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왜 고구려사 왜곡에 나섰나

                  통일한국의 영토문제 제기 막기 위한 포석
                                                                             
벼룩일보 2003년12월 8일자

<사진: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일대에 있는 시태왕릉 전경. 고구려의 유산 중 하나다.>

중국정부 내 공식 기구가 고구려사 왜곡 주도

중국 학자들에 의한 한국사 왜곡은 80년대부터 시작됐다. 손진기, 장박천 등 중국 학자들은 꾸준히 "고구려사는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그 당시만해도 일부 학자들의 개인적 연구에 그쳤다.

하지만 90년대 들어서 사정이 달라졌다. 중국 학자들이 대거 고구려사 연구를 시작하면서 중국의 공식적 견해를 정리하는 과정을 밟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90년대 중반부터는 고구려사를 논의하는 연구 세미나를 잇따라 개최하고, 다양한 주제의 연구서적을 펴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연구단체가 '중국사회과학원'이다. 중국사회과학원은 96년 중국 학자들을 상대로 '고대중국 고구려역사'를 집필 사업으로 선정했다. 2001년 이후엔 산하 단체인 '중국변강사지 연구중심' 을 앞세워 고구려사 관련 학술대회를 주도했다. 2002년 2월에는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이 '동북공정(東北工程)' 추진을 선포했다. '동북공정'이란 고대 중국의 동북쪽 지방에 자리를 잡았던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에 대한 역사 연구는 물론 해당 지역의 현재 상황에 대한 연구까지 포괄적으로 진행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문제는 동북공정을 주도하는 중국사회과학원이 중국 정부 산하의 공식 기구라는 점. 경희대 임기환 교수는 "중국사회과학원은 학술단체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사편찬위원회 같은 정부 조직 내 공식 기구"라고 설명했다. 고구려사 연구가 중국 정부의 지원 아래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통일한국에 간도 내줄 수 없다"

조선말기에 바티칸 교황청이 제작한 조선의 지도. 간도 지역이 조선의 영토로 포함돼 있다. 간도지역은 국권을 불법으로 빼앗은 일제와 청나라의 협약에 의해 중국으로 넘어갔으나, 통일 후 통일한국에 의해 협약 무효화 선언과 함께 분쟁 지역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중국 정부가 90년대 들어 대대적인 고구려사 연구에 착수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려대 최광식 교수(한국고대사학회 산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2001년 북한이 평양에 있는 고구려 유적을 유네스코를 통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 한 것과 같은해 재중동포에게 국적을 제공하려 한 남한의 움직임이 중국이 고구려사 왜곡에 뛰어 든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평양의 고구려 유적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 학문적으로 고구려사는 한민족의 것이 됩니다. 중국이 바라는 바는 아니죠. 그리고 자국 국민에게 국적을 주려는 남한의 움직임도 중국을 자극한 것으로 보입니다. 매년 10~30만 명에 달하는 탈북자 문제도 걱정이 됐겠죠."

이와 함께 학계에서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뒤에는 무서운 노림수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외대 여호규 교수는 "통일 후를 대비한 중국의 포석"으로 해석했다.

"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면서 중국의 동북지방에서는 한국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북한의 상황도 유동적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으로서는 한국의 통일 후 만주 지방을 두고 생길 수 있는 분쟁에 대비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중국은 한국이 통일된 이후 두만강과 압록강 이북지역에서 영토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간도지역의 영유권에 대해서는 국제법적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남북이 통일된 후 간도를 포함한 만주 지역의 주민들이 한국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간도는 두만강 북쪽의 광활한 지역으로 한국인들이 다수 진출한 지역이고, 조선의 관리가 파견돼 지역을 관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1909년 9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은 일제가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으면서 중국의 영토로 귀속됐다. 일제는 푸순탄광 개발권, 남만주철도 부설권 등 4대 이권을 얻는 대가로 한국 영토인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줬다.

여교수는 "중국은 남북이 통일된 후 간도를 포함한 만주 지역의 주민들이 한국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며 "통일한국이 강제로 국권을 침탈한 일제에 의해 체결된 간도협약의 무효화를 주장하며, 영토 반환을 요구하는 것도 배제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통일한국이 간도협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국제법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중국과 북한이 60년대에 체결한 것을 알려지고 있는 국경조약도 남북이 통일될 경우, 남한 입장에서는 "비합법적 정부간에 체결된 조약이므로 무효"라는 주장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은 통일한국이 간도지역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며, 간도 일대를 국제법적으로 영토 분쟁지역화 할 것을 우려해 고구려사 왜곡을 통해 미리 역사적 연고권을 주장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만주 지역의 조선족을 포함한 주민들 사이에는 한류열풍이 불고 있어, 통일한국과 국경을 맞댈 경우 독립 및 자치권 쟁취 운동을 벌이고 있는 티베트보다 더 골치 아픈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북한 붕괴 후 북한 지역에 대한 연고권 주장할지도

중국은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한 이후의 역사도 중국사에 포함시키려 하고 있다. 대동강 이북 지역에서 벌어진 역사를 모두 중국사에 포함시켜 고조선, 발해 역사까지 모두 흡수하는 동시에 한국의 역사적 강역을 한반도의 남쪽으로 제한 시켜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중국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서울대 송기호 교수는 '역사비평' 겨울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중국이 북한이 붕괴한 이후 북한 지역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려 한다"고 우려했다. 송 교수는 또 "북한 땅에 대한 기득권을 주장하며 신라계 국가만 우리에게 떼어주려고 하는 마당에 중국과 제2의 나당전쟁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한국외대 여호규 교수는 "고려가 원나라를 한반도에서 몰아내자, 원 다음에 중원을 장악한 명나라가 원산만의 철령위를 회복하려 했던 사실을 두고, 중국 학자들은 '중국영토를 회복하기 위한 전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며 "중국이 한국사의 기본 줄기를 흔들며 영토와 관련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이다"고 분석했다.

여 교수는 또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한반도 남부에 일복의 고대 식민지가 있었다는 임나일본부설까지 들고 나온다면 한국사는 통째로 흔들리면서 우리 민족의 존재 근거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고구려사를 그럴 듯하게 포장해 중국사에 포함시키려는 중국의 의도에 대해, 한국의 고구려사 전공자들은 "중국의 주장은 사실을 왜곡하는 터무니 없는 말장난"이라고 치부하면서도, "가만히 있으면 앉아서 당한다"며 다각적인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들은 중국과 역사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