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수거 사서목록

 

개천대학장 겸 미- s - Baylor Univ 명예교수 이신 송호수 교수님의 저서인
"한겨레의 뿌리 얼"중 일부내용을 계속 소개합니다



< 삼국유사의 서(書)와 기(記) >



삼국유사에 나오는 "위서운(魏書云)"의 위서는 전설이나 신화가 아니고
"위서"라는 사서책이다

즉 중국측의 위나라 사서인 것이 분명하다

말하자면 중국의 역사를 기록한 책명을 보면,
"한서, 후한서, 진서, 송서, 남제서, 위서" 등 모두가 서(書)로 되어 있다

고로 "위서"란 신화나 전설이 아님은 확실하다

그런데 근자에 1938년 총독부에서 조선사 38권에 공식문서로 처음 등장하는 "단군신화"란 용어를
고전고적들이 역사적인 근거가 없어서 못 믿겠다는 오늘의 과학문명사회에서 "단군신화"로 불리어지고 있는 것은 총독부 산물이다

왜적들이 우리의 민족정기가 서린 민족정사를 말살하려는 정략으로
단군사를 "신화"라고 하니까,

그 정략속에 독소가 비장된 줄 모르고,
우리 스스로가 오히려 덩달아 "단군신화" 운운하는 것은 이 나라 사학계의 씻지 못할 큰 죄과이다

통탄하다 말고 오히려 가소롭기만 한 것 아닌가 !
우리 5천년사에서 "단군신화"라는 기록은 총독부 말고 어디에도 없다

또 "고기(古記)"라 하였는데 고기 라는 이 기(記) 역시 옛것을 기록한 책이 아닌가 ?
예컨대 옛 사서에 대한 기록에 "기"라고 한 책이 우리 것에 많다

특히 중국측에는 "서(書)"가 많고 우리역사에는 "記"자가 많이 달려있다

즉, 배달유기, 고조선기, 후조선기, 단군세기, 조대기, 삼성기, 삼성밀기, 고조선비기 등
모두가 우리 주변의 사서들에 적혀 있는 책들의 이름이다

이 "기" 역시 엄연히 역사를 기록한 서적들이지, 전설이나 신화가 아니다

만약에 "전설운(傳說云)" 하였던지 "신화운(神話云)" 했으면 몰라도
"고기운(古記云)", "위서운(魏書云)"이라고 되어 있는데도
"단군신화"라는 신화가 붙은 차명을 내세우는 것은 학구적인 투시력이 아니다

그 "고기"나 "위서"가 어떻게 되어 있으며 또 어디에 있는가 ?
왜 어째서 주변에서 사라졌을까 ?
하고 탐색하는 것이 보다 예리한 효율적인 학구방법일 것이다

조건없이 손쉽게 얻어 볼 수 없다고 해서 명목만 남아 있는 유령적인 사서인양
몰아부쳐 일축해버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중략)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삼국유사를 쓴 일연승(1206~1289)은 고려말기 25대 충렬왕 때의 사람인데,
그때까지만 해도 몇가지 고기들이 있었다

그것은 즉 고기들이 확실이 있었다는 증인은 조선조의 세조, 예종, 성종 등의 3대왕이다

일연보다 약200년 후에 집권한 분이 세조대왕인데,
세조대왕의 유시에 의한 수상서목들이 거의 전부가 "記, 紀"자가 붙어 있는 서목들이다

그런데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시대에는 물론이고
일연이 삼국유사를 쓸 때가 세조보다 200년 전인데 그러한 종류의 고기들이 그 때에 없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이 일연이 인용한 위서는 중국에서
"동이(東夷)를 자랑하고 중화(中華)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없애버렸다고 한다
(단단학회 : 커밝한 문화사상사 p29)

(다음시간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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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후기 >


▒ 삼국유사 "위서"부분은 설란에서 이미 자세히 언급하였사오니 참고바랍니다

민족정기를 말살하는 행태는 이제는 중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민족혼을 팔아먹는 짓은 매국보다 더한 짓입니다.
멀쩡한 사람들 바보 만드는 역사교육 제발 정정되어야 합니다
자랑스런 우리의 역사 아닙니까 ?


▒ 보완자료 조선왕조실록 "수거령"관련 사서목록


< 세조 3년 5월 26일 >


세조 3년 5월 26일(무자) : 팔도 관찰사에게 고조선비사 등의 문서를 사처에서 간직하지 말 것을 명하다

팔도 관찰사(八道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 고조선비사(古朝鮮秘詞)
- 대변설(大辯說)
- 조대기(朝代記)
- 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
- 지공기(誌公記)
- 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
- 안함 노원 동중 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
- 도증기 지리성모 하사량훈(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
- 문태산(文泰山)·왕거인(王居人)·설업(薛業) 등 삼인 기록(三人記錄),
- 수찬기소(修撰企所)의 1백여 권(卷)과
- 동천록(動天錄)
- 마슬록(磨쳗錄)
- 통천록(通天錄)
- 호중록(壺中錄)
- 지화록(地華錄)
- 도선한도참기(道詵漢都讖記)


등의 문서(文書)는 마땅히 사처(私處)에 간직해서는 안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進上)하도록 허가하고,
자원(自願)하는 서책(書冊)을 가지고 회사(回賜)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간 및 사사(寺社)에 널리 효유(曉諭)하라.

하였다.


< 예종 1년 9월 18일(무술) >


예조에 명하여 모든 천문·지리·음양에 관계되는 서적들을 수집하게 하다

예조(禮曹)에 전교하기를,

- 《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
- 《지공기(志公記)》
- 《표훈천사(表訓天詞)》
- 《삼성밀기(三聖密記)》
- 《도증기(道證記)》
- 《지이성모하사량훈(智異聖母河沙良訓)》,
- 문태(文泰)·옥거인(玉居仁)·설업(薛業) 세 사람의 기(記) 1백여 권과
- 《호중록(壺中錄)》
- 《지화록(地華錄)》
- 《명경수(明鏡數)》 및
- 모든 천문(天文)·지리(地理)·음양(陰陽)에 관계되는 서적들


을 집에 간수하고 있는 자는,
경중(京中)에서는 10월 그믐날까지 한정하여 승정원(承政院)에 바치고,
외방(外方)에서는 가까운 도(道)는 11월 그믐날까지,
먼 도(道)는 12월 그믐날까지 거주하는 고을에 바치라.

바친 자는 2품계를 높여 주되,
상받기를 원하는 자 및 공사 천구(公私賤口)에게는 면포(綿布) 50필(匹)를 상주며,

숨기고 바치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의 진고(陳告)를 받아들여
진고한 자에게 위의 항목에 따라 논상(論賞)하고,
숨긴 자는 참형(斬刑)에 처한다.
그것을 중외(中外)에 속히 유시하라.”

하였다.



< 성종 원년 12월 9일(무오) >


여러 도의 관찰사에게 천문·음양·지리에 관한 책을 수납하는 것에 대한 글을 보내다

여러 도(道)의 관찰사(觀察使)에게 교서(敎書)를 내리기를,

“전일에
- 《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
- 《지공기(志公記)》
- 《표훈천사(表訓天詞)》
- 《삼성밀기(三聖密記)》
- 《도증기(道證記)》
- 《지리성모(智異聖母)》
- 《하소량훈(河少良訓)》
- 문태(文泰)·왕거인(王居仁)·설업(薛業) 삼인기(三人記) 1백여 권과,
- 《호중록(壺中錄)》
- 《지화록(地華錄)》
- 명경수(明鏡數)와 무릇 천문(天文)·지리(地理)·음양(陰陽) 등

여러 서책(書冊)을 빠짐없이 찾아내어 서울로 올려보낼 일을 이미 하유(下諭)했으니,

상항(上項) 명경수(明鏡數) 이상의 9책과
- 《태일금경식(太一金鏡式)》
- 《도선참기(道銑讖記)》

는 전일의 하유(下諭)에 의거하여 서울로 올려보내고
나머지 책은 다시 수납(收納)하지 말도록 하고,
그 이미 수납(收納)한 것은 돌려주도록 하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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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0년 우리역사의 맥이 단 100여년만에 말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
해방이후 단군관련 비서들이 하나 둘 세상에 나타나고 있으나 "진본"이 발견되지 않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나 필사본, 복간본 등으로 하나 둘 이세상에 빛을 발하고 있으니 그 "진본"이 이땅에 나올 날도 멀지 않았음이라


< 단군관련 "비서" 목록 >


1. 상고, 삼국시대
- 신지비사 (단군조, 신지선)
- 해동비록 (저자미상)
- 신지비사역술 (고구려 대영홍 著(저))
→ AD1412 년경 (조선 태종 12년경) 소각

2. 발해
- 단기고사 : 고왕천통 9~21, AD 707~719 대야발 撰(찬)
→ 1959년 기해복간본 현존
→ 1968년 "민족정사"로 계승 (윤치도 저)

3. 통일신라
- 제왕연대력 : AD 890년경, 진성여왕 20년경 고운 최치원 저 (삼국유사보다 약 390년전)
→ 1929년 기사 필사본 현존 (홍종국씨 소장)
→ 1957년 "해동춘추"로 계승(박장현 찬)

4. 고려

(1) 초 중엽

< 조대기 > : AD 926년 발해 멸망시 대광현 등 유민들이 고려에 망명귀화 할 때 가지고 온 고조선 역대실기 (삼국유사보다 약 350년전)
→ 일제때 압수, 소각
→ 고려말엽 "진역유기"로 계승 → 조선말엽 "규원사화"인용기록

< 조대기 계승 사서들 >

① 삼성기 : 고려중엽
- 삼성기 상편 (안함노 저)
- 삼성기 하편 (원동중 저)
→ 일제때 압수 소각
→ 1911년 계연수 편저 "한단고기"로 계승

② 저자미상 도가사서
- 고조선 비기(사) (표훈천사)
- 삼성밀기 (도증기)
- 지송기 (대변경)
- 삼한합유기 (동천록)
- 신선전 (지화록)
→ 일제때 압수 소각
→ 조선말엽 규원사화(단군실사)로 계승

(2) 말 엽

① 진역유기(3권) : 청평도사 이명 저술(삼국유사와 거의 같은시기)
→ 일제때 압수소각

② 단군세기 : AD1283년경 고려 충렬왕 9년경 이암 저
→ 일제때 압수 소각
→ 한단고기로 계승 (1911년 계연수 편찬)

5. 조선말엽

- 규원사화 (단군실사) : AD 1675년 조선 숙종 원년 3월 상순 북애자저, 고 양주동 소장 필사본 현존, 소위 도가사서중 최고의 것
☞ 진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있을 가능성이 많다
- 동사서는 고려시대 조대기 및 앞서 언급한 도가사서 인용
→ 일제시대 "신단실기"등으로 계승

6. 일제시대

① 한단고기 : 고려시대 삼성기 상, 하, 단군세기 계승(1911년 계연수 편찬)

② 규원사화 계승본
- 신단실기 : 1914년 김교헌 저
- 동사년표 : 1915년 어윤적 찬
- 조선사략 : 1924년 김종한 저
- 대동사략 : 1928년 김광 저
- 조선역사 : 1934년 이창환 저
- 조선세가본 : 1938년 윤재구, 서계수 공저

7. 광복후

- 통일신라 제왕연대력 계승
·해동춘추 : 1957년 박장현 찬
- 발해 단기고사 계승
·민족정사 : 1968년 유지도 저


< 단군조선의 사서별 제왕 역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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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의 뿌리 얼"(한민족의 뿌리사상) >
- 개천대학 출판부 - 한터

본 책자 앞에는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내신 안호상 박사께서 추천말을
이항녕 전 홍익대 총장께서 서문을 써셨습니다

(연락처 및 문의처)

- 전화 738-7750, 이메일 songhosu@korea.com
- 110-240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94번지

               출처: 우리역사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