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완 ( 李圭完, 1862∼1946 )

                          일찍부터 참정권 주장한 '소신파'

1894년 갑신정변의 행동대원.
1907년 중추원 부찬의
1908년 강원도 관찰사.
1918년 함경도 장관


박영효의 문하생

박영효는 임종하면서 "내가 일생을 통해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는 이규완이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이규완은 일찍부터 박영효의 총애를 받았고, 그의 문하에서 활동하였다. 언젠가 이규완의 서생이 박영효에게 보내는 서면에 자신을 '생'이라고 쓴 것을 보고는, "안돼, 내 항종모발(項踵毛髮)은 전부가 후(박영효)의 은덕이 아닌 것이 없다. 마땅히 소인(小人)이라고 쓰라"고 하였을 정도였다. 이규완은 세종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의 15대손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몰락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공부할 여유가 없었던 그는 박영효의 행차 행렬을 보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박영효에게 의거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19세에 그의 문하에 들어갔다. 박영효는 이규완을 위해 독선생을 붙여 한글, 한문, 글쓰기를 가르쳤다. 1883년 그는 일본의 군사학교였던 도야먀(戶山) 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이 일본 유학은 김옥균, 박영효 등의 초기 개화파들이 일본의 문명개화를 배우기 위해 추진하였던 개화사업의 일환이었다. 도야마 학교로 유학길에 오른 사람은 이규완을 비롯하여 정란교*, 서재필, 신응희* 등 모두 14명이었다. 이들은 학자금의 고갈과 박영효의 실각으로 1년만에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 이규완은 무관시종대위가 되었다. 그리고는 바로 갑신정변에 참여하였다. 도야마 학교를 졸업한 무관들이 바로 정변의 실질적인 행동대원이었다. 그가 맡았던 일은 별궁을 방화하여 소란을 일으키는 일이었다. 이규완은 이것이 불발하자 유혁로에게 우정국의 연회석에 직접 뛰어 들어가 민씨 일파를 처단하자고 건의하였다. 그리고 '3일천하' 기간중에도 고종을 부근에서 호위하면서 민씨 일파를 죽이는 데 선봉적인 역할을 하였다. 갑신정변이 실패한 후 이규완은 김옥균, 박영효 등과 같이 일본으로 망명하였다(도야먀 학교 졸업생 중 7명은 피살, 1명은 처형되었고 살아 남은 사람들 대부분은 후에 총독부의 도장관이 되었다). 그들이 갑신정변을 추진하면서 그토록 믿었던 일본이었지만, 일본 정부는 그들을 오히려 냉대하였다. 그리하여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과 1885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미국에서 1887년 8월까지 학교를 다니기도 하고, 혹은 노동생활을 하였다. 이규완이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것은 1894년 갑오개혁이 한창 추진되고 있던 때였다. 갑오개혁이 일본의 적극적인 재정적·군사적 후원하에 추진되면서, 김홍집의 친일정권이 성립되었다. 김홍집 내각에는, 갑오개혁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던 유길준의 문명개화론이 일본에서 제시하던 내정개혁안과 거의 일치하고 있었던 점에서, 일본의 개혁과정을 알고 일본과 친밀한 사람들이 등용되었다. 이규완은 이 때 박영효 등과 마찬가지로 귀국할 수 있었다. 그는 경무부사가 되었다. 그러나 이 생활도 그렇게 길지는 못했다. 박영효의 반역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1895년 일본으로 망명하였고, 이어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3개월 만에 일본으로 돌아왔다. 하기(山口)현 야마구치(萩村)이라는 곳에 정착하였는데, 그 곳 잠업 강습소에 입소하여 잠업 기술을 익혔다. 그리고 그 곳에서 17세인 일본인 처녀와 결혼하였다. 이 때 이규완의 나이 35세였다.

친일관료로 출세

두번째 망명생활은 12년이나 되었다. 망명중 그는 박영효와 더불어 귀국 공작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박영효의 측근에는 이규완 외에 우범선*, 정란교*, 신응희*, 황철, 이명선 등 '을미사변'과 관련되어 일본으로 도망쳐 온 젊은 군인, 경찰 출신들이 많았다. 박영효는 이들을 이용하여 국내 정세를 탐지하고 국내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공작들을 수행하였다. 1900년 독립협회에서 박영효를 대통령으로 한다는 소문을 듣고 박영효는 이규완과 황철을 국내에 잠입시켰다. 물론 이 소문은 독립협회 반대파들이 유포한 것이었고, 또한 이 때는 독립협회가 해산되고 난 뒤였다. 이규완은 그의 매부 강성형(姜盛馨)에게 '아는 장교들을 설득시켜 쿠데타를 획책하라'고 지시하였다. 이 계획은 실현성이 없으므로 도중에 유산되었다(박영효는 그 외에 하원홍을 이용하여 국내에서 모금을 하려고 했던 '활빈당 사건'도 일으켰다). 이런 가운데 이규완은 처가와도 연관이 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도움으로 귀국하였다. 일본에 망명하고 있던 정치범들이 대거 귀국하였던 1907년 7월이었다. 11월에 중추원 부찬의가 되었고, 이듬해 6월에는 강원도 관찰사가 되었다. 같은 처지였던 황철, 신응희*, 유혁로, 이두황* 등도 모두 관찰사가 되었다. 일제는 민중을 통제하고 통감정치를 실현하는 첨병으로 철저한 일본 신봉자들을 이용하였던 것이다. 이 때 이규완은 '나는 문맹이므로 그 직이 적당치 않다'고 사양하였음에도 이토는 '무식을 염려하는 모양이나, 만약 그대와 같이 서류를 볼 줄 모르는 무식이라면 보좌관을 두고서 결재하면 될 것이 아닌가'라고 권유하였다. 관직을 수행할 능력보다는 일본에 대한 충성도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었음이 분명하였다. 그 후 이규완은 도장관 시절 연설문을 읽다가 모르는 글자가 나오자 연설을 중단하고 이를 옆의 사람에게 물어보고 계속하였던 적도 있었다. 지방관이 되면서 이규완은 스스로 '다른 사람들이 희망하지 않은 곳을 원한다'고 하면서 강원도 관찰사가 되었다. 강원도는 군대 해산 이후 의병의 활동이 매우 치열하던 곳이었다. 당시 일반인들은 '이규완은 왜녀를 취첩하고 왜인 이상으로 흉악한 매국노'라고 규탄하기도 하였다. 통감부 시대의 지방관은 대체로 조선총독부로 이어졌다. 관찰사는 도장관이나 참여관으로, 군수는 대개 그대로 그 군의 군수가 되었다. 이규완도 그대로 강원도 도장관이 되었으며, 1918년 9월 함경도 장관으로 자리를 옮겨다가 1924년에 퇴직하였다.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그는 일제의 식민정책을 앞장 서 선전하고 또한 실천하였다. '농사, 양잠, 식목, 치도, 축우 기타 식산흥업에 관한 사업 시설은 총독의 시정 방침에 기초하여 착착 진행 중'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의 전기에도 반상의 계급사상 타파, 교육의 보급, 근검절약 정신의 강조, 무위도식 배척 등에 관한 일화들이 소개되어 있다.

민족성 개량과 식산흥업을 주장

이규완은 사회의 진보, 문명화를 위해서는 나태한 민족성을 고치고, 식산흥업을 발달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를 스스로 실천했던 사람이었다. 물론 이것은 근대화, 자본주의화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조건들이었지만, 그는 일제에 의한 지배와 지도 하에 이를 이루려 하였다. 이는 결국 수탈을 위한 산업개발, 식민지적 인간형의 양성이었던 민풍개선, 우민화 황민화를 위한 교육 등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고, 그가 총독부의 관료로 이를 주장하였던 점에서 식민정책의 실천에 불과하였다. 그는 일찍이 미국에서 2년 반 정도 생활하면서 학교에 다니기도 하고 혹 노동생활을 하기도 하였는데, 이 때 그는 미국인의 근검 절약 생활을 보고 '빈자는 세계의 노예'라고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 일본에서 생활해 보고는 '일본인의 생활이 윤택한 것은 근면역행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 후 도장관 시절에도 이 문제를 가장 긴요한 과제로 제기하였다. 그는 "우선 조선의 제일 악습고질인 나타(懶惰:나태(懶怠)와 같은뜻 )를 타파하여 근면의 기풍을 양성한 후에 개발을 도모할지오……근검역행 10년 안에 국부(國富)의 정도가 가히 신국면에 들 것이다."({매일신보}, 1916. 4. 12, 1917. 1. 16.)라고 강조하였다. 민족의 낙후를 민족성, 특히 게으름으로 돌리고, 이러한 민족성을 고쳐야 나라의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조선의 낙후성을 민족성에서 찾음으로써 조선의 독립불능을 강조하는, 일본의 이른바 '민족성론'과 다를 바 없었다. 근면의 기풍이 확립되면 그 다음 실질적으로 국부를 축적할 수 있는 방안은 '식산흥업'이라 하였다. 물론 이 방안은 일제의 이른바 '부원개발'(富源開發)의 일환으로, 식민수탈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규완은 바로 이 식산흥업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지방관이 된 이후에도 이규완은 이를 스스로 실천하였다.

{매일신보} 1917년 5월 6일자는 '도장관이 지게 지고 석재를 운반'한다는 제목으로 강원도 장관 이규완 씨의 근검을 칭찬하고 있다. 능금꽃과 복사꽃이 만발한 과수원에서 휴일에도 쉬지 않고 다갈색의 노동복을 입고 소를 몰고, 지계를 등에 지고 일하는 두 명의 청년, 이규완의 아들 각일(覺一)과 선길(鮮吉)에 관한 이야기다. 직접 과수원을 개간하였을 뿐아니라 그의 집 밭에다 스스로 묘포를 만들어 각종 수종의 묘목을 키워 보급할 정도였다. 강원도 장관 시절에는 농민들에게 부업으로 양잠, 기직(機織:베틀로 베를 짜는 것), 종묘원 등을 경영하게 하고, '10년 후에는 강원도를 우리 나라 유일의 양잠지로 만들어 이 곳에 일대 공장을 세우고 많은 생사를 수출하게 될 것'이라고 계획하기도 하였다. 그는 또한 군수 등의 지방관의 실업사상을 강조하였다. 지방관들이 관료의식에만 사로 잡혀 있으면 도저히 지방민과 융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산업 발달을 위한 관리들의 솔선수범을 강조하여 자택 근처에 양잠상습소를 설치하고, 광대한 자기 집에는 자비로 견직기 10대를 설치하여 군수, 기타 관리 또는 지방 명망가의 자제를 교육시키기도 하였다. 1924년 함경도 지사에서 퇴직한 후, 그는 다른 사람들의 일반적인 코스와도 같은 중추원 참의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오직 손수 농장을 개간하고 운영하는 일에만 매달렸다. 식산흥업이야말로 최선의 길이라는 자신의 확고한 소신에서 그러하였을 것이다. 1930년 이후 청량리 부근에 토지를 매입하기 시작하여, 약 2천여 평을 6년여 동안에 걸쳐 개간하였다. 하루에 한 평씩 삽과 괭이만으로 주야로 일하여 스스로 개간하였다. 그리고 곧 춘천 신동면 석사리의 하천 황무지 3만 8000여 평을 매입하여 개간하였다. 황무지이지만 장차 인구가 늘고 인지가 발달됨에 따라 농경지가 부족하게 되어 토지도 집약적으로 이용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네 아들의 경제적 기반이 될 수 있는 농장을 각각 개간하였다. 이러한 황무지 개간은 그의 이상을 실현하는 길이었다. '나의 이상이 무엇인가를 물으면 나는 문명에게 버림받은 반개불전(半開不錢)의 땅을 개발해서 황금 세계를 실현하는 데 있다고 서슴치 않고 대답하겠네'라고 하였던 것이다.

일찍부터 참정권 주장

그는 아래의 신문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부를 쌓아 실력이 양성된다면 일본의 국정에도 참여해야 한다는 참정권을 주장하였다. 일시동인(一視同仁)하는 천황의 적자(赤子)로 내지인과 동등의 권리를 향유치 못하겠는가. 참정권을 획득함은 물론이고 비록 국무대신이나 주외사신이라도 가히 하지 못할 자가 없을 것으로 믿는다.({매일신보}. 1916. 4. 12) 문명의 정도가 내지인과 손색이 없다면, 일시동인지하의 필경 조선인도 상당한 지위로 참정권을 주면 국회위원, 정무대신도 가하다.({매일신보}. 1917. 12. 12) 참정권은 3·1 운동 후 민원식(閔元植)과 같은 적극적인 친일파에 의해서 제기되고, 일제가 문화정치의 일환으로 제시한 것인데, 이규완은 이를 처음부터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일제의 부원개발, 산업 발전, 민풍의 개선 등을 통한 문명개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개화파 이래의 문명개화론에 입각하여 민족성을 개량하고 산업을 발전시켜 일본인과 동일한 수준이 된다면 일본의 국정에도 참여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에게 일제로부터의 독립 같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 김도형(계명대 교수·한국사)*

참고문헌

{매일신보} 朝鮮總督府, {官報}, 1919. 7. 10.