변하고 도덕도 되돌아 승화되며 정신문명도 좋게 변하고 치안상황도 좋게 변하여, 또 경찰이 없게 될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 상관할 필요없이 사람마다 모두 자신을 단속하며 자신의 마음에서 찾는다면 당신이 말해보라. 이 얼마나 좋은가. 여러분이 알다시피 현재의 법률이 점차적으로 건전하고 점차적으로 완벽하게 되고 있지만, 왜 어떤 사람은 여전히 나쁜 짓을 하는가? 법이 있어도 따르지 않지 않는가? 바로 당신이 그의 마음을 단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지 않을 때 그는 여전히 나쁜 짓을 한다. 만일 사람마다 모두 내심을 향하여 수련한다면, 그럼 전혀 같지 않게 된다. 또 당신이 불공평에 대하여 평정할 필요도 없게 된다.

법은 다만 이 한 층에까지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더욱 높은 것은 당신 자신에 의거하여 수련하여야만 얻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문제를 제출함에 있어서 제출할수록 더욱 구체적인데, 만일 생활 중의 문제를 모두 나더러 해답하라고 한다면 당신 자신은 또 무슨 수련을 하겠는가! 당신은 자신이 수련해야 하고 자신이 깨달아야 한다. 내가 모두 이야기한다면 당신이 수련할 것이 없게 된다. 다행히 대법을 이미 전하였으므로 당신은 대법에 따라 할 수 있다.

* * *

내가 법을 전하는 시간이 기본적으로 거의 종결짓게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것들을 여러분에게 남겨두어, 여러분이 앞으로의 수련에서 법이 여러분을 지도하게끔 하려고 생각한다. 법을 전수하는 전반 과정에서 나 역시 여러분에 대하여 책임지고 동시에 역시 사회에 대해 책임짐에 의거하여, 실제적으로 우리 역시 이 원칙에 의거하여 하였다. 잘하고 못하고에 대하여서는 나도 말하지 않겠지만 자연히 공론이 있을 것이다. 나의 소원이라면, 대법을 전수하여 우리의 더욱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득을 볼 수 있게끔 하며 진정하게 수련하려는 사람으로 하여금 법에 따라 위로 수련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동시에 법을 전수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또 인간이 되는 이치를 이야기하였는데 당신들이 수련반에서 돌아간 후, 만약 대법에 따라 수련하는 사람이 되지는 못하여도 최저 한도로 하나의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또 희망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 사회에 대해서는 유익한 것이다. 사실 당신은 이미 좋은 사람이 될 줄을 알았기 때문에, 돌아간 후에 당신 역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법을 전수하는 과정에 역시 순조롭지 못한 데가 있었으며 여러 면의 교란 역시 아주 컸다. 주최기관과 각계 지도자들의 강력한 지지와 사업일군들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수련반은 비교적 원만하게 열렸다.

수련반을 여는 중에서 내가 이야기한 이런 것은 전부 다 여러분을 고층차의 수련에로 지도하는 것으로서, 과거의 설법 중에는 이런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가 이야기한 것은 매우 명료하여 현대과학과 현대 인체과학을 결부하여 이야기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한 층차도 대단히 높다. 주로 여러분을 위한 것이며 당신으로 하여금 장래에 진정하게 법을 얻고 수련하여 올라갈 수 있게끔 함이라, 이것이 나의 출발점이었다. 우리가 법을 전수하고 공을 전수하는 과정 중에 많은 사람은 법이 매우 좋다고도 여기지만 하자면 아주 어렵다고 여긴다. 사실 나는 어려운가 어렵지 않는가 하는 것은 어떠한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하는가를 보아야 한다고 여긴다. 일개 보통적이고 보통적인 속인으로서 수련하려고 하지 않으면 그는 수련이 그야말로 너무나 어려우며 불가사의하고 수련에 성취할 수 없다고 여길 것이다. 그는 속인이라 그가 수련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너무나도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노자는 "상사(上士)가 도를 들음에 근면히 행하고, 중사(中士)가 도를 들음에 있는 듯 없는 듯 하며, 하사(下士)가 도를 들음에 대소(大笑)하거니, 웃지 않으면 도라고 할 수 없도다" 라고 하였다.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쉬운 것으로서, 뭐 너무 높아서 올라가지 못할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사실 여기에 앉은 많은 노수련생과 오지 않은 노수련생은 이미 무척 높은 층차에로 수련되었다. 내가 당신에게 이러한 것을 이야기하지 않음은, 당신이 집착심, 득의양양해 하는 등등의 요소가 생기어 당신의 공력이 위로 자람을 영향 줄까봐 두려워서이다. 진정하게 수련에 결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가 참고 견딜 수 있으며 각종 이익 앞에서 이 집착심을 내려놓을 수 있고 그것을 아주 담담하게 여길 수 있으며, 오로지 할 수만 있다면 어렵지 않다. 이른바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은 바로 그가 이런 것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법을 수련하는 자체는 어려운 것이 아니며 층차를 높이는 자체도 뭐 어려울 것이 없다. 바로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므로 그는 비로소 어렵다고 말한다. 현실 이익 속에서 그것을 내려놓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이 이익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당신이 말해보라. 이 마음을 어떻게 내려놓겠는가? 그가 어렵다고 여기는데 실제적으로 어려운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이 발생하였을 경우, 이 화를 참아 내지 못하며 심지어는 자신을 일개 연공인으로 대할 수 없다면 이러면 안 된다고 나는 말한다. 내가 과거에 수련할 때에 많은 고인(高人)은 나에게 이런 말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노라" 라고 하였다. 사실 바로 이러한데 여러분이 돌아가서 한 번 시험해 보는 것도 무방하다. 진정한 겁난(劫難) 속에서거나 또는 고비를 넘기는 속에서 당신은 시험해 보라. 참기 어려운 것을 당신은 참아 보라. 보기에 안되고 행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을, 그럼 당신이 한 번 시험하여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가 이야기한 것이 너무나도 많다. 이야기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여러분은 기억하기가 아주 어려울 것이다. 나는 주로 요구를 좀 제출하겠다. 여러분은 앞으로의 수련 중에서 자신을 일개 연공인으로 간주하여 진정하게 수련하여 나가기를 희망한다. 나는 신, 노수련생이 모두 대법 중에서 수련할 수 있고 모두 공성원만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희망하건대 여러분은 돌아가서 시간을 다그쳐 착실히 수련하기 바란다.

          역자의 말

법륜불법대사(法輪佛法大師) 이홍지스승님의 전문 저작 『전법륜』은 이번 인류 역사상 가장 박대정심(博大精深)한 한 부의 경서로서, 法輪大法 또는 대법(大法)이라고도 일컫는다.

대법의 내포는 극히 풍부하며 그 의의는 추측할 수 없는 것으로서, 부동한 층차의 수련자들이 고층차에로의 수련에 모두 지도적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므로 이 경서를 번역함에 있어서 무척 어려움을 느낀다. 인연있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하루 빨리 이 경서를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번역할 때 아래의 몇 가지 원칙에 준하였다. 원문에 충실하고 대법내용의 완전성을 수호하며 이스승님의 구두어 풍격의 통속성을 지키어, 전통적인 번역관습과 표준을 맹목적으로 답습하지 않는다. 대법의 독립적인 체계를 보증하며 종교 중의 어휘를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외국인의 언어관습을 과분하게 강조하지 않는다. 대법 중의 가장 중요한 일부 어휘는 모두 중문 철음(中文拐音)의 발음을 유지한다. 경서 중, 매 한 구절의 말, 매 하나의 단어는 모두 직역(直譯)함을 견지하여, 대법의 내포를 충분히 표현(表達)하도록 하며 간소화하지 않고 생략하지 않으며 의역(意譯)하지 않는가 하면, 더욱이 역자의 언어를 대법 속에 섞어 넣음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작업 중에서 시간적인 촉박과 언어 장악이 완벽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현재 아직 이러한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번역문에 일부 정확하지 못한 곳이 있음을 피면 키 어렵다. 이는 모두 수련자들이 앞으로의 수련 중에서 자신이 실제적으로 깨달아야 할 바이다.

中國法輪大法硏究會 번역팀

『전법륜』에 나오는 法輪大法전문용어 발음 표기

1. 法輪(법륜) : Falun

2. 法輪功(법륜공) : Falun Gong

3. 法輪大法(법륜대법): Falun Dafa

4. 法輪修煉大法(f아 룬덁랜따 f아) : Falun Xiulian Dafa

5. 法輪世界(f아 룬쓰제): Falun Shijie

6. 眞ㆍ善ㆍ忍 (쩐·싼·런) : Zhen-Shan-Ren

7. 心性 (씬씽) : Xinxing

8. 德 (더) : De

9. 元神(원신) : Yuanshen

10. 主元神(원신) : Zhu Yuanshen

11. 副元神(부원신) : Fu Yuanshen

12. 主意識(주 이스) : Zhu Yi Shi

13. 副意識 (f우 이스) : Fu Yi Shi

14. 氣機 (치 지) : Qiji

15. 本體(번 티) : Benti

16. 世間法(쓰 잰 f아) : Shi Jian Fa

17. 出世間法(추 쓰 잰 f아) : Chu Shi Jian Fa

18. 定(띵) : Ding

19 .眞體(쩐티) : Zhenti

20. 功身(꿍선) : Gongs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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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저서에 나오는 法輪大法 전문용어는 한자를 직접 쓰고 괄호 안에 한글로 중국어 발음을 표기하였는데, 독법상 중국어발음에 준하여야 한다.

               *출처:법륜대법 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